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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8-16 13:50:50

전철민

전철민
Jeon Chul Min
<nopad> 파일:전철민.png
출생 1987년 4월 27일 ([age(1987-04-27)]세)
신체 180cm, 86kg
학력 서해대학교 (음악과)
데뷔 2014년 MBC 드라마 트라이앵글 OST <더히든 - 그대뿐이죠>
MBTI INFJ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2. 앨범3. 대표커버4. 데뷔 전 이야기5. 음색 및 보컬 특징6. 팬들과의 소통과 교감7. 전철‘면’ 이야기8. 음악 활동
8.1. 더히든 활동8.2. 솔로 활동8.3. 방송8.4. 주요 공연8.5. 유튜브 및 콘텐츠 활동8.6. 수상 및 기록
9. 여담 (극세사 Ver.)

1. 개요

대한민국가수.

1987년 4월 27일 전라북도 부안에서 태어나 1992년부터 군산에서 성장했으며, 현재 인천시 부평에서 거주 중이다. 특유의 깨끗하고 호소력 있는 음색, 엄청난 고음과 풍부한 성량, 탄탄하고 폭발적인 가창력을 바탕으로 ‘김나박이’를 이을 재야의 고수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파 보컬이다.

2. 앨범

3. 대표커버

4. 데뷔 전 이야기

믿기지 않지만, 전철민은 초등학교 4학년까지 스스로 음치라고 느낄 만큼 노래에 자신이 없었다고 한다.[1] 당시 다니던 태권도장에서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는 분위기에서, 자신의 차례가 되어 어쩔 수 없이 노래를 불렀다가 사범님에게 “주문 외우는 줄 알았다”는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는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전철민은 독하게 마음을 먹고 노래 연습을 시작했다. 특히 초등학교 6학년 때 유행하던 god의 <어머님께>를 하루 종일 따라 부르며 노래 연습에 몰두했다고 한다.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던 그는 “가수가 되어 돈을 벌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노래를 연습했다. 낮에는 뒷산에서 본인만 아는 그네에 앉아 연습하고, 밤에는 집에서 30초만 걸어 나가면 보이는 군산 앞바다에서 피나는 연습을 이어갔다. 용돈을 모아 마이크를 샀고, 전기가 느껴지는 상태에서도 감전 위험을 감수하며 연습한 일화는 가수가 되겠다는 그의 절실한 의지를 보여준다.

음악에 대한 진지한 열망에도 불구하고, 그는 원래 희망하던 예술고등학교 진학이 무산되고 만다. 경제적 여건과 경찰이 되길 원했던 부모님의 반대 때문이었다. 비록 예고에는 가지 못했지만, 가수가 되겠다는 의지를 놓지 않고 독학으로 연습을 계속하며 음대 진학을 꿈꿨다. 그러나 결국 등록금이 부족해 음대 등록을 포기하게 되고, 대신 서해대 호텔관광과에 진학해 틈틈이 가요제에 출전하며 경력을 쌓았다.

대학교 1학년을 마친 후 군에 입대하여 헌병대에서 복무했다.[2] 군대에서는 군 교회에서 찬양을 하며 음악을 이어갔고, 병장 시절에는 군단 음악제 무대에 서기도 했다.[3] 전역 후에도 음악을 포기하지 않고 생계를 위해 마트 주차장, 공장, 막노동 등 다양한 일을 전전했으며, 당시의 다양한 알바 경험은 이후 알바천국 이벤트에서 1100:1 경쟁률을 뚫고 시급 천 배(521만 원)의 상금을 수상하는 성과로 이어진다 ( 알바천국 인터뷰).

이렇게 모은 돈과 어머니의 지원을 바탕으로, 25세에 서해대 음악과에 재입학하며 본격적으로 음악 공부를 시작한다. 당시 그를 가르친 교수들은 “좋은 소리를 타고났지만 표현을 위한 이론이 부족하다”고 평했으며, 그는 대학 시절 동안 전문적인 보컬 트레이닝을 통해 그 부족한 부분을 차근차근 채워나갔다 ( <지금 이순간> 오케스트라 협연). 졸업 전후 약 1년 동안은 장항에서 방과 후 교사로 일하며 아이들에게 보컬을 가르쳤고, 이 시기에도 보컬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실력을 다지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졸업 후 2013년, 전국노래자랑 군산편에 출연해 박완규의 <천년의 사랑>으로 1등을 차지하고( 전철민 <천년의 사랑>), 상반기 결산에서 2위를 기록하며 가창력을 인정받는다 ( 전철민 <천년의 사랑>). 그러나 슈퍼스타K, 위대한 탄생, 보이스 코리아 등 여러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는 줄줄이 탈락한다. 당시 발성과 가창력이 기성 가수에 가까울 정도로 완성도 높았다는 평가가 있었으나, 신인을 발탁하여 성장시키는 포맷의 방송과는 어울리지 않았던 셈이다. 전철민은 이미 더 이상 ‘키울 필요 없는’ 완성형 가수였던 것이다.

당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그는 김범수(가수)의 <끝사랑>을 부른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는데( 전철민 <끝사랑>(페도라ver.)), 이 영상을 본 히든싱어 작가로부터 연락을 받는다. 처음에는 출연을 고사했으나 결국 2013년 히든싱어 시즌 2 김범수(가수) 편에 '농부김범수'라는 닉네임으로 출연하여 준우승을 차지한다( 전철민 <끝사랑>(히든싱어ver.)).[4] 이로써 전철민은 가수 데뷔의 꿈에 한 발짝 다가서게 된다.

2014년 3월 <매거진 군산>과의 인터뷰에서 전철민이 한 말이다.[5]
"내가 꿈을 이루면 나는 또 누군가의 꿈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당장의 어려움과 외로움은 훗날 나 자신의 소중한 추억과 명예가 되리라 확신합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소나무처럼 단단하고 한결같이 노래하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감동 없는 인스턴트 노래가 아닌, 가슴으로 들을 수 있는 저만의 솔직한 노래 들려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할 거고요. 저를 성원해주신 모든 분들께도 이 자리를 빌어 깊은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5. 음색 및 보컬 특징

전철민은 탄탄한 발성과 서정적인 음색을 동시에 갖춘 보기 드문 보컬리스트로 평가받는다. 고음을 낼 때도 성대를 얇게 붙여 단단하게 밀어주는 방식으로 소리를 내며, 풀톤에서도 흔들림 없는 안정된 호흡을 유지한다. 그의 보컬은 성량을 과하게 밀어붙이지 않으면서도 깊고 맑은 울림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정통적인 두성 창법을 기반으로 한 딕션과 고음 처리 능력은 특히 라이브 무대에서 진가를 발휘하며, 피치 감각이 매우 정확해 음정 흔들림이 거의 없다. 전철민 특유의 고음은 가벼우면서도 날카롭지 않고, 전체적으로 맑고 촘촘한 결을 갖고 있다.

중저음에서도 성대 접촉률이 고르게 유지되어 음색이 텁텁하지 않고 맑게 유지되며, 고음에서도 음압이 자연스럽게 상승하면서 과장된 느낌 없이 부드럽게 밀고 올라가는 것이 인상적이다. 음역대 전반에서 성구 전환이 매끄럽고, 특히 진성과 가성의 경계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황금비율의 반가성은 그의 음색만 찾아 듣는 매니아층을 형성하게 한다.

그의 바이브레이션은 기교라기보다는 감정에 가깝다. 폭이 넓지 않아 과하지 않으면서도, 마음의 진폭에 따라 출렁이는 스타일이라 마치 울컥하는 순간에 나오는 떨림처럼 자연스럽게 들린다. 일부러 꾸미려 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듣는 이를 몰입하게 만들며, 슬픔과 담담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그 떨림은 고요하게 사람을 무너뜨리는 힘이 있다. 너무 편안하게 들리는 바이브레이션 덕분에 리스너들 사이에서는 ‘시몬스 침대’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유튜브 채널 셀프노트 스튜디오에는 그가 부른 커버곡이 300곡이 넘고 (2025년 8월 13일 기준 315곡), 개인 채널인 철민이형 채널에도 많은 곡들이 업로드되어 있는데, 장르에 따라 음색이나 발성을 바꿔 부르는 유연함도 갖추고 있으며, 재즈, 발라드, 어쿠스틱, R&B, 트로트 곡까지도 본인의 스타일로 자연스럽게 소화한다. 특히 초기에 업로드한 <비상>, <만약에>, 최근에 업로된 <모르시나요>, <Drowning> 등 주요 곡들에서 드러나는 감정 표현은 매우 섬세하고 밀도 높다.

워낙 탄탄한 발성을 바탕으로 감성의 디테일을 살리는 방향에 특화되어 있고, 그렇기에 그는 곡의 구조나 리듬보다 가사 전달과 감정의 뉘앙스를 중시하며, 저음에서는 말하듯이 부르다가도 한순간에 호소력 짙은 고음으로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등 감정의 고저를 능숙하게 연출할 줄 아는 보컬리스트다. 다양한 장르의 커버 영상과 라이브 공연 영상이 증명하듯, 가사 실수를 제외하면, 음이탈이나 박자를 놓치는 등의 실수는 아예 없으며, 실력의 기복 또한 거의 없다.[6]

전철민의 보컬 스타일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맑고 단단한 감정선 위에 정교하게 세운 감성 설계도”라 할 수 있다.

6. 팬들과의 소통과 교감

전철민은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를 통해 팬들과 꾸준히 소통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드러냄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과 아티스트로서의 예민함에도 불구하고, 활동이 없는 기간에도 잠수 타는 일 없이 유튜브 커버 영상, 인스타그램 피드 및 스토리를 꾸준히 업로드하며 안부를 궁금해하는 팬들을 안심시키는 세심하고 다정한 가수이다. 팬들이 보내는 인스타그램 DM에 직접 정성스러운 답장을 보내고, 유튜브 영상의 댓글에도 진지하거나 유머러스한 답글을 다는 모습이 자주 목격된다.

팬들과의 교감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생일파티이다. 매년 생일인 4월 27일 언저리에 생파 겸 팬미팅 자리를 마련하여 미니 콘서트를 열고, 공연 후에는 팬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며 참석한 모든 팬들과 일일이 직접 대화하는 시간을 가진다. 이 생일파티는 2017년 팬들이 깜짝 이벤트로 준비한 것을 시작으로 2019년까지 이어졌는데, 코로나19로 인해 3년간 중단되었다가 2023년부터 다시 재개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특히 2023년 생파에서는 팬들을 위해 손이 아린 것도 참고 직접 청양고추 다대기를 만들어 선물하기도 했는데, 팬들을 향한 그의 깊은 애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7]

그를 아끼는 팬들 역시 그의 이미지를 넣어 제작한 머그컵, 떡, 음료 등 다양한 굿즈를 자발적으로 제작하여 나누며 따뜻한 팬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더히든 시절 일본 공연을 통해 인연을 맺은 일본 팬들도 많으며, 이들은 종종 그의 공연이나 생파에 참석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한국을 찾는 등 남다른 팬심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국내외를 막론하고 깊은 애정을 보내는 팬들과의 끈끈한 유대는 단순한 숫자 이상의 진정성 있는 팬덤임을 증명한다.[8]

라면·라멘에 대한 애정과 팬들과의 교감을 한 그릇에 담아, 전철민은 가끔 팬들을 초대해 소규모 면/멘 미팅을 열곤 한다. 2019년 6월 20일, 강서구의 한 독립서점에서 우연히 시작된 첫 모임은 세월을 건너 2025년 8월 9일, 그의 단골 라멘집 부평 ‘교레츠’에서 열린 두 번째 모임 〈라멘한마당〉으로 이어졌다. 이날 전철민은 라멘 종류와 라멘 맛있게 먹는 법을 다정하게 전수하며, 심지어 직접 김치를 그릇에 담아 서빙하는 ‘셰프’로 변신했다. 참석한 모든 팬에게 라면과 일본 가차에서 뽑아온 상품 등 각종 굿즈를 역조공했고, 식사 후에는 인근 카페로 이동해 커피까지 함께하며 진짜 ‘면(麵)도 나누고, 면(面)도 트는’ 뜨끈한 시간을 보냈다.

7. 전철‘면’ 이야기

전철민은 별명이 “전철면”일 정도로 면을 사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2017년 11월 <김영우의 스윗사운즈> 출연 당시, 자신의 ‘스윗사운드’를 묻는 공식 질문에 중국집 웍 돌리는 소리와 일본 라멘집에서 면 터는 소리를 꼽을 정도로 진정한 면덕후의 면모를 보인다 ( 김영우의 스윗사운즈).

심지어 본계정과 연결하지 않고 비밀리에 <면식범>이라는 이름으로 인스타그램 부계정을 운영하기도 하였다. 물론 전철민의 찐팬들은 이미 다 알고 있었기에 팔로우도 하고 좋아요도 눌렀지만, 그의 사생활을 존중하기 위해 일부러 쉬쉬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2022년 3월 11일, 고독한 면식가라는 제목의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면서 자신이 ‘면식범’임을 공식적으로 커밍아웃하였지만, 이미 대부분 알고 있던 사실이기에 팬들에게 충격은 없었고, 오히려 유쾌한 반전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와 함께 인스타그램 부계정의 이름도 <면식범>에서 <고독한 면식가>로 변경된다. 해당 유튜브 채널은 음악과는 전혀 무관한 콘텐츠로, 일본 라멘, 짜장면, 칼국수, 쌀국수, 스파게티 등 다양한 면요리를 소개하는 전문 ‘면튜브’로 채워져 있다. 면을 향한 그의 남다른 애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채널이다.

그의 면사랑은 요리 실력으로도 이어진다. 2021년 9월, 인스타그램을 통해 요리학원 수강부터 두 번의 필기, 네 번의 실기시험 도전 끝에 중식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했다는 사실을 밝혔는데 면을 향한 진심이 낳은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2020년 8월 21일 업로드된 셀프노트 Q&A 영상에서 “가수가 아니었다면 어떤 직업을 택했을 것 같냐”는 질문에 “일본 라멘집 사장”이라고 답할 만큼, 수많은 면요리 가운데 일본 라멘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인스타 스토리의 70% 이상이 라멘 사진일 정도다. 2022년 4월, <함께 라면데이>라는 일본 라멘 가게 스탬프 투어 이벤트가 있었는데, 한 달 동안 9개의 가게를 방문하면 되는 이 도전에 무려 24시간 안에 아홉 그릇을 흡입함으로써 최단기 스탬프 완주자로 등극한다. 이 업적으로 인해 <이봉기라멘채널>에서 인터뷰까지 진행하며 면덕후로서의 입지를 굳힌다.

8. 음악 활동

8.1. 더히든 활동

2013년 당시 히든싱어 고정 패널이었던 주영훈은 마음에 드는 참가자들을 모아 프로젝트 그룹 더히든을 결성하게 되었는데, 전철민은 장진호(신승훈 편 우승자), 임성현(조성모 편 우승자), 김성욱(윤민수 편 준우승자)과 함께 팀에 합류한다.[9] 원래는 단기 프로젝트팀으로 시작했으나, 2014년 7월 드라마 OST 참여를 계기로 정식 데뷔하게 된다( 더히든 <그대뿐이죠>).

데뷔 직후 김성욱이 탈퇴했음에도 불구하고, 팀은 한국과 일본에서 크고 작은 무대에 오르며 활발히 활동했고, 두 나라에 걸쳐 팬덤을 형성했다. 2019년 4월에는 정규 앨범 《THE HIDDEN 1733》을 발매하며 본격적인 활동을 이어가는 듯했으나, 같은 해 가을 임성현의 군 입대로 휴식기에 들어갔고, 2020년 5월 10일 전철민이 솔로 전향을 선언하면서 팀은 해체되었다. 그룹 더히든은 2014년 7월 7일 데뷔 후 만 5년 10개월 활동한 셈이다.

8.2. 솔로 활동

전철민은 2019년 10월 싱글 <나 오늘 술 마셨어>를 발표하며 솔로 가수로의 전향을 준비하고, 2020년 5월 솔로 가수로의 전향을 전격적으로 선언하였다. 이후 현재까지 꾸준히 신곡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솔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별 발라드부터 따뜻한 위로를 담은 곡까지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고 있으며, 특히 <너의 밤을 안아줄게>(2022) <그래도 괜찮아>(2024) <혼자 왔어요>(2025) 등에서 본인의 스타일을 확립하였다.

8.3. 방송

8.4. 주요 공연

8.5. 유튜브 및 콘텐츠 활동

전철민은 개인 채널인 철민이형을 비롯하여 전문 커버 영상 채널 셀프노트 스튜디오에 음악 콘텐츠를 업로드하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11] 2019년 추석에 지세희와 함께 부른 <인연> 커버 영상은 무려 조회 수 3천만 회를 돌파하였다.

격주 수요일 저녁 7시 철민이형에 무보정 커버 영상이 업로드된다. 별도의 보정 없이 전철민의 목소리와 호흡을 그대로 들을 수 있는 콘텐츠이다.

매주 일요일 저녁 7시 철부지: 철민이의 부지런한 지구여행에 전철민의 소소한 일상과 잔잔한 여행 이야기가 공유된다. 촬영과 편집 등 제작의 모든 과정을 스탭 도움 없이 스스로 해결한다고 하니, 화려한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들지 않는 시간에는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일상을 보내는지, “사람 전철민”을 제대로 만날 수 있는 채널이다.

현재는 숨고르기를 하고 있지만, 면요리 소개 채널인 <고독한 면식가>, 임성현과 카진과 함께 한 음악/음주 토크쇼 <취중짠담>, 임성현과 함께 무명가수를 발굴하는 콘텐츠 <무명가수발굴단> 등 다양한 유튜브 콘텐츠를 통해 팬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있다.

철민이형
철부지: 철민이의 부지런한 지구여행
셀프노트 스튜디오
끼리끼리 스튜디오 <취중짠담> 2023.8.23.-
고독한 면식가 2022년 3월 11일-
아기다리 고기다리 무명가수발굴단 2024.4-

8.6. 수상 및 기록

9. 여담 (극세사 Ver.)


[1] 이하 내용은 모두 박강일 작곡가와의 인터뷰를 참고하여 작성하였음. 선골유튜브.[2] EBC 890th, 3군단 헌병대 (출처: 본인 인스타 피드)[3] 이때 당시 성시경과 같은 무대에 선 적도 있다고 한다. 또한, <보이스 코리아 2020>에서 코치로 함께 했었고, 이후 2022 나고야 코리안 페스티벌 무대에도 함께 섰으니 성시경과의 인연은 상당히 깊다.[4] 여기서 준우승의 의미는 원조가수인 김범수(가수) 제외하고 1등이란 뜻임.[5] 기사 전문은 다음을 참고할 것. 전철민 "제가 누군가의 꿈이 되고 싶어요"[6] 2019년 11월 창현 거리노래방 출연 당시 목 상태가 최악이어서 고음이 살짝 힘겹게 들렸는데, 이 정도가 현재까지 최대의 오점인 걸 보면 대표적 갓벽가수.[7] 당시 생파에 참석하여 청양고추 다대기를 선물로 받은 팬들은 지금도 그 다대기 맛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전주부표 다대기"를 상품으로 출시하면 대박날 것 같다는 의견도..[8] 2025년에도 4월 19일에 생파가 있었으며 한국과 일본 팬들이 자리한 가운데 1부 민이콘서트, 2부 퀴즈와 신청곡, 3부 술, 음식, 그리고 토크 순서로 이어졌다.[9] 당시에 주영훈은 팀을 만든다는 얘기를 하지 않은 채 각각의 멤버들과 약속을 잡았고, 각자 솔로로 데뷔하는 줄 알고 부푼 꿈을 안고 약속장소에 가서야 다른 멤버들을 만나서 사태를 파악하게 되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10] 2019년 이후 공연 직캠 영상모음은 여기. <최고 발라더 전철민 직캠>[11] 철민이형 채널에는 격주로 수요일 저녁 6시 30분에 따끈따끈한 새 커버영상이 업로드된다.[12] 상금은 무려 천만원이었음.[13] 이 대회는 당시 팀원이었던 더히든의 임성현의 추천으로 나가게 됐는데 정작 본인은 탈락했다는 슬픈 전설이..[14] 20명만 살아남는 1차 상장폐지 때 26위로 아깝게 탈락을 하였으나, 동료 아티스트들이 뽑은 최고의 가수 1위에 등극하는 영광을 누리기도..[15] 무명가수 발굴단 프리패스편 참고할 것.[16] 가수 본인이 원치 않을까 봐 여기 올리지는 못하지만, 그의 찐팬 인스타 릴스를 잘 뒤져보면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