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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약만가: 불환곡/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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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황제 부부3. 황제의 후궁4. 황실의 재보(출가한 황녀)5. 황제의 자녀6. 기타 인물

1. 개요

작약만가: 불환곡의 등장인물을 정리한 문서.

2. 황제 부부

3. 황제의 후궁

원래 황제에게는 비빈이 많았지만 혜화비 사건 때 다 쓸려나가 성빈과 덕빈밖에 안 남았다고 하며, 성빈은 시즌1 후반에서 시즌3까지 희희로 강등되었고 덕빈은 시즌1에서 죽어 비빈이 롱희밖에 남지 않아 경비, 온빈, 순빈, 침빈을 입궐시켰다고 한다. 이외에도 여러 신분 낮은 후궁들이 있다고 하며, 25화에서 새로 입궐한 여자를 소개할 때 6명이 나온 걸 보면 이 넷 이외에도 2명 더 입궐한 것으로 보인다.

4. 황실의 재보(출가한 황녀)

5. 황제의 자녀

6. 기타 인물


[1] 작중에서 '롱희빈'으로 언급되니 공식 봉호로 봐야한다.[2] 비 이상의 지위에 오른 여성이 용종을 유산할 경우 처벌하는 법이 태황에 존재한다. 혜화비 역시 비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었으니 용종을 유산한 것을 트집잡혀 죽은것으로 추측된다. 재보들의 반응을 보아 혜화비의 죽음에도 재보들도 끼여있는 것 같다. 존재감없는 오륜공주에 비해 외국인을 혐오하는 길선이 앞장섰을 수도 있다. 외국인 후궁이 비의 자리에 까지 오르면 황후와 길선이 경계했을테니.[3] 자기 혼자 살아남으려고 악다구니 써도 살아남기 힘든 궁에서 다른 사람들, 그것도 파벌에 넣어봤자 크게 도움이 안 될 약자들을 기꺼이 비호해준 행적을 지닌 걸로 봤을때, 이 혜화비라는 사람이 매우 선량하고 대인배적인 풍모를 지녔다는 걸 알 수 있다.[4] 아무래도 좋을 부분이지만 이 후궁은 혜화비와 경숙비에게는 존댓말을 하지만 존칭(마마)을 붙이지는 않고, 덕귀비와 그 위의 사람들에게만 존칭을 붙이는 걸 봐서 그 역시도 비의 품계에 있었던 걸로 보인다.[5] 황후가 다른 후궁들과 함께 부른 걸 봐서는 덕빈처럼 딸을 낳은 희희들로 보인다. 보통 황손을 생산한 후궁들을 순장하는 경우는 잘 없으니 친정으로 돌아갔을것이다.[6] 희희들을 순장했다고 하니 채려인, 수려인들은 살아서 친정으로 돌아갔을 수도 있다.[7] 황제를 오라버니라고 부르기 때문에, 길선 공주와는 다르게 처음부터 황제의 여동생임이 확실히 드러났다. 덕빈에 의해 황제의 동복 누이라는 것이 밝혀졌다.[8] 머리를 양 갈래로 나누어 틀어올려 뿔 두 개처럼 만드는 스타일이다.[9] 황제가 황위에 오르기 위해 이복 형제들을 살해한 지금도 "재보 고모님"이 아닌 "재보 숙모님"인 걸 보면 그녀의 남편은 황제보다 출생 순서도 늦고 생모의 신분도 높지 못해서 황위에 별 위협이 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10] 황제의 비밀을 아는 사람은 황후 숙정씨와 길선공주뿐이라는 언급을 보면 모르고 있을 확률이 더 높아보인다.[11] 사실 과거 덕귀비 시절에 화장을 안 하고 다녔던 덕빈의 얼굴과 판박이다. 어머니를 많이 닮은 듯. 사실 여동생 복명, 남동생인 운과 소거도 황제를 썩 닮지는 않았다. 이는 덕빈이 멀쩡히 나온 딸들은 다 제 어미를 닮았다고 하는 부분을 보면 황제의 유전자를 많이 물려받으면(특히 아들) 기형아가 태어날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알 수있다. 아예 엄마.아빠도 안 닮은 봉림도 있고[12] 정신이상이 있기에 표정과 눈 묘사가 이리 된듯.[13] 머리를 양 갈래로 묶고 말아올려서 고정시키는 스타일로 소녀들이 주로 했다.[14] 소거가 막 태어났을때 운이 7-8세 정도라 치면, 소의가 죽은 시점인 5년 후엔 운은 아마 12-13세였을 것이다. 그럼 소의의 나이는 자연스럽게 15-16세 언저리라 추측할 수 있다. 또 소의가 사망하고 운이 장성한 시점에서도 생존한 소의의 이복 자매 복명공주가 20대 후반에서 30대쯤으로 보이므로 소의도 운이 장성한 후엔 아마 그 정도 나잇대가 되었을수도 있다. 단순히 복명이 노안일 수도 있지만[15] 육체적으로는 특별한 문제가 없어보이는데 얼굴에 표정도 없고 자수도 잘 놓지 못한다.(자수 솜씨가 안 좋다는 게 아니라 제대로 형태도 잡지 못하고 낙서처럼 놓는다) 그걸 본 덕빈이 아직도 차도가 없다고 말하거나 힘이 있다면 정략혼으로 보내지 않고 평생 곁에 둘 수 있다고 말하는 점을 보아 거의 확실. 이를 본 독자들은 덕빈도 불쌍하다며 동정하고 있다.[16] 덕빈의 회상으로 어린 소의공주가 두통을 호소하고, 덕빈은 딸을 안고 공포에 질려 눈물을 쏟으며 '황후 마마, 어째서...?' 하고 생각하는 장면이 나왔다. 여담으로 현실에서도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들을 위해 정신과에서 처방하는 약들 중엔 일반인이 먹으면 위험한 부작용을 일으키는 약들이 상당수 있다. 아마 황후가 먹인 약도 그런 종류가 아니었나 추측되며, 황후는 그 약의 부작용이 소의 공주에게 어찌 나타날 것인지 다 짐작하고 먹여서 정신지체로 만들어버렸다는 말이 된다.[17] 소의는 황제의 아이들 중에서도 나잇대가 제법 많이 찬 편이다. 만약 아들이었다면 1황자 운이나 소거보다도 먼저 황제의 눈에 들어 황후의 견제대상으로 충분히 작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딸은 황권계승이 불가능하니 황제에게서 쓸모없는 패로 여겨져서 눈 밖에 나버린 것.[18] 단순히 몸이 나빠졌거나, 혹은 정신이 이상한 상태에서 누가 지켜줄 사람도 없으니 우연찮게 위험한 곳까지 가게 되어 죽었다던가, 약을 먹은 후 몸상태도 함께 안 좋아졌던 나머지 수명이 다해가고 있던 것일수도 있지만 지켜줄 덕빈이 없어지자 황후 세력 등에 의해 제거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까지 독자들 내에선 제시되고 있다.[19] 운은 입장상 적자인 봉림보다 더 먼저 태어난 1황자이고 황제가 그와 그의 어머니 롱희를 총애하는 티를 팍팍 내고 있으니 아무리 가만히 숨을 죽여도 봉림과 황후 추종파 + 롱희 반대파에겐 눈앳가시여서 언제 처리당할지 모르기에, 왕위를 노릴 아들로 태어나지도 못했으며 가만히 살았을 뿐인데도 당시 황제에게 제법 총애받던 후궁(덕빈) 소생이라는 이유로 젊은 나이에 정신이 이상해지다 못해 요절한 누나(소의공주)에게 자기 신세를 겹쳐본듯하다.[20] 힘 없는 모후 + 일찍 죽은 아버지 + 늘 자기를 외교의 도구로 쓰느라 맨날 외국으로 보내면서 굴려대는 이복오빠(현 황제의 아버지)라는 악조건 총집합.[21] 게다가 뒷배없는 길선과 달리 소의공주의 경우에는 동방에서 제법 세력이 있는 궉씨 가문을 외가로 두었고, 어머니인 덕빈 역시 황후의 수작 때문에 빈으로 강등되지 않았다면 황후 바로 밑의 후궁인 귀비라는 높은 신분의 소유자였다. 이정도로 소의공주의 지지세력이 확고했으니 아무리 공주라 쳐도 마냥 무시하기 힘든 입장이었을테고, 장성한 뒤 권력을 끌어모을 때도 나름대로 길선공주보다 좀 더 유리했을 지도 모른다.[22] 생긴 것을 보면 나이가 약간 들어보인다. 황제의 첫 자녀인 소의가 사망 당시 10대 후반 정도였고, 만약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 있다면 30대 초반까지도 잡아 볼 수 있는데, 그 소의보다는 아래일 복명공주도 얼추 비슷한 나이대로 보인다. 두 사람은 어머니가 다르니까, 덕빈과 복명의 모친이 비슷한 시기에 회임을 했다면 나이는 같고 생일만 불과 수 개월 차이일 가능성도 있다. (전작인 서리꽃에서도 리빈과 삼미랑이 2개월 정도 차이를 두고 회임했었다. 리빈이 2개월 정도 조산을 하여 삼미랑과 같은 시기에 출산을 하게 됐는데, 조산을 하지 않았다면 둘의 아이는 2개월 차이 나는 이복형제가 됐을 것.) 다만 10대 초반 여자애를 황실로 시집보내고 열 살도 안 된 황녀를 외국으로 시집보내는 태황에서, 공주가 30대가 되어서야 혼인해 출궁한다는 건 어색하다. 복명이 보기보다는 나이가 어릴지도.[58][23] 후반부의 내용을 보면 황후에 의해 후궁들이 순장당하지만, 복명공주의 모후는 이미 장성한 딸을 출가시켰으니 순장은 피하고 경비처럼 친정으로 돌아갔을 수도 있다.[24] 혹은 소의보다도 먼저 태어났지만 딸이면서 생모의 출신이 너무나 미천하여 소의보다 느리게 딸로 인정받았을 가능성도 있다. 아무리 황녀라 해도 생모의 출신이 낮고 순서도 인정받지 못한 공주를 며느릿감으로 원하는 가문은 없었을테니 30살이 되도록 궁에 남아있었을 가능성이 있다.[25] 후수가 전거이에게 시비를 걸고 떨떠름하게 굴자, 주수는 먼저 후수를 좋은 말로 달랜 뒤 전거이에게도 부드러운 말투로 사정을 설명한다.[26] 운 : 후수는 내 누님 같아서 이런 말 하기 뭣하지만 성격이.....
주수 : 뭐요 황자님?
운 : 완벽하단 얘기야.
[27] 후수는 롱희를 모시고 송하로 돌아갔는데 주수와 희사는 경비와 함께 가게 됐으니 슬프게도 모녀/자매지간에 멀리 떨어지게 된 셈.[28] 황자들의 유모이기에 동관인 어상락도 그녀에겐 존칭만 안 붙일 뿐 엄연히 존대한다.[29] 남편 외 다른 가족들에 대해선 언급이 안 되나, 있다고 치면 가족들과도 생이별해 이산가족 행일듯.[30] 서리꽃에서 리빈에게 조력했던 '평홍서'라는 의관과 같은 집안 사람인지는 불분명한데, 별로 안 닮은 걸 봐서 우연히 성만 같은 남이거나 친척이라도 가까운 혈연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31] 향리의 생모는 차를 식혀 마시는 습관이 있었다고 하며, 향리 또한 생모를 생각하여 그를 따라하느라[59] 차를 식혀 마시는 버릇이 들었는데, 태황에는 그런 문화가 없으며 오히려 차를 식혀 마시는 것을 천박하게 여긴다. 정황상 태황 서쪽에 차를 식혀 마시는 문화가 있는 이민족이 있는 듯.[32] 여자가 남편을 여럿 두면 악행이지만 노기의 아들들은 사람이 아니라서 괜찮다는 불후의 망언과 함께....[33] 향리 자신도 그 때 2황자에게 불려갔었고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직접 보았다고 한다. 자신 외에 불려갔던 다른 노기들은 모두 죽어서 나왔으나, 향리는 당시 너무 어렸기에 살았다고.'[34] 길거리에서 어떤 여성들이 대화를 나누는데, 그 중 한 명이 자기 가게 주인을 '얼굴도 반반하고, 나이도 젊고, 높은 사람 밑에 잠깐 있었다던데 그래서인가 물건도 잘 고른다. 그런데 이상하게 차를 매번 식혀서 마신다'고 언급하였다. 향리는 이 조건에 정확히 부합한다.[35] 성빈이 롱희의 사촌으로서 소거의 외당숙인 스바타와 결혼한 것이 암시되므로 서리꽃 닫는 문에서 소거가 언급한 '외숙모'는 성빈이며, 그 외숙모가 롱희를 맞으라고 보냈다는 사람은 향리였던 것이다.[36] 같은 노기인 서리꽃의 삼미랑과 안티테제격 캐릭터로 볼 수 있다. 삼미랑은 자신을 가축, 도구로 취급하는 추악한 인간군상과 계속 엮이다가 이것이 불행하고 비참한 개인사와 맞물린 끝에, 결국은 그 자신도 타인을 학대하고 도구 취급함으로써 스스로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사악한 인물로 변모하고 말았다. 그렇게 자신에게 아무 죄도 짓지 않은 리빈에게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자신의 측근조차 맘에 안들면 마구잡이로 학대하며 악랄하게 행동하다가 서리꽃의 황제가 빈사에 빠지자마자, 기다렸단 듯이 모든 권세를 잃고 측근들에게마저 버림받아 마지막까지 노기 신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로 리에 의해 황제시해혐의를 뒤집어쓰고 끔찍하게 처형당하는 결말을 맞이했다. 반면 향리는 자신을 사람으로 대해 준 선인들을 여럿 만난 덕에 그 자신도 인의와 은혜를 기억하며 사람의 도리를 지킬 수 있었고, 그 덕에 결과적으로 본인도 노기 신분에서 벗어나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자신의 은인들인 성빈과 롱희에게도 보은하였다.[37] 78화에서 길선이 황제의 진상에 대해 말하자 뭔가 심각한 감을 잡은듯이 찔끔하던 눈치를 보이더니 다른 내관들을 내보낸다. 그리고 바로 운에게 황명을 받들라고 강요하듯 권유한다.[38] 운에게 살인하라고 사실상 강요해대고 자기는 뒤로 빠져있다가 길선의 사망 여부나 확인하는 모습[39] 다만 그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자만/방심하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게 여자가 자립해서 살기가 매우 힘들고 황후나 후궁이라 할지라도 어느 정도는 가문의 세에 기대서 살 수밖에 없는 태황의 사회를 고려해보면, 딸이 제아무리 날고 기어봤자 그녀에게 있어서 버리기 힘든 빽인 가문과 그 가문의 가주인 자신을 공격할 가능성은 낮다고 볼 수밖에 없다.[40] '가백문 일가 학살 건을 강씨 가주가 밝혀내 2황자의 치부를 관료들에게 알리려고 했다'는 거짓 증언을 담은 글. 경비가 처음 계획했던대로 황후에게 1황자가 가백문 학살 사건을 2황자의 약점으로 쓰려 했다고 말했다면, 경비는 입막음을 위해서라도 황후에 의해 순장당했을 것이다. 이 서신 덕분에 경비는 순장을 면한 건 물론, 아버지에 대한 복수까지 완료한다.[41] 채려가 강씨 가주에게 서신을 보내냐고 경비에게 묻자, 경비는 그렇다고 말하고 자기 아버지가 아닌 오빠를 댄다.[42] 일을 서둘러 그 작고 징그러운 늙은이(강 연백)의 목숨을 거두어도 괜찮겠다고 경비가 말하는데, 거기에 자기 오빠가 자기에게 고분고분하다는 말을 곁들인다. 이유가 어찌되었던 간에 강 연백의 아들, 즉 경비의 오빠는 경비처럼 아버지에게 적대적이라는걸 알 수 있다. 그래서 여차하면 폐륜으로 불거질 수도 있는 경비의 계획에 협조하려는 듯.[43] 다만 바로 눈앞에 아버지가 살해당하는 것을 보았으니 대신 정신적 충격을 꽤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44] 후궁이 노릴 수 있는 가장 높은 품계는 귀비인데, 귀비라는 품계는 붙지는 않았으니 그 아래에서 그친 모양.[45] 혜공경비가 정말 권력욕이 있어서 자기 아들이 황자가 되기를 열심히 주도했는지, 아니면 자기는 별로 권력욕이 없었지만 아들을 차기 황제로 만들려 했던 선황의 의중을 막지 않았는지는 불명이다. 여하튼 엄연히 후궁이었던 그녀의 아들이 태자로 선택된 걸로 보아 선황후에겐 아들이 없었거나,[60] 있다고 쳐도 '적통' 이라는 입장만으론 당시 태자였던 현 황제를 견제하기 힘들 수준으로 모자란 아들이었을 가능성이 있어보인다. 혹은 선황제가 황후를 극도로 견제해 대신 혜공경비를 밀어줬거나, 아니면 그냥 혜공경비를 엄청나게 편애하는 수준으로 총애했을 수도 있다.[46] 황위 계승권을 가지고 다툴 자기 형제들.[47] 태후의 자리를 차지한 건 누구인지 불명. 선황후도 안 나오는걸로 봐선 선황후도 불환곡 시점 전에 이미 죽었을 가능성이 높다.[48] 보통 절대권력을 누리려면 방해되는 신하들이나 주변 친인척들을 싹 다 제거하거나 찍어눌러놔야 가능하므로, 이쪽도 현 황제처럼 과거에 꽤나 숙청질 했을지도 모를 노릇.[49] 혜공경비[스포일러] 길선공주에게 있어선 인생 초창기부터 개고생한 만악의 근원 되는 양반이다. 자세한 건 길선공주 참고.[51] 황실 유전자가 병든건 이미 그의 아들인 불환곡의 황제와 선황의 손자가 충분히 증명했다. 황제 자신도 자기 피가 오염되었다는건 알지만 롱희의 자식들을 보고 현실부정을 하고 있다고 나오는데, 이걸 아는 이유가 자기 아들들 뿐만이 아니라 선황의 피를 이은 다른 형제자매들 중에서도 오염된 황가의 피 탓에 유전병이나 기형을 타고난 이들이 있었고 이를 예전부터 봐와서였다는 이유가 붙을 수도 있다. 자기 대에서만 갑자기 아들들이 기형으로 태어나거나 했다면 무조건 여자 탓으로만 돌렸을테니.[52] 이상한게 이 악몽은 불환곡 황제에 의해 희생돼서 그를 원망하고 증오하는 이들이 출몰하는 악몽이다.[53] 그녀는 후궁 혜공경비의 아들이 황태자로 선정된 것에 대해 혜공경비가 자기에게 도전한다 여겼기 때문이라고 한다.[54] 하자가 있는 자식이 있었다면 아마도 현 황후 숙정씨와 비슷한 상태였을듯.[55] 옹정황제의 여인화비가 이와 비슷한 사례. 이쪽은 아예 황제가 주도적으로 화비를 불임으로 만들어 화비의 가문이 더 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게 만들었다.[56] 순제의 선황제가 순제를 처음에 태자로 삼으려 했다가 황후의 반발에 부딪혀 실패했다고 하고 순제는 그 이후 자기 힘으로 숙청질을 해서까지 황태자 자리를 손에 넣은 걸로 보아 태자는 처음엔 (황후의 자식이든 다른 후궁의 자식이든 간에) 순제가 아닌 다른 황자에게 배정되어있었거나 공석으로 남아있다가 순제가 형제들을 상대로 피의 숙청을 시전하고 정복전쟁이라는 공로까지 세워서 스스로 차지한 걸로 보인다.[57] 즉, 서리꽃 닫는 문에서 소거가 언급한 외숙모는 자신의 오촌 당숙인 스바타 얀만의 부인인 성빈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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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눈 아래쪽에 눈가주름이 벌써부터 약간이나마 있는걸로 봐서 자체적으로 노안일 가능성이 조금 있으며 화장도 눈꼬리 끝부분을 진하고 탁한 색으로 강조하고 입술을 윤기 없는 진한 색으로 칠하는 방식으로 해서 더 나이들어보이는 인상이 된 것일지도 모른다.[59] 생모를 어머니가 아닌 '낳아 주신 분'이라 지칭하며 그 분이 그랬다더라, 정도로 언급하였다. 노기의 자식이라 어린 나이에 팔려나가면서, 혹은 노기 생모가 다른 곳으로 팔리면서 생이별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혹은 2황자가 서부에 와서 깽판을 칠 때 향리의 생모도 불려간 뒤 살해됐을 가능성도 있고.... 어느 쪽이든 생모에 대한 기억이 많지는 않은 듯하며,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부분을 자신의 습관으로 되새기면서 그를 기억하고자 하는 듯.[60] 혹은 딸마저도 없었다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