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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3 23:22:11

하나 하지메와 크레이지 캣츠

크레이지 캣츠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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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멤버
3.1. 전 멤버3.2. 준 멤버

1. 개요

ハナ肇とクレージーキャッツ

1955년부터 2006년까지 활동한 [1] 일본 코미디계의 전설로 불리는 그룹. 1970년대를 대표하는 더 드리프터즈보다도 10여년 앞서 활동한 오와라이 밴드이자 일본의 TV 코미디 붐을 처음으로 일으킨 당사자들이다.[2]

원래 이름은 '하나 하지메와 쿠바 캣츠'(ハナ・ハジメとキューバンキャッツ)였으나 그룹 초창기 미군 부대에서 공연할 때 재즈 연주 중 멤버 중 한 사람[3]이 세면대에서 머리를 두드리는 개그가 그야말로 빵 터짐과 동시에, "You, Crazy!"라는 말을 들어 이를 인용해 그룹명을 바꿨다고 한다.[4]

오와라이 밴드라고 하는 수식어가 무색할 정도로 멤버 모두 한 가지 이상의 악기를 다룰수 있었고 그 수준이 매우 준수하였다. 여기에 개그능력도 출중해 단순히 오와라이 밴드라고는 칭할 수 없는 멀티 엔터테이너 그룹이었다.

이들의 TV 매체 출연 시작이 1950년대 중반이다 보니까 한국의 코미디언과 완벽하게 일대일로 매치시키기가 어렵다. 한국은 1950년대에 라디오 방송만이 존재했고 60년대가 되어서야 TV매체가 생겼으며 거의 1970년이 다 되어서야 TV에서 코미디 프로그램이 생겨났기 때문에 코미디 방송계의 역사가 일본에 비해 한 10~15년 정도 늦은 편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동 시대에 악극단으로서 전국을 돌며 희극 영화에서도 활약했던 구봉서, 배삼룡, 송해같은 1세대 코미디언들과 연령대도 그렇고 활약 시기도 맞먹는 편이다. 다만 한국의 1세대 코미디언들은 TV 출연은 좀 늦은 편이라서 TV 출연을 기준으로 본다면 이들은 하나 하지메의 직속 후배격인 더 드리프터즈와 비슷한 시기에 활약했다.

2. 역사

1955년 4월 1일, 연예 기획사 와타나베 프로덕션 소속으로 그룹이 결성된다. 그룹의 이름은 상기 개요에 서술된 대로 '하나 하지메와 쿠바 캣츠'였다. 결성 당시 멤버는 우리가 알고 있는 멤버와 많이 달랐다고 한다. 지금의 멤버들이 모이게 된 것은 1960년 7월 사쿠라이 센리가 가입하면서 부터.

결성 초기에는 당시 일본에 진주해 있던 미군 캠프에서의 공연을 비롯해 TV방송을 막 시작했던 NHK에 출연해 짤막한 꽁트나 음악 연주를 하였는데, 꽤 인기를 얻게되어 1958년 10월에 개봉한 '알몸의 대장'이라는 영화에 밴드 멤버 전체가 처음으로 영화에 출연하게 된다. 이 기세를 몰아 1959년 3월 2일, 밴드 최초의 레귤러 방송인 후지TV 오토나노 망가에 출연하게 된다. 이후 1961년 6월 4일에는 일본의 전설적인 음악버라이어티 NTV '샤본다마 홀리데이'에 같은 소속사의 여성 듀오 더 피넛츠와 함께 출연했다.[5]


샤본다마 홀리데이에 출연한 '크레이지 캣츠'와 '더 피넛츠'

이후 1961년 8월에는 그 유명한 '스다라부시'우에키 히토시의 발군의 댄스실력을 볼 수 있다.를 발표,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기 시작한다.

코마츠 마사오우에키 히토시매니저 시절 샤본다마 홀리데이의 크레이지 캣츠가 나오는 콩트 때 종종 단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1971년 4월부터 9월까지 TBS의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 8시라구! 출발진행에 메인 멤버로 출연했는데, 타이틀만 보면 빼박 8시라구! 전원집합(8時だョ!全員集合)의 아류작으로 보이지만 사실상 어른의 사정에 따른 전원집합땜빵 프로였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 참조.

3. 멤버

3.1. 전 멤버

크레이지 캣츠의 전신격인 하나 하지메와 쿠바 캣츠의 멤버들이다. 즉, 이들이 코믹 게닌밴드로 노선을 변경하기 전에 활동했던 멤버들이 된다.

3.2. 준 멤버



[1] 실제 활동기간은 하나 하지메의 사망 이전인 1993년까지이다.[2] 하나 하지메 이전에도 일본에서 희극이란게 있었지만 지금 TV에서 출연하는 현대적 코미디언(게닌)과는 거리가 멀었다. 각 지역의 극장에서 공연하던 라쿠고가나 만자이시는 분명 일본 게닌들의 유래 내지는 영향을 끼친 직업군이었을지는 몰라도 완전한 게닌이라고 보긴 힘들었다. 그리고 TV시대 이전에도 영화계에 진출한 몇몇 희극인들이 있었지만 그 수가 많지는 않았으며 매체를 통해 전국 단위에서 웃음을 주고 인기를 끈 것은 하나 하지메가 거의 최초라고 봐도 무방하다.[3] 누구인지 명확하지 않다. 자료에 따라서 사쿠라이 센리 아니면 야스다 신으로 추정된다. 밴드에서 두 사람이 특히 슬랩스틱 위주의 개그를 선보여 유명해지게 되었는데 특히 야스다가 머리를 찧는 몸개그를 많이하여 아마도 야스다 신이 유력하다.[4] 바꾼 시기는 1956년 2월에서 7월 사이로 추정된다. NHK 편성표 검색에 따르면, 1956년 2월 7일에 하나 하지메와 쿠바캣츠로 방송에 출연한 기록이 있고, 이후 동년 7월 5일,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 하지메와 크레이지 캣츠로 방송에 출연한 기록이 남아있다.[5] 1960년대에는 TV 방송에 출연하는 연예인들이 많지 않아 같은 소속사 또는 인기 버라이어티에 같이 출연하는 연예인들의 겹치기 출연이 잦았다. 더 피넛츠와는 같은 소속사이기도 했거니와, 더 히트 퍼레이드 등의 방송에도 같이 출연했다.[6] 이후 미에현 타키군 오다이 정에서 성장.[7] 당시 통상적으로 활동하는 밴드맨들의 급여가 4만엔까지 였는데 무려 파격적인 대우였다.[8] 179cm로 크레이지 캣츠 멤버들 중 최장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