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4-01 16:50:18

콘스탄틴 1세(카헤티)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8f2a2a, #b73535 20%, #b73535 80%, #8f2a2a); color: #fff; min-height: 3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바그라티온 왕조
기오르기 1세 알렉산드레 1세 기오르기 2세 레반
바그라티온 왕조
알렉산드레 2세 다비트 1세 콘스탄틴 1세 테이무라즈 1세
바그라티온 왕조
아르칠리 에레클레 1세 다비트 2세 콘스탄틴 2세
바그라티온 왕조
테이무라즈 2세 에레클레 2세 }}}
}}}}}}
카헤티 왕국 7대 군주
კონსტანტინე | 콘스탄틴 1세
제호 한국어 콘스탄틴 1세
조지아어 კონსტანტინე
라틴어 Constantine I
이름 콘스탄틴 칸(کنستانتین خان)
가족 알렉산드레 2세(아버지)
티나틴(어머니)
에레클(형)
다비트 1세(형)
기오르기(형)
로톰(동생)
안나(누이)
네스탄-다레얀(누이)
티나티나(누이)
모하메드 칸의 딸(아내)
생몰 년도 미상 ~ 1605년 10월 22일
재위 기간 1605년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카헤티 왕국 7대 군주.

2. 생애

카헤티 왕국 5대 군주 알렉산드레 2세와 바르짐 아밀라흐바리 공작의 딸 티나틴의 사남이다.형으로 에레클, 다비트 1세, 기오르기가 있었고, 남동생으로 로톰이 있었으며, 누이로 안나, 네스탄-다레얀, 티나티나가 있었다. 1580년대 말 카헤티 왕국과 루스 차르국이 가까워지는 걸 경계한 아바스 1세의 압박을 두려워한 아버지에 의해 페르시아 궁정에 인질로 보내졌다. 그는 그곳에서 조지아 정교회를 포기하고 이슬람교로 개종했으며, 이름을 '콘스탄틴 칸'으로 개명했다.

1594년 5월 30일, 표도르 1세의 지시를 받은 안드레이 드미트리예비치 즈베니고로드스키가 페르시아 궁정에 찾아와 콘스탄틴 왕자를 석방해달라고 요청했다. 아바스 1세는 콘스탄틴 왕자가 페르시아를 떠나기를 원할 경우 보내주겠다고 답했다. 안드레이 오아자는 그와 만나 대화를 나눴지만, 그는 페르시아에 머무겠다고 답하고 더 이상의 면담을 거부했다. 1596년과 1597년 사이에 아버지와 카르틀리 왕국의 시몬 1세, 삼츠헤의 마누차르 2세의 사절이 노예 소년과 소녀를 포함한 많은 선물을 가지고 궁정에 도착했을 때 접대하는 임무를 수행했으며, 카즈빈과 이스파한의 다루가(지사)를 역임했다.

1604년, 아바스 1세로부터 쉬르반의 총독이자 사령관으로 임명되어 오스만 제국에 대항하는 원정을 준비하며 카헤티 왕국의 참여를 독려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상당한 규모의 페르시아군과 측근들을 대동한 채 카헤티에 도착한 그는 수도 그레미에서 아버지와 형 기오르기의 영접을 받았다. 1605년 봄, 아바스 1세는 루스 차르국과 가까이 지내는 알렉산드레 2세를 제거하고 그를 왕으로 세우기로 마음먹고 그에게 아버지와 형 기오르기를 죽이라는 비밀 지령을 내렸다. 1605년 3월 12일, 그는 알렉산드레 2세와 기오르기 및 회의에 참석한 카헤티 귀족들을 모조리 살해하고 왕위에 올랐다. 이후 다비트 1세의 미망인인 케테반과 결혼하려 했지만, 케테반은 재혼을 단호하게 거부했다.

살아남은 카헤티 귀족들은 그의 폭거에 분노하여 대대적인 반란을 일으켰다. 1605년 10월, 그는 군대를 이끌고 반란을 진압하려 했으나 참패를 면치 못하고 전사했다. 사후 다비트 1세의 아들 테이무라즈 1세가 왕위에 올랐다.

동시대의 페르시아 관리이자 역사가 파지 쿠자니(Fażli Ḵuzāni)의 연대기에 따르면, 그는 키질바시 족장 모하메드 칸의 딸과 1604년경 결혼했다고 한다. 둘 사이에는 자식이 없던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