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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8 01:40:05

튀니지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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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니지 왕국
Kingdom of Tunisia
المملكة التونسية
파일:튀니지 국기.svg파일:.png
국기[1]국장
1956년 3월 20일 ~ 1957년 7월 25일
성립 이전 성립 이후
프랑스령 튀니지 튀니지 제1공화국
<colbgcolor=#e70013> 위치 튀니지
수도 튀니스
정치 체제 입헌군주제
공용어 아랍어
통화 튀니지 프랑

1. 개요2. 역사3. 후세인 왕조4. 멸망5. 역대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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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56년부터 1957년까지 짧게 튀니지에 존속했던 단명한 입헌군주제 국가였다.

2. 역사

1907년에 튀니지의 독립을 목표로 하는 결사단체인 "청년 튀니지당"이 등장하여 "헌정당"으로 발전하였다. 이들은 튀니지 인의 시민권 승인, 헌법 제정, 튀니지 인의 정치 참여 등을 요구하는 운동을 전개하였고 하비브 부르기바가 "신헌정당"의 이름으로 튀니지의 완전 독립을 요구했다. 한편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실패하고 알제리 문제로 코가 석 자인 상황에서 이러한 튀니지의 민족 운동의 증가함에 따라 프랑스 정부는 1955년 튀니지의 독립을 약속하고 1956년 3월 20일, 베이였던 무하마드 8세 알 아민을 국왕으로 하는 조건으로 독립을 받아들였다. 초대 총리로는 부르기바가 선출되었고, "튀니지 왕국"이 성립하여 독립을 달성했다.

비록 군주가 존재했으나 군주는 명목상의 통치였을 뿐 실질적 통치는 의회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군주는 그 대부분의 권한이 제한된 상징적인 존재였다.

3. 후세인 왕조

튀니지 왕국의 왕조였던 후세인 왕조는 이전부터 튀니지를 통치해오던 가문이었다. 오스만 제국이 튀니지를 획득한 이래로 오스만 제국은 파샤들을 파견하여 통치하고자 했으나 점차 베이(Bey) 라는 지방 군주의 형태로 운영되어 사실상 독립국가의 형태를 갖추게 된다. 이것이 이른바 튀니지 베이국이다. 이 튀니지 베이국의 첫 왕조는 무라드 왕조였고 이후 후세인 왕조가 들어서게 되었다.

한편 제국주의 시대가 되어 아프리카로 유럽 열강들의 진출이 한창이던 무렵 튀니지도 프랑스령 튀니지라는 이름으로 프랑스의 보호령이 되었다. 후세인 왕조는 이 시기에도 왕좌에 남아있을 수 있었다. 다만, 후세인 왕조는 이름만 존재할 뿐이었고, 프랑스 총독이 튀니지를 실질적으로 통치했으며 요직도 프랑스인이 거의 독점했다.

4. 멸망

왕국 성립 1년 후 프랑스에 지원을 받으려하는 국왕의 태도에 실망한 국민들에 의해 튀니지 제1공화국으로 바뀌었다. 튀니지 제1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은 튀니지 왕국의 초대 총리로 사실상 실권자였던 하비브 부르기바였다.

5. 역대 군주



[1] 튀니지 왕국의 해군기에 기원을 두고 있다. 별과 초승달은 오스만 제국의 깃발을 떠올리게 하는데 오스만 제국의 일부였던 튀니지의 역사를 나타낸다. 이 시기 제정된 깃발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계속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