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토탈 워 사가: 브리타니아의 왕좌/건물
||<-9><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282828><colbgcolor=#282828><colcolor=white> 토탈 워 사가: 브리타니아의 왕좌의 건물 일람 ||
1. 개요
해안에 면한 지방 수도에 있는 건물로, 변경하거나 철거할 수 없다. 이 건물이 있는 도시는 도시에 붙은 항구가 위치해 있어 해상에서 항구를 봉쇄해 교역로를 차단하거나, 공성병기를 제작하지 않아도 상륙을 통해 즉시 공성전에 들어갈 수 있다. 수비자 입장에선, 성벽이 포위당한 상태에서도 항구를 통해 부대를 넣거나 뺄 수 있어 수비를 위해 부대를 증원하거나 포위된 도시의 군단을 피신시킬 수 있다.2. 건물 목록
{{{#!wiki style="letter-spacing: -1px;"2.1. 항구
항구
Port
바이킹 시대 브리튼의 패권을 두고 경쟁하던 다양한 집단들은 제각기 초기 선박의 효율성을 발전시켜 나가면서 당시 시대상의 모습을 만들었습니다. 9세기 알프레드 대왕이 최초로 대규모의 왕실 함대를 편성하기 이전에도, 브리튼 제도의 주민들은 이미 교역과 어업, 그리고 그 외 더욱 신속한 항해를 해낼 수 있는 유능한 선원들이었습니다.
조선 역시 다른 분야의 발전과 마찬가지로 이따금 필요에 따라 외부의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를 들어 색슨인들은 바다 건너에서 넘어와 정착한 민족이었기에 그들만의 고유한 선박 제조 기술을 지니고 있었고, 대양을 건너고 강을 따라 항해하며 해안가를 습격하던 바이킹들은 더욱 뛰어난 선박 기술을 지닌 집단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교역품이든 전사들이든 때로는 단순한 여행객이든, 어떤 경우에든 화물과 사람을 안전하게 하역하고 운송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시설이 필요했습니다.
Port
바이킹 시대 브리튼의 패권을 두고 경쟁하던 다양한 집단들은 제각기 초기 선박의 효율성을 발전시켜 나가면서 당시 시대상의 모습을 만들었습니다. 9세기 알프레드 대왕이 최초로 대규모의 왕실 함대를 편성하기 이전에도, 브리튼 제도의 주민들은 이미 교역과 어업, 그리고 그 외 더욱 신속한 항해를 해낼 수 있는 유능한 선원들이었습니다.
조선 역시 다른 분야의 발전과 마찬가지로 이따금 필요에 따라 외부의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를 들어 색슨인들은 바다 건너에서 넘어와 정착한 민족이었기에 그들만의 고유한 선박 제조 기술을 지니고 있었고, 대양을 건너고 강을 따라 항해하며 해안가를 습격하던 바이킹들은 더욱 뛰어난 선박 기술을 지닌 집단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교역품이든 전사들이든 때로는 단순한 여행객이든, 어떤 경우에든 화물과 사람을 안전하게 하역하고 운송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시설이 필요했습니다.
항구 건물 위치 | ||||
<colbgcolor=#666><colcolor=white> 잉글랜드 3 | <rowcolor=black,white> 헤이스팅가스 동부 서섹스 | 세올리시그 서부 서섹스 | 틴타골 케르네이 | |
스코틀랜드 4 | <rowcolor=black,white> 유아 드륌 알반 | 에이덴부르그 로덴 | 둔 포허 모나드 | 토르 인 둔 아우르모렙 |
아일랜드 3 | <rowcolor=black,white> 둔 세비르기 달 나라이디 | 둔 파트렉 달 피아타흐 | 이니스 페흘렌 야르무마 | |
웨일스 2 | <rowcolor=black,white> 애버프로 귀네드 | 애버테이피 케레디가운 |
가장 일반적인 항구 건물. 식량과 교역 수익 보너스를 제공한다.
2.2. 바이킹 항구
바이킹 항구[1]
Viking Port
얼스터 연대기에서 전하는 842년도의 기록에서는 바이킹들이 아일랜드에서 최초로 겨울을 난 것을 매우 중요한 사건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후 '롱포트'로 알려진 요새화된 함대 기지가 여러 군데 건설되기 시작했습니다.
8세기경까지만 해도 바이킹들은 아일랜드와 인근의 섬을 재빠르게 약탈한 다음 노획물을 챙겨서 신속하게 바다로 떠났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들은 한 번 원정을 떠난 다음 아일랜드에 점차 오래 머무르면서 더욱 많은 약탈 기회를 노리기 시작했습니다.
브리튼 섬에는 오래된 로마 요새와 같은 구조물이 존재했기 때문에 이런 건물들을 교두보로 활용할 수 있었지만, 아일랜드에서는 강 등의 지형으로 본토에서 격리된 해안가처럼 방어의 요충지에 방어 시설을 완전히 새로 건설해야만 했습니다.
훗날 이러한 방어 시설은 아일랜드 해안가를 따라 위치한 롱포트의 중심으로 발전했습니다. 오늘날 아일랜드의 워터포드, 웩스포드, 리머릭, 그리고 특히 더블린 지역은 바이킹 시대 당시 바이킹들의 핵심 거점이었던 곳이었습니다.
Viking Port
얼스터 연대기에서 전하는 842년도의 기록에서는 바이킹들이 아일랜드에서 최초로 겨울을 난 것을 매우 중요한 사건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후 '롱포트'로 알려진 요새화된 함대 기지가 여러 군데 건설되기 시작했습니다.
8세기경까지만 해도 바이킹들은 아일랜드와 인근의 섬을 재빠르게 약탈한 다음 노획물을 챙겨서 신속하게 바다로 떠났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들은 한 번 원정을 떠난 다음 아일랜드에 점차 오래 머무르면서 더욱 많은 약탈 기회를 노리기 시작했습니다.
브리튼 섬에는 오래된 로마 요새와 같은 구조물이 존재했기 때문에 이런 건물들을 교두보로 활용할 수 있었지만, 아일랜드에서는 강 등의 지형으로 본토에서 격리된 해안가처럼 방어의 요충지에 방어 시설을 완전히 새로 건설해야만 했습니다.
훗날 이러한 방어 시설은 아일랜드 해안가를 따라 위치한 롱포트의 중심으로 발전했습니다. 오늘날 아일랜드의 워터포드, 웩스포드, 리머릭, 그리고 특히 더블린 지역은 바이킹 시대 당시 바이킹들의 핵심 거점이었던 곳이었습니다.
바이킹 항구 건물 위치 | ||||
<colbgcolor=#666><colcolor=white> 아일랜드 6 | <rowcolor=black,white> 캐슬턴 마나 | 베드라피요르드 베드라피요르드 | 베이사피요르드 베이사피요르드 | 더블린 브레가 |
<rowcolor=black,white> 코르카흐 코크 | 흐리메리커 흐리메리커 |
바이킹 항구는 맨 섬 및 아일랜드 해안에만 존재하며, 롱포트가 있는 정착지는 모두 바이킹 항구를 포함하고 있다.
2.3. 교역항
교역항[2]
Trade Port
브리튼 제도의 최초의 교역선에 대한 언급은 바이킹 침공 이전, 즉 고대 후기 로마인들이 브리튼을 지배하던 당시 이 섬이 광범위한 해양 무역의 일부로 끼어었던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5세기의 역사가 오로시우스의 기록을 보면 색슨인들 사이에서 '교역선'의 직접 번역어인 '켑스킵'이라는 단어가 쓰이고 있었습니다. 이는 당시에 이미 전투용이 아닌 선박이 분명히 존재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례입니다. 예를 들어 많은 교역선들은 적하 공간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높고 넓은 선체를 지니고 있었으며, 최대한 많은 짐을 싣기 위해 노잡이의 수를 줄이고 돛에 의존해서 항해했습니다.
바이킹의 브리튼 침공 당시에는 알프레드 대왕이 건설한 요새망인 '버르'의 보호를 받는 교역항들이 번창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왕국이 건설한 해안 요새의 보호를 찾아 몰려들면서, 헤이스팅스나 사우샘프턴과 같은 교역항들은 특히 큰 혜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Trade Port
브리튼 제도의 최초의 교역선에 대한 언급은 바이킹 침공 이전, 즉 고대 후기 로마인들이 브리튼을 지배하던 당시 이 섬이 광범위한 해양 무역의 일부로 끼어었던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5세기의 역사가 오로시우스의 기록을 보면 색슨인들 사이에서 '교역선'의 직접 번역어인 '켑스킵'이라는 단어가 쓰이고 있었습니다. 이는 당시에 이미 전투용이 아닌 선박이 분명히 존재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례입니다. 예를 들어 많은 교역선들은 적하 공간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높고 넓은 선체를 지니고 있었으며, 최대한 많은 짐을 싣기 위해 노잡이의 수를 줄이고 돛에 의존해서 항해했습니다.
바이킹의 브리튼 침공 당시에는 알프레드 대왕이 건설한 요새망인 '버르'의 보호를 받는 교역항들이 번창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왕국이 건설한 해안 요새의 보호를 찾아 몰려들면서, 헤이스팅스나 사우샘프턴과 같은 교역항들은 특히 큰 혜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교역항 건물 위치 | ||||
<colbgcolor=#666><colcolor=white> 잉글랜드 4 | <rowcolor=black> 엑선세스터 데베나스키르 | 웨럼 도르사에테 | 룬덴 미들 색스 | 에오페르윅 이스트 스라이딩 |
해안에 면한 시장 정착지에 존재하는 건물.
2.4. 청어 항구
청어 항구
Herring Port
스코틀랜드 해안가에 발견된 생선뼈는 중세 초기, 특히 8세기 당시 이 지역에 바이킹들의 정착이 확대되면서 어업을 기반으로 한 식량 생산 규모도 네 배 가량 증가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청어는 당시 새로운 정착자들에게 가장 일상적인 생선이었고, 이들이 이주해오기 전에 브리튼 섬에 살던 게일인이나 픽트인과 같은 원주민들에게도 귀중한 어족자원이었습니다. 청어는 작은 배로 연안의 넓은 모래톱에 나가서 그물만 던져도 쉽게 잡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특히 내륙 마을과 정착지에서 인구가 크게 늘어나면서 민물고기가 사는 민물 생태계에 영향을 끼칠 정도가 되자, 청어 어업은 더욱 대규모로 발전했습니다. 바이킹들은 충분한 청어를 잡기 위해 다양한 종류의 유자망이나 썰물 때 빠져나가는 청어 떼를 가두기 위한 갯벌용 어살처럼 그들이 지닌 뛰어난 어업 기술을 도입했으며, 이로 인해 이 시기 청어 시장이 크게 성장했습니다.
Herring Port
스코틀랜드 해안가에 발견된 생선뼈는 중세 초기, 특히 8세기 당시 이 지역에 바이킹들의 정착이 확대되면서 어업을 기반으로 한 식량 생산 규모도 네 배 가량 증가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청어는 당시 새로운 정착자들에게 가장 일상적인 생선이었고, 이들이 이주해오기 전에 브리튼 섬에 살던 게일인이나 픽트인과 같은 원주민들에게도 귀중한 어족자원이었습니다. 청어는 작은 배로 연안의 넓은 모래톱에 나가서 그물만 던져도 쉽게 잡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특히 내륙 마을과 정착지에서 인구가 크게 늘어나면서 민물고기가 사는 민물 생태계에 영향을 끼칠 정도가 되자, 청어 어업은 더욱 대규모로 발전했습니다. 바이킹들은 충분한 청어를 잡기 위해 다양한 종류의 유자망이나 썰물 때 빠져나가는 청어 떼를 가두기 위한 갯벌용 어살처럼 그들이 지닌 뛰어난 어업 기술을 도입했으며, 이로 인해 이 시기 청어 시장이 크게 성장했습니다.
청어 항구 건물 위치 | ||
<colbgcolor=#666><colcolor=white> 스코틀랜드 2 | <rowcolor=black> 보르나스 수드레야르 | 블라스코나 카이트 |
스코틀랜드 북부 도서 지역에만 있는 건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