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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2-18 16:13:56

조지 커티스

조지 커티스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folding ▼ 둘러보기 틀 모음
대표팀
파일:노르웨이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15대
클럽
파일: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FC 로고.svg

8대
}}} ||
잉글랜드의 前 축구 감독
파일:gun__1423673192_curtis_george.webp
<colbgcolor=#eeeeee><colcolor=#000000> 이름 조지 커티스
George Curtis
본명 조지 프레드릭 커티스
George Frederick Curtis
출생 1919년 12월 3일
에식스주 웨스트썰락
사망 2004년 11월 17일 (향년 84살)
에식스주 배질던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
[[잉글랜드|]][[틀:국기|]][[틀:국기|]])
신체 173cm
직업 축구 선수 (공격수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colbgcolor=#eeeeee><colcolor=#000000> 선수 아스날 FC (1936~1947)
마게이트 FC (1936~1938 / 임대)
사우스햄튼 FC (1947~1952)
발랑시엔 FC (1952~1953)
쳄스퍼드 시티 FC (1953~1954)
감독 모훈 바간 (1945)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FC (1961~1963)
샌디에이고 토로스 (1968)
로센보르그 BK (1969~1970)
노르웨이 대표팀 (1971~1974)
로센보르그 BK (1976)

1. 개요2. 지도자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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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축구 선수 출신 前 축구 감독.

2. 지도자 경력

1961년 6월부터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FC 감독을 맡았지만, 부임 첫 시즌부터 2부 리그 최하위로 강등을 맞이했다.

이후 1969년 노르웨이로 건너가 로센보르그 BK의 감독으로 팀을 지도했다. 커티스는 당시 유행하던 수비 전술을 들고와 부임 첫 시즌부터 리그 타이틀을 거머쥐었지만, 클럽 보드진과 팬들은 수비 축구를 싫어했고 더욱 공격적인 스타일을 원한다고 그를 압박하기도 하였다.

노센보르그에서 짤리고 영국으로 돌아갔지만, 1971년에 노르웨이 축구 국가대표팀을 지휘하기 위해 다시 노르웨이로 갔다. 그러나, 그 시기 노르웨이 대표팀은 심하게 흔들렸었다. UEFA 유로 1972 예선부터 조 최하위로 광탈하더니 월드컵 예선에서는 네덜란드에게 0-9(...)이라는 굴욕적인 패배를 당했다. 심지어 룩셈부르크에게도 지는 촌극을 빚었다.

노르웨이 대표팀에서도 경질된 커티스는 1976년 노센보르그 BK 감독으로 복귀였다. 그러나 노르웨이인 아내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정신적인 충격이 상당히 컸고 노센보르그는 강등권 싸움을 하였다. 그리고 컵대회에서 3부 팀한테 무려 0-4로 패배하자 곧바로 해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