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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지희 더 그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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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천상지희 더 그레이스 로고.svg

린아
다나
선데이
스테파니

[ 한국 음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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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한번 더, OK? 표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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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o Good
1st 싱글

2005. 04. 29.
The Club
2nd

2006. 03. 08.
열정 (My Everything)
3rd 싱글

2006. 11. 03.
한번 더, OK?
정규 1집

2007. 05. 04.
[ 일본 음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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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Bdrs7g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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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4h7q0lY.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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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y8FM9Uh.jpg
||<width=25%>
파일:h0uv4mk.jpg
||
Boomerang
1st 싱글

2006. 01. 25.
The Club
2nd 싱글

2006. 03. 08.
Sweet Flower
3rd 싱글

2006. 04. 26.
juicy LOVE
4th 싱글

2006. 07. 12.
파일:XRxSrRd.jpg
파일:Uo5E2mK.jpg
파일:xQMEFAU.jpg
파일:MThxNL7.jpg
Piranha
5th 싱글

2007. 08. 01.
Graceful 4
정규 1집

2007. 11. 14.
Stand Up People
6th 싱글

2008. 07. 23.
Here
7th 싱글

2008. 10. 22.
파일:JU3gjN3.jpg
Dear...
정규 2집

2009. 01. 07.
[ 관련 문서 ]
||<tablewidth=100%><width=10000><tablebgcolor=#fff,#1f2023> 한국 음반 ||<width=33%> 일본 음반 ||<width=33%> 다나&선데이 ||
천상지희 The Grace
파일:Bs7t3cB.jpg
왼쪽부터
스테파니선데이린아다나
<colbgcolor=#ffc0cb><colcolor=#000>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ffc0cb> 파일:천상지희 더 그레이스 로고.svg천상지희 더 그레이스
天上智喜 The Grace
}}}
데뷔 2005년 4월 30일
(데뷔일로부터 [dday(2005-04-30)]일, [age(2005-04-30)]주년)
데뷔 음반 {{{#!wiki style="background-color: #ffffff,#1f2023; display: inline-block; margin: 5px 0px; padding: 1px 2px; border-radius: 4px; border-style: solid; border-width: 1px; border-color: #ffc0cb"
유닛 천상지희 다나&선데이
장르 아카펠라, 발라드, 댄스, R&B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 (2005 ~ 2020)
팬덤 샤플리
공식 색
파스텔 로즈 #FF84C3
펄 핑크 #FFC0CB
[1]

1. 개요2. 멤버3. 활동
3.1. 결성 과정과 데뷔 초창기 활동3.2. 天上智喜에서 The Grace로3.3. 정규 1집 한번 더, OK? (One More Time, OK?)3.4. 비운의 후속곡 'Dancer In The Rain'3.5. 일본 싱글 5집 'Piranha'3.6. 일본에서의 활동과 스테파니의 부상, 활동 중단3.7. 활동 중단 이후, 천상지희 다나&선데이 유닛 출범, 현재 상황
4. 활동 중단 원인5. 평가6. 음반7. 여담8. 샤플리인 인물
8.1. 공식 팬클럽8.2. 샤플리 커뮤니티 사이트

[clearfix]

1. 개요

파일:external/67.media.tumblr.com/tumblr_lgwsz24YVr1qzrfxuo1_500.gif
SM엔터테인먼트 소속으로 데뷔한 국내 여자 아이돌 최초 4인조 아카펠라 팝 걸그룹.

2005년 5월 1일, SBS 인기가요에서 'Too Good'으로 데뷔한 이들은 동방신기의 여성판으로 결성된 그룹으로, 동방신기처럼 데뷔 초창기에는 각 멤버 이름앞에 '천무', '상미', '지성', '희열'이라는 단어가 붙어있었지만 2006년에 천상지희 더 그레이스로 팀명을 바꾸면서 삭제되었다.

2009년 일본에서의 열린 투어 1st Live Tour 'Dear...'를 끝으로 현재까지 활동은 중단한 상태이다. 공식 해체 선언을 하지 않았지만 2008년 이후로 4인조 완전체 활동이 한 번도 없어 사실상 해체한 그룹이나 마찬가지가 됐다. 이후 네 명이서 사적으로 모인 모습도 단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다. 2024년 린아를 끝으로 멤버 전원이 SM을 떠났다. 오랜 시간 멤버들끼리 교류가 없는 듯 보였으나 최근 단톡방을 통해 네 멤버가 소통하고 세명 이상 만나는 등 관계가 회복되는 듯 하다.

그룹명의 의미는 천상(天上)의 지혜(智)와 기쁨(喜) 이고, 2006년 더 그레이스 라는 단어가 뒤에 붙었는데, 그레이스의 의미는 은총, 은혜 란 뜻이다.

2. 멤버

파일:천상지희 더 그레이스 로고.svg
파일:린아2020.png
파일:external/socdn.smtown.com/p1akkmt8eduk818rgfse1b8i125v1.jpg
파일:IMG_20191206_033335.jpg
파일:스테파니_프로필.jpg
린아 다나 선데이 스테파니
1984. 02. 18. ([age(1984-02-18)]세)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메인보컬
1986. 07. 17. ([age(1986-07-17)]세)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메인보컬
1987. 01. 12. ([age(1987-01-12)]세)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리드보컬
1987. 10. 16. ([age(1987-10-16)]세)


[[미국|]][[틀:국기|]][[틀:국기|]]
리드보컬
메인댄서

3. 활동

KBS [ 펼치기 · 접기 ]
||<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ff84c3><tablebgcolor=#ff84c3><tablecolor=#ffffff><nopad>||
[[한국방송공사|
KBS
]]

SBS [ 펼치기 · 접기 ]
||<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ff84c3><tablebgcolor=#ff84c3><tablecolor=#ffffff><nopad>||
SBS

3.1. 결성 과정과 데뷔 초창기 활동

2002년, SM 엔터테인먼트S.E.S.를 이을 걸그룹으로 밀크, 신비 등을 배출시켰으나 미흡한 마케팅과 당시의 가요 시장 상황 등으로 인해 모두 실패에 가까운 결과를 내었다. 신비와 밀크는 2집을 준비하던 중에 해체되었고,[2] SM은 앞선 이 두 그룹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2001년 솔로가수로 데뷔해 논스톱으로 유명세를 탔으나 2집이 부진한 상황이었던 다나(홍성미)를 필두로, 2002년에 데뷔해 2004년까지 활동한 이삭 N 지연의 멤버였던 이지연(후에 린아로 개명)과 일본에서 3년간 홈스테이를 하고 04년 봄에 솔로 가수로 데뷔한 진보라(진서윤)(후에 선데이로 개명), 2004년 청소년 경연대회(Teen Best Competition)'에서 대상으로 입상했던 연습생 스테파니(김보경)를 모아 S.E.S. 이후 SM에서 정식으로 8년만에 4인조 여성그룹을 기획한다. 이전에 나왔던 밀크와 신비는 각각 SM의 자회사로 데뷔했기 때문에 100% SM 소속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파일:TSZX.png
4인이서 촬영한 첫 공식 프로필 사진.[3]

이 그룹은 본래 다나가 프로젝트 형식으로 활동할 예정으로 그녀가 직접 라디오 등지에서 소식을 전하며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데뷔하기 1년전인 2004년 4월 은지원이 진행하는 라디오에서 다나가 중국에서 활동할 예정으로 극비리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라고 말한것이 시작이었는데 이미 이때부터 SM에서 다나를 필두로 천상지희의 전신이 되는 새 프로젝트를 진행한것을 알 수 있다.

이 프로젝트는 일명 여성판 동방신기로 기획되면서 결성시기가 04년 초였던것을 감안하면 정말 동방신기가 데뷔하자마자 바로 진행이 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룹명과 멤버 네이밍, 그리고 SM 내에서 가장 실력을 갖춘 연습생이 발탁된 것까지 동방신기의 기획 그대로 가져가고 있었다. 이 여성판 동방신기의 이름은 천상지희(天上智喜)로 결정되면서 중국에 진출했던 다나를 중점으로 일본에서 현지화 교육을 받고 있던 선데이, 미국에서 자란 스테파니, 한국에서 활동한 린아가 함께 모여 아시아권에서 활약하고 나아가 전세계에서 인정받을 걸그룹으로 탄생되었으며 실제로 멤버 모두 SM에서 특출난 실력으로 인정받은 엘리트 연습생만 모인 구성이었다.

멤버 구성 과정에서 초반에는 다나와 이삭N지연이 듀엣을 한다는 썰이 먼저 퍼져나갔고[4] 이후 밀크 출신 서현진이 합류한다는 소문이 알음알음 존재했다.[5] 또 프로젝트 그룹이라는 얘기가 데뷔 초반에 있어서 그룹 활동 끝나면 다나가 다시 솔로로 활동할거라고 알려지기도 했다. 그런데 이 그룹이 특이한건 제작 속도가 유독 이상하리만큼 빨랐고 당시 천상지희에 대한 SM의 제작 방식이 앞뒤 그룹들과 달리 급속도였던것이 의문점으로 남고 있다.[6] 정말 딱 실력만 보고 바로 데뷔를 시켰다는 분석이 존재한다.

한때 천상지희는 SM의 전 관계자 김경욱이 기획한 걸그룹이라는 얘기가 돌았는데, 시기상으로는 데뷔 시기가 김경욱이 재적할 당시는 맞지만 천상지희 데뷔 후 얼마 안 가 김경욱은 해임됐고 천상지희 데뷔 직후 즈음해서 방영된 한류 관련 특집 방송을 보면 이수만이 천상지희 뿐만 아니라 당시 SM 가수들의 모든 프로젝트를 진두지휘 하고 있었기에 천상지희는 100퍼센트 모두가 생각하는 SM의 수장 이수만과 산하 스탭들이 하나부터 열까지 제작한 프로젝트다.

가끔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마이너스의 손으로 불리는 김경욱이 기획해 망해가던 천상지희를 이수만이 손대면서 대박을 냈다"라는 얘기가 많지만 이건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다. 2016년 스테파니가 비디오 스타에 출연해 밝힌 바로는, 당시 이수만 대표가 '여자판 동방신기'를 만들겠다며 멤버들 사복부터 무대 의상, 화장품까지 모두 직접 미국에서 공수해 맞췄으며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겨줬다고 밝혔다. 그만큼 이수만 대표도 천상지희 기획에 상당히 열정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룹 기획만 이수만이 하고, 데뷔 앨범은 김경욱이 만들었다는 얘기도 있는데, 2005년 5월~6월 경 천상지희 데뷔 극초반에 SBS 모 특집 방송에서 이수만이 직접 천상지희를 일본 에이벡스 대표에게 소개시키는 영상까지 존재한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인터폴 수배 이후 이수만이 SM에 다시 복귀하는 시점과 대표 이사가 교체되던 시점(한마디로 회사 내부 상황도 과도기)에 데뷔한 그룹이라고 할 수 있다. 회사 내부사정이 어수선하던 시절은 맞다.

이들은 2004년 SM TOWN 여름음반에 다나의 2집 수록곡 '바램'을 4인 체제로 재녹음하여 실으면서 데뷔 준비에 박차를 가하는데 이외에도 이누야샤 5기 오프닝/엔딩주제가 '장난스런 키스'를 녹음하여 수록하기도 했다.[7] 2004년 9월 24일, SM 쇼케이스로 첫 모습을 드러낸 천상지희는 본 무대에서 '바램'을 퍼포먼스 하면서 4인 체제로 첫 무대를 가졌고 각자 솔로 무대도 가졌는데, 린아는 화요비의 '당신과의 키스를 세어보아요'를 커버했으며[8] 선데이는 자신의 일본 데뷔곡 'リラの片想い (리라의 짝사랑)'을 불렀다.
2004.09.24 SM 쇼케이스 천상지희 비공식 첫 무대

그렇게 2004년 12월, SM의 Hot in Asia 프로젝트 설명회 차 열린 중국 기자회견에서 SM은 천상지희의 데뷔를 알린다. 당시 기자회견에서 천상지희를 소개하면서 동방신기와 마찬가지로 중국인 멤버를 한 명 포함시키고 데뷔한다 밝혔지만 이후 중국인 멤버 영입건은 이후 자연스레 무산되었다.[9] 이 자리에 제안을 받았던 사람이 이일동인데 SM에서 바로 데뷔할 수 있다며 천상지희 합류를 제안했었다고 한다. # 부모의 반대로 무산되었다고 하는데, SM이 바로 데뷔할 수 있다고 딜을 건것으로 보아 천상지희를 이상하리 만큼 급속제작하려 했던 회사 방침을 엿볼 수 있다.

또 SM은 천상지희를 소개하면서 이들을 '여자판 동방신기'로 발표했는데, 이 점이 카시오페아들의 심기를 제대로 건드려 대단히 역효과를 냈다. '여자판 동방신기'에 걸맞게 각각의 멤버 이름 앞에 '상미', '희열', '지성', '천무'라는 괴상망측한 단어가 붙어 "무(天舞)스테파니, 미(上美)린아, 성(智聲)선데이, 열(喜悅)다나" 라는 더욱 이상한 예명이 탄생했고 이것은 대중들에게도 적지 않은 비아냥을 들었다. 처음 이 예명을 전해들은 멤버들은 무척 싫었다고 하며 스테파니도 이후 인터뷰를 통해 너무 이상했다고 밝혔다.[10]

파일:MARXctx.jpg
천상지희의 첫 공식석상 모습. 2004년 12월 기자회견

거기다 팬클럽 이름이 북두칠성이라는 둥, 활동 내내 S.E.S.의 노래를 리메이크 할 것이고 풍선 색깔 역시 이들의 상징색인 펄보라를 사용할것이다, 혹은 신화창조의 주황색을 사용할것이다 등의 헛소문이 돌면서 데뷔 초부터 각종 팬덤에게 찍혀 많은 안티를 끌어들였다.[11] 그러면서 등장했던 안티들의 여론이 '재활용 그룹'이라는 것이었는데, 사실 멤버 구성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말이 많은 부분이다.

이미 10대층에선 인지도가 있었던 다나와 지연(린아)의 합류를 비롯해 약 2년간 일본에 머무르면서 데뷔를 준비하던 선데이가 갑자기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야 했던 상황[12] 등이 그룹 결성 자체가 성급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으며 스테파니는 SM에 입사한지 1년도 안돼서 데뷔가 결정된 것도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들은 2004년 11월부터 본격적인 녹음 작업에 돌입했고 2005년 2월에 자켓 촬영을 마쳤으며 3월 iLikePop 사이트에 타이틀 곡으로 내정된 'Boomerang'과 수록곡 'Can't Help Falling in love'의 미리듣기를 공개했다. 그리고 4월 경에 데뷔할 예정으로 모든 준비를 일사천리로 해가던 상황이었지만 SM은 돌연 계획을 수정한다.

SM은 타이틀곡 선정을 팬들의 의견을 수렴한다면서 다 준비해뒀던 타이틀곡을 갑자기 제쳐놓고 수록곡 'Too Good'을 갑자기 타이틀 곡으로 교체해버리는 병크를 저지른다. 그래서 데뷔 초창기 기사들이 대부분 "가창력으로 승부하겠다"는 멘트들이었고, 데뷔 전 부정적이었던 반응을 발라드 곡으로 뒤집어 볼 셈이었는데 'Too Good'은 '부메랑'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발라드 곡이었으며 당연히 댄스곡보다 임팩트가 현저히 떨어지는 노래였다. 심지어 안티들이 일부러 'Too Good'에 반응을 몰아버린 게 아니냐는 말이 있었을 정도였다. 실제로 이때 안티들이 또 섹시 컨셉으로 나온다며 질린다고 여론 몰이를 해댔고, 이 반응을 모니터한 SM 측이 계획을 바꾼것으로 보인다.[13]

당시를 회상하는 선데이 편에 따르자면 'Boomerang'으로 데뷔 준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회사에서 '노래로 가자'며 발라드로 바꿨다고 한다.[14]

파일:ccc198.png
데뷔 싱글의 자켓 사진[15]
자켓 사진부터 어반 장르의 블랙 계열 'Boomerang' 컨셉으로 완료해둔 상황이었지만 당시 천상지희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가창력으로 승부할 수 있는 발라드 곡으로 승부를 보려던 게 SM 측의 의도였지만 이것이 타이틀곡 선정에 합당한 이유로 보기엔 적절치 않아보인다. 안티들한테 재활용 그룹이냐고 욕 먹고 있던 상황에 신인이었던 스테파니를 필두로 해서 중고신인이라는 인상을 지워도 모자랄 마당에 이미 알려진 다나를 필두로 만들어진 'Too Good'을 타이틀로 민 것부터가 미스였다. 그렇다고 노래가 엄청 임팩트가 큰 것도 아니었다. 타이틀 곡이 급하게 변경되면서 5번 트랙으로 수록될 예정됐던 'The Club'이 트랙리스트에서 누락되었고 #[16] 부랴부랴 앨범 발매 직전에 'Too Good' 뮤직비디오 촬영이 진행된다.

데뷔 앨범 준비를 모두 마친 천상지희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실 2005년 4월 7일에 M.net 엠카운트다운 비방송 무대를 통해 처음으로 비공식 데뷔 무대를 가졌었다. 이 날 무대에서는 원래 타이틀 곡으로 점쳐둔 'Boomerang'을 선보였는데 # 이 시기 타이틀 곡을 'Too Good'으로 바꿨음에도 왜 굳이 'Boomerang'을 보여줬는지는 의문이지만 아마 이 무대는 'Too Good'으로 타이틀을 바꾸자는 의견이 한참 나올 때 미리 정해준 스케쥴이어서 취소하지 않고 행한 스케쥴일 가능성이 크다. 애초에 비방 무대 자체가 그냥 무대 경험을 쌓기 위해 오르는 것이라. 그러나 SM의 다른 팀들을 봐도 데뷔 전 비방 무대는 보통 타이틀 곡을 보여주기 때문에 원래 'Boomerang'을 밀으려던 이들의 계획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비방 무대는 방송되지 않고 기사를 통해 천상지희가 베일을 벗었다는 사실이 알려졌으며, 타이틀 곡을 'Too Good'으로 바꾸기로 완전히 확정한 SM은 4월 22일에 'Too Good' 뮤직비디오 촬영을 강행했다. 그리고 몇주 뒤, 2005년 4월 29일 중국 CCTV의 음악 방송 '중화정'을 통해 데뷔 무대를 가졌는데 이 날도 역시 'Boomerang' 컨셉의 의상을 입고 'Too Good'과 'Boomerang'을 선보였다. 그리고 며칠 뒤 한국에서 5월 1일에 SBS 인기가요를 통해 정식 데뷔한다.[17]

파일:rRs0FAI.jpg
싱글 1집 'Too Good' 2005.04.29 발매
2005년 5월 1일 SBS 인기가요 데뷔 무대

이들의 첫 데뷔 무대에는 아카펠라 팝 그룹 답게 준수한 라이브를 선보여 호평을 이끌어냈고 데뷔 전부터 바글바글하던 안티들의 소행도 줄어들긴 했지만 기대만큼의 성적을 내지 못했다. 데뷔 전부터 화제였던 천상지희는 막상 데뷔하고 보니, 너무 썰렁한 데뷔 신고식을 하게 되었고 부랴부랴 원래 타이틀 곡으로 점찍어뒀던 'Boomerang'으로 6월부터 후속곡 활동을 시작한다. 그런데 이때 꽁꽁 숨겨뒀던 신예 스테파니의 환상적인 독무가 화제가 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고 타이틀 곡때의 미미한 반응과는 달리 화제를 모으기 시작했다.

'Boomerang'에서 단연 돋보인 스테파니의 독무는 닉네임 "천무"답게 아주 격렬했으며, 19살 신인이 선보이기에는 믿기지 않은 안무를 선보이며 시선을 끄는데 성공한다. 심지어 이 독무를 스테파니 본인이 직접 만든 것이다. 이 같은 반응에 힘입어 스테파니는 각종 예능 버라이어티 쇼에 출연하며 천상지희의 이름을 알리는데 특히 X맨에서 그녀의 춤 실력이 빛을 발했고,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한다. 스테파니의 활약으로 인지도가 상승한 천상지희는 초반의 분위기보단 수월하게 활동을 이어나갔지만 음반 판매는 전혀 상승하지 못했고 방송 차트도 중위권에 그치면서 결국 체감 인기는 얻었지만 결과적으로 절반의 성공 정도로 끝났다.

사실 천상지희는 2000년대 초중반 SM 엔터테인먼트 측에서 타진하던 K-POP의 세계화, 아시아 진출을 위해 만들어진 그룹이었기에 데뷔 초부터 중국 활동을 병행했다. 이미 다나는 2002년 중국에 진출해 중국어 실력도 어느정도 갖추어졌었고, 인지도 또한 조금이나마 있던 상황이었으며 중국에서는 'Too Good'이 아닌 '부메랑'을 주로 밀었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꽤 좋은 반응을 얻은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여기서도 대박은 아니었다.

팬들은 중국으로 활동 반경을 잡은 것으로 예측하고 있었지만 2005년 10월, 천상지희는 일본 진출을 공식화했다. 사실 2005년 6월, 천상지희가 극신인이었을 당시 보아와 이수만이 SBS 모 특집 방송에 출연했는데 이때 이수만 회장이 소속 가수들의 해외 활동 등을 소개하면서 천상지희가 에이벡스의 회장 및 스탭들이 내한한 자리에서 미팅을 하는 모습이 방송되기도 했다. 이 날 방송에서는 천상지희의 일본 데뷔를 위한 현지 스탭들의 방문이라고 전했으며, 이 영상을 볼 때 데뷔 초부터 이들의 일본 진출이 계획되고 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게 일본에 데뷔한다는 사실은 공공연하게 확정되고 있었지만 데뷔 싱글을 겨우 마무리 지은 천상지희는 2005년 겨울에 급 일본 진출을 선언하면서 팬들을 당황시켰다. SM의 다른 소속 가수들이 대부분 국내에서 데뷔 싱글 혹은 데뷔 음반 이후 적어도 한 장 정도의 후속 음반을 낼 때 천상지희는 데뷔 음반만 딱 내놓고 아무런 국내 후속 활동 없이, 갑자기 일본으로 넘어가버린 것이다. 동방신기, 보아, 슈퍼주니어 그 어느 팀도 데뷔 음반을 내자마자 일본으로 넘어가진 않았다. 데뷔 전부터 아예 일본에서 홈스테이까지 했던 보아 역시도 1.5집까지는 내고 넘어간 판국이었다. 천상지희는 아예 대놓고 SM의 실험을 위해 탄생된 팀이라도 된 양, 훌쩍 일본으로 떠나버린다.

이들은 SM 아티스트들의 일본 활동을 전담하는 에이벡스에서 06년 1월, 후속곡 'Boomerang'을 일어로 번안해 데뷔 싱글을 발매했고 일본 활동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이들도 타이틀 곡 선정 미스를 인정하는지, 공식 데뷔곡 'Too Good'은 철저히 묻혀버렸다. 천상지희의 준수한 라이브 실력과 퍼포먼스에도 일본 대중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는지 결국 데뷔 싱글은 오리콘 첫진입 110위라는 초라한 성적을 기록했다. 그리고 코디가 한국 활동때보다 더 나빠져서 좋은 평을 받지 못했다.

파일:bRIihDG.jpg
Korea-Japan 2nd Single 'The Club'
What U Want(스테파니 솔로곡) + The Club (feat. 비)

2006년 3월, 천상지희는 본래 데뷔 싱글에서 후속곡으로 쓰려던 'The Club'을 두번째 싱글로 내놓는데, 이때 한국과 일본 동시에 발매하기로 결정한다. 이 곡에는 한류스타 가 피쳐링을, 일본판에선 'SEAMO'가 피쳐링을 맡았다. 'The Club'은 'Boomerang'을 잇는 파워풀한 댄스곡이었고 이 곡에서도 역시 스테파니의 화려한 독무 파트가 존재했다. 그리고 이 싱글에는 스테파니의 솔로곡도 수록되었는데 타이틀 곡 못지 않은 퀄리티로 호평받기도 했다. 발매와 동시에 한국에서 좋은 반응을 이끌어 히트를 예감했으나 정말 어이없게도 일본 활동을 위해 활동을 2주만 계획하면서 수많은 팬들을 분노케 했으며 이때 'The Club'으로 활동 안 시킨게 최대의 실수였다. 그렇다고 일본에 돌아가서 이렇다할 성적을 낸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The Club'은 딱 첫방과 뮤직비디오로만 홍보했음에도, 인기가요 뮤티즌 송 TAKE 7 순위 투표 7위에 오르고, 엠넷 차트에서도 10위권 안에 들며 호조의 성과를 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놈의 일본 활동이 어찌나 중요했는지 첫 무대만 겨우 마치고 바로 일본으로 넘어가버린 것이다.

'The Club' 역시 일본에서 별다른 히트를 거두지 못했고 이 후 일본에서 'Sweet Flower', 'juicy LOVE', 등 총 2장의 싱글을 발매하지만 모두 100~200위권 대의 아주 저조한 성과를 기록했다. 그래도 이 시기 일본에서 멤버 4명이 함께 지내면서 싸우기도 하고 서로 많은 걸 알아가면서 팀워크가 더욱 단단해졌으며 각종 이벤트 활동을 통해서 라이브 실력도 쌓았다. 그렇게 그 해 하반기까지 일본 활동이 이어졌고, 약 9개월간의 일본 활동을 잠시 정리한 이들은 가을 께 한국에서의 새로운 음반 활동을 위해 귀국한다.

3.2. 天上智喜에서 The Grace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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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 오랜만에 돌아오면서 팀에 몇가지 변화가 생겼는데 팀명을 천상지희에서 '천상지희 The Grace'로 개명하면서 각 멤버들의 괴상망측했던 '한자명+이름' 형식도 '멤버명+The Grace' 형식으로 새롭게 바꿨으며, The Grace는 은총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고 본래 팀 색깔인 아카펠라 팝 그룹 이미지를 더 살리기 위해 붙였다고 한다. 그리고 영어권 국가에선 천상지희라는 이름을 발음하기가 어려운지라 로마자 표기로 음절 앞글자를 딴 CSJH 혹은 병음 앞글자를 딴 TSZX 또는 일본어 발음으로 TJCK 같은 준말 표기 대신 The Grace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로 했다고 한다.

7개월만에 한국으로 복귀한 천상지희는, 3번째 싱글 '열정(My Everything)'으로 가요계에 컴백한다. 그룹 이미지 변화에 맡게 기존의 댄스곡들과 달리 타이틀 곡도 팝 발라드였다. 천상지희 멤버들이 가장 좋아하는 활동 곡 중 하나라고도 한다.
열정(My Everything)[18]

타이틀 곡 '열정'은 일본에서 쌓아온 라이브 실력과 업그레이드 된 모습을 보여주기에 적절했던 발라드 곡으로, 활동 기간 동안 팬들의 호응을 얻었다. 비록 성적은 이전 싱글들과 다를 게 없었지만 평단의 호응도 괜찮았다. 수록곡 중엔 윤상과 작업한 'The Final Sentense'와 'IRIS(할 말이 있어요)' 등이 팬들 사이에서 사랑 받았다. 여담이지만, 이 싱글로 활동을 상당히 오래 했고, 푸쉬도 많은 편이었다. 그래서 더욱 이전의 'The Club'이나 이후에 나온 'Dancer In The Rain' 등의 곡을 이 정도로만 밀어줬어도 그룹의 앞날이 바뀌었을 거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였으며 2007년 초에 세 번째 싱글 활동을 마감한 천상지희는 첫 정규 앨범 작업을 시작한다.

3.3. 정규 1집 한번 더, OK? (One More Time, OK?)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활동해온 천상지희는 데뷔 2년만에 드디어 첫 정규 앨범을 발매한다. 첫 앨범이니 만큼 그동안의 싱글 타이틀 곡들도 보너스트랙으로 함께 수록됐는데 데뷔곡 선정 미스를 인정이라도 하듯 'Too Good'은 미수록되고 'Boomerang'만 수록되었다.

그리고 이 당시 기준으로는 특이하게 발매 전 앨범 티저 광고를 공개하기도 했는데, 이후 가요계에 티저는 거의 기본적인 가요계의 흐름이 되었으며 어떻게 보면 티저 열풍의 시초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이 시기의 가수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앨범 티저 광고를 따로 촬영하여 공개하였다. 이후 이효리 등의 가수가 티저 영상을 줄지어 발표하며 한국 가요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선례가 되었고, 사실 그 이전에도 가수 데뷔 광고 혹은 앨범 광고는 존재했지만 정확하게 '티저'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경우는 드물어서 천상지희의 경우가 거의 최초가 아니냐는 얘기가 많다. 이 앨범 티저 광고는 네티즌들의 호평을 받아 기대감을 더욱 높이는데 성공했다.

정규 1집 티저 광고

그렇게 첫 정규 앨범으로 만반의 준비를 가한 천상지희는 2007년 5월, 정규 1집 앨범 '한번 더, OK?'를 들고 국내 가요계에 컴백한다.

참고로, 티저에 쓰인 곡은 정규 1집 수록곡 인 '여우(그녀들의 수다)' 와, 마지막 부분에 짤막히 '한번 더, OK?' 가 쓰였다.

타이틀 곡 '한번 더, OK?'는 KENZIE가 작곡한 댄스 곡으로 SM 걸그룹으로서는 처음으로 강도 높은 섹시 컨셉을 시도한 곡이었다. 대중적인 느낌보다는 살짝 난해하고 팝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곡이지만 중독성 강한 멜로디와 퍼포먼스가 어우러진 곡이며 Kenzie가 작곡한 댄스 곡들 중에 손에 꼽히는 명곡이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잘 빠진 댄스 넘버였다. 참고로 이때 공식적이진 않지만 또 한 번의 개명이 있었는데 각 멤버 이름 뒤에 붙어있던 '더 그레이스'가 암묵적으로 삭제되고, 그냥 '다나', '스테파니', '린아', '선데이'로 불리게 된다. 대중들의 반응도 이제야 정상적으로 부르게 되었다며 그간의 불만이 해소되었다.

'한번 더, OK?'의 활동이 시작되면서 2년간 한일 양국에서 쌓아온 라이브 실력과 뛰어난 곡 퀄리티, 퍼포먼스 등이 좋은 반응을 얻기 시작하고 데뷔 후 2년만에 드디어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다. 이것은 데뷔 2년만에 갖은 고생 끝에 얻은 값진 성과였으며 천상지희는 매 무대마다 열정적인 라이브를 선보여 현재까지도 미친 라이브, mr제거 레전드로 불릴 정도로 완성적인 무대를 선보였다. 무엇보다 이 시기 드디어 멤버들의 모습이 한 그룹처럼 융화되어 최고의 팀웍을 자랑했는데, 팀 컨셉과 이름을 재정비한 뒤 등장했기에 이전의 살짝 따로 노는 듯한 느낌도 상당히 사라졌고 모든 면에서 정점에 오른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며 한 마디로 천상지희의 리즈 시절이었다.

그리고 결국 6월 7일 Mnet M! Countdown에서 데뷔 2년만에 처음으로 1위 수상의 영광을 안았고 곧 이어 SBS 인기가요에서도 뮤티즌송을 수상하며 정상에 올랐다. 당시 순위제를 운영하지 않았던 음악중심에서는 걸그룹으로는 몇 년만에 엔딩 무대를 장식했고, 뮤직뱅크에서도 남자 가수들이 뽑은 최고 인기 여성가수상을 수상했다. 만약 뮤직뱅크와 음악중심에서도 순위제를 운영했다면 몇 번의 트로피를 더 거머쥐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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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2년만에 첫 1위를 수상했을 당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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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이렇다 할 걸그룹이 없었던 상황에 천상지희는 가장 인기 있는 걸그룹으로서 활약했고 이때 멤버 개개인의 인지도도 급상승하여 선데이는 일명 초대 꿀벅지로 유명세를 탔으며 린아 역시 보이쉬한 스타일로 여성 팬이 크게 증가한다. 스테파니는 이전에도 가장 주목을 많이 받았었는데 '한번 더, OK?' 때는 제대로 포텐이 터져 뮤직비디오에서 선보인 봉춤 등이 크게 화제가 되었다. 다나 역시 이 시기 다이어트에 성공해 비쥬얼의 정점을 찍었다.

음반 판매량 역시 이전의 싱글 판매량에서 큰 폭으로 상승했으며 이 시기 공식 팬카페 회원수도 10만 명에 육박했고 데뷔 2년만에 비로소 빛을 보기 시작했다. 활동 중반에는 다나가 드림콘서트 무대에서 발목을 삐끗해 잠시 3인 체제로 활동했는데 이때 인기가요 무대에서 뮤티즌송을 수상했었고 스테파니가 앵콜 때 '다나 언니 빨리 나아!'라고 외쳤다. 이후 다나가 복귀하자 스테파니 덕에 빨리 나을 수 있었다고 얘기하며 훈훈함을 자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정규 1집 활동 중에 '한번 더, OK?'와 수록곡 'Tonight in On Me'의 가사 일부가 문제가 되어 19금 미만 청취 금지 처분을 받고 결국 1집 음반은 19세 이상만 살 수 있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음반 판매에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 그렇게 타이틀 곡 활동을 정리하고 후속곡으로 '女友(그녀들의 수다)'가 결정되어 활동했지만 겨우 2~3주간의 짧은 활동으로 끝나 아쉬움을 자아냈다. 그래도 당시 팬들은 천상지희가 인기 가수로 성장했다는거 만으로도 한시름 놓았던 상황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겼다. 정규 활동의 후반부가 흐지부지 되어 아쉽게 된 상태에서 천상지희는 다시 일본으로 넘어가면서 다시 팬덤은 오열했다.


후속곡, 여우(그녀들의 수다)

그래도 이 '한번 더, OK?'는 음악적으로도 대중적으로도 천상지희가 가장 빛을 보게 된 시절이었으며, 샤플리와 멤버들에게도 잊지 못할 2007년을 선사한 기억에 남는 활동이었다. 간혹 천상지희가 망했다, 혹은 실패했다라는 식으로 회자가 되기도 하지만 사실 '한번 더, OK?'는 당시 기준으로도 상당히 히트한 싱글이었으며 그해 상반기 여성 그룹 중에서는 천상지희가 단연 여러 방면에서 가장 활약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이렇게 한국에서 슬슬 빛을 보던 시점에 SM은 다시 일본 활동을 계획하였고 이제서야 팬덤 형성이 이루어지고, 대중들에게 슬슬 각인되어 가던 시점에 천상지희는 울며 겨자먹듯이 다시 일본에 끌려가며 무기한 활동 중단에 이르게 된다.

3.4. 비운의 후속곡 'Dancer In The Rain'

일본으로 넘어간 사이, 팬들 사이에서 강력한 후속곡으로 지지받았던 'Dancer in The Rain'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었다. 카더라에 따르자면, 원래 리패키지 형태로 1집이 재발매 될 예정에 있었으나 일본활동 때문에 흐지부지됐으며 여우 활동이 끝날 때쯤 해서 이 곡의 뮤직비디오를 찍고 잠깐 쉬고 다시 나올 예정이였는데 일본활동이랑 겹치는 바람에 리패키지 발매가 취소되었다고. 공식적으로 나온 정보는 아니지만, 이 주장이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것이 이 노래는 멤버들도 상당히 애정이 강했던 곡이며, '한번 더, OK?'가 19금 판정을 받았기에 아마 이 부분도 수정하여 리패키지로 나올 예정이던 가능성도 상당하다.

그러나 일본 활동과 알려지지 않은 사정으로 이 곡은 번듯한 뮤직비디오만 공개된 뒤, 8월 경 뜬금없이 Mnet M! Countdown에 출연해 이 곡을 부르고 돌아갔는데... 레전드를 탄생시켰다.
아직까지도 걸그룹 레전드 라이브로 통하는 전설의 Dancer in the Rain 무대

걸그룹 역사상 최고난도의 곡을[19] 안무와 동시에 완벽하게 라이브로 소화해낸 것. 거기다 이 시절 피로 누적으로 멤버들의 목상태가 최상이 아니었던 것을 감안하면 더더욱 대단한 무대였다. 이 무대가 끝나자마자 반응은 역시나 폭발적이었고 팬들은 두번째 후속곡으로 활동해달라고 외쳐댔으나 그런거 없이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다.[20]

하지만 이번엔 그 전과는 상황이 좀 달라졌으며 드디어 일본에서도 반응이 오기 시작한 것이다.

3.5. 일본 싱글 5집 'Piranha'

일본에서도 약 1년만에 발표된 싱글 'Piranha'가 오리콘 주간 차트 50위를 기록하며 바로 직전 싱글 이었던 'juicy LOVE'의 최고 순위였던 162위에서 무려 100단계 이상이나 상승한것이었다. 물론 이러나 저러나 낮은 순위인건 변함 없지만 이 노래는 국내 음원 사이트 J-POP 차트에서도 1위를 차지했는데 국내에서 발표했어도 인기를 끌었을거라는 의견이 많다.
Piranha (a-nation 07)
일본에서도 레전드 무대를 만드는데, 이 무대 역시 Dancer in the Rain 무대와 같이 아직까지도 자주 회자되는 라이브 무대이다. 당시 현장 준비된 CD 물량이 모두 매진되는 성황을 이루기도 했다. 스테파니는 당시 일본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코다 쿠미와 닮았다며 비교 되기도 했다. 11월에는 일본에서도 첫 정규 앨범 'Graceful 4'를 발매한다. 타이틀 곡은 한국 1집과 동일하게 '한번 더, OK?'가 일본어로 번안되었다. [21]

일본에서 활발히 활동을 이어가던 중 2007년 연말 시상식을 참석하기 위해 한국으로 잠시 돌아온다. 1집 활동의 히트를 인정받아 Mnet MKMF에서 댄스음악상을 수상했고 대한민국 연예예술상에서 여자그룹 가수상을 수상했다. 2007년은 팬들에게도 천상지희 멤버들에게도 뜻깊은 해였는데, 한국에서는 2년만에 정상에 올랐고 일본에서도 드디어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었던 하이라이트 시기이기도 했다.

3.6. 일본에서의 활동과 스테파니의 부상, 활동 중단

'I'll Kiss You' (天上智喜 Graceful Party Vol.1 중에서)

해를 넘어와 2008년, 천상지희는 3월 20일과 23일 2회에 걸쳐 일본에서 첫 콘서트 《天上智喜 Graceful Party Vol.1》를 개최했는데 전석 매진을 기록해 좋은 반응을 얻었고 5월에는 추가 공연까지 결정하며 이 공연 역시 매진사례를 이루었다. 한일 양국에서는 처음으로 열었던 콘서트였기 때문에 더욱 값진 공연이었다. 마지막 곡 'I'll Kiss You'를 부를 때 그동안 해온 고생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는지 멤버들이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Stand Up People

7월에는 6번째 싱글 'Stand Up People'이 발매되는데 발매 첫주 25위를 차지해 전작 'Piranha'의 피크 순위를 2배 이상 뛰어넘은 성적을 내며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일본에서도 점차 반응이 오기 시작한 것이다. 10월에는 영화 '홈리스 중학생'의 주제가인 일본의 힙합 유닛 'CLIFF EDGE'과의 콜라보 곡 'Here'을 발매하면서[22] 오리콘 데일리 차트에 12위에 오르는 쾌거를 이루었다. 피크는 11위였으며, 위클리 차트에서는 18위. 그리고 데뷔 후 처음으로 먼슬리 차트에도 등장하며 일본에서의 나름대로 첫 히트곡이 되었다.

이때 프로모션을 위해 메이저 급 음악 방송인 Hey! Hey! Hey!'나 음악 방송에도 이전과는 달리 상당히 많이 출연하면서 인지도를 높이는데 성공했고 당시 일부 매체에서는 '현재 침체된 여성그룹 시장에 주목할만한 한국에서 온 실력파 걸그룹이다'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Here (feat. CLIFF EDGE)'

'Here'의 소소한 인기를 힘입어 2009년에 일본에서의 정규 2집 'Dear...'를 발매하지만 후에 서술할 스테파니의 부상 등의 악재가 겹쳐 프로모션에 차질을 빚었고 기대보다 반응을 얻진 못했다. 그러나 일본의 한 유명 평론가가 이 앨범을 호평해 하루 판매량이 급상승 하기도 했다. 그리고 한국 걸그룹으로는 최초로 일본에서의 첫 전국 투어가 결정되었다. 당연히 멤버들과 일본 스탭 모두 감격스러운 마음에 이 공연을 위해 많은 것을 계획했고 노력을 쏟아부었다. 멤버 전원이 안무는 물론, 무대 연출까지 직접 참여하며 심혈을 기울였고 특히 스테파니는 솔로 무대를 위해 하루 11시간 씩 킬힐을 신고 연습하는 강행군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스테파니의 허리에 이상이 생겨 한순간에 일어나는 것조차 못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결국 스테파니는 활동을 중단하고 치료를 위해 부모님이 계시는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치료를 하면서 7~8개월간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 됐고 결국 스테파니는 우울증에 빠지며 가수 활동을 정상적으로 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천상지희는 일본 프로야구 개막식 참가 행사 때부터 스테파니를 제외한 3인 체제로 활동을 이어가며 전국 투어 역시 3인 체제로 개최했고 투어는 오사카를 시작으로 나고야, 도쿄, 후쿠오카 총 4개 도시에서 이루어졌는데 이 투어에서 신곡 '凍える太陽(얼어붙은 태양)'[23]을 공개하기도 했다. 노래는 여기서 들어볼 수 있다.

투어가 종료된 후 라디오 '천상지희의 치키(天上智喜☆チキ!)'를 진행하며 활동을 이어가는듯 했지만 어느 시점부터 일본에서 활동을 완전히 중단했고 '凍える太陽(얼어붙은 태양)'의 발매도 무기한 연기되어 이후 활동이 불투명 해졌다.

3.7. 활동 중단 이후, 천상지희 다나&선데이 유닛 출범, 현재 상황

한편 활동이 중단된 이후 천상지희는 해체설, 불화설을 반복하다 데뷔 이전부터 함께 해온 공식 팬카페 드리밍이 어느 날 매각되었고[24] 멤버들이 SM 엔터와의 계약이 종료됐다는 루머, 스테파니 왕따 루머 등 근거없는 소문이 커지면서[25] 소란스러운 상황이 벌어졌고 국내 팬덤은 공중분해 되었다. 팬카페 양도사건은 SM 이수만 회장 역시 크게 충격받은 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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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SM TOWN 콘서트에 린아, 다나, 선데이 3인 체제로 뜬금없이 등장하면서 팬들은 컴백에 대한 희망을 가질수 있었지만 스테파니 복귀에 대해서는 대부분 반쯤 포기 상태였다. 스테파니가 미국에서 치료를 받고난 후 한예종에 입학했고 본교에서는 학생들의 연예 활동을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가 갈수록 불투명해지던 천상지희 활동 계획은 2011년이 돼서야 비로소 구체화되면서 이들의 복귀 소식이 들려오자 컴백을 목이 빠지도록 기다려온 팬들은 크게 열광했다. 하지만 린아와 스테파니가 없는 다나와 선데이 2인 체제 컴백으로 결정되어 완전체 컴백을 기다리던 팬들은 아쉬워했다. 자세한 것은 천상지희 다나&선데이 참고. 사실상 2012년 정도까지는 SM 내에서도 다나&선데이를 통해 천상지희라는 그룹을 계속 유지시켜왔지만 이제는 해체한 그룹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SM 소속 아티스트가 총출동하는 프로젝트나 매체에서도 천상지희의 이름은 이제 찾아볼 수 없다.

다나&선데이 활동도 이제 더 이상 나올거 같지 않고 멤버들 모두 각자 개인활동을 하고 있으며 린아는 배우 장승조와 결혼하면서 더더욱 어려워졌다. 거기다 2016년 5월 스테파니가 SM 엔터테인먼트와의 계약을 끝내고 제휴사였던 마피아 레코드로 완전 이적한데 이어[26] 천상지희 공식 사이트는 폐쇄되었고 SM 메인 사이트에서 천상지희 프로필에 스테파니가 빠지면서 완전체 컴백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됐다. 2020년 5월에 선데이,[27] 6월에는 다나가 각각 SM엔터테인먼트와의 계약이 종료되었다. 2023년에는 린아도 계약이 종료되어 천상지희 멤버들은 모두 SM엔터테인먼트를 떠났다. 시간이 더 흘러 슈가맨 같은 프로그램에서 일회성으로 뭉치지 않는 이상 이들이 모인 모습을 보기는 어려울 듯 하다.

2024년 4월 18일, 선데이의 인스타 스토리에 사정 상 못 온 다나를 뺀 모든 멤버가 만난 사진이 올라왔다. # 이후 다나가 스테파니, 린아의 인스타에 댓글을 달았고,# 모든 멤버들이 모인 단톡방 사진도 올라왔다. # 거기에 멤버 전원이 서로 인스타 맞팔이 된 것까지 확인됐다. #

4. 활동 중단 원인

두 가지 설이 있는데, 2009년 한국에서 'Here'를 한국어로 번안하여 컴백할 예정이었지만 'Here'는 천상지희의 단독 명의가 아닌 '천상지희/CLIFF EDGE' 였기 때문에 CLIFF EDGE 측과의 저작권 문제로 컴백이 무산되었고 여기에 스테파니 건강 악화 등의 사유로 완전체 활동이 계속 연기되다가 자연스럽게 팀 활동이 중단됐다는 설과 동방신기 3인 SM엔터테인먼트 전속계약 해지 소송 때문에 일본 기획사였던 에이벡스 그룹과 SM 엔터테인먼트 간 갈등이 벌어져 일본 활동이 불투명해지면서 자연스럽게 활동이 중단됐다는 설이 있다.

한국 컴백 무산에 관한 이야기는 해당 싱글과, 곡이 수록된 일본 정규 2집 'Dear...'이 국내에서 라이센스 발매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정도 신빙성 있는 추측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인해 이후에도 완전히 팀 활동이 완전히 중단되었다고 보기엔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으며 알려지지 않은 회사 사정이 있었거나 우리가 모르는 이야기들이 있을 가능성이 더 높다. 아무리 당시 문제가 생겼더라도 나중에 다시 4인이 한국에 있을 때 앨범을 제작할 수도 있었을텐데 그것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참 뒤 진행된 스테파니의 모 인터뷰를 따르자면 허리 부상 이후 공백기를 가지는 동안 일본에서 음반이 더 이상 제작되지 않아 본인의 가수 인생은 여기서 끝났구나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고 밝혔는데 이 얘기를 보면, 일본 활동이 중단된 것이 천상지희 향후 활동에 큰 치명타를 입힌 것으로 보인다. 천상지희와 연관된 회사 내부 사정이 복잡했던 것이다.
Q. 무대가 아닌 병원에 있어야 했던 시절에 슬럼프를 겪었는지.

미국에서 허리 재활치료를 받으며 2년간 공백기를 가졌다. 콘서트 무대에 설 수 없어서 매우 속상했고 우울증도 겪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위험하고 위태로웠던 시절이다. 일본 콘서트 후 천상지희 음반은 제작되지 않았고 나는 한국에 들어올 타이밍을 놓쳤다. ‘가수로서 내 삶은 끝이구나’ 생각하며 의욕 없이 지냈다.
-2016년 스테파니 bnt 인터뷰 中

이후 소속사 측에서는 공식적으로 해체면 해체다, 어떤 사유로 인해 활동을 중단한다는 정확한 입장마저 발표하지 않았기 때문에 팬들은 그저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고 그나마 스테파니의 부상으로 인해 3인 체제로 활동하고 있다. 그 이후 유닛으로 컴백한다까지가 SM의 공식 입장이었지만 천상지희의 활동 올 스톱에 대해서는 어떤 피드백도 하지 않았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스테파니도 SM엔터테인먼트를 떠났다. 이 이후에는 더 시간이 흘러 흐지부지 되었고 멤버들의 개인 활동 시대가 열리며 더욱 더 천상지희에 대한 속사정은 애매모호하게 들을 수 밖에 없게 됐는데 멤버들이 하는 공통적인 얘기는 해체는 하지 않았다. 정도다. 그리고 재결합에 대해서도 '사람일은 모르는거다' 정도만 겨우 하는 정도.

2018년 다나가 유튜브 다날다 프로젝트를 통해 컴백하면서 그 사이에 진행한 인스타 라이브에서 부적절한 행동으로 비난을 받았는데 그 방송 도중 다나가 언급한 바로 "린아는 결혼하기 전에도 앨범내기 싫어했다" "스테파니는 잠수타서 연락처도 없다"고 밝혀 논란이 되었다. 그러나 이 발언은 진지하게 받아들이기엔 무리가 있는데 애초에 스테파니는 다나 외에 선데이, 린아와 꾸준히 교류해왔다. 린아에 관련한 언급도 전적으로 다나 측의 입장만 들은 것이기 때문에 린아와 스테파니가 재결합에 걸림돌이라고 단언하기 매우 어렵다.

린아가 앨범 활동에 동의하지 않은 것도 당시 뮤지컬 활동으로 자리 잡고 있었고 본인의 심적, 개인적 상황으로 유닛 활동을 거절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 천상지희가 09년 활동이 중단되면서 멤버들 모두 개인적으로 힘들어하던 시기가 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며 또 다나의 해당 인스타 방송은 대중들에게 무례하다고 지적을 받았으며 일각에서는 다나가 그룹 활동에 불성실했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다만 이 날 라이브 방송에서 다나가 사적으로 만나는 것은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언급했기에 완전히 불화로 몰아가기에도 무리였다. 이후 다나는 사과문을 올렸고 선데이 역시 SNS를 통해 모든 멤버가 아프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언급해 팬들도 크게 힘들어했다.

5.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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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지희 더 그레이스의 실력은 모든 세대 걸그룹을 통틀어서도 브라운아이드걸스스피카, 마마무 등과 함께 최정상 중의 최정상으로 꼽힌다. 특히 격한 춤을 추면서도 전혀 흔들림이 없이 음원 그대로 완벽하게 라이브를 해내는 것이 천상지희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물론 단점도 있다. 네 명 다 모두 실력과 더불어 개성도 강했기 때문에 그룹으로서 조화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듣기 부담스럽다.

가창력의 문제는 냉정하게 말해서 튀는 주연은 많은데 조연은 없다는 데 있다.[28] 흉성 벨팅을 활용한 선 굵은 가창력을 가지고 있던 그룹이지만, 소몰이창법에 가까울 정도로 과도하게 굵은 목소리로 긁고 꺾어대니 2005년 당시에도 '부담스럽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특히 이러한 이야기는 린아나 스테파니에게서 많이 나왔다. 린아는 원래 R&B 듀오인 이삭 앤 지연의 멤버였기에 그렇다 치더라도 스테파니는 그렇지 않았다. 그나마 다나나 선데이는 목소리가 청량한 편이었지만, 잘 부각되지는 않았다. 천상지희의 노래 대부분이 톤이 낮고 분위기가 무거운 R&B 기반 음악이어서 톤이 높은 선데이를 음악적으로 부각시키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천상지희하면 떠오르는 Dancer In The Rain이나 한번 더, OK? 를 생각해보면 린아나 스테파니가 분위기를 주도함을 알 수 있다.

제대로 된 프로듀서라면 선데이를 강한 보컬을 지닌 다른 멤버들의 톤을 조율하는 완충재로서 배치했어야 하는데[29][30] 이게 전혀 이뤄지질 않아서 생긴 문제. 창법은 대형 뮤지컬을 연상시킬 정도로 처음부터 끝까지 강-강-강-강인데 정작 노래는 무난한 팝 댄스곡이나 발라드인지라 차라리 소울 음악을 시도했다면 좋았을 거라는 평이었다. 한편 무작정 '노래를 잘 하는 사람들'만 모아놓아서 비슷비슷한 음색의 보컬들이 충돌하며 오히려 서로의 개성을 깎아먹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31][32] 한마디로 목소리가 센데 비슷한 음색을 갖기까지 한 멤버들이 동시에 질러대니 청자 입장에서는 기승전결없이 '전.전.전.전'만 느껴지는 것이었다.

어쨌든 개개인의 가창력으로는 어디 부족함 없는 보컬 능력치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걸그룹이 가뭄이었던 2000년대 중반에 등장해 시기적인 운도 따라주지 못했고, 활동 기간도 턱없이 적어 그마저도 회사에선 삽질만 했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대박을 이뤄내지 못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대부분의 음악 팬들에게 천상지희는 실력은 충분하다 못해 넘쳤지만, 잘 안된 안타까운 그룹이라고 회자된다.

또한 멤버 개개인의 천상지희 이전 활동 경력은 길었지만, 이 네 명이서 데뷔를 준비하고 앨범을 준비한 기간은 매우 짧았기에 SM 측의 프로듀싱도 다른 팀들과 달리 천상지희에게만 갈팡질팡 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그나마 정규 1집 때 팀 컨셉이 정돈되고 팀웍도 좋아졌을 시점에 무리하게 일본으로 넘어간것이 이 팀의 운명을 안타깝게 바꿔놓았다. SM이 이 그룹의 실력만 믿고 다른 그룹들처럼 여러 방면에서 치밀하게 계획하지 못한것이 오히려 독이 된거다.

사실 천상지희는 S.E.S.소녀시대 사이에 애매하게 등장한 그룹이었던 터라, 1집으로 국내에서 인기를 얻었을 당시에 SM내에서 수년간의 정성을 들여 제작한 소녀시대를 푸쉬하기 위해 일본으로 돌려보냈다는 말이 있다. 1집 앨범 발표 초창기 인터뷰에서는 분명 활동을 5개월 정도 할거라고 얘기했지만 실제 활동은 2달 남짓이었다. 후속곡으로 활동할 예정으로 알려졌지만 단 한 번의 무대로 끝나버렸던 'Dancer in the Rain' 역시 멤버들이 굉장히 애착이 많았던 노래라 준비 기간도 길었고 안무도 자주 바뀌었다고 알려진다. 원래는 의자를 이용한 안무도 있었다고 하며 2007년 6월 경 방송된 Mnet Making of Star Watch에서 멤버들이 'Dancer in the Rain'을 벤에서 립싱크하면서 노는 부분을 보면 다나 파트에선 9월 엠카 무대에서는 없던 굉장히 격렬한 안무를 하고 있다.

하지만 어찌된 이유에선지 이들은 회사의 결정으로 한국에서 어렵게 얻은 인기를 뒤로하고 일본으로 가야했다. 비슷한 시기 SM에서는 소녀시대를 론칭시켰다. 추측하건데 이건 동방신기와 관련이 깊다. 천상지희가 활동하던 2007년 당시에는 동방신기가 국내활동이 아닌 일본 활동에 올인하던 시점이다. 동방신기의 일본 현지화 전략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자 천상지희가 2008년부터 2009년까지 일본활동만 하게 되었다. 천상지희가 일본에서 성과를 거두면 동방신기처럼 국내에 금의환향식으로 컴백하려던 것으로 보이며, 한마디로 여성판 동방신기 답게, 동방신기의 전략을 그대로 가져오려 했던 것. 그러나 2009년, 스테파니의 허리 부상과 내부 사정으로 인해 이후 자연스럽게 팀이 중단되어버렸다.

사실, 천상지희의 일본 활동은 소녀시대 일본 진출 성공에 도움이 된 건 사실이다. 보아의 일본 진출 성공에 S.E.S.의 일본 진출로 겪은 시행착오가 도움이 된 것처럼 말이다. 천상지희의 국내팬들은 그들의 활동이 실험용으로만 이용됐다고 보는 경우도 많다. 한국에서 좀처럼 활동을 더 적극적으로 푸쉬하지 않은 것도 어쩌면 활동을 시작한지 1~2년쯤 되었을 때부터 SM에서는 천상지희를 크게 키우기보다는 천상지희를 통해 해외 시장에 대한 정보를 더 얻고자 했다는 분석도 있다. 해외 활동을 위해 기획됐다는 팀이라는 그럴싸한 언플만 내놓고 실정은 "한국에서 좀 인기 얻으려고 하면 다시 일본가서 개고생" 이런식이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 신빙성있게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소녀시대의 경우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고 프로듀싱 했던 것은 사실이나 그 과정을 보면 한류 열풍 이후 유니버설 뮤직 재팬 측에서 먼저 오퍼를 받고 계약을 한 것일뿐, 처음부터 일본 진출만을 생각하고 만든 그룹은 아니다. 오히려 천상지희나 동방신기는 당초 계획과 달리 중국 진출이 아닌 일본 진출로 방향이 틀어진 걸 보면 딱히 이후 그룹을 염두에 뒀다기보다는 그냥 SM이 실험삼아 보냈다고 보는게 더 맞다.

어쨌든 SM 아티스트로는 거의 유일하게 데뷔 음반 한 장만 내놓고 바로 일본 현지화 데뷔를 이루었다는 점, SM 아티스트 중 유일하게 팀 이름을 한번 개명했던 점, 회사 내에 유일하게 따로 활동하던 가수들이 한데 모여 프로젝트 그룹을 만든 점, 그 외에도 한국에서 반응이 좀 온다싶으면 바로 일본으로 돌려버려 갖은 고생은 다 시킨걸 보면 정말 천상지희를 통해 최초의 시도, 이런 저런 실험(도전)을 한 건 팩트이며, 이후 등장한 소녀시대의 일본 진출과 그룹 운영에 대해 상당한 정보를 가져다 준 상황만 됐다. '이들을 믿고 열광하는 팬들에게는 빅엿을 날린 것과 다름 없던 행보였다.

천상지희는 애초에 아시아 전역에서 사랑받기 위해 만들어진 그룹으로 과거 S.E.S.가 멤버 별로 담당하는 국가(언어)가 있었듯이 천상지희 역시 그런식이었고 국내에서 성공하고 차례대로 일본과 중국에서도 사랑받은 다음 최종적으로 팝 시장에도 진출하는것이 목표였던 걸로 보인다. 2007년 당시 인터뷰에서도 미국시장 성공 가능성 긍정적으로 본다며 미국 진출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9년 스테파니가 활동을 중단하고 일본 측 기획사와의 문제 등 갖가지 이유로 인해 활동재개에 대해 의견이 분분할 때, 2년 전 후발주자로 등장해 급속도로 성장한 같은 회사의 소녀시대가 해외 진출에 더 밝은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던건지 SM은 그대로 천상지희를 방치시킨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운도 안따라줬고 고생만 다 했다.

차라리 데뷔 시기가 2~3년 정도 빨랐거나 SM이 조금만 더 신경을 쓰며 몇 가지 전략을 바꾸고, 활동 후반부에 몇가지 내외적인 문제만 없었더라면 더 성장했을 가능성이 높았던 그룹이다.

천상지희의 보컬과 댄스를 동시에 소화하는 라이브 실력을 넘어선 걸그룹은 아직까지도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만큼 국내 음악 시장에서 천상지희처럼 실력을 바탕으로 파워풀함을 강조하는 그룹에 대한 수요가 거의 없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그래도 아직까지 남아 있는 팬들이 이들을 놓지 못한 가장 큰 이유도 바로 한국 가요계에서 드물었던, 진정한 실력파 걸그룹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음악이 잊혀질지언정, 라이브 영상은 아직까지도 레전드로 회자되고 있다.

6. 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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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여담

8. 샤플리인 인물

8.1. 공식 팬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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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클럽 이름은 샤플리[40]이고, 공식 풍선 색깔은 파스텔로즈였지만 2006년 그룹명을 '천상지희'에서 '천상지희 더 그레이스'로 개명하고부터는 펄핑크를 대신 사용했다.

사진과 같이 소녀시대가 공식색으로 파스텔로즈를 받게 되면서 팬들 사이에 많은 마찰이 있었다.[41] 또한 9년이나 먼저 데뷔한 NRG베이비복스 공식색이 분홍색 계열이라 천상지희 The Grace의 공식색이 밝혀졌을 때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8.2. 샤플리 커뮤니티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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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지희 갤러리
그룹 활동이 멈춘 후 공식 팬덤도 와해되었으나, 아직 천상지희를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모여 멤버들의 개인 활동 및 근황, 활동 재개에 대한 희망 등을 나누며 소통 중인 유일한 커뮤니티다.

하지만 가끔 안티로 보이는 익명 유저들이 고의적으로 즐기면서 멤버들을 조롱하고 팬들 사이에서 증거가 없는 일로 시비를 걸어서 서로 이간질을 시키거나 논란을 시키는 일도 많았고, 유언비어 퍼트리면서 비아냥거리는 제대로 된 증거사실이 없는 허위사실의 글과 댓글로 분쟁을 일으켜서 논란일 때가 많았고 문제가 많았다.### 멤버들에게도 이 갤러리의 근거도 없는 어이없는 허위사실을 퍼트리는 익명 유저들의 글로 인해 상처를 받는 일들이 많기도 했지만 현재는 갤러리가 사건없이 조용해졌다.

2024년 4월 중순, 멤버들의 만남 및 전원 인스타 맞팔이라는 희소식이 알려지면서 급격히 리젠율이 늘었다.

[1] 2006년까지는 파스텔 로즈였다. 이후 이 색은 후배 걸그룹에게 양도한다.[2] 하지만 밀크의 2집 타이틀곡으로 예정되어있던 '다시 만난 세계'는 2007년에 소녀시대의 데뷔곡이 되었다.[3] 1집 자켓 사진 이전에 처음으로 공개된 천상지희의 대표 프로필 사진이며, 2004년 12월에 촬영된 것으로 추정된다.[4] 대외적으로 국내에 알려진건 이 둘뿐이었으니 그렇게 소문이 났고 SM에서도 나름 보안을 유지하며 진행했기 때문이다.[5] 서현진의 생파에서 천상지희 멤버들이 무리를 지어 움직이는걸 봤다는 증언이 이 루머에 가세됐었는데 사실무근이긴 하다. 시기상 서현진이 밀크 해체 이후 연습생 신분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멤버로 거론됐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6] 후술된것처럼 중국인 멤버를 영입한다면서 중화권 연습생들에게 바로 데뷔할 수 있다고 딜을 걸거나...하는 모습들이 정말 이 그룹이 실험용으로 만든게 아니냐는 의견에 힘을 받쳐주기도 한다.[7] 이 곡은 발매 당시 다나 솔로곡으로 알려졌지만 잘 들어보면 오히려 다나의 목소리는 없고 나머지 셋의 목소리만 포함되어 있다.[8] 이 곡은 원래 리메이크 판권이 SM에 있었으며, 데뷔 전 비공개 쇼케이스에서 이미 린아가 불렀었는데, 지금과는 가사가 약간 다르다.[9] 중국인 멤버를 추가해 천상지희화(天上智喜華)로 데뷔할 예정이었다는 소문이 있었다. 이름은 루머지만 중국인 멤버 영입이 될뻔한 건 공식적인 사실이다.[10] 그룹의 센터격이었던 다나는 아예 데뷔초창기 다른 멤버들은 예명으로 소개할때 '다나'라고만 소개한적도 존재한다.[11] 특히 신화 팬덤 입장에서는 2003년 경에 신화가 SM엔터테인먼트에서 이적하는 과정과 2004년 이후 신화가 자신의 그룹명 사용 권한과 관련하여 SM과 매우 큰 갈등이 있었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기 때문에 SM에서 새로 데뷔하는 걸그룹 천상지희가 공식 팬클럽 신화창조의 주황색을 사용한다는 루머가 더욱 불편하게 인식되었을 것이다.[12] 심지어 선데이는 천상지희 데뷔 10일 전에 일본에서 두번째 싱글을 발매하기도 했다.[13] 'Too Good' 노래가 발라드 이면서 동시에 CCM 느낌이 강한 노래이다. 가사만 바꾸면 찬양할때 들을법한 복음성가에 가깝다.[14] 인스타그램 라이브 도중 팬의 질문을 받고 이렇게 말했다. 기억력이 안좋은 선데이가 기억할 정도였다.[15] 2005년 2월 경에 촬영한 자켓 사진이며, 전체적인 컨셉이 펑키하고 다크한 두가지 컨셉으로 촬영되었으며, 대부분의 사진이 'Boomerang' 컨셉에 기안하여 촬영된 느낌이 상당히 강하다.[16] 이 때문에 발매일이 일주일 연기됐었다.[17] 첫 데뷔는 4월 29일이지만 공식 데뷔일은 국내 데뷔일인 5월 1일로 친다.[18] 뮤직비디오에는 슈퍼주니어 출신 기범과 연습생이었던 소녀시대 윤아가 출연한다. 기범의 아역은 당시 SM 연습생이었던 핫샷티모테오다.[19] 쟁쟁한 걸그룹 초고난도 곡들 사이에서도, 브라운아이드걸스의 Sixth Sense와 함께 양대산맥을 달리는 넘사벽급 난도의 곡이다.[20] 멤버들도 이 곡에 대한 미련이 많았는지 스테파니는 이 곡을 심폐소생송에 제보하기도 했다.[21] 일본판 제목은 One More Time, OK?이고 편곡과 애드립이 부분 수정되었다. 일본어로 번안된 곡들은 대부분 새롭게 편곡되었다.[22] Staff Diary에 의하면 4월말에 녹음도 끝내고 PV촬영까지 마치고 봄에 발표될 예정이었지만 CLIFF EDGE 쪽의 기획사와의 조율이 늦어져 여러가지 플랜이 수정되면서 가을에 발표되었다.[23] 투어 종료 후 싱글로 나올 예정이었던 곡이다. 2016년 현재까지도 정식 음원은 미발표 상태. 이제 에이벡스와 천상지희와의 계약도 만료된 것으로 보여 이 노래가 공개될 가능성은 없다.[24] 2009년 5월에 팔렸다. 양도되던 당시 최종 회원수는 59,712명이였으며 당시 사이트 운영을 하던 운영자가 본인은 돈 받고 팔지 않았다고 했으나 군 입대를 앞두고 있었기에 80만 원에 팔아버렸다라는 설이 유력하다. 드리밍의 초기 운영자인 닉네임 R씨가 i-13으로 갈아타며 1차로 매각이 될 뻔 했으나 그 걸 이어받은 게 양도사건 당시 운영자였던 닉네임 C씨였기에 논란이 커졌으며 당시 멤버들의 개인팬카페까지 한꺼번에 양도시켜 논란이 많았다.[25] 당시 드리밍의 뒤를 이어 만들어진 팬카페 가이아의 운영자 닉네임 K씨가 베스티즈에 근거없는 루머 글을 올린 게 발단이 되어 사건이 커졌었다. 현재는 스테파니에게 용서를 구하고 다시 팬 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다.[26] 2019년에 소속사를 다시 더블유케이미디어로 옮겼다.[27] 한참 지난 2021년 1월 20일에야 소식이 알려졌다.[28] 특히 SBS의 유튜브 채널 중 하나인 스트로 - SBS 복고채널에 올라온 천상지희 컴백 무대 모음 영상의 공식 영상 제목에 대놓고 메보만 4명?!이라고 적혀 있을 정도이다.[29] 후배 걸그룹 중 이렇게 톤이 가벼운 멤버를 적재적소에 활용해 시너지를 낸 케이스가 바로 EXID다. 주로 LE와 솔지의 강한 보컬을 혜린과 하니가 완충해 주는 식으로 배치된다.[30] 다만 이것은 사운드가 강한 기조를 타던 SM의 당시 성향 때문이기도 하다.[31] 일 년 뒤에 데뷔한 브라운아이드걸스의 경우 정통파 파워 보컬 제아를 중심으로 미성의 나르샤와 속삭이는 톤의 가인이 균형을 맞추며 서로의 음색에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성공하기도 했다.[32] 당장 과거 SM의 남자 보컬 그룹인 플라이 투 더 스카이만 봐도 브라이언은 깨끗한 미성, 환희는 굵고 화려한 목소리로 노래 전체의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맡는 등 서로 스타일은 매우 다르지만 팀으로서의 조화는 오히려 서로의 단점이 보완돼서 최고의 선택이었다.[33] 샤이니는 처음엔 전원이 종교가 있는 것으로 잘못 알려졌으나 민호와 종현 2명이 무종교이며(민호의 아버지는 천주교도, 종현의 어머니는 개신교도이다. 무종교인 종현의 장례가 개신교식으로 치러진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소녀시대는 태연 혼자 무종교에 나머지 멤버는 전부 개신교인이다. 슈퍼주니어는 희철은 무종교, 예성, 려욱은 가톨릭, 신동은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 나머지는 개신교도다.[34] 한 컨셉을 남녀 아이돌 그룹이 공유하는 형식이다. 동방신기&천상지희는 아카펠라와 R&B, 슈퍼주니어&소녀시대는 다인조 그룹의 장점을 내세운 라이트 팝, 샤이니&f(x)는 EDM 플랫폼을 공유하고 있다. 2세대 한정. 3세대 EXO 이후의 Red VelvetNCT는 여러 그룹이 한 컨셉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한 그룹에서 여러 가지 컨셉을 하는 것으로 노선이 변경이 되었다.[35] 웃긴 건 강승윤의 소속사는 YG인데 존경하는 아티스트인 천상지희와 슈퍼주니어는 SM이다.[36] 슈퍼주니어와 천상지희의 평균 나이가 동방신기보다 많은 것은 83~85년생의 존재 여부와 관계가 있다. 슈퍼주니어의 연장자 축인 이특, 희철은 83년생, 예성 84년생, 신동은 85년생이다. 그리고 천상지희에도 린아가 84년생이다. 천상지희의 막내는 87년생 스테파니. 반면 동방신기는 데뷔 기준으로도 현재 2인조로도 86년생이 최연장자다. 더욱이 동방신기는 88년생 최강창민의 존재로 인해 평균나이는 더 내려갈 수 밖에 없다. 물론 슈퍼주니어에도 88년생인 규현이 있지만 그 이상으로 83~85년생의 인원수가 많다.[37] 다나랑 생일이 1일 차이라서 인스타그램에서 같이 생일파티를 하기도 했다.[38] 둘 다 최애는 린아이며, 린아가 하는 뮤지컬을 챙겨본다고 한다.[39] 특히 조이는 한 라디오에서 "천상지희 선배님의 Dancer in the rain을 레드벨벳이 커버하고 싶다" 라고 밝히기도 했다.[40] '천년에 한번씩 뜨는 별'이라는 의미를 지녔다.[41] 논란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게 당시 NRG 팬클럽인 천재일우와 협의 하에 분홍색 계열을 같이 쓰기로 한 지 얼마 안 된 상태였고, SM에서 아무런 언질도 없이 갑자기 공식색을 발표해버렸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 얽힌 뒷얘기가 많은데 천상지희의 경우 팬클럽이 당시 여러 갈래로 쪼개진 상태였다. 임원진들과 공방을 다니는 팬들은 야간비행이라는 공방 팬카페가 따로 있었고, 가장 큰 팬카페이던 드리밍은 대부분이 집에서 팬질을 하는 팬들이었고, 실질적으로 공방이나 이벤트에 참여하는 갤러들은 천상지희 갤러리를 이용했으며, 다나의 천상지희 결성 전의 팬카페이던 다나팅은 천상지희 결성을 반대하며 독자노선을 타고 있었다. 파스텔로즈가 소녀시대에게 돌아가기 1년 전, 파스텔로즈에서 펄핑크로 바뀔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팬 들은 기사를 통해 접했으며, 당시에도 파스텔로즈를 뭔데 니네 마음대로 바꾸냐며 팬들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으나, SM은 들은 체도 안 하다가 펄핑크는 더 그레이스로 해외활동용으로 쓰고, 파스텔로즈는 국내활동용으로 쓴다는 이야기로 어물쩡 넘어가는 수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