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눈 속의 독수리》의 등장인물이자 주인공.
소설은 테오도시우스 왕조 서로마 제국의 황제 호노리우스가 브리타니아 영유 포기를 선언한 서기 410년에 브리타니아 사람들에게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해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1. 일대기
콘스탄티누스 왕조 제3대 황제인 콘스탄티우스 2세의 치세때인 서기 353년 출생이다. 순혈 로마인 가문의 아들이지만 수도 로마는 가본 적이 없으며 갈리아에서 나고 자랐다. 브리타니아 주둔군의 장군으로 임명된 아버지를 따라 브리타니아로 가서 그곳에서 군대에 입대했다. 그곳에서 순조롭게 군인으로서의 경력을 쌓아 가던 중, 로마 제국에 증오를 갖고 있었던 사촌 율리아누스가 반란을 일으켜 막시무스의 아버지를 죽이고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후 막시무스는 율리아누스를 비롯한 반란 주모자들을 노예로 삼고 검투 경기장과 납 광산에 보내는 처분을 내린다.이후 막시무스는 하드리아누스 방벽에 위치한 제국의 구석인 보르코비쿰으로 전속되는데 그곳에서 기독교도인 아내 아일리아를 만나 결혼하고, 평생의 동료인 기병대 장교 퀸투스 베로니우스를 만난다. 하드리아누스 방벽에서의 생활은 따분하고 평온했으나, 과거의 악연인 율리아누스가 북쪽으로 건너가 픽트족을 선동하여 로마 제국에 대한 대대적인 반란[1](367년의 음모)을 일으키면서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다. 브리타니아는 쑥대밭이 되었으며 아내 아일리아는 야만족에게 몹쓸 짓을 당한 후 쇠약해져서 죽었고, 이후에는 퇴물 소리를 들으며 한직을 전전한다.
그러던 어느 날, 플라비우스 스틸리코가 브리타니아를 방문하여 그를 발탁한 후 제20군단 발레리아 빅트릭스의 사령관으로 임명한다. 이후 막시무스는 스틸리코를 따라 이탈리아 반도에서 5년간 싸우고, 스틸리코의 간곡한 부탁을 뿌리칠 수 없어 18개월이라는 단기간 동안 라인(레누스) 강 방어선을 달랑 1개 군단 6,000명으로 막기로 한다.
하지만 현지에 도착해 보니 상황은 막장 그 자체였다. 현지 주둔군은 상태가 엉망인데다가 야만족과의 무역으로 가욋돈을 챙기고 있어 전투 의지가 없고[2], 보급을 담당해야 할 시정부와 민정총독은 관료주의와 무사태평주의로 거의 업무를 방임하고 있었으며, 상관인 플라비우스 스틸리코는 국내 사정이 어려우니 원래 예정된 방비 교대 임무를 미루고, 조금만 더 참아달라고 말한다.[3] 또한 교회는 사사건건 딴지를 걸고, 시민들은 징병을 기피하려고 자신들의 아들들 엄지손가락을 자르기까지 한다.
그래도 막시무스는 노구를 이끌고 불철주야 노력하면서 라인 강 방어선을 정비하지만, 두 번째 겨울의 이례적인 맹추위로 라인 강이 얼어붙어버리면서 게르만족의 5부족 연합 총인원 250,000명이 일제히 도강하기 시작한다. 심지어 과거의 악연이었던 율리아누스가 또 나타나 게르만족 침략군의 브레인 노릇을 하고 있었다.
막시무스와 부하들은 엄청난 중과부적의 상황에서도 지원군을 기대하고 자그마치 16일 동안이나 지연전을 벌이며 분투하지만, 협력하던 게르만족 일파의 배신 탓에 결전지로 생각하고 준비해둔 요새를 빼앗겨 제때 퇴각할 기회를 놓쳐 버리고, 비상용으로 준비해둔 군수품과 물자마저 모두 빼앗기고 만다. 고대하던 지원군은 오지 않고 폭설과 혹한으로 교통이 모두 끊긴 상태에서 허허벌판에 고립된 제20군단 발레리아 빅트릭스는 마지막 퇴각지로 지정해둔 30마일 이정표 지점에 집결한 후, 마지막 힘을 다 짜내어 생사를 건 최후의 결전을 벌이나, 간발의 차로 결국 게르만군을 섬멸하는데 실패한다. 이후 모든 전투력을 다 소진해버린 제20군단은 군기와 독수리를 불태우고, 막시무스를 제외한 제20군단 병사들과 보조병들, 그리고 프레데가르가 이끄는 프랑크족 동맹군은 전원 최후까지 저항하다가 전사한다.
막시무스는 최후의 전투에서 한 손을 잃고 기절했었으나 평생의 숙적이었던 율리아누스의 보호 덕에 목숨을 건지고, 아우구스타 트레베로룸(트리어) 주교의 집에서 머물며 건강을 회복한다. 하지만 자신을 군단장에 임명한 스틸리코도 암군 호노리우스 황제의 명령으로 처형되고, 따르던 부하와 친구들도 전부 전사했으며, 평생 가보고 싶었던 '세계의 수도' 로마는 알라리크 1세가 지휘하는 서고트족에게 약탈당해(로마 약탈) 아예 지키고자 했던 서로마 제국 자체가 사실상 멸망한 것이나 다름없게 되어 인생의 마지막 좌절을 맛보게 된다. 그 후 갈리아로 돌아오던 중 호노리우스 황제의 브리타니아 자력 보호 명령서가 적힌 칙령을 길에서 만난 칙사의 부탁으로 론디니움(런던)에 전하게 된다.
결국 소설의 마지막 장, 에필로그에서 태양신 솔 인빅투스를 부르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여담으로 에필로그에서 아서 왕 전설을 의식한듯한 장면이 있다.
2. 인물됨
완고하고 자비가 없지만, 동시에 강직하고 청렴하며 내심 인간적인 면모가 있는 무인의 성품을 지니고 있다. 《칼의 노래》나 《난중일기》에 등장한 이순신 장군의 모습과도 상당히 흡사하다.군인으로서는 거의 최고 수준의 경지에 이르렀으며, 작중의 대사나 행동을 보면 정말 경험이 충만한 노장의 풍모를 드러내보인다. 전술이나 전략 같은 지휘관으로서의 기본적인 부분은 말할 것도 없고 병참이나 대민 업무에서도 상당히 뛰어나다. 특히 뛰어난 점은, 서로마 제국이 쇠락하면서 서로마군 대부분은 군율이 붕괴되고, 전투력은 감소하게 되었는데 이 병사들을 최정예병으로 육성한 점이다. 게다가 그러한 정석적인 부분 외의 자잘한 속임수에서도 능하여 6,000명의 군단을 10배 규모로 뻥튀기하기도 하고, 자신을 암살하려던 게르만족 청년[4]의 싸구려 트릭을 초장에 간파하여 완전히 갖고 노는 위엄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개인적인 인생은 패배와 실패, 쇠락으로 점철된 비극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주는 사람도 없이 숲 속에서 쓸쓸히 자결했다. 그야말로 불꽃처럼 살다가 남기는 것 없이 죽어간 로마 제국의 마지막 군단장이었다.
[1] 역사적으로는 대음모(The Great Conspiracy)로 불리는 서기 367년의 사건이다.[2] 하지만 막시무스와 제20군단의 조련하에 제대로 된 병사들로 조련된다.[3] 원래는 18개월 후 고향인 브리타니아로 돌아가 하드리아누스 방벽 업무를 다시 맡을 예정이었다.[4] 이 청년은 훗날 알레만니족의 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