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안 헨릭센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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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前 축구감독 | ||
<colbgcolor=#f0f0f0,#222222><colcolor=black,white> 이름 | 크리스티안 헨릭센 Kristian Henriksen | |
출생 | 1911년 3월 3일 | |
사망 | 2004년 2월 8일 (향년 92세) | |
국적 | [[노르웨이| ]][[틀:국기| ]][[틀:국기| ]] | |
직업 | 축구선수(윙 하프 / 은퇴) 축구감독 은퇴 | |
소속 | <colbgcolor=#f0f0f0,#222222><colcolor=black,white> 선수 | 사르프스보르그 08 FF (1931~1935) 프리그 오슬로 FK (1936~1937) 륀 1896 FK (1938~1946) |
감독 | 볼레렝아 포트발 (1947~1948) 볼레렝아 포트발 (1957~1958) 노르웨이 대표팀 (1959) | |
국가대표 | 28경기 (노르웨이 / 1934~19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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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노르웨이의 전 축구 감독2. 생애[1]
2.1. 선수 생활
2.1.1. 클럽
헨릭센은 사르프스보르그 08 FF, 프리그, 륀 1896 FK 등에서 선수 생활을 보냈다.그의 클럽 커리어 최고의 순간은 말년에 륀에서 거둔 2차례의 노르웨이 컵 우승이었다.
2.1.2. 국가대표
헨릭센은 노르웨이 대표팀에서 12년간 총 28경기를 뛰었다. 그러나 대표팀이 성공 가도를 달렸던 1936년 올림픽과 1938년 월드컵의 출전 기록은 없었다.2.2. 이후
헨릭센은 1946년에 프레드릭 호른(Fredrik Horn)과 함께 '청동기 시대: 노르웨이 축구의 황금기(Bronselaget: En gullalder i norsk fotball)'라는 책을 썼다.이후엔 볼레렝아 포트발과 노르웨이 대표팀 감독을 역임했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파이터적인 성향이 있던 윙 하프백이었다.4. 뒷이야기
- 헨릭센은 현재까지 노르웨이의 유일한 올림픽 축구 메달리스트들 중 마지막 생존자였다.
5. 어록
이제 무승부에 베팅하자고, 얘들아![2]
(Nå satsær vi på uavgjort, guttær!)
(Nå satsær vi på uavgjort, guttær!)
6. 수상
6.1. 선수
6.1.1. 클럽
- 노르웨이 컵 우승 2회: 1945, 1946(륀 1896 FK)
- 노르웨이 컵 준우승 2회: 1934, 1935(사르프스보르그 08 FF)
6.1.2. 국가대표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2] 1945년 10월 21일, 노르웨이가 스웨덴에 0대10으로 대패한 적이 있었는데 후반 44분, 군나르 노르달에 4번째 골이자 9번째 골을 실점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하며 팀의 분위기를 바꾸려고 했다. 이 말이 무색하게 열 번째 골을 허용하긴 했지만 이 말은 한동안 노르웨이 축구계에서 캐치프레이즈처럼 인용되었다.
분류
- 1911년 출생
- 2004년 사망
- 1931년 데뷔
- 1946년 은퇴
- 비켄 주 출신 인물
- 노르웨이의 남자 축구 선수
- 수비수
- 사르프스보르그 08 FF/은퇴, 이적
- 륀 포트발/은퇴, 이적
- 노르웨이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
- 1938 FIFA 월드컵 프랑스 참가 선수
- 노르웨이의 올림픽 참가 선수
- 1936 베를린 올림픽 참가 선수
- 노르웨이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
- 1936 베를린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
- 노르웨이의 올림픽 메달리스트
- 1936 베를린 올림픽 메달리스트
- 노르웨이의 올림픽 축구 메달리스트
- 1936 베를린 올림픽 축구 메달리스트
- 노르웨이의 남자 축구 감독
- 볼레렝아 포트발/역대 감독
- 노르웨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