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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14 21:21:19

수급

쪼그라든 머리에서 넘어옴
1. 需給2. 首級
2.1. 작게 만든 수급

1. 需給

수요와 공급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지만, 실물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은 매커니즘이 다르기 때문에 따로 보는 경우가 많고, 그보다는 보통 금융시장에서 개인, 기관, 외국인투자자들의 매매동향을 수급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의 분석방법은 주로 개인의 움직임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기관이나 외국인은 가끔만 잘못된 시장대응을 보이지만, 개인 투자자들은 대부분의 시간동안 바보처럼 움직이기 때문이다.

대형우량주잡주로 개인의 움직임을 분석해볼 수 있다. 우선 대형 우량주는 개인이 많이 보유하고 있을 때가 바닥이다. 반대로 개인의 보유수량이 적을 때가 고점이다. 즉 주가를 기관이 끌어올린다는 이야기다.[1] 잡주는 대형우량주와는 정반대다. 개인이 많이 보유하고 있을 때가 고점이다. 당연히 개인의 보유량이 적을 때가 바닥이다. 즉 개인이 매수해서 주가를 끌어올린다는 의미이다.

수급은 가끔 바뀔 때가 있다. 개인의 보유량과 주가의 관계가 역전되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는 해당 종목에 큰손이 빠졌거나 새로 들어왔을 경우에 발생한다. 이런 때는 분석방법을 반대로 적용해야 한다.

또한 3대 투자주체가 서로 물량을 수월하게 주고 받으면 수급이 좋다고 표현하는데, 기관 투자자가 거의 참여하지 않는 코스닥은 수급이 나쁘다고 평가받고 있다.

주식시장에는 '수급은 모든 재료에 우선한다'라는 격언이 있는데, 이것을 극단적으로 보여준 예가 코데즈컴바인 사건, 상장폐지 코앞까지 간 회사지만 대규모의 감자와 유상증자로 전체 주식의 99.4%가 보호예수되 있었던 탓에 시장에 있던 유통물량은 0.6%, 25만주밖에 되지 않았다. 주식의 수급이 지나치게 제한된 탓에 누군가가 조작하지 않았음에도 시가총액은 1000억에서 7조로 70배 상승했고, 보호예수가 풀리는 순간 원상태로 돌아갔다.

2. 首級

전쟁에서 베어 얻은 적군의 머리.

그냥 '머리 수(首)' 자만 단독으로 쓰지 않는 이유는 전국시대 진나라(秦)의 재상인 법가 사상가 상앙이 추진한 변법의 내용에서 찾을 수 있다. 상앙이 개혁에 착수하면서 전쟁에 국민들을 동원하기 용이하게 할 목적으로 정한 제도인 '군공수작제(軍功授爵制)'에 따르면 적의 머리를 베는 병사들에게 머리 한 개당 작위를 한 등급씩 올려주도록 했기에 진나라 이후 전투에서 벤 적의 머리의 개수는 받는 작위의 등급과 같은 뜻이 되었으며 결국 두 글자가 동시에 붙으면서 단어로 굳어졌다고 한다. 당연히 진나라 병사들은 지위가 올라간데다가 좋은 토지를 받을수 있는 등 경제적인 혜택도 뒤따랐기 때문에 포로라도 목을 하나라도 더 쳐내기에 혈안이 되었고, 진나라 군을 상대로 싸우는 적은 항복하는 일은 없었다.

상앙이 쓴 상군서'에는 군공과 수급에 대한 내용이 꽤 자세하게 서술되었는데,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링크 내용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그야말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고 할 수 있는데, 수급을 가져오면 고대시대 기준으로 엄청난 보상이 따라왔다.

고대 전쟁에서 획득한 수급은 그 공훈을 측정하는 수단으로 특히 고위 장수의 목에는 상당한 현상금이 걸었다.[2] 중요 장수뿐 아니라 적 병사들의 머리 역시 중요 아이템 취급이어서 많이 모을수록 높은 공훈으로 인정받았다. 전쟁에서 적을 많이 죽였으니 그만큼 머리를 많이 모았다는 직관적인인 논리이다.[3] 그래서 전란때 일반 백성들이나 천민들에게 이 수급 많이 따는 것이 좋은 출세기회였다. 예를 들면 임진왜란 때에도 천민들에게 왜군 머리 하나 따오면 바로 평민으로 신분상승이 가능했고, 두 개 따오면 명예직이기는 하지만 벼슬을 내어주는 식이었다.

하지만 이순신수급 한두 개 챙길 시간에 적 한 놈이라도 더 쳐죽이라고 제장에게 권고했고,[4] 승전 후 조정에 올리는 장계에도 수하 장수가 격침시킨 배의 숫자를 강조해 그 공을 내세웠다.[5] 하지만 조정에서는 잘라 모은 머리의 개수를 더 중히 여겨 수급을 많이 모은 장수를 더 치하했다.[6]

이 수급량 제일주의 때문에 남이 다 죽여놓은 적병의 머리를 거두어 "이거 다 제가 죽인 거임!"이라고 주장하는 사례도 있었고, 아군이 얻은 수급을 빼앗는 일도 있었다. 심지어 아군의 머리(적군에게 전사했거나, 아군을 습격했거나)를 적병의 머리 모양으로 꾸며 조정에 바치는 일도 있었다. 조정에서 '바쳐진 머리 숫자로 치면 왜군이 다 없어져야 하는데 왜 아직도 우글거리지?' 하는 의문이 나올 정도로 심각했던 모양. 막장가도를 달리는 경우는 민간인을 덮쳐 그 머리를 취하는 것. 물론 꼭 적국의 민간인을 죽여야 할 필요는 없었으니, 왜란 당시 명군이 조선 민간인을 학살하고 수급을 왜군처럼 꾸며 보고를 한 일이 너무 많았던 나머지 머리에 찍힌 망건 자국을 일일이 검사했다는 기록까지 있을 정도. 때문에 귀나 코만 베어가는 것으로 대체하였다. 자세한 건 귀무덤 참고.

참고로 이 수급 때문에 조선에서는 진짜 최악의 사태가 터지기도 했다. 정묘호란 이후 모문룡이 변발당한 조선 백성들을 닥치는 대로 죽여 목을 잘라 수급이랍시고 명나라 조정에 바쳤는데 그 수가 1만에 달했다고 한다.

일본 센고쿠 시대에는 무공에 따라 논공행상을 하기 위해 수급을 중요시 여겼다. 특히 가장 먼저 적의 수급을 벤 자는 '이치반쿠비'라 부르며 높은 평가를 받았다. 전투 후 모아진 수급을 처리하는 행위를 하는데 이를 '구비짓겐'이라 불렀다.[7] 병사들의 전공을 확인한다는 목적외에도 전사자들의 넋을 달래준다는 의미도 있었기에 가까운 사찰에서 정해진 절차에 따라 실시되었다. 이 수급들은 구비짓겐 전 깨끗이 씻고, 화장을 했다. 이 과정이 끝나면 누구의 머리인지, 누가 죽였는지를 표시하는 표찰을 달았다. 수급의 대우는 신분에 따라 달라졌다.[8][9] 사람의 머리를 다루는 일이다 보니 원한이 담긴 머리가 공격할 수 있다는 미신이 퍼져 있었다. 이때문에 구비짓겐 시에는 참석자 전원이 완전무장을 했다.[10] 구비짓겐이 끝나면 본보기로 효수하기도 했지만 아시가루 등의 머리 대부분은 '구비오케'에 담겨져 상대측에게 돌려보내거나 머리 무덤을 만들어 공양했다. 여담으로 센고쿠 시대에는 수급의 표정을 보고 길흉을 점치는 풍습이 존재했다.

타이완섬에 사는 대만 원주민의 경우 일부 부족을 제외한 모든 부족에게 적대적인 부족을 사냥해 목을 베어 전리품으로 가지는 '출초(出草)'라고 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타이완섬을 차지한 일본 제국 당국이 출초 풍습을 엄금한 이후 사라졌다.

2.1. 작게 만든 수급

아마조니아 북부에 거주하는 몇 부족은 수급을 특수처리해 작게 만들어 전유물로 보관하는 전통이 있었으며 이렇게 작게 만든 머리를 '압축 머리(Shrunken head)'라고 한다. 대개 현 에콰도르페루의 히바로(Jivaro) 민족 사람들이 만드는 것으로 유명했다. 이들의 언어로는 압축 머리를 싼싸(tsantsa)라고 부른다.[11]

만드는 방법은 상당히 번거로운데, 일반적으로 머리는 두개골 때문에 일정 용량 이하로 줄어들지 않으니 목과 뒤통수 쪽을 갈라 두개골을 적출하고, 피하지방을 긁어내고, 눈에는 살구씨나 복숭아씨 같은 큰 씨앗을 넣고 입술과 눈을 봉합해 영혼이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막는다[12] 입술은 주로 완전히 꿰미기보다 큰 고리 세 개를 꿰었고, 거기에 장식으로 수염으로 만든 술을 달기도 했다. 눈은 대부분 완전히 꿰메었다. 그리고 두개골 대신 형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작은 나무공을 넣고 탄닌 성분이 들어있는 허브를 넣은 물에 넣고 삶는다. 다 삶은 머리는 뜨거운 자갈이나 모래 위에 두고 오랫동안 말리는데, 이때 수시로 확인하면서 얼굴이 비틀어지지 않는지 보고 뜨거운 돌로 얼굴 피부를 문질러 다림질을 해줘야 한다. 다 말린 머리에 잿가루를 벅벅 바르면 완성. 완성된 머리의 크기는 손바닥이나 주먹 하나 정도로 줄어든다. 구글에 검색하면 볼 수 있지만 혐짤 주의.

이렇게 만든 압축 머리의 영혼이 그 주인을 섬긴다고 여겨졌다. 특히 마지막 잿가루를 바르는 공정은 영혼이 도망가지 못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믿었다고 한다. 적을 죽인 걸로 모자라 죽어서도 자기를 섬기게 만든 것(…). 그 외에 여러 종교적 의식에도 사용되었다. 압축 머리는 원칙적으로 부족 간 전쟁 후 패배자들의 머리로 만들었으며, 죽은 사람이 전사가 아닌 다른 직책인 경우에는 만들지 않았다. 대략 1년 가량 사용하면 영혼의 효력이 다한다고 믿었고, 이후에는 버렸다.

정확히는 이들은 인간의 영혼이 세 가지로 나뉜다고 믿었는데, 인간이 죽어도 불멸하는 영혼인 와카니(wakani), 인간을 보호하는 영적인 힘인 아루탐(Arutam), 마지막으로 아루탐을 지닌 인간이 죽음을 당하면 복수를 하는 원혼인 무이삭(muisak)이 그것이다. 그 중에서 이 압축 머리는 죽인 상대의 무이삭을 굴복시키기 위한 것, 즉 적의 힘을 얻음과 동시에 죽인 상대로부터의 저주를 피하기 위한 부적인 것이다.

히바로 족 같은 여러 원주민들이 만든 압축 머리는 19세기, 특히 빅토리아 시대에 들어와서 유럽인들이 이국적이고 기이한 기념품들에 열광하게 되면서 상당한 고가로 팔렸다. 대개는 보통 돈으로 팔았으나 돈맛을 본 원주민들이 헤드헌팅(…)[13]에 더 공격적으로 나서면서 부족 간 전쟁이 아니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아무나 죽이는 묻지마 살인을 통해 양산했으며, 나중에는 아예 머리 하나를 총 한자루와 교환하는 식으로 거래했다. 본래 남미 부족에서 전사는 성인 남성만 될 수 있기 때문에 진짜 압축 머리의 경우 예외 없이 전부 성인 남성의 것이어야 하지만, 묻지마 살인에 나서면서 여자나 어린아이도 죽여 압축 머리로 만드는 경우가 잦았으며, 부족 근처의 외국인들이나 심지어는 이미 죽은 시체까지 희생되었다. 원주민 뿐만 아니라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나 유럽인들도 어찌저찌 어설프게 압축 머리를 만들어 파는 경우도 잦았는데, 이 과정에서도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간 것은 당연하다. 결국 유럽인들의 악취미와 인디오들의 물욕 때문에 한때 남미 전체에서 유일하게 스페인 침략자들의 공격을 끝까지 버텨낼 정도로 용맹하고 수가 많았던 히바로 민족은 스스로 파멸해 한때는 민족의 절멸 직전의 위기까지 몰렸으며, 현재 살아남은 후손들도 압축 머리 건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선을 그어 조상의 악행을 비판한다.

사람을 아무리 죽여도 폭발적인 수요를 감당하기 힘드니 동물(주로 원숭이나 나무늘보)로 만든 가짜를 양산하는 일까지 벌어졌고, 결국 1950년대에 에콰도르를 비롯한 남미 국가들에서 압축 머리 자체의 거래를 불법으로 규정함에 따라 압축 머리 시장은 갑작스러운 부흥만큼이나 갑작스럽게 쇠퇴해 몰락했다. 그 후 1999년 국립 아메리카 인디언 박물관은 소장하고 있던 압축 머리를 모조리 에콰도르에 반환했으며, 현재 "진짜" 압축 머리는 보통 박물관에서도 전시하지 않고 대개는 수장고에 소장만 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오리지널이 아닌, 묻지마 살인을 통해 만든 압축 머리의 경우 살인 피해자의 수급이니 중범죄의 증거물에 해당하며 오리지널도 인체의 일부, 그것도 머리를 이용한 공예품이니 전시하는 것만으로도 인간 존엄을 심각하게 훼손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실제로도 이런 항의로 전시를 철회한 곳들이 많다. 다만 염소 등의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가짜는 여전히 기념품점 등에서 합법적으로 팔리고 있다. 현재는 이것도 기술이 좋아져 웬만한 눈썰미가 없으면 얼핏 본 것만으로는 실제 사람 머리와 구분이 힘들 정도이다. 또한 진짜라고 알려진 압축 머리들도 80% 가량은 가짜라는 연구결과가 있으며, 대부분이 여성이나 동물로 만들어졌거나 머리 외의 몸통 부분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의 유튜브 채널에서는 실제 슈와르(Shuar) 부족[14]의 장로에게 배운 방법으로 돼지 머리를 쪼그라들게 하는 영상이 올라와 있다. 실제 인간의 수급의 모습과 돼지 머리를 해체하는 장면이 나오니 열람 주의. 사실 스미스소니언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의 일부로, 압축 머리의 역사와 19 - 20세기의 광기, 제작법, 압축 머리를 디지털 복원해 원래 사람의 얼굴로 되돌리는 과정 등을 소개하고 있다. 영상 마지막은 현 슈와르 부족 장로의 인터뷰로 마무리한다.


[1] 의외로 외국인은 주가를 끌어올리는데에 인색하다.[2] 대표적인 예로 해하 전투 당시 항우의 머리에는 천금과 함께 만호후의 자리가 걸려 있었다. 항우가 자살하자 그 머리를 가지려고 다투던 한군은 수십 명이 죽었고, 항우의 시신은 오체가 다 잘려나가는 참변을 당한다. 머리와 팔다리 하나씩을 가져온 장수 다섯 명에게 유방은 만호후의 자리를 다섯 등분해서 2천호씩 나눠줬다.[3] 사실 이는 어쩔 수 없다. 귀무덤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목이 너무 크다는 이유로 귀로, 다시 귀를 베면 숫자가 2배로 뻥튀기된다는 이유로 코로 바꾸었더니 이후에는 죽이지도 않고 코만 베어서 보고했다. 기준이 없으면 허위보고가 판을 치고 기준을 잘못 정해도 허위보고가 넘친다. 무엇보다 높으신 분이 그 대상이라면 코나 귀로는 속이려는 행위가 벌어질 테니 반드시 머리를 확인해야 한다.[4] 전투에서 수급 확보에나 열을 올리면 정작 전투에 집중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5] 특히 부하들이 세운 공은 빠짐없이 기록해서 올렸다. 그 명량해전조차 안위의 공으로 돌려서 안위가 특진하게 했다. (전개를 보면 안위도 공이 크긴 하지만 제일 큰 공을 세운 사람은 이순신 자신이었다. 이유는 명량해전 참조)[6] 물론 아주 이해가 안되는 행동은 아니다. 단순히 보면 '멀리서 화포 쏴서 배 격침시키기'와 '가까이서 적 목따오기' 중에서 후자가 더 어려우리라 생각함은 당연한 일. 하지만 현실은 그 화포만으로 이미 치명타를 날렸고, 수급을 챙긴 자들은 적들과 싸우지 않고 대포 맞고 침몰한 적들 목만 잘랐을 뿐이었다. 게다가 수급을 챙기느라 전투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었으니 결과적으론 방해가 되었다.[7] 대장급은 '구비다이멘'라 따로 표현했다. 중신급 역시 겐치로 따로 불렀다.[8] 대장의 머리는약 15cm 뽕나무 표찰과 가장 큰 노송나무 받침대가, 장수의 머리는 약 12cm의 동백 나무나 삼백 나무 표찰을 사용했으며, 대장용 받침대보다 한 사이즈 작았다. 아시가루는 약 9cm의 동백 나무나 삼나무 표찰을 사용하고 한꺼번에 줄지어 놓는 것이 통례였다.[9] 공물도 준비되었는데 이것 역시 신분에 따라 달라졌다. 특히 대장의 머리는 다시마나 술 등을 공양해 경의를 표했다.[10] 미신외에도 전사자들의 유해를 되찾기에 공격할 수 있기때문이기도 했다.[11] 마이트 앤 매직 6의 부틀렉 베이 라는 곳에는 싼싸의 사원 이라는 던전이 있는데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게 맞다. 여담으로 던전과 필드에 흑인의 모습을 한 야만 원시 식인종(…)들이 드글드글하며 인골과 꼬챙이에 꿰어 죽은 시체와 머리 등을 발견할 수 있다. 90년대 초반까지도 이런 인종/문화차별적 표현에 둔감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12]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콧구멍과 귓구멍, 그리고 잘린 목의 절단면은 그대로 뚫려 있는 상태라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히바로 족의 전승에 의하면 영혼이 출입하는 곳은 눈구멍과 입 뿐이기 때문에 나머지는 그대로 놔둬도 무방하다고 여겼다.[13] 원래 헤드헌팅이란 말이 머리 베는 원시부족들에서 따온 말이다.[14] 히바로 민족 사람들로 이루어진 부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