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0-28 13:58:30

왕중왕(게임)

파이트 피버에서 넘어옴
1. 개요
1.1. 의의
2. 스토리3. 시스템4. 등장인물5. 캐릭터별 필승기6. 여담

世界最強は誰か?今、真剣勝負の幕があく.... (세계 최강은 누구인가? 지금, 진검승부의 막이 오르다....)
YOU WANT?
TAEKWONDO CHAMP OF THE WORLD
동해의 일출과 함께 세계
태권왕으로 가는
대장정의 날이 밝았다.


세계의 고수들을
다 물리친 그가
나와의 일전에서 승리한다면
진정한 패자가 되리라.


하지만,
내게 오는 그가
나의 아들들 이라면
과연 나는......

1. 개요


왕중왕 / Fight Fever

빅콤[1]에서 MVS 기판으로 순수 국내 기술로 제작한 대전 격투 게임. 발매는 국내보다 일본에서 먼저 되었다. 일본은 1994년 6월 28일, 북미는 7월, 국내는 9월. 현재는 매물이 있다 없다 할 정도로 희귀한 게임이다. 출시 직후 아케이드용 신품 롬 카트리지 오픈가격은 58,000엔.[2]

일반적으로 '최초의 국산 아케이드 대전 액션 게임'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유니코전자드래곤 마스터는 3월에 발매되었고, 선아전자베스트 오브 베스트는 5월에 발매되었기 때문. 하지만 드래곤 마스터는 심의[3]를 5월이 돼서야 뒤늦게 받았고, 베스트 오브 베스트와 동일한 날짜에 제작 허가가 난 데다가,[4] 왕중왕 쪽이 일단 겉보기 만큼은 완성도도 두 게임에 비해서 그나마 높은 편이고 발매 당시 MBC 뉴스데스크국내기술 왕중왕이라는 제목의 뉴스로 뜨기도 하였고 잡지에서도 여러 차례 소개되어서 보통 이 쪽을 기억하고 있다.

이 게임은 김갑환 빅콤 회장이 아랑전설이나 용호의권같은 명작 격투게임을 국산 기술력으로 만들자는 야심찬 계획하에 만들어진 게임이며, 그래서 김갑환 회장을 포함한 빅콤 임직원 일동이 SNK에 연수를 가서 거기서 SNK 개발팀 직원들에게 많이 배워와서 만들었다.

세계 태권도 대회가 배경으로, 설정상 라스트 보스인 가라데 켄지를 제외한 모든 캐릭터가 태권도를 사용하고 있지만, 한배달김훈 등 소수의 캐릭터를 제외하고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특히 브라질 쪽 캐릭터인 골리오는 전혀 태권도로 보이지 않는 기술을 사용하면서도 태권도를 쓴다는 설정이나[5] 일어판에서 일본어 표기를 이상하게 한 부분에 대해서도 일본에서는 이런저런 의미로 놀림받고 있다.

기본 시스템은 기본기와 필승기, 체력게이지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졌을 시 쓸 수 있는 초필승기로 구성된, 한 마디로 라인 이동이 빠진 아랑전설 2 시스템에 가깝다. 필기 대신 필기라는 용어는 게임에 건전함을 추구하기 위해 빅콤에서 만든 신조어다. 상세한 사연은 필승기 문서 참조. 그래서인지 상대가 일반 기술로 KO되면 바로 일어서서 패배 모션을 취하거나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한다. 사실 상대방에 대해 예의를 갖추는 것도 무술의 한 부분이니 그다지 뜬금 없는 건 아니다.

다만 시스템에 괴이한 부분이 좀 많은데 1994년에 나온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기본기 캔슬 따윈 없는 경파함의 길을 추구하고 있으며 하단 공격의 경우 강약 구분이 없는 이해할 수 없는 시스템을 지니고 있다. 특히 커맨드 입력에서 기존 대전격투게임 팬들의 기대를 저버린다. 일각에서는 필승기 입력이 어렵다는 점에서 스트리트 파이터 1에 비교하기도 하지만 실상은 스트리트 파이터 1은 상대도 안 될 정도로 기술이 안나간다. 스트리트 파이터 1은 요령만 파악하면 어느 정도 나가는데 비해 이쪽은 그냥 안 나가는 거라 정말 답이 없다. 때문에 플레이어는 커맨드 고자인데, CPU는 필승기로 막 날뛰는 광경도 적잖이 볼 수 있다. 가장 쉬운 레벨 1에서도 이렇다.

초창기 격투게임들이 대개 그렇듯이 CPU전을 진행하다 보면 보너스 스테이지가 중간중간에 끼어있는데 이게 기와깨기와 송판깨기다. 다시 말하면 구성이 스트리트 파이터 1과 거의 똑같다는 이야기.

물건너 일본에서는 그 구린 퀄리티 때문에 지금도 쿠소게 취급 받으며 놀림받고 있는 작품이지만, 의외로 독특한 게임의 테이스트 때문인지 일부 계층에서는 컬트한 괴작으로 인기가 있는 듯 하다. 일본에서도 의외로 아는 사람은 아는 게임인 듯.

1.1. 의의

아랑전설 2용호의 권과 대부분의 시스템이 유사한데, 이는 빅콤에서 대전 격투 게임의 노하우를 얻기 위해서 연수생을 SNK 본사에 보내 교육에 참여시켰고, 그 두 작품의 노하우를 얻어 만든 데 원인이 있다.[6] SNK 측에서도 일단은 개발에 협력했고 네오지오 보급에 도움이 되어야 자신에게도 이익이 생길테니 그에 대한 보답으로 효과음을 사용하게 해주었고, 일본을 포함한 해외 배급 및 번역을 도와주었으며, 가라데 켄지의 성우에 료 사카자키 역으로 친숙한 우스이 마사키[7]를 기용해 주기도 했다. 즉, 왕중왕은 실제로 연습작에 가까운 성격을 지닌 작품이 맞으며 완성도가 낮은 이유도 이런 사연이 있는 것.

한편으로 '연습작이라서'라는 면피가 아니라도 당시의 여건상 어쩔 수 없다고, 옹호해줄 만한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예로부터 대전격투게임은 제작에 필요한 노하우가 다른 장르에 비해 많이 필요한 장르였다. 사용되는 그래픽 리소스의 양부터가 다른 장르보다 압도적으로 많고, 매끄러운 조작감을 위해서도 여러 노하우가 필요하다. 다른 장르에 비해 캐릭터가 많은 만큼 경우의 수에 따른 밸런스 조절 역시 복잡해진다. 게임 제작 기술이 발달한 지금에 와서도 MMORPG, AOS와 함께 제작 및 운영이 어려운 장르에 속하며, 이마저도 까다로운 조작 난이도와 장르의 인기 하락 등을 이유로 선뜻 제작에 나서는 업체가 많지 않다.

이 때문에 90년대 초 대전 격투 게임이 붐이라 만드는 회사는 많았지만 본고장 일본에서 조차 해당 장르를 창시한 캡콤과 대전 격투 게임 전문 제작사로 부상한 SNK를 제외하고는 딱히 수작이라 할 만한 게임은 많지 않았다. CP 시스템의 테스트 모드를 통해 스트리트 파이터 2의 데이터를 쉽게 볼 수 있어서 비슷하게 따라하는 식으로 나온 대다수 작품은 양대 회사의 명성을 따라잡기는 약간 모자란 수준이었고,[8] 이마저도 90년대 후반에 아케이드 자체의 인기가 약해지거나 장르 자체가 시들해졌다. 90년대 중반 대전 격투 게임의 대세가 3D게임으로 넘어가자 신경써야 할 점이 많아져 세가남코가 겨우 살아남았었고, SNK는 오히려 3D에 적응하지 못하고 나가떨어졌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야 아크 시스템 웍스가 겨우 신규로 두각을 나타낼 수 있게 되는 정도로, 대전 격투 게임은 저예산으로 게임기용을 만들어서 제작비를 회수하는 정도의 수준을 넘기가 힘들었다.

이러한 사정은 같은 시기의 한국 아케이드 게임계도 마찬가지라 대부분의 제작사는 개발 난이도가 낮은 퀴즈나 퍼즐, 잘해봐야 슈팅 정도나 만들고 있었다. 요즘 와서도 대전격투는 MMORPG의 부속 컨텐츠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빅콤의 도전은 충분히 가치가 있는 것이었고, 이를 증명하듯 왕중왕 이후 심기일전한 빅콤은 명실공히 국산 대전 격투 게임 최고의 역작이라 할 수 있는 극초호권을 내놓으며 왕중왕의 불명예를 만회할 정도는 되었다.

결국 왕중왕은 낮은 완성도 때문에 대전 격투 게임의 황금기에 나온 순수 국산 대전격투게임임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참패하였고, 이 참패는 후속작인 극초호권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여러가지 사정으로 극초호권의 아케이드 기판 가동은 좌절되었고, 대신 3DO판과 PC판만이 출시되었다. 국산 게임이 드물었던 시대가 아니라서 왕중왕 때보다 임팩트가 약해 주목받지 못했다. 게다가 기본도 안 된 게임을 만든 회사가 바로 다음 편을 물건너급 웰메이드로 내놓을 거라고 예상한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고, 이러한 선입견 역시 극초호권의 흥행 실패에 영향을 주었다.

2. 스토리

태권도는 전세계적으로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을 키우기 위한 최고의 무술로 자리를 잡는다. 태권도가 급속도로 퍼져가자 많은 사람들은 서로의 실력을 과시하기 위한 무술대회를 개최하기에 이른다. 현역 선수들 이외에 혼자 은둔생활을 하며 수련하는 자, 개인사업을 하는 고수들은 1년에 1번씩 진정한 왕자를 가리는 '왕중왕' 대회를 열고 사람들은 대회우승을 위해 치열한 열전을 벌인다. 참가 선수들은 세계적인 관심이 주목되는 첫번째 서키트 장소가 어디일까에 온 신경을 곤두세운다. 프로다운 근성과 무술 구사만이 '궁극적인 승리자'를 만들어 준다. 태권도의 왕중왕은 누가 차지할 것인지...

3. 시스템

기본적으로 당시에 유행하였던 스트리트 파이터 2아랑전설 2와 유사하지만 나름대로 독특한 특징이 많다. 대부분의 특징은 그냥 빅콤의 개발력 부족에서 온 것이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왕도파 격투게임에서는 꽤 벗어나있는 시스템이 많아 오늘날에는 나름대로 개성으로 받아들이는 플레이어들도 많은 듯.

4. 등장인물


M.U.G.E.N.에서는 닉 코만도가라데 켄지가 유명하며 레트로게임 특유의 무적판정으로 당당한 강캐의 반열에 올라있다. 특히 가라데 켄지의 인기는 가히 컬트적인 수준이어서 승리 후 엄지손가락을 세우는 컷인에서는 b(엄지를 세운 손의 형상)의 탄막이 화면을 메운다.

참고로 이 캐릭터들 문서 내용은 일본 게임 위키인 니코니코 M.U.G.E.N 위키의 캐릭터 설명을 그대로 한국어로 번역한것과 같다. 아주 오랫동안 저 상태이다. 게임이 그만큼 인기가 없다.

5. 캐릭터별 필승기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왕중왕(게임)/기술표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전 캐릭터의 필승기/초필승기 동영상.

6. 여담



[1] SNK의 아케이드 게임들을 한국에 배급했던 빅코 그룹의 회장이 김갑환이었고 그가 자체 개발 국산 게임을 만들기 위해 설립한 회사가 빅콤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그 김갑환 이름의 유래가 된 인물 맞다. 빅코는 연합전자, 빅터라는 이름을 거쳐서 1992년에 설립되었는데, 빅콤은 그보다 앞서 1991년에 설립되었고, 후에 빅코의 자회사가 된다. 제작 담당(프로듀서)으로 크레딧 맨 위에 이름이 적혀있다.(SNK게임에 카와사키 회장 이름이 가장 위에 나오는 것과 같다.)[2] 아랑전설 2와 같은 가격이다. 당시 용량 100 Mega Bit 정도의 타이틀은 이 가격을 책정했다.[3] 당시 명칭은 '제작 허가'.[4] 베스트 오브 베스트는 1112번, 왕중왕은 한끗차로 1113번(…).[5] 태권도에 정글의 기술을 조합했다는 설정이다.[6] 1991년 11월에 회사를 설립하고 1992년 2월까지 연수를 받았다고 한다. 빅콤의 연수생을 맡은 것이 아랑전설 개발을 담당했던 니시야마 타카시 산하의 개발1과였다고 하며 이 시기는 아랑2를 만들 던 중이었다.[7] 하시모토 사토시와 더불어 SNK 양대 성우이다. 우스이 마사키가 담당한 배역은 료 사카자키, 존 크롤리, 다이몬 고로 등이 있으며 하시모토 사토시가 담당한 배역은 테리 보가드, 김갑환회장님 말고 캐릭터 등이 있다.[8] 어디까지나 상대적 기준이지, 평작 이상의 작품은 의외로 있다. 호혈사일족 시리즈나 ADK의 작품, 데이터이스트의 작품 등. 이와는 별개로 테스트 모드 덕에 많은 개발자들이 대전격투게임 개발의 원리를 체득할 수 있었고, 여러모로 캡콤에 신세를 졌다고 한다. 캡콤에서 영업 비밀을 그대로 도둑맞은 수준.[9] 거리에 따른 3종류의 공격 구분은 아랑전설1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10] 약공격도 4발, 필승기도 4발로 평등하다.[11] 다만 서양쪽 캐릭터들은 별도의 영어 기술명을 부여받기도 하며, 인게임 목소리는 영어 기술명을 외친다.[12] 김갑환 회장의 아들인 김재훈은 기획 담당이자 개발팀장으로 참여, 친형제인 김동환은 그룹의 상임고문이었으며 왕중왕의 지원 담당, 파이터즈 소드와 천하제일 검객전의 김웅재는 빅콤의 대표이사로 제작 담당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해권도 나오는데, 이 이름은 통쾌 간간 행진곡의 캐릭터명으로 쓰였다.[13] 그 첫번째가 빅콤이었고, 두번째는 이오리스, 세번째가 메가 엔터프라이즈였는데, 자체개발은 빅콤이 유일했고 나머지 업체는 전작과 같은 플랫폼으로 속편 제작에 참여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