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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2 02:27:36

제도법령


1. 개요2. 역대 제도법령

1. 개요

ATO INSTITUCIONAL
브라질의 군사독재기간 혁명최고사령부의 이름으로 공표된 일련의 법률이다.

우리나라와 가장 비슷한 사례로는 긴급조치가 결을 같이한다. 제도법령에 속하는 모든 조항은 브라질 헌법[1]보다 우선순위로 해석해야했기에 사실상 쿠데타군의 정치적 행위를 사법심사를 받지 아니하고 합법화하는 매커니즘으로 작용했다.

1967년부터 69년까지 2년 동안 17개의 제도법령과 104개의 하위조문이 있었다.

2. 역대 제도법령

ATO INSTITUCIONAL 을 줄여서 AI-1,2,3 등으로 흔하게 구분한다.[2]

2.1. 제1호

* 본 제도법령은 1966년 1월 31일까지 유효하다.

2.1.1. 영향

AI-1을 통해 혁명최고사령부는 자신들을 반대한 시민들의 참정권을 박탈했다. AI-1을 근거로 만들어진 혁명최고사령부법령 1호부터 4호까지에 박탈 명단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주앙 굴라르전 대통령, 자니우 쿠아드루스전 대통령, 다르시 히베이루 브라질리아대학교 총장을 비롯한 민주계의 거물인사들은 물론 브라질 대의원41명, 브라질군 장교 122명, 판사,노조지도자, 언론인등에 대한 참정권을 10년간 박탈했다.

또한 1967년 3월 3일에 공포될 브라질 국가보안법의 모태가 되었다.

2.2. 제2호

2.2.1. 영향

AI-2에서 가장 두드러진 점은 다당주의의 소멸이었다. 대통령 후보를 2인까지만 선정할 수 있게 하면서 양당주의 체제로 변했는데, 여당인 국가개혁동맹(ARENA)과 야당인 브라질 민주운동만 잔류할 수 있었다. 대외적으로 브라질이 여전히 민주국가임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1966년 1월 31일까지로 예정이었던 카스텔루 브랑쿠 대통령의 임기는 이듬해 3월 15일까지로 연장되었다.

대통령의 권한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대법관의 과반 이상을 정부에서 임명할 수 있도록 변경했고, 군사법원이 민간인을 대상으로 재판할 수 있도록 헌법을 수정했다.

2.3. 제3호

2.3.1. 영향

AI-3을 통해 양당제 간접선거를 규정했으며, 시장은 임명직으로 바뀌었다.

2.4. 제4호

2.4.1. 영향

AI-4를 통해 대통령에게 막대한 권한을 부여하기 위한 개헌안을 통과시키도록 양원을 통제했다. 이미 제도법령 2호에서 헌법을 너무 많이 수정했기 때문에 여러 법학자들이 1946년헌법의 본질이 뒤틀렸다고 탄원한 것도 한몫했다. 양원합동위원회 22명은 사실상 모두 대통령에 의해 임명되었으며, 순조롭게 1967년 1월 24일 브라질 제6차헌법이 탄생했다.[6]

2.5. 제5호

2.5.1. 영향

발효된 17개의 제도법령 중 가장 악명이 높았다. 기존의 제도법령의 말도안되는 기본권 제한때문에 이미 브라질 각지에선 10만명 규모의 민중시위하 진행되고 있었고. 독재정부는 저항세력을 완벽히 짓밟고자 AI-5를 내 놓았다.

간추린다면 대통령은 국회와 주의회를 폐쇄할 권한을 가지게 되었고, AI-5가 서명되자마자 1년 간 국회가 폐쇄되었다. 입법부가 제 기능을 못하는 동안 대통령과 각 주지사들이 입법권을 부여받았으며 이를 통해 1969년 헌법수정안 제1호가 공포되었다.

연방정부는 국가안보를 구실로 지방정부에 개입하고 특히 연방개입권을 시시때때로 발동시켜 그들을 관리할 '개입자'를 선정하기도 했다.

경찰이 승인하지 않은 집회는 모두 불법으로 규정되었으며, 모든 미디어에 대한 사전검열이 시행되었다. 이에 참여한 사람들을 모두 '정치적 동기가 있는 범죄'로 치부했는데, 가장 무서운 점은 이들에 대한 인신보호 정지였다. 브라질 역사상 유래없는 고문합법 조항이다. 명목뿐이었지만 우리나라의 박정희,전두환 시절에도 헌법에 고문을 금지한다고는 했으나. 브라질은 한발 더 나아가 위법성을 따질 수 없도록 정치범들에게만 개인의 자유를 박탈하는 단서조항을 집어넣으면서 정당성이 심히 결여되어있는 브라질독재정권의 몸부림이었음을 인정했다.

2.6. 제6호

2.6.1. 영향

AI-6를 통해 아르투르 다 코스타 이 시우바는 사법부와 입법부 내 정적들을 제거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그 결과로 국회의원 33명이 탄핵되었으며, 연방대법관은 다시 11명으로 줄었다.

2.7. 제7호


브라질리아, 1969년 2월 26일; 독립 148주년 공화국 81주년.

2.7.1. 영향

AI-6를 보완하는 성격을 띈 AI-7은 브라질이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는 중에 발효되었다. 아르투르 다 코스타 이 시우바 대통령이 심장마비로 사망후, 권력을 이양받은 에밀리우 가하스타주 메디시는 대통령 취임 이후 전임 대통령의 후광을 받아 브라질의 발전을 독재정권의 정당성으로 사용했다. AI-6은 코스타 이 시우바 대통령 임기 내에 발효되었으나, 메디시 또한 그러한 성격을 유지했다.

지방정부의 일정 부분에서 그나마 명목상 행해지던 간접선거를 통한 의사결정 방식을 완전히 없애버리는 대신 그동안 무보수로 임명된 지방자치단체장들에게 제한적이지만 일정한 보수를 지급할 수 있도록 하였다.

2.8. 제8호


브라질리아, 1969년 4월 2일; 독립 148주년공화국 81주년.

2.8.1. 영향

AI-8은 극좌 무장단체의 테러가 한창이던 브라질 군사독재정권의 가장 억압적인 시기에 발효되었다. 표면적으론 법령에 따라 행정개혁을 할 수 있다고 명시 했지만, 사실상 법령에 기초한 행정개혁이 논의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음은 물론, AI-6에서 간접선거를 없애버리는 바람에 지방정부 '유권자'들이 존재조차 하지 않아서 실질적으론 군부의 권위주의적 성격을 강화했다고 평가된다.

2.9. 제9호


브라질리아, 1969년 4월 25일; 독립 148주년 공화국 81주년.

2.9.1. 영향

AI-8과 비슷한 성격인 AI-9는 농업개혁을 목표로 사회적 이익을 위해서라면 대통령이 재산을 몰수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었는데, 이렇게 몰수된 재산에 대한 모상은 20년만기 국채로 설정되었다.[7]

새로이 사회인사, 대학교수 등 219명에 대한 해고를 규정했다. 더불어 제도법령의 위헌성을 시사한 15명의 여야의원을 탄핵하고 국영 라디오방송국이 폐국되었다.

2.10. 제10호

2.10.1. 영향

AI-9가 발효된 지 채 20일이 지나지 않아 발효된 AI-10은 사회인사를 대거 해고하도록 한 AI-9조항을 뒷받침해주는 근거성격을 띄었다.AI-10으로 인해 1969년 7월에만 500여명 이상의 저명인사들이 직위해제되어 참정권과 시민권을 완전히 박탈당했다.

공직자나 공무원은 직위와 관계없이 군부 독재에 반대하는 시위나 성명을 발표할 수 없었으며 이에 대한 처벌로 이중 대의원과 시의원의 경우 해고로 그쳤지만, 사회 각계의 변호사,교사,의사 등과 같은 인물들은 아무런 이유 없이 구금되거나 투옥되었다.

2.11. 제11호


브라질리아, 1969년 8월 14일; 독립 148주년 공화국 81주년.

2.11.1. 영향

AI-11로 AI-7에서 완전히 없애버린 선거제도 때문에 임기종료 후 공석으로 남아있던 지방자치단체의 자리를 개편했다. 아르투르 다 코스타 이 시우바 대통령의 건강악화로 군부에서는 후임자로 에밀리우 가하스타주 메디시를 낙점했으나, 이대로 대통령 선출을 위한 간접선거가 실시되었다간 선거인단에 야당인사들이 대거 돌아와 표를 행사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선출직이었던 판사는 주지사의 임명직으로 교체되어 선거재판소가 애초에 부정선거의혹을 다루지 못하도록 하였다.

2.12. 제12호


리우데자네이루, 1969년 9월 1일; 독립 148주년 공화국 81주년.

2.12.1. 영향

AI-12는 아르투르 다 코스타 이 시우바 대통령이 질병으로 인해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일시적 사고상태를 국민에게 알리는 내용이었다. 당시 공화국 부통령은 페드루 알레이시우로 헌법에 의해 마땅히 그리고 즉시 대통령직무를 수행해야 했으나, 민간인 출신인데다 AI-5에 대한 심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가지고 있었기에 군부 내에선 독재정권이 종식될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따라서 브라질 군부는 AI-12를 통해 페드루 알레이시우가 대통령직을 맡지 못하도록 육해공군부 장관 3인이 직무를 수행하도록 했다.

2.13. 제13호


브라질리아, 1969년 9월 5일; 독립 148주년 공화국 81주년

2.13.1. 영향

AI-12발효 이후 불과 4일만에 AI-13이 나왔다. 이전의 모든 제도법의 주체가 대통령이었으나, 이제 대통령직무를 대행하는 이들은 육해공군부 장관 3인이었으므로, 그 주체가 바뀌었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국가안보에 위해가 되는 인물을 아예 국외로 추방할 수 있게 되었다.

2.14. 제14호

브라질리아, 1969년 9월 5일; 독립 148주년 공화국 81주년

2.14.1. 영향

AI-13을 통해 헌법 제150조가 수정되어 심리적,외부적,혁명적 반정부행위 등에 사형과 종신형을 적용할 수 있도록 하였고, 불법적 이익을 취한 경우 그 재산을 몰수한다는 내용이었다. 극좌테러리스트를 노골적으로 겨냥한 제도법으로 이들은 그나마도 공개적으로 활동할 수 없었지만, 오히려 브라질 내륙의 오지로 들어가 당국의 감시망을 쉽게 피할 수 있었다.

2.15. 제15호

2.15.1. 영향

AI-15에서는 연방개입권이 발동되어 적용을 받고있는 지방자치단체의 선거일자를 공표하였다.

2.16. 제16호

2.16.1. 영향

아르투르 다 코스타 이 시우바가 사망하고 정권을 다시 장악한 군부가 발효했다. 공화국 대통령과 부통령을 공석으로 선언했으며, 국회에서 간접선거를 통해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도록 규정했다. 선출된 대통령의 임기를 1974년 3월 15일까지로 하는 규정도 있었다.

2.17. 제17호

2.17.1. 영향

마지막 제도법인 AI-17은 새로 취임한 에밀리우 가하스타주 메디시 대통령이 처음으로 발효한 제도법이다. 군부세력이 일부 지역에서 저항활동을 하려는 양상을 띄자, 이를 막기 위해 브라질군의 단결에 반하려는 자를 예편할 수 있다는 조항이 주를 이루었다.
[1] 1946년과 1967년 헌법에 한한다[2] 국내에선 ATO INSTITUCIONAL의 번역명칭을 따로 정해두고 있지 않고, 제도법, 브라질제도법 등으로 부르고 있으나 서울대학교 라틴아메리카연구소,부산외국어대학교 중남미지역원에서 출간되는 저작물에선 ATO INSTITUCIONAL를 제도법령으로 칭한다.[3] Estado de Sítio; 계엄령과 비슷하지만카를 슈미트의 예외상태이론과 동일한 효력을 가진다. 현재 브라질 헌법 제137조에도 남아있다.[4] 군사법원에 대한 업무범위[5] 개인의 권리 및 보장[6] 1988년 민주화의 결과로 나온 시민헌법이 대체하기 전까지 지속되었다[7] 정확히 20년후 초인플레이션을 한번 겪은 상태였고 당시 발행한 국채는 모두 휴지조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