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5-11 21:18:36

장 2세 드 툴롱옹

성명 장 2세 드 툴롱옹
Jean II de Toulongeon
생몰년도 1381년경 ~ 1427년 7월 10일
출생지 부르고뉴 공국
사망지 부르고뉴 공국 게르메냐트
아버지 트리스탄 드 툴롱옹
어머니 코트브룬의 잔
형제 앙투안, 앙드레, 잔
아내 카트린 드 로시용
자녀 장 3세, 클로딘
직위 세네시 남작, 툴롱옹, 라 빌뇌브 영주, 트루아 총독, 부르고뉴 원수
1. 개요2. 생애3. 가족

[clearfix]

1. 개요

부르고뉴 공국의 원수. 백년전쟁 시기에 부르고뉴 공국의 편에 서서 군대를 이끌었다.

2. 생애

1381년경 세네시 남작이자 삼부회 고문을 맡았던 트리스탄 드 툴롱옹과 코트브룬의 잔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형제로 앙투안, 앙드레[1], 잔[2]이 있었다.

1415년 1월, 부르고뉴 공작 용맹공 장에 의해 아르마냑파가 장악한 파리에 사절로 바견되었다가 투옥되었으나 곧 풀려났고, 1417~1418년 트루아 총독을 역임했다. 1422년 부르고뉴 원수로 선임되었으며, 부르고뉴 공국의 총독을 역임하기도 했다. 1423년 7월 31일 크라방 전투에서 부르고뉴군을 지휘해 잉글랜드 장성 토머스 몬타구가 프랑스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는 데 일조했다. 그러나 샤토 드 라 뷔시에르를 포위하고 있다가 프랑스 용병 움베르 드 그로슬리의 급습을 받고 생포되었다.

일부 연대기에 따르면, 그는 크라방 전투에서 생포되었던 뷰컨 백작 존 스튜어트와 교환되었다고 한다. 다른 기록에 따르면, 그는 서퍽 백작 윌리엄 드 라 폴의 프랑스 포로가 된 형제 중 한 명과 교환되었다고 한다. 그 후 1427년 7월 10일에 게르메냐트에서 사망했고, 사후 게르메냐크 수도원에 안장되었다. 뒤이어 형제 앙투안 드 툴롱옹이 부르고뉴 원수로 선임되었다.

3. 가족



[1] 1390 ~ 1432, 모르네의 영주, 선량공 필리프의 고문, 황금 양털 기사단의 기사. 선량공 필리프의 사생아인 코르네유와 결혼함. 1432년 예루살렘에 순례하던 중 사망.[2] 1382 ~ 1419, 브라반트와 부르고뉴 공국의 기병대 사령관 트리스탄 드 몽톨롱와 초혼, 1415년 트리스탄 드 몽톨롱이 아쟁쿠르 전투에서 전사한 뒤 상프디에르의 영주이자 왕의 기마 종자이며, 프랑스 국왕 샤를 6세의 정부인 오데트 드 샹디베르의 형제인 앙리 다 샹디베르와 재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