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문서: 전설 유물(도미네이션즈)
1. 개요
Sanada Yukimura's Armor2. 상세
<rowcolor=#fff><colbgcolor=#a3cca2><colcolor=#fff>혜택 | 레벨 1 | 레벨 10 |
성이 파괴되면 검성 소환 | +1 | +10 |
영웅 HP | +6% | +15% |
바주카 데미지 | +6% | +15% |
전투기 데미지 | +8% | +17% |
게릴라 HP | +8% | +17% |
3. 부스트
<rowcolor=#fff><colbgcolor=#a3cca2><colcolor=#fff> 건물 | 부스트 |
도서관 | 고고학 위업 전쟁 전당 전설 유물 개조 부품에 보너스 1% 제공 |
4. 추가 정보
붉은 투구와 깃발로 전쟁의 붉은 악마로 알려진 사나다 유키무라는 일본 전국 시대의 최고의 무장으로 여겨졌습니다. 사나다는 당대 최고의 군 지도자를 섬긴 유명한 무장 가문이었습니다. 도요토미와 도쿠가와 간의 싸움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사나다 가문에서는 아들들을 양쪽으로 보내 누가 이기든 가문이 존속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유키무라는 당대 가장 결정적인 두 개의 전투에서 패하는 쪽에서 싸우게 되었습니다.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 앞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자신의 아들인 히데타다 휘하에 38,000명의 병사를 우에다 성으로 보냈습니다. 도요토미를 위해 싸우던 유키무라는 단 2,500명의 병사들로 8일을 버텨냈습니다. 좌절한 포위군은 세키가하라에 너무 늦게 도착해 전투에 질 뻔 했습니다. 1614년에서 1615년의 오사카 전투에서 유키무라는 다시 한 번 우세였던 도쿠가와 병력에 저항했으나 군의 사기가 떨어지며 도요토미가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무술 실력과 강한 정신력으로 유키무라는 일본에서 유명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 앞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자신의 아들인 히데타다 휘하에 38,000명의 병사를 우에다 성으로 보냈습니다. 도요토미를 위해 싸우던 유키무라는 단 2,500명의 병사들로 8일을 버텨냈습니다. 좌절한 포위군은 세키가하라에 너무 늦게 도착해 전투에 질 뻔 했습니다. 1614년에서 1615년의 오사카 전투에서 유키무라는 다시 한 번 우세였던 도쿠가와 병력에 저항했으나 군의 사기가 떨어지며 도요토미가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무술 실력과 강한 정신력으로 유키무라는 일본에서 유명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Known as the ‘Crimson Demon of War’ for his red armor and banners, Sanada Yukimura’s peers considered him perhaps the finest commander of Japan’s Warring States period. The Sanada were a renowned military clan who served as generals under many of the era’s greatest warlords. In the climactic conflict between the Toyotomi and Tokugawa, the clan patriarch sent sons to both sides in order to ensure that his line would continue regardless of who won. Yukimura ended up playing a role in the period’s two most decisive battles, albeit on the losing side.
In the leadup to the Battle of Sekigahara in 1600, Tokugawa Ieyasu sent 38,000 men to take Ueda Castle under his son Hidetada. Fighting for the Toyotomi, Yukimura managed to hold out for eight days with only 2,500 troops. The frustrated besiegers arrived at Sekigahara too late to fight, nearly costing Ieyasu the battle. During the Siege of Osaka in 1614-1615, Yukimura again held off superior Tokugawa forces, but low morale led his Toyotomi overlords to surrender. His martial skill and indomitable spirit have made Yukimura a popular figure in Japan ever since.
In the leadup to the Battle of Sekigahara in 1600, Tokugawa Ieyasu sent 38,000 men to take Ueda Castle under his son Hidetada. Fighting for the Toyotomi, Yukimura managed to hold out for eight days with only 2,500 troops. The frustrated besiegers arrived at Sekigahara too late to fight, nearly costing Ieyasu the battle. During the Siege of Osaka in 1614-1615, Yukimura again held off superior Tokugawa forces, but low morale led his Toyotomi overlords to surrender. His martial skill and indomitable spirit have made Yukimura a popular figure in Japan ever si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