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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타/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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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탄생3. 활동
3.1. 파타 소속 단체들3.2. 파타 견제를 위한 이스라엘의 하마스 지원

1. 개요

파타의 역사와 활동에 대해 다루는 문서

2. 탄생

1959년에 정치 운동 단체로 출발하여 1965년에 공식적으로 창당되었다.

기본적으로 엄격한 세속주의를 추구해서 정교일치를 표방하는 우파 정당인 하마스와는 대립 관계에 있고, 후술하였으나 과거 이스라엘은 파타를 견제하고자 하마스를 지원한 역사가 있었다.

여담으로 소련이 살아 있을 적엔 소련의 지원 하에[1] 무장투쟁을 했으나 소련 붕괴 후에는 하마스와 달리 이스라엘과 국제사회와의 타협, 협상을 통해 영토, 주권을 인정받으려고 한다. 1988년까지는 미국과 이스라엘에 의해 테러집단으로 분류되었으나 현재는 그렇지 않다. 세속적인 팔레스타인 민족주의 및 양국 방안을 표방하며 이것 때문에 계속 하마스와 대립하고 있다.[2]

3. 활동

3.1. 파타 소속 단체들

파일:베이루트 여성.jpg

레바논 내전 당시인 1979년 새해 베이루트에서 행진하는 파타 민병대 산하 페다인(결사대).[3]

파일:external/4.bp.blogspot.com/fatah+armed+groups.jpg

[4]

다만 파타가 꼭 단일화된 집단은 아니어서 공식 입장은 아니더라도 팔레스타인 보안군 외에도 무장집단들이 있다. 특히 파타도 자신들을 개무시하고 아랫것으로 대하는 이스라엘을 증오하는 사람들은 많으나 대놓고 싸울 수 없어 휘하의 무장단체들을 시켜 하마스와 같이 이스라엘과 싸우게 한다. 대표적으로 공산주의 성향 조직인[5] '팔레스타인 해방민주전선'(DFLP)이 있는데 정확히는 마오주의 계열로, 팔레스타인 해방인민전선과 정파 차이로 갈라졌다.

3.2. 파타 견제를 위한 이스라엘의 하마스 지원

Pre-1987: Hamas’s Emergence
Hamas’s politicization and militarization can be traced to the first Palestinian intifada(uprising) that began in the Gaza Strip in 1987 in resistance to the Israeli occupation. Its precursor, Al Mujamma al Islami (known simply as Mujamma, or “The Islamic Center”), was established in Israeli-occupied Gaza in the 1970s under the auspices of the Palestinian Muslim Brotherhood, which had links to Muslim Brotherhood chapters in Egypt and Jordan and later developed links to branches elsewhere—most notably among Palestinian refugees and expatriates living in Kuwait.
Sheikh Ahmed Yassin, the group’s leader, concentrated the Mujamma’s activities on religious and social services, following some models provided by the Egyptian and Jordanian Muslim Brotherhood branches, whose open political activism was repressed by state authorities. Yassin’s and his associates’ activities—which led to Hamas’s founding—were countenanced and sometimes supported by Israel, which believed the Islamists to be a convenient foil for the secular nationalist factions such as Fatah that Israel then perceived to be greater threats.
1987년 이전: 하마스의 등장
하마스의 정치화와 군사화는 1987년 이스라엘의 점령에 저항하여 가자 지구에서 시작된 최초의 팔레스타인 인티파다(봉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 전신인 알 무잠마 알 이슬라미 (단순히 무잠마 또는 "이슬람 센터"로 알려짐)는 1970년대 이스라엘이 점령한 가자 지구에서 이집트와 요르단의 무슬림 형제단 지부와 관련이 있으며 나중에는 다른 곳의 지부들, 특히 쿠웨이트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난민들과 국외 거주자들과 관련이 있는 팔레스타인 무슬림 형제단의 후원 하에 설립되었습니다.
이 단체의 지도자인 셰이크 아흐메드 야신은, 이집트와 요르단에서 공개적인 정치적 행동주의가 국가 당국에 의해 탄압받았던 무슬림 형제단이 제공한 일부 모델을 따라 무잠마의 활동을 종교적 및 사회적 서비스에 집중했습니다. 하마스의 설립으로 이어진 야신과 그의 동료들의 활동은 이스라엘에 의해 강화되었고 때로는 지원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슬람주의자들이, 당시에 더 큰 위협으로 인식되던 파타와 같은 세속적인 민족주의 파벌들을 막는 편리한 방어막이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미국 의회 조사국, Hamas: Background and Issues for Congress, 42p
Hamas launched in 1988 in Gaza at the time of the first intifada, or uprising, with a charter now infamous for its anti-Semitism and its refusal to accept the existence of the Israeli state. But for more than a decade prior, Israeli authorities actively enabled its rise.
At the time, Israel's main enemy was the late Yasser Arafat's Fatah party
하마스는 1988년 제1차 인티파다 즉 봉기 당시 가자지구에서 출범했으며, 반유대주의와 이스라엘 국가의 존립을 거부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은 현재의 헌장을 채택하였다. 하지만 이보다 10여 년 이상 앞서서, 이스라엘 당국은 적극적으로 하마스의 부상을 가능하게 해왔었다.
당시 이스라엘의 주적은 야세르 아라파트파타당이었다.
How Israel helped create Hamas, 워싱턴포스트
"하마스는 매우 유감스럽게도 이스라엘의 창조물입니다." 라고 가자지구에서 20년 넘게 근무한 튀니지 태생의 유대인 코언 씨가 증언했습니다. 1994년까지 이 지역의 종교문제를 담당했던 코언 씨는, 이슬람 운동이 구체화되어서 경쟁하던 팔레스타인 세속주의자들을 제쳐두고, 이스라엘의 파멸을 맹세하는 호전적인 단체인 오늘날의 하마스로 변모해 가는 것을 지켜봤습니다.

이스라엘은 처음부터 가자지구의 이슬람주의자들을 억제하려 하지 않았고, 수년 간 이들을 묵인해 왔습니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세속주의적 민족주의자들인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와 그 지휘부인 야세르 아라파트의 파타당을 견제하는 균형추 역할을 하도록 이들을 지원했다고 코언 씨는 증언합니다.
...
이스라엘의 경험은, 냉전 시절에 이슬람주의자들을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유용한 동맹국으로 간주했었던 미국의 경험을 되풀이합니다. 1979년 모스크바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후 미국의 지원을 받은 반(反)소련 세력들은 이후 알카에다로 변모했습니다.
...
이스라엘이 1970~80년대 가자지구에서 이슬람주의자들을 처음 접했을 때, 그들은 이스라엘과의 대립이 아니라 코란을 연구하는 데 집중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스라엘 정부는 하마스의 전신인 무자마 알 이슬라미야를 자선단체로 등록하면서 공식 인정했습니다. 이를 통해 무자마의 회원들은 이슬람 대학을 설립하고 이슬람 사원과 클럽, 학교를 건설할 수 있었습니다. 결정적으로, 이스라엘은 이슬람주의자들과, 세속주의적인 좌익 팔레스타인 경쟁자들이, 가자 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지구에 대한 영향력을 놓고 때때로 격렬하게 다툴 때에, 종종 옆으로 물러나서 방관했습니다.
"일련의 사건들을 돌이켜보면 우리가 실수를 저질렀다고 생각합니다." 19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에 이스라엘군의 아랍문제 전문가로 가자지구에서 일했던 데이비드 하참은 말합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아무도 가능한 결과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은 파타당과 다른 세속주의적인 PLO파들을 추적했지만, 이전에 이집트 군부 통치자들이 이슬람주의자들에게 가한 가혹한 규제들을 철회해주었습니다.
...
이스라엘 군이 주도하는 가자지구 행정부는, 학교와 병원, 도서관, 유치원 등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구축한 하반신 마비 성직자를 호의적으로 바라봤습니다. 셰이크 야신은 이슬람 단체인 '무자마 알 이슬라미야'를 설립했는데, 이 단체는 1979년에 이스라엘로부터 자선단체로 공식 인정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은 또한 현재에는 호전성의 온상으로 간주되고 있는 가자지구 이슬람 대학의 설립을 지지했습니다. 이 대학은 최근 전쟁에서 이스라엘 전투기들이 폭격한 첫 번째 목표물 중 하나였습니다.

당시에 가자지구의 통치자였던 요세프 카스텔 준장은, 너무 아파서 인터뷰할 수 없다고 그의 부인이 말했습니다. 하지만 1979년 말, 가자지구에서 통치자로 집권한 이츠하크 세게브 준장은, 야신의 장기적인 의도나 이슬람 정치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전혀 환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전직 이란 주재 무관으로서, 이슬람 광풍이 이란의 샤 왕정을 무너뜨리는 것을 지켜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자지구에서는, "우리의 주적은 파타였다"고 말했으며, 그 성직자는 이스라엘에 대해 "여전히 100% 평화로웠다"고 말했습니다. 전직 관리들은, 그 당시 이스라엘이 이슬람교에 적대적인 것으로 보여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세게브 준장은, 어느 정도는 감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셰이크 야신과 정기적으로 만났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의 이슬람 사원을 방문했고, 그 성직자를 십여 차례 만났습니다. 그 당시에는 이스라엘인들이 PLO에 속한 사람들과 만나는 것은 불법이었습니다. 세게브 준장은 이후에, 그 성직자가 이스라엘로 이송되어 병원 치료를 받도록 주선했습니다. "우리는 그와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라고 그가 말했습니다.

사실, 그 성직자와 이스라엘에게는 세속주의 팔레스타인 운동가들이라는 공통의 적이 있었습니다. 무자마는 이슬람 버전 적십자인 가자지구 적신월 지도부에서 세속주의자들을 축출하려는 시도가 실패한 이후, 과격 시위를 벌였고, 적신월사 건물을 급습했습니다. 이슬람주의자들은 또한 술을 파는 상점들과 영화관을 공격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는 대부분 방관했습니다.
How Israel Helped to Spawn Hamas 유료기사, 월스트리트 저널, 아카이브#
An Anti-Communist Struggle before Being Anti-Israeli
반이스라엘 이전에, 반공 투쟁부터
The Origins of Hamas: Militant Legacy or Israeli Tool?, 11p

현재의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관계를 생각하면 상당히 의외의 사실인데 하마스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을 분열시키기 위해서 아랍사회주의세속주의 성향의 정당인 파타를 견제할 대항마로 반공주의 성향의 이슬람 근본주의 단체인 무슬림 형제단을 지원해 주면서 성장하였다. 즉, 하마스를 분열된 팔레스타인의 통제되는 위협으로 만들려고 이스라엘이 키워준 것이다.[6]


팔레스타인 독립운동을 분열시키기 위해서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지원하는 '갈라치기' 전략을 사용했다고 한다.


영상 18분 10초부터 하마스는 이스라엘이 키워줬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이 딱히 엄청난 비밀조차도 아니고 이스라엘에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고 한다.
그러한 견해는 이스라엘 우파들에게 널리 공유되어 있습니다. 2015년 인터뷰에서, 스모트리히는 그 당시 팔레스타인의 테러 공격은 대부분 고립된 '분위기'에 있었다고 주장했는데, 다시 말해, 정치적 위험이 아니라, 전략적 위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진짜 위협은 아바스 수반의 외교 전선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이스라엘에게는 "팔레스타인 정부는 부담이지만, 하마스는 자산"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과 가자지구 간의 정기적인 교전에도 불구하고, 하마스가 통치를 계속 강화할 수 있도록 허락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가자지구를 재정복하는 것은 결코 현실적이거나 도덕적인 선택이 아니었고, 팔레스타인의 재통일을 추진할 수 있는 이스라엘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었다고 강조합니다. 하지만 네타냐후 총리의 통치하에서,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고립되고 힘이 약해졌을 때, 그러한 기회를 피했습니다. 가자지구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통치하로 복귀시키는 것은 분명히, 총리의 계획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하마스는 적이었고, 기괴한 반전으로, 두 국가로 구성된 해결책과 평화라는 외교적 위협에 맞서는 동맹국이었습니다.
...
오늘날의 실수는 더 큰 자만심에 있었습니다. 하마스가 서안지구를 무한정 점령하고 심화시키기 위해 안전하게 관리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정부가 명백하게 안보를 소홀히 한 것을 더하면 그 결과는 재앙이었습니다.
뉴욕타임즈, Netanyahu Led Us to Catastrophe. He Must Go. #
2009년 두 번째 총리로 취임한 이후 네타냐후 총리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희생시켜 하마스를 강화하는 것이 이스라엘에 도움이 된다는 파괴적이고 왜곡된 정치적 교리를 개발하고 발전시켰기 때문입니다.
이 교리의 목적은 가자지구 하마스와 요르단강 서안지구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사이의 균열을 영구화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이스라엘이 두 개의 국가로 분할되는 문제를 놓고 팔레스타인과 협상을 벌이는 "위험"을 영원히 제거할 수 있을 것입니다.''' -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모든 팔레스타인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에 대해서

그 결함 있는 전략은 하마스를 작은 테러 조직에서 효율적이고 치명적인 군대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고도로 훈련되고 비인간화된 스톰트루퍼, 피에 굶주린 살인자들은 여성, 어린이, 노인들을 포함한 무고한 이스라엘 민간인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습니다.

이는 확고한 문서입니다. 네타냐후는 2012년부터 2018년 사이에 카타르가 가자 지구에 약 10억 달러를 송금할 것을 승인했으며, 이 중 적어도 절반은 무장조직을 포함한 하마스에 도달했습니다. 예루살렘 포스트에 따르면, 2019년 3월 11일 자신이 이끄는 리쿠드 당원들과 사적으로 만난 자리에서 네타냐후는 무모한 조치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에 반대하는 사람은 누구나 카타르에서 하마스로 돈을 송금하는 것을 지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방식으로 우리는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저지할 것입니다." (전 각료 하임 라몬의 히브리어 책 "Neged Haruach", 페이지 417에서 보도된 바와 같이).

2019년 5월 5일 Ynet뉴스 웹사이트와의 인터뷰에서 네타냐후 부소장 게르손 하코헨은 "우리는 진실을 말할 필요가 있습니다. 네타냐후의 전략은 두 국가의 선택을 막는 것이므로 하마스를 그의 가장 가까운 파트너로 바꾸고 있습니다. 공개적으로 하마스는 적입니다. 비밀리에는, 동맹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채널 13은 2019년 5월 20일자 트윗에서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의 말을 인용해 "네타냐후는 두 국가의 해결책에 관심이 없다. 오히려 그는 2010년 말 나에게 말했듯이 가자 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지구를 분리하고 싶어한다"고 전했습니다. 무바라크는 쿠웨이트 일간지 알안바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습니다.

이런 발언이 갖는 끔찍한 의미를 되새겨볼 가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한 총리가, 이스라엘에서 가장 악랄하고 광적인 적들 중 하나를, 이 나라를 파괴하는 것을 목표로 선포한 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키워냈습니다.
이스라엘 제도권 언론 하아레츠의 기사, 아카이브#
수년간 베냐민 네타냐후가 이끄는 다양한 정부들은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구 사이에 권력을 분할하는 접근법을 취했습니다. 마흐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무릎 꿇게 하는 한편, 하마스 테러집단을 지지하는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이 계획은 아바스 수반을 비롯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요르단강 서안지구 정부에 속한 그 누구도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For years, Netanyahu propped up Hamas. Now it’s blown up in our faces, 타임즈 오브 이스라엘 #
정치 특파원 탈 슈나이더는 지난 주 타임즈 오브 이스라엘에서 "수년 동안 베냐민 네타냐후가 이끄는 다양한 정부들은 가자 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지구 사이의 권력을 분할하는 접근법을 취하여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마흐무드 아바스 수반을 무릎 꿇게 하는 한편 하마스의 테러 집단을 지지하는 움직임을 취했습니다."라고 썼다. "그 생각은 아바스 수반 혹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서안 지구 정부에 속한 그 누구도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Haaretz의 칼럼니스트 Dmitry Shumsky도 유사한 입장을 취하면서, 네타냐후 총리가 팔레스타인과의 2국가 해결책을 놓고 협상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외교적 마비" 정책을 추구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결점이 있는 전략은 하마스를 "무자비한 이스라엘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피에 굶주린 살인자들을 가진 효율적이고 치명적인 군대"로 바꾸어 놓았다고 Shumsky는 말했습니다.
...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 미국 및 서방의 많은 국가들에 의해 테러 조직으로 공식 지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014년 이스라엘의 마지막 주요 지상 침공 이후 이 단체의 군사적 도발을 대체로 무시하고 있으며, 동시에 가자 지구로 막대한 현금이 유입되도록 허용하고 있습니다.
텔레그레프, How Benjamin Netanyahu empowered Hamas ... and broke Israel

이스라엘군 정보 장교인 '하라리'는 당시 하마스와 파타사이에 충돌이 발생했을때에, 하마스가 파타에 맞서 싸우도록 보내줬다고 증언했다. "저는 '만약 그들이 서로를 불태우기를 원한다면, 그들을 보내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하마스가 무기를 몰래 모으고 있는 사실을 확인하여 무기은닉처를 발견하고 세이크 야신을 체포했었는데, 야신이 파타를 공격하려고 무기를 모았다고 말하자, 1년후 야신을 풀어주기까지 했었다. 하라리 준장은 당시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직접 무장시키려고 한 것은 아니고 위험성을 무시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에 자금을 지원하지 않았고, 무기를 지원하지도 않았다." 이스라엘 내부 보안국인 신베트의 전 간부인 '로니 샤케드'는 셰이크 야신과 그 추종자들은 그 당시에는 위험성이 알려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즉, 세속주의 성향의 파타보다 이슬람 단체인 하마스를 우호적으로 평가해서, 파타를 공격하는 하마스가 무장하도록 묵인했다는 사실이다.

10대 이스라엘 총리와 국방부 장관을 역임한 에후드 바라크 전 이스라엘 총리에 의하면, 하마스의 확장에는 네타냐후의 책임도 있다고 하며, 두 국가 해법을 반대하는 네타냐후에게는 하마스는 오히려 자산에 가깝다고 한다. 바라크는 두 국가 해법만이 해결책이라고 한다#

에후드 올메르트 전 이스라엘 총리의 인터뷰 영상 11분 10초부터 이스라엘 네타냐후 정부가 하마스를 지원했다고 말한다. 정확히는 카타르가 하마스에 수억 달러를 지원하는 것을 알면서도 막지 않으며 간접적으로 하마스의 세력을 키웠다는 내용이다.
We know that the Hamas was financed with the assistance of Israel — for years — by hundreds of millions of dollars that came from Qatar with the assistance of the state of Israel, with the full knowledge and support of the Israeli government led by Netanyahu.
Netanyahu, when he took over in 2009, said that his primary responsibility and priority is to destroy Hamas. And throughout the period that he was prime minister, he made every possible effort in order to build Hamas rather than to destroy it. And in a certain way, the expansion of the Hamas and the strengthening of Hamas is largely also a result of this policy of Netanyahu.
우리는 하마스가 이스라엘의 도움하에 수 년간 카타르에서 나온 수억달러의 자금을 지원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하마스를 키우는데 동원된 지식과 지원이 네타냐후 정권에서 나왔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2009년 집권 당시 네타냐후는 하마스를 파괴하는 것이 자신의 주요 목표이자 우선순위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총리 재임 기간 내내 하마스를 파괴하기보다는, 건설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 하마스의 팽창과 하마스의 강화 역시 주로 네타냐후의 정책에 따른 결과입니다.
에후드 올메르트 전 이스라엘 총리 인터뷰#
Netanyahu has strongly denied allowing Qatar to fund Hamas in order to divide Palestinians into rival political camps. But the Israeli leader said in 2019 at a Likud party conference: “Anyone who wants to prevent the establishment of a Palestinian state needs to support strengthening Hamas.”
네타냐후는 팔레스타인을 분열시키기 위해서 카타르가 하마스를 지원하도록 허용했다는 것을 강력하게 부인해왔다. 하지만 이스라엘 지도자는 2019년 리쿠드당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팔레스타인 국가 설립을 막으려는 사람이라면 하마스를 강화하는 것을 지원해야만 한다"
폴리티코 EU’s top diplomat accuses Israel of funding Hamas

뉴욕 타임즈의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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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련은 친미 국가인 영국과의 관계가 좋지 못해 당초 요르단, 이라크 왕국, 이집트 왕국 등 친영 왕정들이 주류였던 아랍 국가들을 꺼려 이스라엘 건국을 지원했지만 이스라엘이 제1차 중동전쟁 이후 친미 국가를 표방하고 다른 아랍 국가에 아랍사회주의 정권이 속속 들어서자 노선을 바꿔서 아랍 국가들에게 우호적인 입장을 취했다.[2] 다만 이스라엘이 지속적으로 파타와 하마스를 탄압하다 보니 오히려 최근에는 파타와 하마스가 화해를 진행한다는(!) 주장도 있다.[3] 팔레스타인 전통의상을 입고 있다. 이들은 1978년 3월 이스라엘인 38명을 죽인 텔아비브 해안 도로 테러를 감행한 바 있다.[4] 파타 소속의 무장단체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순교자 아메드 아부 알 리쉬 여단, 파타 호크스, 알아크사 순교자 여단, 순교자 압둘 카데르 알 후세이니 여단)[5] 파타 역시 어느정도 공산주의 성향을 띠고 있긴 하다.[6] 로버트 드레이퍼스는 2006년 서적인 Devil's Game에서 이런 점을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