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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11 01:44:27

중앙군사위원회

중군위에서 넘어옴

1. 개요

中央軍事委員會
Central Military Committee

북한, 중국 등 주로 공산국가의 당 내에 설립되어 있는 군사 지도 기관. 공산국가의 군대국군이 아니라 당군이기 때문에, 당에 이런 기구가 설치되어 있는 것이다.

직접적인 원조는 사실 소련이 아니라 중국공산당의 적인 중국국민당이다. 중국국민당은 원래 쑨원의 고향인 광동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지방세력에 불과했는데, 소련의 도움을 받아 국민혁명군당군으로 보유했고, 1920년대 이 당군을 동원해 북벌을 단행, 베이징에 있던 중화민국 북양정부를 전복하고 난징에 정부를 세우고 집권했다. 집권 후에는 정부인 중화민국 국민정부국민정부 군사위원회를 설치했다. 중일전쟁 기간에도 국민정부 주석 린썬이 아닌 군사위원회 위원장 장제스가 국민정부를 영도하여 항일전쟁을 지휘하였다. 당시 장제스의 공식적인 직함은 총통이나 주석이 아니라 "국민정부 및 국민당 군사위원회 위원장"이었다.

국민정부 및 국민당 군사위원회는 중화민국이 중화민국 헌법을 제정해 헌정으로 전환하면서 중화민국 국방부로 대체되어 폐지되었으나, 이를 중국공산당이 모방하여 당의 중앙군사위원회를 만들고, 중화인민공화국이 집권하자 이것이 아시아 지역의 공산당에 다 퍼져나간 것이다.

당이 군대를 통제하는 당-국가체제의 특성상 당중앙군사위원장은 실질적인 군 통수권자로 기능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당수가 군사위원장을 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조선로동당의 경우 당규약을 통해서 당중앙군사위원장을 총비서의 당연겸직으로 규정하였다. 예외적으로 중국의 원로통치 시기에는 국가주석과 총서기가 아니라 배후에서 권력을 장악한 원로들이 국정을 결정했기 때문에 덩샤오핑이 당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직함을 유지하면서 군을 통제했고, 천안문 사태 이후 장쩌민을 급히 옹립하는 과정에서 중앙에 기반이 없는 그가 군권을 장악하게 하기 위해서 그에게 당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자리를 물려주었다. 하지만 남순강화 과정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시기까지는 원로들이 공식 직함 없이도 여전히 정치를 좌우할 수 있었다. 장쩌민 시기 원로들이 차례로 퇴장하면서 직함에 의한 통치가 시작되었고, 장쩌민은 총서기를 물려준 후에도 당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자리를 유지하다가 2004년에야 후진타오에게 물려주었다. 이후 후진타오는 잡음없이 시진핑에게 중군위 주석을 물려주면서 총서기가 국가주석과 중군위 주석을 모두 장악하는 전통이 완전히 확립되었다.

2. 국가별 사례

2.1.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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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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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베트남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베트남공산당도 중국공산당의 제도를 많이 참고했기 때문에, 베트남 공산당에 중앙군사위원회(Quân ủy Trung ương / [ruby(軍委中央, ruby=군 위 중 앙)])를 설치해두고 운용하고 있다. 이 위원회의 비서는 당 총비서가 맡는다. 현재 비서는 또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