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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9-29 15:00:57

이호정(피겨 스케이팅)

<colbgcolor=#191970><colcolor=#ffffff> 이호정
Lee Hojung
파일:이호정2022.jpg
출생 1997년 3월 15일 ([age(1997-03-15)]세)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63cm
학력 남성초등학교 (졸업)
서문여자중학교 (졸업)
신목고등학교 (졸업)
성신여자대학교 (스포츠레저학과 / 학사)
종목 피겨 스케이팅
가족 부모님, 남동생
은퇴 2018년 4월 1일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선수 경력
2.1. ISU 공인 최고점수
3. 해설자 경력4. 여담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피겨 스케이팅 선수이자 現 SBS 피겨 스케이팅 해설위원이다.

2. 선수 경력

파일:201301061301776439_50e8f7601a694_59_20130106130302.jpg
피겨 스케이팅을 시작한 계기가 독특하다. 유치원 시절 인라인 스케이트를 굉장히 잘 타서 시합에 나가기만 하면 메달을 따는 모습을 지켜본 지도자가 선수 생활을 제안했는데, 모친은 인라인 선수보다는 쇼트트랙을 시키고 싶어 아이스 링크장에 이호정을 데려갔다. 그런데 막상 쇼트트랙 스케이트는 날이 길고 무서워서 비교적 안전해 보이는 피겨 스케이트를 타자고 시킨 것이 두각을 나타내면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선수 생활 시작은 싱글 선수였으며, 신혜숙 & 최형경 코치 밑에서 배웠다. 곽민정 이후 여러 1997년생 꿈나무들이 등장하던 시기에 김해진, 박소연과 함께 1997년생 3인방 유망주로 꼽히던 선수로, 싱글 스케이터 시절부터 표현력과 스케이팅 스킬이 좋은 선수로 유명했다. 주요 경력으로는 2011 주니어 세계선수권 23위, 두 차례 종합선수권 5위, 주니어 그랑프리 시리즈 4회 출전 등이 있다.

2014년 1월 종합선수권 이후 싱글 선수에서 아이스 댄스 선수로 전향했다. 2016년 11월 인터뷰에 따르면 전향한 이유가 부상이 잦아서 수술을 많이 하다보니 점프를 뛰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1] 2022년 4월 본인의 유튜브 Q&A 영상을 통해 2번의 발목 수술을 했다고 밝혔다.

아이스 댄스 선수로서의 경력은 이호정 / 감강인 문서 참조. 2018년 4월 1일 은퇴식을 가졌고, 대한빙상경기연맹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이후 스케이팅 스킬 보조코치 등을 맡으며 후배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2.1. ISU 공인 최고점수

<colbgcolor=#191970><colcolor=#fff> ISU 공인 최고점수
쇼트 42.37(2010 JGP 일본)
프리 80.49(2010 JGP 일본)
총점 122.86(2010 JGP 일본)

3. 해설자 경력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 선수로 참가하지는 못했지만 피겨 스케이팅 장내 아나운서로 활약했다.

2019-20 시즌부터 SBS 피겨 스케이팅 해설위원을 맡고 있다. 싱글과 아이스 댄스 선수 경력이 모두 있기 때문에 싱글 종목 뿐 아니라 페어와 아이스 댄스 해설에서도 기술 이해도가 높고, SBS가 ISU 피겨 스케이팅 그랑프리 시리즈 및 선수권 대회 전체 중계권을 독점하다보니 잦은 중계 경험에서 나오는 안정감이 타사 해설들보다 앞선다는 평을 받고 있다.[2]

이후 중계와 더불어 SBS의 스포츠 유튜브 채널인 '스브스스포츠' 피겨 스케이팅 관련 영상(2021년 4월 10일 이해인이 본 이해인, 2021년 5월 27일 ㅅㅅㅅ 배거슨 라이브 유영 등)에도 출연했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이현경 캐스터와 함께 피겨 스케이팅 중계를 맡아 안정적인 톤과 강단있는 멘트로 호평받았다. 특히 도핑 파문을 일으킨 카밀라 발리예바의 쇼트 프로그램 중계 방송에서 침묵하며 주목받았다. 경기 후에는 "도핑을 하고도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 경기에 해설을 할 수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열심히 훈련해 올림픽 출전권을 따낸, 정정당당하게 싸운 선수들의 노력은 뭐가 되는 건가"라고 발언했다.

4. 여담



[1] 서문여자중학교 재학 시절 주니어 그랑프리 출전 기사를 보면 어린 나이임에도 부상이 자주 언급되었다. 주니어 세계선수권 직후 인터뷰 기사에서도 마찬가지로 발목 부상이 언급된다. 주니어 시절 복숭아뼈 뼛조각 수술 이야기도 팬들 사이에서 돌았다.[2] 중계방송 중 대회에서 각종 돌발 상황들이 터질 때 이에 관련한 규정 설명을 차분하게 하면서 팬들에게 준비성이 탁월하다는 호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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