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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1 17:25:34

지그문트 바우만

<colcolor=#fff><colbgcolor=#000> 지그문트 바우만
Zygmunt Bauman
파일:지그문트 바우만.jpg
본명 지그문트 바우만
Zygmunt Bauman
출생 1925년 11월 19일
폴란드 제2공화국 비엘코폴스키에주 포즈난
사망 2017년 1월 9일 (향년 91세)
영국 잉글랜드 요크셔 리즈
국적
[[폴란드|]][[틀:국기|]][[틀:국기|]] (1925~1968)

[[영국|]][[틀:국기|]][[틀:국기|]] (1971~2017)
모교 바르샤바 대학교 정치사회과학 대학 (철학 / 석사)
런던 정치경제대학교 (사회학 / 박사)
경력 바르샤바 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텔아비브 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리즈 대학교 사회학과장
학파 대륙철학 (신마르크스주의포스트마르크스주의, 포스트모더니즘)
직업 사회학자, 철학자, 정치운동가
군 복무 소련 폴란드 제1군 (소령)
1. 개요2. 생애3. 액체 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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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국, 폴란드의 사회학자.

2. 생애

1925년 폴란드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나, 폴란드 침공 당시 소련으로 탈출했다. 그 후, 소련군에 속한 폴란드 제1군의 정치장교에 입대하여 베를린 전투에 참가한 덕택에 용맹의 십자가 훈장(Krzyż Walecznych)을 받으면서 소령까지 올랐는데, 이게 당대의 폴란드 육군에서 최연소(19세)로 올라온 케이스였다. 곧이어 폴란드 망명정부의 요인들을 족치는 정보기관에서 근무[1]하면서, 바르샤바 대학교에서 사회학을 듣게 된다. 그 후 반시오니스트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시오니스트라는 이유로 군에서 불명예 제대 당하고 바르샤바 대학교에서 강사를 하다 안토니오 그람시등의 영향으로 현실사회주의에서 멀어졌다. 폴란드 내부에 분 반유대주의 선동과 68혁명의 연장선상으로 일어난 1968년 폴란드 위기로 인해 폴란드 시민권을 잃고 영국 리드 대학교에서 교수 직을 줘서 영국에 망명하게 되고, 영국에서 열심히 연구를 하게 된다.

세계적인 사회학자에 들게 된 것은 홀로코스트를 다룬, 어찌보면 홀로코스트를 간접적으로 당하고 반유대주의를 당한 유대인이지만, 유대인의 눈으로 보지 않은 '현대성과 홀로코스트'(Modernity and the Holocaust) 라는 책이다. 이 책에서 그는 홀로코스트를 한낱 나치의 일탈이 낳은 사건이 아니라, 유럽 문명의 이성과 기술합리성이 낳은 사건으로 보고 있다. 즉, 모더니즘 자체가 만들어낸 산물이라고 보고 있다. 이 책으로 그는 이탈리아 사회학회가 선정하는 아말피 상을 수상하게 되고 세계적인 학자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여튼, 현 폴란드 정부에서 폴란드 인민 공화국 시절때의 이슈들이 있지만, 문화 훈장 금장(Medal „Zasłużony Kulturze Gloria Artis”)을 수여받았다. 리드 대학교에는 당연히 연구소가 설립되었고, 덤으로 폴란드에 있는 대학으로부터도 명예 박사 학위를 받을 번 했지만, 반공산주의 + 반유대주의의 합체로 거부하게 된다.

물론, 이 책에서 홀로코스트를 모더니즘과 합리성의 산물로 보는지라, 이스라엘의 홀로코스트 관련 주장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나치 독일의 손아귀를 벗어난 유대인들의 대부분이 이스라엘 국민으로 재정착했고, 이스라엘 정부가 그들의 권익을 오랫동안 앞장서서 대변했기 때문에 바우만 박사의 주장에 대하여 반발하는 유대인 피해자들도 엄청나게 많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실제로 이스라엘 국민들 가운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우만 박사의 학설보다는 라울 힐베르크 박사와 버나드 루이스 박사와 이츠하크 아라드 박사 및 로버트 위스트리치 박사와 이스라엘 구트만 박사와 디나 포라트 박사의 견해에 진심으로 동감하는 편이다.[2]

3. 액체 근대

포스트모더니즘 후의 후기 근대성을 가리키는 말로, 기존의 고체(Solid)적인 근대성이 이제 액체(Liquid)와 같이 되어 불확실한 후기 근대성을 표현하는데, 후기 근대성을 설명하면서 지그문트 바우만이 처음 액체 현대(Liquid modernity)란 말을 써서 액체 현대라고도 한다. 즉, 예전엔 고체(Solid) 같았던 사회가 액체화 되면서 사람들이 불확실성이 가득한 사회에 빠지게 되었다는 건데, 이 액체 현대는 결속 끊기, 회피, 손쉬운 도주, 절망에 찬 추격의 시대, 즉 개인이 매우 유동적인 삶에 처하게 되는 사회라고 설명하고 있다.
[1]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선 그냥 나이도 젊은데 멋 모르고 서류 작업만 했다고 한다. 물론 이슈화된 후에 한 인터뷰에서인데,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2] 여기서 언급한 학자들의 대부분은 당사자와 친족들이 1940년대에 유대인 대학살의 현장에 있었거나 항독투쟁의 최전선에서 오랫동안 활약한 공통점이 있는데, 직접 체험한 피해자의 관점에서는 바우만의 학설에 대하여 에둘러 거부감을 표하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