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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3-25 00:08:49

잔 갈레아초 스포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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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4FC9DE><colcolor=#fff> 밀라노 공국 제6대 공작
잔 갈레아초 스포르차
Gian Galeazzo Sforza
파일:Gian Galeazzo Sforza.jpg
이름 잔 갈레아초 마리아 스포르차
(Gian Galeazzo Maria Sforza)
출생 1469년 6월 20일
밀라노 공국 아비아테그라소
사망 1494년 10월 21일 (향년 25세)
밀라노 공국 파비아
재위 밀라노 공국의 공작
1476년 12월 26일 ~ 1494년 10월 21일
배우자 나폴리의 이사벨라 (1489년 결혼)
자녀 프란체스코 마리아, 이폴리타 마리아, 보나 마리아, 비앙카 마리아
아버지 갈레아초 마리아 스포르차
어머니 사보이아의 보나
형제 에르메스, 비앙카 마리아, 안나
종교 가톨릭
1. 개요2. 생애

1. 개요

밀라노 공국의 제6대 공작.

2. 생애

1469년 6월 20일에 아비아테그라소에서 밀라노 공작 갈레아초 마리아 스포르차와 사보이아의 보나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476년 12월 26일, 아버지 갈레아초 마리아 스포르차가 밀라노의 산토 스테파노 대성당에서 암살당하면서 7살의 나이에 밀라노 공작위를 이어받았다. 너무 어린 나이에 공작이 되면서 밀라노는 불안정한 정국이 이어졌다. 어머니 사보이아의 보나는 남편의 사후 즉시 아들을 도와줄 유력 인사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그녀를 포함한 섭정단이 꾸려졌다.

섭정단을 이끈 인물은 갈레아초 마리아 스포르차의 고문이었던 치코 시모네타였다. 치코는 정통성을 더욱 확립하기 위해 대성당에서 잔 갈레아초의 대관식을 치르는 등 어린 후계자를 보필하고 공작위를 노리는 갈레아초의 남동생들을 경계했다. 1480년 치코의 눈 밖에 난 안토니오 타시노라는 궁인이 실각을 두려워해 갈레아초의 동생 중 한 명인 루도비코 스포르차와 결탁했다. 안토니오는 오래전부터 연인 사이였던 사보이아의 보나에게 평화를 위해 루도비코를 밀라노로 불러들여야 한다고 압박했다. 내전을 두려워하던 보나는 루도비코를 불러들였고, 루도비코는 즉시 궁정을 장악하고 내전을 야기했다는 누명을 씌워 치코 시모네타를 참수했다. 루도비코는 같은 해에 보나의 섭정직을 박탈하고 밀라노에서 추방시켰다.[1]

잔 갈레아초는 사냥과 와인을 좋아하고 정치에는 관심 없는 음울한 성격의 청년으로 성장했다. 밀라노의 궁정 시인에 의하면 그는 "긴 금발 머리와 창백한 피부, 그리고 천사 같은 외모"를 가졌다고 한다. 루도비코는 공국의 위신을 위해 그를 나폴리 왕가와 통혼시켰다. 1489년 고모 이폴리타 마리아의 딸인 사촌 나폴리의 이사벨라와 결혼했다. 이사벨라는 예쁘진 않지만 남편과 대조되는 활기차고 사교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부부는 슬하에 1남 3녀를 두었지만 사이는 완만하지 않았다. 이사벨라는 실권이 없는 남편을 답답해하면서 루도비코를 미워했고, 삼촌의 영향을 받은 잔 갈레아초는 아내와 멀어졌다.

1491년 삼촌에 의해 스포르차 가문이 여름 별장으로 쓰던 파비아의 비스콘티 성으로 이사했다. 파비아는 밀라노 궁정보다 화려했지만 실권은 없었다. 1494년 향년 25세로 비스콘티 성에서 숨을 거두었다.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이사벨라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루도비코 스포르차가 조카를 독살한 것이라고 여겼다.



[1] 안토니오 타시노는 사보이아의 보나가 추방되기 전 오만방자한 태도로 루도비코를 비롯한 주요 인사들의 눈밖에 나서 진작에 추방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