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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 센고쿠 시대 후기의 검술가. 에도 시대에 유행했던 일도류의 창시자지만 정작 본인은 일도류라 칭한 적이 없었다. 이름인 잇토사이(一刀斎)는 한 분야에 정통하거나 진리를 깨우친 사람이라는 의미로, 검술가로서는 검의 이치를 깨우친 사람이라는 의미이다.2. 생애
그야말로 모든 게 미스테리인 인물로 생몰연도에 대해서 태어난 해는 1550~60년대, 사망한 해는 1628년, 1632년, 1653년 등 다양한 설이 존재하지만 어느 설이든 꽤나 장수한 인물로, 아명은 마에바라 야고로(前原弥五郎)이며, 야고로 카게히사(五郎景久)라는 이름도 썼다. 출신지는 대체로 이즈노쿠니 이토(伊豆国 伊東 / 現 시즈오카현 이토시) 출신으로 보지만 카가노쿠니 카나자와(加賀国 金沢 / 現 이시카와현 카나자와시) 출신, 에치젠노쿠니 츠루가(越前国 敦賀 / 現 후쿠이현 츠루가시) 출신, 오오미국 카타타(近江国 堅田 / 現 시가현현 오츠시 북부) 출신설 등 다양한 이설이 존재한다.14세 때 격자 하나를 사용하여 미시마(三島 / 現 시즈오카현 미시마시)로 헤엄쳐 건너가서 미시마 신사에서 토다 잇포(富田一放)와의 시합에서 승리하여 신주에게 보검을 받았으며, 이 검으로 도적 7명을 죽인 후에 최후의 1명이 큰 항아리 안으로 숨자 항아리 째 도적을 양단해버렸다고 한다. 이 일화로 검은 카메와리(瓶割: 독깨기)라는 별명이 붙었으며, 도적이 아니라 제자인 오노 젠키(小野善鬼)와 오노 타다아키(小野忠明)가 서로 후계자 자릴 놓고 싸웠는데 타다아키가 독 안에 숨은 젠키를 독째로 베어 죽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카네마키 지사이(鐘捲自斎)로부터 검술을 사사하여 묘검, 절묘검, 금시조왕검, 독묘검의 오의를 전수받았으며, 지사이에게 배운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를 이겼다고 한다. 그 외에 자객에게 습격을 받았다가 역습할 때 불사도의 오의를 깨달았다거나 스루가 하치오만에 무의식적으로 적을 베어 몽상검의 오의를 깨달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다만 사나다 노부시게(真田信繁)의 원가가훈열집을 보면 토다 잇토사이(戸田一刀斎)라는 검호가 나온다. 토다 잇토사이는 이토 잇토사이의 스승 카네마키 지사이의 별명으로 두 사람의 일화가 섞였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다른 기록에는 이토 잇토사이의 2번 제자인 고토다 토시나오(古藤田俊直)[1]가 토다 잇토사이의 제자로 나와 둘이 동일인물일 가능성도 있다. 그 외에 야규씨의 기록에 따르면 잇토사이의 스승이 야마자키 쇼켄(山崎盛玄)[2]이라고 한다.
어쨌든 일생을 돌아다니며 시합 총 33차례를 벌여 한 번도 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 중에는 중국도의 명인과 시합을 벌였는데 부채로 목검을 든 상대와 맞섰다는 일화도 있다.[3] 그런데 이 일화는 제자 오노 타다아키의 생애를 다룬 수필집에도 나오며, 스승의 일화를 빌려썼거나 당시에는 호신용 부채가 존재했을지도 모른다.
그 외에 오오타니 요시츠구(大谷吉継)의 검술사범이 되었다가 그가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전사하자 낭인이 되어 은거했다는 얘기가 있다. 그 은거 장소가 시모우사 코가네하라(下総 小金原 / 現 치바현 마츠도시) 또는 탄바 사사야마(丹波 篠山 / 現 효고현 사사야마시)라는 설이 있다.
제자로는 앞에 나왔던 호조가 가신인 고토다 토시나오를 비롯해 뱃사공 출신으로 알려진 오노 젠키, 그리고 오노 젠키와 진검승부를 벌여 1번 제자 자리를 차지한 오노 타다아키 등이 있다. 일도류는 오노 타다아키의 오노파 일도류와 타다아키의 동생인 이토 타다나리(伊藤忠也)의 이토파 일도류로 전해진다. 훗날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가 배웠다는 북진일도류 역시 일도류의 한 파.
3. 대중문화에서
- 태합입지전5에서 카미이즈미 노부츠나, 츠카하라 보쿠덴에 이어 순수무력 98로 3위. 검호 칭호가 붙어 실질 무력은 108이다. 어전시합에선 주로 8강이나 준결승에 나오고, 시나리오에 따라 위의 두 검성이 세상을 떠났을 경우 검호 대회 최종 보스로 등극하기도 하지만 역시 위의 두 검성에 비하면 cpu 보정이 없기 때문에 뭔가 떨어지는 느낌.
- 노부나가의 야망 천도PK의 특전무장으로 등장. 여기서는 츠카하라 보쿠덴이 빠져서 무력 110으로 2위에 등극. 다만 카미이즈미 노부츠나, 야규 세키슈사이, 마루메 나가요시 등이 비연을 들고 나온것과 달리 귀창이라 뭔가 떨어지는 느낌을 준다.[4]
- 〈戦国武将姫-MURAMASA-〉라는 일본 모바일 게임에서 남자가 아닌 여자로 등장하며, 스핀오프 외전작인 〈戦国姫譚MURAMASA-雅-〉에서도 등장하였다.[5] 인기가 상당하여 입체화된 피규어 상품으로도 출시된 바 있다. 마찬가지로 '여성화한 전국시대 인물'을 소재로 한 코나미의 게임 〈전국 컬렉션〉에서도 등장한다.
- 검호3에서 '잇토사이의 후계자'라는 전용 스토리를 가지고 등장한다. 후계자라는 이름대로 제자로 들어갈 수 있고, 무관계한 타인이다가 나중에 베러갈 수도 있다. 제자로 들어갈 경우 미코가미 텐젠과 함께 동문이 되고 함께 수련하다가 잇토사이의 후계자가 되기 위해 사형제인 텐젠과 서로 1:1 승부를 하게 된다. 여기서 텐젠을 죽일 경우 이미 스승인 자신과 대등한 검호가 됐으니 독립하라하여 자기 류파를 세울 수 있다. 아니면 승부를 피하고 떠날 수 있는데, 잇토사이는 이를 알아채고 배웅해준다. 후자나 아예 제자가 안된 경우엔 오노 타다아키로 개명한 텐젠과 만나서 진검승부를 하게되고 잇토사이가 있는 절로 가서 진검승부를 하게 된다. 게임 내에서 자기 류파를 세울 수 있는 몇개 없는 루트의 주인공인데, 깨달음을 얻은 현자같은 포지션으로 나온다.
3.1. 배가본드
초명은 이토 야고로. 작중 50대로 오노 타다아키를 막부에 임관시킨 이후로 나온다. 카네마키 지사이의 제자였으나 자신이 스승을 뛰어넘었다는 판단을 내리고 사형제들은 물론 사부까지 꺾어버리고 유랑을 떠났고 이름까지도 잇토사이로 개명하게 되었다. 이후 거침없이 전국을 누비며 검호로 이름을 날린 호쾌하고 자유분방한 인물. 검호로 이름을 날린 계기부터가 스승 지사이를 이긴 사건이었는데다, 나라 지방의 야규 세키슈사이는 노환으로 거의 은거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어서 사실상 이 작품에서 칼싸움의 기술을 논하자면 최강자 포지션이다.후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무사 수행 중에 해변가 마을에 은둔 중인 스승을 찾아가게 되었고, 스승이 손수 키우고 있는 사형제의 아들[6]인 사사키 코지로를 보고 존경심을 표하고 떠난다. 와중에도 코지로가 청각장애를 앓고 있다는 것을 스승이 모른다는 사실을 알자, 여전히 자신 외의 다른 사람한텐 관심도 없으시다고 한 마디 비아냥거리는 모습을 보인다.[7] 몇 년 후 코지로가 장성했을 무렵 다시 이 고장을 찾아, 코지로를 데리고 유랑 여행을 떠나며 지사이 이후의 스승 노릇을 하게 된다.[8]
코지로와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헤어지고 행방이 묘연하였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죽었다는 소문, 은거했다는 소문 등이 돌고 있었고 한동안 등장하지 않다가 다리에 부상을 입고 야규가로 향하던 미야모토 무사시와 우연히 조우한다. 잇토사이는 한 눈에 무사시가 예전 세키가하라에서 마주쳤던 신멘 다케조임을 알아보지만 그 당시 정신이 없었던 무사시는 기억을 하지 못하고, 나중에서야 이토 잇토사이라는 이름을 대자 '그 유명인?' 하고 놀라게 된다. 야규 세키슈사이를 만나러 가는 무사시에게 먼저 대결을 제안한다. 무사시가 거부하고 잇토사이가 도발하는 상황이 몇 차례 되풀이된 후 승패를 결정하기 힘든 찰나의 싸움이 벌어진다. 이 때 다리를 부상당한 무사시가 불완전한 검격을 날리지만 손바닥치기로 무사시를 날려버렸고, 이미 사사키 코지로와 한 합 싸움에서 한 손의 엄지와 검지를 잃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9]하지만 그 와중에도 묵직하게 휘감기는 듯한 무사시의 일격에 겉보기보다 심각한 중상을 입었고 그를 높이 평가한다. 지금 그 일격을 가능하게 해준 코지로가 더 강하다는 첨언과 함께.[10][11]
작중 포지션은 최정상급 검호이자
무사시와 헤어져 아규 및 무사시의 태도를 돌이켜보면서 뭔가 깨닫는 듯 싶다가도, 이내 남은 한 팔로 칼을 힘차게 휘둘러 털어버리며 칼싸움이 재밌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야? 라고 끝까지 자신의 길을 관철하겠다는 태도를 보인다. 무사시에게 입은 검상으로 인해 금방이라도 죽을 상이더니 완전 회복 한듯하다.[14] 이후 등장은 없다.
3.2. 용과 같이 켄잔!
통칭 이토로 불리며 기온에서 최고의 기생집 츠루야의 호위꾼 겸 카게마와리로 일하며 기온에서 카게마와리로 일하려는 키류에게 여러가지를 가르쳐주며 선배 겸 친구로 지낸다. 허나 7장에서 싸우게 되는데, 키류가 무사시임을 직감하고 냇가로 불러내서는 냅다 칼질을 날린다. 이에 키류가 이도를 들어 막자 무사시임을 확신, 싸우게 되지만 패배하는데 그가 키류에게 싸움을 건 이유는 사사키 코지로에 대한 복수였다. 과거 사사키 코지로에게 가족과 문하생을 전부 살해당했기에 그에 대한 복수를 노렸던 것.[15]나중에는 불타는 츠루야에서 코지로와 맞서지만 패배하고, 기온 토지의 함정에 빠진 키류를 돕기 위해 나선다. 테마곡은 Baile con La Mariposa.
3.3. 천하제일 일본최강무예가결정전
니와 나가히데의 검술가로 등장한다. 올백머리에 안경을 쓴 온화한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1, 2차 시합이 끝난 후 오다 노부나가가 벌인 연회에 참가해 여러 검술가들을 손가락으로 훑다가 야규 무네노리를 가리키며 살기 가득한 미소을 보낸다.[1] 고토다 카게유자에몬 토시나오(古藤田勘解由左衛門俊直). 고호조씨(後北条氏)의 가신이자 일도류의 계파인 유심일도류(唯心一刀流)의 개조. 일반적으로 일도류는 오노파 일도류와 이토파 일도류의 양 계열이 유명하지만, 유심일도류(고토다 일도류라고도 함)까지 3계열로 나뉘었다. 단, 토시나오 본인은 '일도류'라고 칭했고, 유심일도류를 칭한 것은 증손자 고토다 토시사다(古藤田俊定)의 제자 스기우라 마사카게(杉浦正景)부터이다. 유심일도류는 이후 오가키번(大垣藩)에 임관하여 막말까지 검술사범 역을 지냈다.[2] 토다류(富田流) 3대 종가 토다 시게마사(富田重政)의 동생[3] 목도라고 해서 우습게 봐선 곤란하다. 잘못 맞으면 머리가 부서지는 위험한 무기다. 사사키 코지로도 (노를 깎아 만든) 목도에 맞고 사망했다.[4] 이는 해당 특기가 신카게류와 관련된 무장들에게만 주어지기 때문이다.[5] 해당 일본어 위키백과 문서에서 알 수 있듯이 외전작 쪽은 현재 서비스를 종료했다.[6] 지사이는 처음에 '사사키'라는 성을 듣고도 이토가 제 사형도 기억하지 못하는 야박한 인간이라고 생각했지만 이토 잇토사이는 기억하고 있었다. 정작 자신의 제자들의 얼굴까지 까먹은 것은 이토에게 '자신 이외의 다른 사람에게 관심도 없다'는 평가를 들은 지사이 본인 뿐이었던 것.[7] 스승 시절에도 자신의 야심을 꿰뚫어보긴커녕 자신의 검의 세계에 갇혀 지지부진했던 모습을 떠올린 듯하다.[8] 다만 본인은 남을 가르칠줄 모른다고 한다. 코지로를 데리고 다니면서도 딱히 가르친건 없고 '내가 되어라'라면서 자기가 과거에 했던짓을 그대로 반복하게 했을 뿐이니... 실제 역사에선 이 양반의 제자가 막부의 검술 사범까지 되어 유파가 융성하였고 그 한 갈래가 후에 현대 검도의 전신으로까지 발전했다는걸 생각하면 참 묘한 얘기.[9] 더군다나 그것은 세키가하라 전투 직후다. 잇토사이도 더 젊었을 시절이고 코지로도 막 전장을 헤치고 나왔던 직후였다[10] 정작 그래놓고는 속으로는 다리가 불완전해 제대로 휘두르지도 못한 무사시의 검이 너무 빨라 자기 검은 뽑지도 못하고 손바닥으로 밀치는 게 전부였다고 생각한다.[11] 정확히는 무사시에게 달려들어 숨긴 손으로 시선을 유도하고 순식간에 검을 뽑아 베려고 했으나, 그러기도 전에 이미 무사시가 간격 안으로 파고든 이토사이를 검으로 찌르고 있었다. 이토사이가 그에 놀라 검을 뽑는 건 포기하고 허겁지겁 손바닥으로 무사시를 밀친 것. 간격 재는 기술부터 검놀림의 속도까지 다리도 불편한 무사시가 모든 면에서 이토사이를 압도했다.[12] 다만 이전에 코지로에게도 똑같이 천점을 줬고 당시에는 손이 멀쩡한 상태였다. 무사시에게 천점을 주면서도 다친 손을 보여주며 이것이 있기에 얻은 천점이니 코지로가 더 강하다고 첨언한다.[13] 그런데 이때 무사시도 다리 부상 때문에 실력이 완전히 떨어져 있었으니, 제대로 된 실력 평가를 받은 건 아니다.[14] 치료법이 가관인데, 말똥을 푹 퍼서는 상처에 덕지덕지 발라 치료했다(...). 당연하지만 똥은 세균 덩어리고 그걸 상처에 바르는건 실제로는 치료는커녕 무조건 상처를 악화시킨다.[15] 도쿠가와 가문의 제의를 거절해서 다른쪽으로 넘어갈까 조치를 취한 것. 그 때 이토는 밖에 있었기에 화를 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