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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ido Socialista de Chile (PS) | |
영문 명칭 | Socialist Party of Chile |
한글명칭 | 칠레 사회당 |
상징색 | 빨간색 |
창당일 | 1933년 4월 19일 ([age(1933-04-19)]주년) |
이념 | 사회민주주의 민주사회주의 진보주의 좌익 내셔널리즘 1990년대 이전 :[1] 마르크스주의 사회주의[2] |
정치적 스펙트럼 | 중도좌파 ~ 좌익 1990년대 이전 : 좌익[3] |
주소 | París 873, Barrio París-Londres, 산티아고 |
당수 | 알바로 엘리잘데 |
당원 수 | 43,895명(2021년 기준) |
국제 조직 | |
청년 조직 | 칠레 청년 사회주의자 |
정당 연합 | 민주사회주의 |
상원 의석 수 | 7석 / 43석 |
하원 의석 수 | 13석 / 155석 |
웹사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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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칠레의 온건 사회주의 정당으로 칠레의 첫 사회주의자 대통령으로 유명한 살바도르 아옌데을 배출했던 정당으로 알려져 있다.2. 역사
19세기 칠레의 사회주의 토대를 만들어진 프란시스코 빌바오, 산티아고 아르코스 사상 영향을 받았으며, 대공황 계기로 사회주의 국가 건설 목표로 창당가졌다. 아옌데도 창당 주역자로 정치 입문을 가졌다. 다음 해에 칠레 급진당, 민주당과 함께 좌파 전선을 형성해서 지지를 넓어갔다. 1938년 대선에서 페드로 아기레 세르다 급진당 후보를 지지하여서 대통령를 배출하였다. 내부적으로 공산당과의 갈등 등으로 인해 2년 만에 내각에서 빠져나갔다. 그 뒤로 당 내분이 끊임없이 발생하다가 1957년에 급진당, 민주당 등 다시 뭉쳐서 인민 행동 전선(Frente de Acción Popular)을 결성하여서 지방선거 등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당 내에서도 칠레식 사회주의를 벗어나 선거를 통한 위로부터의 혁명을 부른 살바도르 아옌데가 인민연합으로 재편하고 대통령을 당선시킨다. 그리고 1971년 지방선거, 1973년 총선 성과거두는 도중에 피노체트의 쿠데타 인해 사실상 지하조직 수준으로 활동하였다. 1980년대 들어서서 민주화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는데, 문제는 같은 좌파 성향의 정당들 사이에서도 내분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다가 1989년 민주화 물결 시점에도 일부 정당이 군부와 협상하는 과정에서 군부의 주장대로 일부분 받아들이는 점이 있어서 더욱 컸다. 아무튼 민주화 이후에 다시 정당의 모습을 갖추면서 좌파 연합의 통일된 모습을 보이기 위해 이중당적 허용 등 가졌다.
2000년 대선에서 민주당 지원을 하여 30년만에 사회주의 성향의 리카르도 라고스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2003년에 쿠데타 30주기에서 민주체제를 막을 책임이 부족했다는 문서로 발행했다. 2005년 대선에 국방장관을 맡아 대중적으로 떠오르던 미첼 바첼레트를 후보로 내세워 승리하면서 정권을 재창출하게 되었다.
2009년 대선에 미첼 바첼레트 대통령이 재선 도전을 선언하며 출마했으나 세바스티안 피녜라 후보에게 패했다. 그러나 2013년 대선 때 바첼레트 전 대통령이 재출마하여 다시 당선되면서 4년여 만에 여당으로 복귀했다.
2017년 대선 때 정당연합 '새로운 다수'를 결성하고 이 연합의 후보로 알레한드로 기이에르를 내세웠으나
2021년 대선에서는 '민주사회주의' 정당연합을 주도하며 신좌파 정당연합 '존엄성을 인정하다' 소속으로 출마한 가브리엘 보리치 후보를 지지하였고, 보리치가 당선되면서 구성한 범좌파 연립정부에 참여해 공동 여당이 되었다.
3. 성향
당 강령 1조에 마르크스주의 구현한 과학적, 사회적 진보를 제창한다고 나와 있다.남미에서 자주 보이는 21세기 사회주의를 내세우지 않는다는 것이 특징이다.[4]
[1] 특히 살바도르 아옌데 시절.[2] 비폭력적 형태의 혁명적 사회주의와 민주사회주의적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3] 칠레 공산당이나 그 외에 몇몇 극좌주의 정당들의 지분도 있었고, 비폭력적이기도 해서 일단 칠레 정치 기준 스펙트럼상 극좌까지 가지는 않는다.[4] 이유는 간단하다. 애초에 21세기 사회주의는 독재나 (반)식민지 등 민주주의가 부재한 상태에서 해방과 혁명을 동시에 혹은 연속적으로 쟁취하면서 구현해낸 20세기의 사회주의 혁명과 달리,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정착한 정치 제도 속에서 개량과 타협을 거부하면서 (즉 이 점에서 사회민주주의나 유럽공산주의와는 확연한 차이점을 지닌다) 어떻게 (주로 비폭력적 방법으로) 사회주의 체제를 구현할 것인지에 대한 모색의 산물인데, 그 원조가 바로 칠레 사회당이 배출한 아옌데이기 때문에. 이에 대하여 체 게바라는 "똑같은 목적을, 나와 다른 수단을 통해 추구하고 있는 살바도르 아옌데에게."라고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