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47a0> 출생 | 1913년 3월 2일 |
전라남도 장흥군 관산면 죽교리 | |
사망 | 1942년 7월 25일 |
전라남도 장흥군 | |
상훈 | 건국훈장 애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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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사회주의자. 한국의 항일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정종배는 1913년 3월 2일 전라남도 장흥군 관산면 죽교리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항일 활동을 펼치던 중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어 1932년 12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4년형을 언도받고 출옥하였다. 그후 1933년 전남운동협의회(全南運動協議會)에 가입·활동하였다.전남운동협의회는 해남에서 김홍배(金洪培)·오문현과 완도의 황동윤(黃同允)을 중심으로 1933년 5월 14일 해남군 성도암(成道庵)에서 조직된 사회주의 비밀결사였다. 동회는 전남지역의 농민·어민·노동자·인텔리를 포함한 사회주의 운동의 통일적 지도기관을 목적으로 사무부·조직부·조사부·구원부의 조직을 갖추고 기관지로서 <농민투쟁(農民鬪爭)>을 발간하였다.
이후 동회는 완도·해남·장흥·강진·영암 등의 지방에 53개의 농민반과 26개의 야경단, 28개소의 야학(夜學)을 설치하여 조직확대와 사회주의 사상의 보급에 힘썼다. 또한 장흥·해남·완도 등에서 10여 차례의 소작쟁의, 어업조합 폐지운동, 강제연금 인출투쟁 등을 지도했다.
이때 정종배는 유재성(劉載星)·정진수·김두환(金斗煥)·위종관 등 10여명의 동지와 함께 장흥군의 각 지역을 분담하여 농민반·청년반·소년반의 세포조직을 결성하는데 힘썼다. 그는 김영복(金永馥)[1]·정종철 등 수명의 청소년을 규합하여 항일의식과 사회주의 사상을 고취하는 등의 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1934년 2월 일경에 붙잡혀 1937년 7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6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고향으로 돌아갔으나 고문의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1942년 7월 25일에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