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조선 후기 정조 22년(1798) 이만영(李晩永)이 편찬한, 오늘날로 치면 백과사전의 일종으로 8권 4책이다.2. 상세
규장각과 장서각에서 소장한다. 표지엔 만물보(萬物譜)라 씌였다.천(天)ㆍ지(地)ㆍ인(人) 삼재(三才)와 만물(萬物)의 옛 이름 및 별명(別名) 등을 모아서 춘(春)ㆍ하(夏)ㆍ추(秋)ㆍ동(冬) 4집(集)으로 나누어 수록하였다.
권1은 태극(太極)ㆍ천보(天譜)ㆍ지보(地譜), 권2∼5는 인보(人譜), 권6∼8은 물보(物譜) 등으로 구성되었다.
항목 하나하나에 각주(脚註)를 붙이고, 필요에 따라 한국어 해석도 달았으며, 한국 역대의 제도(制度)와 문물(文物)도 실었다.[1]
3. 택견 관련
택견계의 관심을 받는 책인데, 이 책에 "卞 手搏爲卞 角力爲武 苦今之탁견"[2]이라는 구절이 있기 때문. 문헌에서 확인되는 탁견(택견,태껸)의 최초 어원이라 주목받는다.구절을 풀이해보면, "수박(手搏)은 변(卞)이라고 하고 각력(角力)[3]은 무(武)라고 하는데 지금에는 이것을 탁견이라 한다." 인데, 이 구절을 근거로 택견계에서는 택견이 삼국 시절부터 이어져온 수박을 계승했다고 보고 있다.[4] 허나 이 책 외에는 교차검증 가능한 사료가 없어서 신빙성을 100% 보장할 순 없다. 특히 재물보같은 전근대의 백과사전류 서적들은 신뢰성이 떨어지는 민간 속설들을 자주 싣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당시 사회의 대중문화와 연결지어 추측해보면, 수박의 인기가 시들해진 조선 중후기 무렵 여전히 인기가 일정부분 유지되던 씨름을 참고해 손과 발을 이용한 넘기기 위주의 택견 형식이 정립되고[5] 이게 점점 씨름과 구분되고 발 기술 위주로 발전하면서 서울에서 유행했을[6] 가능성도 있겠다.
[1] 네이버 백과 사전 참조.[2] 탁견은 한글로 표기되었다. 최영년의 해동죽지에 나오는 '탁견희'는 한자인 반면 여기는 한글 표기임이 특이하다.[3] 오늘날의 씨름 정도로 풀이되는 모양.[4] 수박 자체는 조선 초까지 행해졌다는 기록이 확인된다.[5] 재물보를 참고하면 늦어도 18세기 무렵에는 그 형태가 정립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전통 이런 말에 너무 집착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 사료 말고 실질적으로 그 형태가 장기간 보존되어 내려온 무술들은 세계적으로 봐도 많진 않다. 중국무술만 하더라도 그 형태가 전해지는 현존 권법 중 가장 오래된게 태극권으로 17세기에 나왔다. 복싱 등도 근대 와서 지금의 형태가 정립된거지 고대의 그것과는 차이가 난다. 당시만 해도 무술은 신체 단련 겸 놀이, 호신술 개념이지 무슨 역사성, 형태 보존 이런 개념 따윈 희박했을테니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6] 다만 발로 까고 상대방의 공격을 피하는 등 유사한 무술, 유희는 택견 외에도 제법 있었던 모양으로, 왕십리의 까기나 평양의 날파람, 경상도의 깔래기나 잽이, 제주도의 발찰락 등등 그 명칭은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