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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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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톰 포드
Tom Ford
파일:tom-ford.jpg
본명 토마스 칼라일 포드
Thomas Carlyle Ford
출생 1961년 8월 27일 ([age(1961-08-27)]세)
미국 텍사스 오스틴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83cm
직업 패션 디자이너, 영화감독
학력 파슨스 디자인 스쿨 (실내건축과 / 졸업)
배우자 리처드 버크리 (Richard Buckley) (2014 결혼 - 2021 사별)
자녀 아들 알렉산더 존 버클리 포드 (Alexander John Buckley Ford)
링크 [[https://www.tomford.com/|
파일:톰 포드 로고.svg
]]

1. 개요2. 활동
2.1. 패션 디자이너2.2. 영화 감독
2.2.1. 연출 특징2.2.2. 필모그래피
3. 브랜드4. 사생활5. 정치 성향6. 논란 및 사건 사고
6.1. 멜라니아 트럼프 협찬 거절 논란
7. 여담

[clearfix]

1. 개요

미국패션 디자이너이자 영화감독.

구찌생 로랑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출신이며 본인의 이름을 딴 디자이너 브랜드 톰 포드를 설립해 2005년부터 운영했다. 2023년, 톰 포드는 패션계에서 잠정 은퇴를 선언한 상태이며 향후 전업 영화 감독으로 활동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1]

2. 활동

2.1. 패션 디자이너

텍사스주 오스틴시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뉴멕시코 주로 11세 때 이주하였다. 뉴멕시코 주의 고등학교 재학 중, Bard College at Simon's Rock[2]에 16세 나이에 입학하였으나, 곧 중퇴하였다. 이후 뉴욕 대학교를 입학하여 미술사를 전공으로 공부하였지만 1년 후 중퇴하였고, TV 광고 모델과 배우 활동에 전념하였다.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1986년까지 실내 구조를 배웠다. 그 뒤 디자이너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1990년 뉴욕에서 밀라노로 이동하여 1994년부터 구찌의 여성복 디자인을 담당하였다. 이후 다 죽어가는 옛날 브랜드로 여겨지던 구찌 라인에 젊고 섹시한 이미지를 불어넣었으며, 악세사리부터 광고까지 모두 총괄 지휘했다고 한다.

1999년 입생로랑이 구찌에 인수되자 두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직을 모두 도맡는 등 구찌 그룹 전체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하였다. 그 영향으로 1995년부터 1996년 사이에 구찌의 판매량은 90% 증가했으며, 그가 구찌를 떠난 2004년 구찌 그룹의 시가총액은 100억 달러에 도달했다. 실적 뿐 아니라 다음 세대의 패션에 끼친 영향까지 포함해 20세기 말 톰 포드는 압도적인 세계 최정상의 디자이너로 군림했다. 톰 포드가 떠날 때 그가 하던 일을 나눠하기 위해 구찌가 고용한 사람이 무려 4명이었다는 전설을 남기기도 했다.

2010년대 들어 단순 디자인을 넘어서 브랜드 정체의 방향성, 창의성까지 총 책임 지는 “Creative Director”라는 직책이 “Design Director”, “Head Designer” 대신 대두되며 중요시되는데, 이는 90년대에 구찌를 가장 섹시한 브랜드로 탈바꿈시킨 톰 포드와 루이비통에서 전설의 3초백을 유행시키고 여러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한 마크 제이콥스에 의해 퍼진 용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훗날 에디 슬리먼이 디올 옴므로 새로운 혁명을 불어 넣기 이전까지는 2000년을 전후해서 이 둘의 영향력이 엄청났다.

구찌 광고에 일견 노골적인 섹스 코드를 삽입해서 구찌에 에로틱한 이미지를 덧입힌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성적 요소들을 삽입하면서도 천박해 보이지 않게 만든 점을 호평 받고 있다. 여담으로 본인도 광고에서 직접 누드로 나온 적도 있다[3].

구찌 그룹을 떠난 이후 2005년부터 현재까지 뉴욕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 톰 포드(TOM FORD)를 운영하고 있다.

2022년 11월 15일 에스티 로더 그룹에서 톰포드를 28억 달러에 인수했으며 2023년 말까지 브랜드에서 크리에티브 비저너리 롤을 수행한다고 알렸다#

2022년 미국 패션 디자이너 협의회(CFDA)의 의장 자리에서도 물러났다. 후임 의장으로는 톰 브라운이 취임했다.

2023년 4월 패션계에서 은퇴를 선언했다. 톰포드의 차기 디렉터는 동료였던 피터 호킹스가 맡을 예정. 앞으로는 영화계에서 활동할 계획이다.

2.2. 영화 감독

2009년,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싱글맨》을 발표하며 영화 감독으로도 데뷔하였다.

2016년, 7년만에 차기작이 나왔다. 제목은 《녹터널 애니멀스》이며, 오스틴 라이트의 《토니와 수잔》이라는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다. 이 작품으로 73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으며, 출연 배우 애런 테일러 존슨골든글로브 시상식 남우 조연상을 수상했다.

2023년 런웨이 은퇴 성명서에서 밝혔듯이 영화인으로 활동할 예정이다. 자신의 영화 제작사에서 제작하는 차기작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2.2.1. 연출 특징

패션 디자이너로 시작한 탓에, 등장인물들 모두 있는 옷들마다 다 인상적이며, 영화 전반으로 미적으로 상당히 아름답게 만드는 특징이 있다. 패셔너블한 작품 분위기가 독보적인 감독이며, 상당히 스타일리쉬한 영상미, 탁한 듯 진한 색감, 철저한 조명 사용, 주인공의 감정 상태에 따라 바뀌는 화면의 색감, 클래시컬하고 신경을 긁는 듯한 음악이 특징이다. 디자이너 출신이라 그런지 몰라도 명품 광고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 비주얼리스트라고 봐도 무방한 편.

화면과 소품, 옷을 정말 고급스럽게 연출하기 때문에 패션 쪽에서 인기가 많으며, 영상 디자인 쪽이나 비주얼리스트를 꿈꾸는 영화감독 지망생들이 찾는 감독이기도 하다. 배우 임수정녹터널 애니멀스를 보고나서, 톰 포드 감독의 패셔너블한 스타일에 호평을 한 적이 있다.

2.2.2. 필모그래피

톰 포드 감독 장편 연출 작품
[ 펼치기 · 접기 ]
||<tablewidth=100%><tablebgcolor=#000000><width=200> 파일:싱글맨 로고.jpg ||<width=200> 파일:녹터널 애니멀스 로고.png ||<width=200> ||
싱글맨 녹터널 애니멀스

상세정보 링크 열기

<rowcolor=#fff> 연도 제목 연출 각본 제작
2009 싱글맨
2016 녹터널 애니멀스

3. 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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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생활

공개적으로 커밍아웃한 게이로, 성공적인 커리어 외에도 잘생긴 외모로 많은 게이들의 추앙을 받고 있다.

톰 포드는 27년 간 동거해온 남자친구 리처드 버클리와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2014년에 결혼하였다. 1986년 패션쇼에서 처음 만난 둘은 한 눈에 반했다고. 당시 리처드 버클리가 33세 톰 포드가 25세로 커플의 나이차가 좀 많은 편이다. 둘 사이에는 2012년 대리모 출산으로 얻은 아들이 있다. 참고로 리처드 버클리는 패션 잡지 보그의 기자로 시작해 편집장으로 일했었다. 리처드 버클리는 1989년부터 암투병을 오랫동안 했었기 때문에 지금도 구글에서 사진을 검색해보면 톰 포드와 더 대비되어 삐쩍 마르게 보인다.

참고로 둘이 처음 데이트해서 사귀었던 시기가 에이즈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1980년대였다. 참고로 현재 게이 커뮤니티에서도 4~50대 중년층의 수가 비교적 적은 세대 갭이 존재하는데, 이는 1980년대 많은 동성애자들이 에이즈로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당시 에이즈로 많은 친구들을 잃은 톰 포드는 요즘 젊은 사람들이 에이즈의 심각성에 대해서 잘 모른다며 일갈하고 콘돔을 반드시 사용하고 주기적으로 검사를 받을 것을 충고하고 있다.

2021년 9월 19일, 리처드 버클리는 일요일 밤에 톰 포드와 그의 아들 잭 곁에서 숨을 거두었다.# 사망 원인은 암투병 중 자연사라고 한다. 톰과 리처드가 함께한 시간은 총 35년이다.

평소 직설적인 발언을 자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은퇴 선언 이후 브루스 보치의 팟캐스트에 출연하여 헐리우드 연예인들의 성형 중독에 대해서 꼬집었다.#

5. 정치 성향

톰 포드는 민주당의 당원으로, 이라크 전쟁에 반대했었고,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지지하였다.

6. 논란 및 사건 사고

6.1. 멜라니아 트럼프 협찬 거절 논란


먼저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짜뉴스이다.

다만, 이러한 가짜 뉴스가 나오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배경이 있다.

2017년 당시 미국의 영부인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에게 협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가 일부 백화점에서 퇴출당하는 사태를 겪었다. 기사에 따르면, 톰 포드는 한 TV 프로그램에서"(멜라니아가) 꼭 나의 이미지라고 할 수 없어서 거절했다"고 밝혔으며, 옷이 비싸기 때문에 "멜라니아가 백악관에 있는 동안에 나의 의상을 제공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즉, 멜라니아 트럼프가 영부인이란 지위에 있는 기간에는 협찬하지 않겠다는 것. 이에 도널드 트럼프가 반발하여 일부 백화점에서 퇴출당하는 사태로 이어진 것이다.

하지만 상당수의 연예인을 비롯해 할리우드가 전반적으로 반트럼프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보이콧이나 역풍을 맞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 포드가 멜라니아를 비하했다는 트위터발 가짜 뉴스가 확산되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문제의 글은 포드가 영부인 멜라니아를 연설 도용이나 하고 남자 보는 눈도 없는 에스코트 걸이라고 평가하며, 협찬 요청을 거절했다(“Tom Ford refuses to dress Melania Trump: ‘I have no interest in dressing a glorified escort who steals speeches and has bad taste in men,’)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톰 포드 측 대변인이 포드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는 해명 트윗을 올렸다.링크

사실, 톰 포드가 단순히 민주당 지지자라서 멜라니아의 요청을 거절한 것은 아니다. 힐러리 클린턴에게 투표하긴 했지만, 힐러리 클린턴에게도 협찬하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다만 2011년에 미셸 오바마가 그의 옷을 입었을 때 영광이라고 반응한 적은 있으나, 워싱턴 포스트 기사에 따르면, 미셸 오바마 이후에는 정당에 관계없이 정치인에게 협찬하지 않는 정책을 유지하기로 했다고 한다.아카이브[4] 이 기사에 따르면 애초에 톰 포드는 멜라니아의 남자 보는 눈이나 패션 취향에 대해선 언급조차 하지 않았는데, 트위터를 통해 가짜 뉴스가 전파되었고, 트럼프 일가에 반감이 있는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낚여 (멜라니아를 시원하게 잘 깠다고) 톰 포드를 칭찬했다고 한다.

참고로 워싱턴 포스트는 보수 진영에 대해서는 선 넘은 공격을 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링크 그런 매체조차도 톰 포드는 멜라니아를 비난하지 않았다는 점을 확인해 주고, 자신들의 진영이 가짜뉴스에 낚여 포드를 칭찬했다고 지적한 것이다. 물론 여기에 낚여 포드를 비난한 트럼프 지지자들도 비판했다.

문제는 저런 가짜 기사가 우리나라에서 검증도 없이 버젓이 기사화되었다는 것이다.결론을 말하자면, 톰 포드와 멜라니아 트럼프는 가짜 뉴스의 피해자라고 볼 수 있다.

7. 여담

파일:베니티페어2006년.jpg}}} ||

[1] 블랙 코미디 장르를 주로 취급할 예정이라고 《에어메일》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2] 바드 칼리지의 조기 대학교. 9학년 또는 10학년을 수료한 학생들을 입학대상으로 하는 리버럴 아츠 칼리지이다.[3] 성기노출은 하지 않았지만 뒷태는 완전히 다 드러냈다.[4] 즉 톰포드는 개인의 호오에 따라 멜라니아를 보이콧한 것이 아니라, '정치인에게 협찬하지 않겠다'는 정책에 따라 '영부인이 된' 멜라니아에게 협찬을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