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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2-09 15:44:28

정재동

鄭載東
1928년 11월 25일 ~ 2014년 12월 18일 (향년 86세)

1. 개요2. 생애3. 여담

1. 개요

대한민국의 음악인. 지휘자로 주로 활동했다. 본관은 초계(草溪)[1].

2. 생애

1928년 11월 25일 강원도 원주군(현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에서 아버지 정영헌(鄭暎憲, 1894.6.27. ~ 1954.8.16.)과 어머니 청주 한씨 한애덕(韓愛德, ? ~ 1983.4.13.)[2] 사이에서 4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고향에서 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1952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기악과를 졸업한 뒤 중등학교에서 음악교사로 근무하였다. 1954년에는 서울중앙방송 전속 피아노 주자, 1957년 해군본부 정훈실합창단 지휘자, 1963년 서울합창단 지휘자, 1964년 수도합창단 지휘자, 한국방송공사 전속 교향악단 객원지휘자, 1965년 국립오페라단 지휘자 등을 지냈다.[3]

1960년대 후반 미국으로 건너가 1970년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지휘과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귀국 후 1971년 4월 서울시립교향악단 전임 지휘자로 초빙됐고 1974년 3월 제4대 상임지휘자 자리에 올라 1990년까지 활동했다.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교수, 중앙대학교 안성캠퍼스 음악대학 교수로 재직하였고, 1983년 8월 16일부터 1987년 8월 7일까지 제2대 음악대학 학장, 1989년 8월 28일부터 1991년 8월 31일까지 제5대 음악대학 학장을 역임했다.[4]

2014년 12월 18일 현지시각 오전 7시에 미국 워싱턴 D.C. 자택에서 사망했다.

3. 여담


[1] 천호장공파(千戶長公派)-호희공파(胡僖公派)-이천종파(利川宗派) 32세 재(載) 항렬.[2] 한창석(韓昌錫)의 딸이다.[3] #[4] #[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