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通勤五方面作戦통근 5방면 작전은 일본국유철도가 도쿄 수도권의 통근 혼잡도를 완화하기 위해 도쿄에서 뻗어나가는 5개의 간선 노선인 도카이도 본선, 도호쿠 본선, 츄오 본선, 소부 본선, 조반선을 2복선화 해서 통근형 중심의 완행선과 근교형, 특급열차 중심의 쾌속선으로 분리한 사업이다.
1970년대 도쿄의 국철 노선들은 혼잡도가 엄청 심했었다. 무려 300%를 찍는 동네도 있었다. 혼잡도가 100% 중후반대만 되어도 슬슬 승하차에 지장이 생기기 시작하고 4량 시절의 서울 9호선 급행이나 김포도시철도 조차도 혼잡도가 250%에 못 미치는 것을 보면[1] 엄청나게 심각한 상황이었다고 볼 수 있다.[2][3]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통근 5방면 작전이 시행되었으며 이 작전을 통해 수송력 증강은 물론 급행화까지 되었다.
2. 각 노선 별 현황
2.1. 도카이도 본선
요코하마에서 도쿄 구간이 분리되었으며, 케이힌토호쿠선과 도카이도 본선이 분리되었다. 요코하마부터 도카이도선은 토츠카를 경유하여 오후나로 직행하고, 케이힌토호쿠선은 네기시선을 경유하여 오후나에서 다시 만난다.2.2. 도호쿠 본선
우에노에서 오미야 구간이 분리되었으며, 케이힌토호쿠선과 도호쿠 본선이 분리되었다.2.3. 츄오 본선
츄오 본선 나카노[4]에서 타치카와까지 복복선화를 할 예정이었으나, 연선의 부지 확보가 어려워서[5] 미타카 까지만 복복선화를 하였고, 츄오 쾌속선과 츄오-소부선 각역정차가 분리되어 츄오-소부선 각역정차는 미타카까지만 운행한다.2.4. 소부 본선
소부 본선 킨시쵸에서 치바까지가 복복선화 되었다.원래 소부 쾌속선 계통은 료고쿠역에서 시종착 하였으나, 킨시쵸역에서 도쿄역까지 대심도 터널을 건설하여 도쿄역에서 요코스카선 열차와 직통한다. 료고쿠역의 구 소부 쾌속선 승강장은 임시 열차가 사용한다. 그런데 이것도 모자라서 혼잡 분산용으로 도쿄메트로 토자이선을 건설했는데, 더 웃긴건 혼잡 분산은 고사하고 둘다 터져나간다. 그나마 츄오선 구간은 혼잡도가 눈에 띄게 줄었으나, 소부선과 토자이선 동쪽 구간은 여전히 200%에 근접하는 혼잡도를 보이며 둘다 1위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6].
2.5. 조반선
조반선 아야세에서 토리데까지가 복복선화 되었다.조반 쾌속선 열차는 우에노역, 시나가와역[7]까지 운행하고, 조반 완행선 열차는 키타센쥬역에서 치요다선과 직통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또한 혼잡완화 효과에는 의문을 품을 수가 있는게, 원래 조반선의 수요와 기존 지하철 노선들의 수요가 얹어지는 바람에 치요다선이 오히려 최악의 혼잡도 순위에 오르내리는 중이다.
3. 관련 링크
https://ja.wikipedia.org/wiki/通勤五方面作戦4. 관련 문서
[1] 김포도시철도의 경우 280%대라는 이야기가 있으나, 기존에 계산하던 방식대로라면 230~240% 정도가 나온다[2] 경인선의 2복선화 과정과 같다. 경인선전철의 경우도 2복선으로 확장하기 전에는 300%가 넘는 혼잡률을 기록하였다.[3] 심지어 9호선은 4량이지만, 일본국철은 15량인 곳도 있었다. 차량규격으로 따지면 한국 대형전철의 경우 폭이 3.12m, 일본 대형전철의 경우 일반차량 2.7m, 광폭차량 2.9m로 한국의 차량 폭이 더 넓은 편이나 광폭차량의 경우 만차의 수송인원이 한국의 대형전철과 같다. 문제는 JR에서 광폭차량의 보급이 본격적으로 시작된건 E231계 및 209계 500번대 이후의 이야기이며, 통근 5방면 작전이 개시되던 시기에는 통근형 전동차는 죄다 직각형 차량(주로 101계, 103계, 205계)이었다는것...[4] 나카노까지는 이미 전쟁 이전에 복복선화가 완료되어 있었다.[5] 70년대 이전 기준의 복복선 부지는 마련했으나, 70년대 이후 규정변경으로 인해 이미 확보한 복복선 부지는 실제로는 3선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그대로 복복선화를 포기하고 있다가, 입체교차사업으로 노선을 전부 들어올리고 남은 부지의 지하를 파서 복복선화를 고려중이다.[6] 츄오-소부선: 수도권 JR 노선 혼잡도 1위, 토자이선: 지하철 이용객수 전국 1위[7] 우에노도쿄라인 경유[8] 90년대 수도권 전철 1호선의 혼잡도가 300%를 넘어서자 복복선화하여 해결했다는 것이 공통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