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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30 15:52:37

제101보병여단(제1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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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보병여단
第101步兵旅團
The 101st Infantry Brigade
파일:제101보병여단 부대마크.svg
진격필살 상승백마
창설일 1984년 10월 1일
해체일 2007년 12월 1일
별칭 무적부대, 임진강 결사대
소속 대한민국 육군
명령 체계 제1군단
규모 여단
역할 서부전선 임진강 철책경비
초대 여단장 예) 소장 정재경(육사 16기)[1]
해체 전 여단장 예) 중장 이범수(학군 18기)
위치 경기도 파주시 야동동

1. 개요2. 연혁 및 특징3. 편제
3.1. 직할대3.2. 제1대대 3.3. 제2대대3.4. 제3대대3.5. 제4대대3.6. 제275포병대대 둘칠오
4. 출신인물
4.1. 여단장4.2. 장교/부사관4.3. 병
5. 기타
5.1. 근무환경5.2. 부대가
6. 사건사고7. 여담

[clearfix]

1. 개요

경기도 파주시 금촌읍을 근거지로 했던 제1군단 소속 독립 보병여단. 별칭은 임진강 결사대. 1982년 창설되었으며, 2007년 해체되었다.

2. 연혁 및 특징

대한민국 육군의 제101보병여단. 무적부대 혹은 임진강 결사대라고 불린다.

2007년 겨울 국방개혁 2020의 여파로 해체되었고[2], 병력과 시설은 인근부대에서 대부분 흡수했다. 따져보면 친정복귀인 셈. [3]

국군의 여단이라고 하면, 보통 기계화 사단 예하의 기계화보병여단 혹은 군단/제2작전사령부 직할의 기갑/특공여단 등의 부대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쪽은 기보사 예하 여단도 아니고, 뭣보다 특화된 병과가 기갑도 특공도 아니면서 독립된 '보병'여단 편제인 점이 특이하다.

부대의 경례구호는 '무적'이었으며 1990년도 초반에는 '무적 견적필살' '무적 견적필승' 을 사용하기도 했다.(발음하기 힘들었음)부대 공식별명도 '육군 무적부대'. 자매품(?)으로 (구)제102보병여단, (구)제103보병여단도 존재하는데 아무튼 알보병 편제로 독립여단인 건 이 세 부대뿐이었을 듯. 재밌는 건 마이너하고 작은 부대라서 그런가, 군필자 중에서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편이다. 사실 주호민이 아니었으면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그걸 악용(?)해서 일부 전역자들은 '101특공여단 출신이다'라는 뻥카를 주위에 치기도 했다. 아주 제101공수사단 출신이라고 해버리지... 또다른 별명이 '임진강 결사대'였기 때문에 뭔가 그럴 듯한 뻥카가 만들어지기도.

본래 서부전선 끝자락 임진강 철책경비를 맡고 있던 1, 9사단에서 긴 철책선으로 인해 방어부담이 있어 이 부담을 덜어주고자 병력 일부를 차출하고(..) 신규병력을 더해 편성했다. 창설 당시(전두환 정권 시절)에는 다소 빡셌다곤 하나 창설 직후에는 당연히 군기를 잡았을 테고 또 군사정권 당시에 안 빡셌던 부대가 없을터(...) 본질적으로 경계전문 부대였기 때문에 사단급에 비해 힘든 훈련도 적고 부대 시스템 자체가 강안경계에 꽤 큰 비중을 둔 편. 아무튼 창설이래 강안경계를 담당하며 임진강을 건너오던 간첩을 두서넛 잡았는데 그때 '임진강 결사대'란 애칭을 하사받았다.

여단 섹터 자체가 워낙 작다 보니 대대급 훈련을 해도 행군 거리가 20~30km에 불과하다. 3군 지역의 부대 중에 '꿈의 25사, 환상의 17사, 지옥의 3사, 사지절단 8사, 앞으로만 가는 1사'라는 우스개소리가 있는데, 사실 그 뒤에 '너무한다 101여단'이 있다고 한다.

유명한 간첩을 잡았던 섹터는 공을 탐낸(?) 9사단에 의해 이후 9사단 29연대 관할이 되었다. 9사단과 101여단 사이에 공동 구역은 두 부대가 야간에 순찰을 하며 만나는 경우도 자주 있었다.

재미난 건 원래 띄엄띄엄 있던 1, 9사 시절의 시설에 신규시설을 더해서 생긴 부대였기 때문에 대대 울타리 안에 묶이지 못하고 여기저기서 따로 노는 독립중대들이 꽤 많았다. 그래서 그 상태(?)도 다양해서 코딱지만한 PX조차 없고 담이 무너져가는 중대가 있는가 하면 간단한 파이프 누수를 몇 달째 고치지 못해[4] 여름에도 물을 못 쓰는(!) 중대가 있는 등 흠좀무했다. 비오면 천장에서 물 새는 건 예사. 2006년 태풍에 막사 지붕 일부가 날아간 적도 있다. 1990년대에는 싸리나무로 부대주변을 담벼락으로 사용하기도 했다.(오금리) 사실상 대부분이 열악했다는 소리. 하지만 독립중대도 독립중대 나름이라 P.X는 없었지만 면회공간이 중대 앞 무적회관이어서 외박이나 외출을 나가지 않아도 면회객만 오면 무적회관에서 고기 먹고 여관방에서 잘 수도 있었다. 한여름에도 뜨거운 물로 목욕하는 경우도 있는 반면, 독립중대 중 몇 곳은 주위가 지뢰지대라 수도공사가 불가능해 급수차로 실어나르기도 하는 등 천차만별이었다.

사실 원래 소규모 병력으로 강안철책에 순환식 투입을 했기 때문에, 전체 병력이 강안 들어갔다 나오는 사이클도 사단급에 비해 더 빠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이유로 종심대대의 시설개선이 자꾸 미뤄지거나 백지화한 경우도 부지기수였던 것. 게다가 독립여단이었기 때문에 사단과 달리 편제 인원도 적었기도 했고.

또 워낙 작은 독립부대인지라 자체 신병교육대는 물론 분대장교육대도 없었다.[5] 2003년까지는 분대장교육은 조촐하게(?) 지원중대서 자체적으로 했었는데, 곧 폐지된 이후 교육생들은 제1보병사단 신병교육대에 위탁했다. 이러면 재미있게 되는 부분이 있는데 우선 분대장 교육은 제1보병사단에서, 폭파 등 특수 교육은 제9보병사단에서 받는 경우가 많았다. 덕분에 101여단가를 포함해서 제1보병사단가와 제9보병사단가를 같이 암기하게 되는 기묘한 운명의 병사가 존재했다. 1997년 당시를 기준으로 소총수를 기준으로 대부분 9사단 신병훈련소에서 훈련받고 101여단으로 왔다. 2000년대 들어서 신병은 제1군단 예하 사단 신병교육대 (1, 9, 25, 30)[6]에서 골고루 보충 되었다. 그래서 신병들 모아 두고 경례시키면 오만가지 잡구호가 다 튀어나왔다. 다만 이 당시에는 군단예하 다른 여단들의 경우에도 육군훈련소&주특기교육을 받지 않고 인근 사단 훈련소에서 신병 교육을 많이 받았다. 오랜 기간에 걸쳐서 병역 기간이 줄고(1970년대 30개월 이상에서 1990년대 26개월) 교육시설도 부족하기 때문에 신병교육기간도 줄이고 후반기 주특기 교육도 자대에서 하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포병단 본부포대에 1년차 내에서 측지병과에서 후반기 교육을 받은 측지병이 1명뿐이었다.

여단 사령부 내부에 소규모로 국방부 직속 파견 병력들이 존재하였다. 군단 511방공대대에서 파견 온 방공 병과 부사관과 병, 군단 301기무부대에서 파견 온 간부와 병이 여단 본부에 상주하였다. 그리고 철책대대에 141정보대대에서 파견 온 TOD 담당 간부와 병이 파견되어 있어서 1군단 마크를 달고 있었다. 군단 병력이 있었던 이유는 101보병여단은 1군단 예하 부대이기 때문이고 규모가 작으니 자체적으로 할 수 없는 병과의 인원은 군단에서 파견된 병력으로 운용되었기 때문이다.

3. 편제

3.1. 직할대

3.2. 제1대대

3.3. 제2대대

3.4. 제3대대

3.5. 제4대대

3.6. 제275포병대대 둘칠오

4. 출신인물

4.1. 여단장

역대 제101보병여단장
역대 이름 계급 임관 비고 기타
초대 정재경 예) 소장 육사 16기 제50보병사단[7]
00대 이태우 예) 소장 갑종 157기 제39보병사단[8]
00대 김중로 예) 준장 육사 30기 제70보병사단前 20대 국회의원(미래통합당)
00대 전종기 예) 소장 육사 32기 제5보병사단
00대 이범수 예) 중장 학군 18기[9] 제6군단

4.2. 장교/부사관

4.3.

5. 기타

위수지역이 서울까지라 외박에도 서울을 갈 수 있었다고 한다. 1997년 당시 외박이 서울까지 가능(1993년도도 가능)했으며 2006년 당시 3대대(탄현대대) 기준으로 위수지역은 일산이었다.[11] 금촌에서 밥 먹고 라페스타 정도 방문하는 게 최대의 위안거리였다. 성범죄이후 위수지역이 줄어들었고 라페스타로 점프뛰다 걸려서 영창가는 사례가 제법 있었다.(05군번)
성범죄는 101여단 병사가 아닌 다른 사단의 병사이다(05군번)

유격 훈련은 제25보병사단 감악산 비룡 유격장, 제9보병사단 북한산 백마 유격장, 제1보병사단 전진 유격장 등등 시기별로 천차만별이었다.

유격조교는 여단내 수색중대인원들이 수행했다. 1995년 이전에는 각 중대별로 먼저 유격을 보내고 조교인원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5.1. 근무환경

최전방 철책에 대한 내용인만큼 자세히는 못 쓴다. 아무튼 그저 밤낮으로 임진강 물결을 바라보며 시간과의 사투(..)를 벌여야 했다. 그나마 대부분 평지고 철책 내 수색 같은것도 없어서 오로지 경계초소에 들어가 멍때리는 것이 다였으니만큼 제25보병사단 마냥 산골짝 굽이굽이 동부전선 육상 철책에 비하면 무진장 편한 축에 들었다. 가끔 민간인이 어로 작업을 오면 철책을 열어 준다거나 하는 일은 있었다. 겨울에 강이 얼면 슈퍼맨 기지 같은 분위기의 강 복판으로 들어가서 사진 찍은 경우도 있었다. 바지선을 가진 독립된 소대가 존재 했는데, 해당 소대와 같이 있게 되는 독립 소대나 중대는 같이 철책 안쪽에서 훈련하기도 했다.[12]

뭐 겨울에 춥고 고생인거야 최전방 어디든 다 마찬가지고.. 재미난 건 강안경계지 일부는 자유로와 수m거리로 맞닿아 죽 평행을 달리는 구획도 있었기 때문에, 해당 소초원들은 밤에 길가에 댄 차가 들썩들썩하는 꼴을 보곤 야간 투시경으로 관찰하는 여흥(?)을 즐기기도 했다. 주말에는 공도 뛰는 외제차들 소리에 밤새 시달렸다. 1995년에 기록적인 폭우로 임진강 일대에 홍수가 났을 때 강을 따라 설치된 모든 소초가 잠긴 적이 있었다. 이때 병사들은 모두 자유로 위에서 근무를 섰다.

5.2. 부대가

제101 보병여단가

1절
월롱산 정기받아 한뜻으로 뭉친우리
산하를 넘고건너 적의 무리 쳐부수고
백두산 정상까지 노도처럼 돌진돌진
나라와 겨레 위해 이 한목숨 바치리라
국군의 선봉주자 임진강 결사대
피 끓는 무적부대 제101 보병여단

6. 사건사고

7. 여담



[1] 2009년 12월 별세[2] 장기적으로는 1, 3군 통합, 군단 통폐합, 사단 통폐합 등이 있었으나 1차적으로 이뤄진 작업이 바로 동원사단 및 보병여단 해체였다.[3] 여담이지만 자매품(?)인 제102보병여단은 기갑여단이 없던 8군단의 전투력 강화를 위해 기갑여단으로 개편, 수도군단 예하에 있던 (구)제103보병여단은 인근 부대인 제17보병사단으로 재편입 후 제507보병여단로 환원되었다.[4] 예산집행이 늦어졌다든가, 행정보급관이 누수 위치 찾는데 돈 들이기 싫어서 포상 외박을 미끼로 1개 분대씩 매일 작업 시켜서 주둔지 주변을 통째로 파냈다든가...[5] 제28보병사단 등 인근 신병교육대에 도착한 뒤 애초 제28보병사단이 자대인 장병들이 "너는 몇 연대 몇 대대" 하는 식으로 자대를 통지받을 때 '101R'이라는 생전처음 들어보는 부대 이름을 보고 그제야 업둥이임을 알아챈 장병들이 있었다.[6] 여기에 더해서 제6군단 예하 제28보병사단 신교대 출신들도 전입왔다. 중간에 제28보병사단이 제1군단에 편입되었던 흔적인 듯.[7] 1982[8] 1985[9] 원광대학교[10] 혼성그룹 에서 활동했던 가수[11] 그러나 당시 인근부대 장병이 출타 중 성범죄를 저지르는 바람에 곧 금촌까지로 제한 되었다.[12] 이는 1997년을 끝으로 해체된 바지소대의 후신이다. 유사시에 강으로 바지선을 띄우는 임무를 맡았으나 해체되고 일반 소대 중에서 바지선을 가진 곳이 생긴 것.[13] 야동이 야한 동영상이 아닌 마을 이름으로만 알고 있었을때는 미묘한 기분을 맛볼수 없었다.[14] 보통 군종목사는 군종장교가 보임되긴 하나 지역방위, 동원사단은 특성상 군종장교의 인원이 적어 청빙된 민간인 목사들이 군종목사 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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