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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7-22 19:14:21

제임스 해밀턴(초대 아란 백작)

성명 제임스 해밀턴
James Hamilton
출생 1475년
스코틀랜드 왕국
사망 1529년 (향년 53~54세)
스코틀랜드 왕국 웨스트 로디언 키닐 하우스
아버지 초대 해밀턴 경 제임스 해밀턴
어머니 아란 백작부인 메리 스튜어트
형제 엘리자베스, 로버트
배우자 엘리자베스 홈, 자넷 베순
자녀 헬렌, 제임스, 자넷, 제임스(사생아), 엘리자베스(사생아), 존(사생아), 마거릿(사생아), 존(사생아)
직위 초대 아란 백작

1. 개요2. 생애3. 가족

1. 개요

스코틀랜드 왕국 아란 백작. 제임스 5세 치세 초기에 스코틀랜드 최고 권력을 놓고 제6대 앵거스 백작 아치볼드 더글러스와 경쟁했다.

2. 생애

초대 해밀턴 경 제임스 해밀턴과 스코틀랜드 국왕 제임스 2세헬러의 마리아의 장녀이며 아란 백작 토머스 보이드의 미망인인 메리 스튜어트의 아들이다. 형제로 엘리자베스[1], 로버트[2]가 있었다. 1503년 사촌인 제임스 4세마거릿 튜더의 결혼 협상에 참여해 아란 백작 작위를 받았다. 제임스 4세 치세 동안 왕실 자문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1504년 헤브리디스 제도에서 일어난 게일인의 반란 진압 작전을 수행하고자 스코틀랜드 함대를 지휘했다.

1513년, 제임스 4세는 잉글랜드 침공을 결심하고, 아란 백작에게 육군이 노섬벌랜드를 침공할 때 해상에서 물자를 수송하며 지원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그는 알수 없는 이유로 아일랜드 해로 진입했고, 얼스터에 있는 캐릭퍼거스 요새를 포격한 후 프랑스로 이동했다. 이 시기 스코틀랜드 육군은 플로든 전투에서 잉글랜드군에게 참패했고, 제임스 4세는 전사했다. 그 후 새 스코틀랜드 국왕으로 17개월된 제임스 5세가 등극했을 때, 그는 제임스 5세의 가장 가까운 친척 중 한 명이었지만 섭정권을 주장하지 않았고, 1515년 제2대 올버니 공작 존 스튜어트가 섭정으로 선출되는 것을 지지했다.

1517년 올버니 공작이 프랑스에 외교 활동을 하러 떠난 뒤 1521년까지 그곳에 억류된 동안 섭정 위원회의 일원으로서 활동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친 잉글랜드파 지도자인 제6대 앵거스 백작 아치볼드 더글러스와 격렬하게 대립했다. 두 사람의 정쟁은 무장 충돌로 이어졌는데, 특히 1520년 에든버러에서 수십 명이 죽거나 다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제 본격적인 내전이 벌어지는 듯했지만, 1521년 11월 스코틀랜드로 귀환한 올버니 공작이 수습하면서 내전의 위협을 없앨 수 있었다.

1524년, 올버니 공작이 프랑스에 재차 떠난 틈을 타, 아란 백작은 마거릿 튜더를 앞세워 젱미스 5세를 스털링 성에서 에든버러 궁전으로 모셔온 뒤 섭정을 폐지하고 제임스 5세의 독립 통치를 선포했다. 이후 아란 백작은 마거릿 튜더와 연합해 나라를 다스렸지만, 잉글랜드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가 귀환한 앵거스 백작이 이에 반발하여 제3대 레녹스 백작 존 스튜어트와 동맹을 맺었다. 앵거스 백작이 무장한 많은 무리와 함께 에든버러로 진군하여 자신도 의회에 참석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자, 마거릿은 그들에게 대포를 발사해 내쫓으라고 명령했다. 이에 의회는 두 집단 간의 불화를 종식하기 위해 각 집단이 차례로 젊은 왕에게 안식처를 제공하도록 했다.

1525년 11월, 앵거스 백작은 왕을 보내주기를 거부하고 그대로 억류했다. 그 결과, 제임스 5세는 2년 6개월 동안 앵거스 백작의 포로 신세로 전락했다. 그는 상황이 여의치 않게 되자 앵거스 백작과 화해했고, 제임스 5세를 구출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반기를 든 제3대 레녹스 백작 존 스튜어트에 맞선 앵거스 백작의 선봉대를 이끌었다. 이어진 린리스고 다리 전투에서, 제임스 해밀턴은 수적 열세로 적에게 거의 압도될 뻔했지만, 앵거스 백작이 급파한 증원군에 힘입어 레녹스군을 격파했다. 레녹스 백작은 부상을 입은 채 항복했지만, 피나트의 제임스 해밀턴에게 살해되었다.

1528년 5월, 제임스 5세가 변장을 한 채 에든버러 성에서 탈출해 스털링 성으로 도망쳐서 어머니와 합류한 뒤, 앵거스 백작의 전횡에 이를 갈던 귀족들에게 소집령을 내렸다. 아란 백작은 즉시 이에 호응해 군대를 이끌고 가세했고, 앵거스 백작은 탄탈론 성으로 피신해 그곳에서 농성하다가 목숨을 부지하는 대가로 항복한 뒤 잉글랜드로 추방되었다. 아란 백작은 그 직후인 1529년경 웨스트 로디언의 키닐 하우스에서 사망했고, 사우스 라나크셔의 해밀턴에 안장되었다.

3. 가족


[1] ? ~ 1531, 제2대 레녹스 백작 매튜 스튜어트의 부인.[2] 1476 ~ 1543, 도비니 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