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존 헤이스팅스 John Hastings | |
생몰년도 | 1262년 5월 6일 ~ 1313년 2월 28일 | |
출생지 | 잉글랜드 왕국 워릭셔 앨슬리 | |
사망지 | 잉글랜드 왕국 코번트리 | |
아버지 | 헨리 드 헤이스팅스 | |
어머니 | 조안 드 캔틸루프 | |
형제 | 에드먼드, 오드리, 로라, 조안 | |
배우자 | 이자벨 드 발랑스, 이사벨라 르 디스펜서 | |
자녀 | 엘리자베스, 조안, 존, 마거릿 | |
직위 | 초대 헤이스팅스 남작, 에버게브니 영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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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 왕국의 귀족, 군인. 제1차 스코틀랜드 독립 전쟁에서 활약했다.2. 생애
1262년 5월 6일 잉글랜드 왕국 워릭셔 앨슬리에서 출생했다. 아버지 헨리 드 헤이스팅스는 제2차 남작 전쟁에서 시몽 드 몽포르 편에 섰고, 헤이스팅스 남작을 칭했지만 헨리 3세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다. 어머니 조안 드 캔틸루프는 베드퍼드셔의 제3대 이튼 브레이 남작 윌리엄 3세 드 캔틸루프의 딸이다. 형제로 에드먼드[1], 오드라[2], 로라[3], 조안[4]이 있었다.1269년 아버지가 사망한 뒤 중부 잉글랜드의 많은 영지를 물려받았고, 1273년 외삼촌이자 에버게이브니 남작 조지 드 콘텔로가 사망한 뒤 웨일스 변경에 있는 에버게이브니 영지를 물려받았다. 이후 그가 성인이 될 때까지 헨리 3세의 동생 콘월의 리처드와 리처드의 아들인 콘월의 에드먼드의 후견을 받았다. 또한 에드워드 1세는 존의 결혼을 주선할 권리를 그의 이복 형제인 초대 펨브로크 백작 기욤 드 발랑스에게 넘겼다. 1275년, 기욤은 존을 자신의 딸 이지벨과 결혼시켰고, 존은 이로써 왕실의 가까운 친척이 되었다.
1283년 성년으로 인정받았고, 1290년 처음으로 의회에 소환되었으며, 1295년부터 정기적으로 회의에 참석했고, 헤이스팅스 남작으로 공인되었다. 그 후 몇 년간 웨일스,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가스코뉴에서 왕을 수행했다. 여동생 오드라는 1285년에 웨일스의 통치자 중 한 사람인 리스 압 마레두드와 결혼했고, 존은 이들 부부에게 여러 개의 영지를 주었다. 그러나 2년 후 리스 압 마레두드가 반란을 일으켰고, 존의 가신 일부도 여기에 가담했다. 존은 에드워드 1세로부터 웨일스 내 영지로 가서 리스가 패배할 때까지 방어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1291년 글로스터 백작 길버트 드 클레어와 헤리퍼드 백작 험프리 드 보훈 간의 분쟁 해결을 맡아 길버트 드 클레어의 보증인으로 참여했다.
1291년 스코틀랜드의 왕관를 놓고 경합한 14명의 왕위 주장자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기 조모가 스코틀랜드 국왕 다비드 1세의 손자이자 헌팅던 백작인 데이비드의 셋째 딸 아이다인 것을 근거 삼아 왕위를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에이다의 두 언니의 후손인 존 발리올과 제5대 애넌데일 영주 로버트 브루스에 비해 정통성이 떨어진다는 걸 인지하고,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 왕국의 영지이므로 잉글랜드법에 따라 공동 상속인들에게 분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로버트 브루스는 분쟁이 존 발리올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걸 보고 존 헤이스팅스를 지지했지만, 왕위 계승자의 권리를 심사한 위원회는 존 헤이스팅스를 배제하기로 했다. 결국 존 발리올이 스코틀랜드 국왕이 되었다.
1296년, 에드워드 1세는 자신에게 복종하지 않는 존 발리올을 응징하고 스코틀랜드를 병합하기 위한 전쟁을 단행했다. 그 후 존은 스코틀랜드와의 전쟁에 지속적으로 동원되었으며, 1300년 더럼 주교 앤서니 베크와 함께 칼라버록 성채를 공략했다. 1301년에는 교황 보니파시오 8세에게 스코틀랜드 문제에 더 이상 간섭하지 말고 에드워드 1세의 발목을 잡지 말라고 요구하는 영주들의 요청서에 서명했다. 1302년 12월, 에드워드 1세는 존을 가스코뉴의 왕실 부관이자 총독으로 선임했다.
1306년, 로버트 1세가 스코틀랜드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존은 잉글랜드로 돌아온 뒤 다시 스콭르랜드로 향했다. 그의 임무는 스코틀랜드 서해안에 해상 봉쇄를 구축하는 것이었고, 그의 주요 기지는 아란 섬이었다 . 1307년 2월, 제임스 더글러스 와 로버트 보이드가 이끄는 반군이 아란 섬에 상륙해 원군, 무기, 보급품을 실은 영국 수송선을 탈취했다. 같은 해, 에드워드 1세는 로버트 1세의 지지자 중 한 명에게서 몰수한 토지와 멘티스 백작의 작위를 존에게 수여했다. 1308년 2월 25일, 그는 새 국왕 에드워드 2세의 대관식에 참석했다. 1309년 10월, 에드워드 2세를 따라 가스코뉴로 갔고, 다시 왕실 부관 겸 총독을 맡았다. 1310년에 다시 스코틀랜드로 가서 군사 활동을 수행했고, 1313년 2월 28일에 사망한 뒤 코번트리의 프란치스코회 교회에 안장되었다. 사후 아들 존이 헤이스팅스 남작위를 물려받았다.
3. 가족
- 이자벨 드 발랑스(? ~ 1305): 초대 펨브로크 백작 기욤 드 발랑스의 딸.
- 엘리자베스: 초대 루틴의 그레이 남작 로저 그레이의 아내.
- 조안: 윌리엄 드 헌팅필드의 아내.
- 존(1286/1287 ~ 1325): 제2대 헤이스팅스 남작.
- 이사벨라 르 디스펜서: 초대 윈체스터 백작 휴 르 디스펜서의 딸. 로저가 사망한 뒤 초대 몬테르머 남작 랄프 드 몬테르머와 재혼했다.
- 마거릿: 제2대 마틴 남작 윌리엄 마틴의 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