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ito Repubblicano Italiano | |
약칭 | PRI |
한글명칭 | 이탈리아 공화당 |
상징색 | 초록색 |
사무총장 | 코라도 데 리날디스 사포나로 |
창당 이전 | 역사적 극좌파 |
창당일 | 1895년 4월 21일 |
이념 | 자유주의 친유럽주의 역사적: 마치니주의[1] 공화주의 반교권주의 |
정치적 스펙트럼 | 중도 역사적 : 좌익[2] |
당사 | Via Euclide Turba, 38 00186, 로마 |
정당 연합 | 시민의 약속 |
청년 조직 | 공화당 청년 연맹 |
기관지 | 공화당의 목소리[3] |
상원 의석 수 | 0석 / 200석 |
하원 의석 수 | 0석 / 400석 |
웹사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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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탈리아 왕국에서 공화주의를 지향했던 대표적인 정당으로 1946년 이탈리아 공화국 수립 이후에는 자유주의 성향의 중도 정당이 되었다.현존하는 이탈리아 정당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유지되고 있는 정당이다.
2. 역사
주세페 마치니의 사상을 계승한 역사적 극좌파의 일부가 1896년에 모여서 창당했고, 1897년 총선을 통해 25석을 확보하며 원내4당으로 이탈리아 왕국 하원에 진출했다그 뒤로도 중간 정도의 의석 수를 획득하였고, 1911년에 일어난 이탈리아-튀르크 전쟁을 반대하는 운동을 가진 적 있었다.
1차 대전 이후로는 소수 정당으로 전략하던 도중에 무솔리니의 독재가 들어서면서 반파시즘 운동을 전개하면서 지하 정당으로 활동을 가졌다. 2차 대전 패전으로 인해 이에 대한 책임으로 이탈리아 왕국 폐지와 공화운동을 벌었다. 그리고 1946년 국민투표 통해 공화국 전환가지는데 큰 역할을 가졌다.
그럼에도 제6, 7당에 머무지만, 알치데 데 가스페리 내각이 들어서자 첫 연립정부에 참여하게 되었다. 가스페리 4차 내각까지 지내다가 신임과 보완 형식으로 기독교민주당을 지지하다가 알도 모로의 유기적 중도좌파(Centro-sinistra organico) 연정으로 다시 집권하게 되었다. 그 뒤로도 유기적 중도좌파 속하는 동안에 내각에 참여하다가, 1981년에 기민당의 아르날도 포를라니 총리가 각종 스캔들에 시달리다 물러나자, 조반니 스파돌리니 대표가 기민당의 양보를 받아 연정 내에서 소수정당인데도 불구하고 총리가 되는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기민당이 자신들에게 불리해진 여론을 가라앉히기 위해 임시로 맡겨둔 거나 다름없었기에, 1년 반 만에 기민당의 아민토레 판파니에게 총리직을 넘기고 물러났다.
그러다가 1992년에 시작된 마니 풀리테로 인한 정계 개편 속에서 몰락하게 되었고, 단일정당으로서의 생존이 어려웠기에 정당연합 참가를 택했는데, 한동안 중도좌파 연합과 손잡다가 전진 이탈리아와 손잡게 되었다.
2008년 총선 이후로는 의석을 획득하지 못하고 원외정당에 머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