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3-26 17:22:48

장 1세 르 맹그르

이름 장 1세 르 맹그르
Jean I Le Meingre
출생 1310년
프랑스 왕국 투르
사망 1367년 3월 15일
프랑스 왕국 디종
형제 조프루아 르 맹그르
배우자 플로리 드 리니에르
자녀 장 2세, 조프루아
직위 프랑스 원수
1. 개요2. 생애3. 가족

[clearfix]

1. 개요

프랑스 왕국의 귀족, 장군. 일명 '부시코 원수'. 백년전쟁에서 잉글랜드군과 맞섰다.

2. 생애

1310년경 투르에서 출생했다. 부모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일찍이 성직자가 된 뒤 1363년 랑의 주교이자 공작이 된 형제 조프루아 르 맹그르(? ~ 1370) 만이 알려졌다. 1337년 가스코뉴 전선에서 복무했고, 1338년과 1340년에는 플란데런 백국에노 백국에서 프랑스 무관장 라울 1세 드 브리엔 휘하에서 복무했다. 140년 9월 부빈에서 잉글랜드군과의 전투에 참여했다. 1345년 비에누아의 도팽인 움베르 2세 드 라 투르뒤팽의 스미르나 십자군에 동행했다.

1349년 여름 루나롱주 전투에 참여했다가 잉글랜드-가스코뉴 연합군에 의해 사로잡혔다. 이후 몸값을 지불하고 풀려난 그는 1351년과 1352년에 가스코뉴 전선에서 잉글랜드군과 계속 맞섰으며, 1354년 5월 30일 툴루즈의 대의원이 되었다. 1355년 9월 상스의 대주교인 기욤 드 멜룬과 함께 피카르디에서 잉글랜드와의 평화 협상을 이끌었다. 1356년 10월 21일 프랑스 원수 직을 수여받았다. 그는 이 시기에 여러 전투에서 앞장서서 싸우는 모습을 보여 '용감한 자'라는 의미인 '부시코(Boucicaut)'로 일컬어졌고, 흔히 '부시코 원수'라고 불렸다.

1358년 5월 22일, 도팽 샤를은 모에서 발행한 왕실 서신을 통해 그를 푸아투, 투렌, 생통주의 보안관으로 선임했다. 그는 이와 동시에 뤼지냥 성의 대장을 맡기도 했다. 1360년 4월, 6명의 기사, 36명의 종자, 18명의 궁수와 함께 잉글랜드군에 포위된 파리로 진입해 그곳을 사수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이후 잉글랜드와 프랑스간의 평화 협정인 브레티니 조약이 체결되기 위한 프란스 협상단의 일원이 되었으며, 1360년 11월 4일 대영사단의 일원으로 선임되었다. 그러나 1362년 1월 8일, 존 챈더스가 이끄는 잉글랜드군이 그의 영지에 속한 카오르 마을을 공략하는 걸 막지 못했다.

1362년 5월 브레티니 평화 협약의 이행을 위한 위원으로 선임되었고, 1362년 아비뇽 교황청을 찾아간 도팽 샤를의 수행원으로 발탁되었다. 1364년 나바라 왕국의 국왕 카를로스 2세가 프랑스 왕실을 적대하자, 그로부터 망트와 멜룬 시를 탈취했다. 이후 프랑스 각지를 약탈하는 자유 용병대에 대항하는 원정에 참여했으며, 노르망디 군대 사령관을 역임하기도 했다. 1367년 3월 15일 디종에서 사망했고, 투르의 생마르탱 성당에 안장되었다.

3. 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