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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규/선수 경력/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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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1차 FA (2013 시즌 후)3. 2차 FA (2018 시즌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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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용규의 FA를 정리해놓은 문서다.

2. 1차 FA (2013 시즌 후)

'몸상태가 좋지 않음에도 FA 일수를 맞추기 위해 KIA가 지명타자로 꾸준히 출전시켜주어 배려해줬다' 고 알려졌으나 이건 사실과 다르다. 그 해 6월달에 이미 FA 자격을 획득하였고, 종전에 모아놓았던 국대 소집일수에 의한 FA 자격일수 감소 권리까지 사용하면서 애진작에 FA 자격을 획득하게 된다. 그럼에도 이용규는 부상을 안고 8월달 경기까지 뛰었다. 6월달까지 이용규는 대부분의 경기를 중견수로 출전하였으며 지명타자로 출전한 경기는 단 5경기에 불과했다.# 이는 이용규 본인이 직접 인터뷰에서 밝힌 사항이다.본인 인터뷰 사실 6월달에 시즌 아웃하고 수술하는게 FA를 위해서라면 더 이성적인 선택이지만[1] 그해 KIA는 선수부상이 속출하면서 공백을 메꾸기 위해 이용규를 DH로 쓰게 된다. 엄밀히 말하면 선수 본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팀을 위해 수술을 미루는 부담을 감수하며 경기를 뛴 것.[2]

구단측과 이미 물밑협상을 했을 가능성도 점쳐졌으며, 사실상 KIA에 잔류할 확률이 높아졌다. 본인도 10년 동안 뛴 KIA에 남고 싶다라고 말한 걸 보면 구단에서 어느 정도 체면만 세워준다면 잔류쪽에 도장을 찍을 것으로 보였으나...

“내 마음이 떠났다” 이용규 폭탄선언

스톡킹에서 밝혔는데 어떤 기자가 '어디냐?' 라고 묻고 '지금 서울이다.' 라고 했는데 '광주 안가시냐?'라고 묻자 자기는 '아니 엊그저께 왔다.'면서 이걸 '지금 현재로선 광주 갈 일 없다' 라고 기사를 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고 말했다.[3]

구단의 대우에 대해 상당한 섭섭함을 토로하면서 팀에서 마음이 떠났다는 기사가 나왔다. 이용규 측에 의하면 이제까지 단 한 번도 구단의 계약안이 무엇인지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다름아닌 본인이 15일에 구체적인 조건을 제시받기로 구단측과 약속을 해놓고 갑자기 판을 깨고 언플을 한다며 KIA 팬들 사이에서는 여론이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했다.

결국 11월 16일, 우선협상 마지막날 최종 협상이 결렬되면서 외부 FA에 나서게 되었다.[4]

11월 17일 새벽 총액 67억 원(계약금 32억 원, 연봉 7억 원, 옵션 7억 원)의 금액으로 한화 이글스로 이적하는 것이 발표되었다. 그리고 이 기사는 성지가 되었다. 차후 스톡킹에 출연하여 실 수령액 72억에 계약하였다고 밝혔다.[5][6]

이용규의 아내인 유하나가 블로그에 그간 지내왔던 KIA팬들에게 섭섭함을 토로하며 블로그를 닫았다.[7]

보상선수로는 한승택이 지명되었다.

이후 KIA팬들이 이용규가 타석에 서거나 수비를 하기 위해 외야에 나오면 야유를 퍼부었다는 주장도 있으나, 오히려 타석에 섰을 때 기립박수를 쳐주고 안타를 친 후 이용규의 이름을 외쳤을 정도로 오프라인 여론은 호의적이었다. 이적 후 첫 광주 경기, 첫 타석, 첫 안타 영상은 14년 4월 15일 경기 영상 12분 10초부터 볼 수 있다. 다만 온라인 여론은 이용규에 대한 인격모독성 댓글이 나도는 등 매우 좋지 않았던 건 사실이다. 당장 유하나가 악성 댓글을 못 견디고 블로그를 닫아버린 것만 봐도...

이는 다음날인 16일 경기에서도 마찬가지로 심지어 MVP 인터뷰 중에 "이용규 화이팅"이라고 외쳐주는 팬도 있었다. 이는 16일 경기 하이라이트 및 MVP 인터뷰 2분 25초부터 볼 수 있다.

3. 2차 FA (2018 시즌 후)

송광민, 최진행과 함께 FA신청을 했지만 구단에서 출장 경기수, 수비이닝 등 여러 옵션들이 포함된 계약을 제시했다고 전해진다. 2018 시즌 한화 야수진 중에선 꽤 활약을 했으나 리그 전체 외야수들 중에선 하위권이고,[8] 구단이 과거와는 달리 온정주의를 배제한채 노장 대상 내부 FA에 매우 소극적인지라 2차 대박은 어려워보였다.

해를 넘어갔음에도 FA 협상은 평행선이었다. 그래도 최진행과는 달리 단장이 간간히 인터뷰로 언급해주는 걸 보면 아주 희망이 없진 않은 듯. 일단 인터뷰에서는 계약 기간에 대해 아쉽다고. 송광민의 인터뷰로 인해 뜻밖의 재평가를 받았다. 아무튼 팬들도 재계약을 원하고 있으니 계약 기간 문제만 해결되면 조만간 재계약을 체결할듯.

그리고 2019년 1월 30일 2+1년 계약금 2억, 연봉 4억, 옵션 4억 등 최대 26억에 극적으로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불과 2달도 안 되어서 윗 항목의 사건이 터져 버렸다.[9]


[1] 선수에게 입찰하려는 구단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아픈 상태로 수술을 미루면서 꾸역꾸역 출장한 선수와 일찌감치 수술하고 쉬면서 재활한 선수 중 어느 쪽을 더 선호하겠는가?[2] 사실 FA를 배려해서 등록일수를 채워준다는 것 자체가 프로야구판에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다. FA란 말 그대로 '자유계약' 신분인데, 돈 몇푼 차이로 다른 팀으로 홀라당 떠나버릴 기회를 만들어주기 위해 구단이 도와준다는 것이 애초에 말이 안 되기 때문.[3] 서울로 간 이유는 본가에 있는 부모님을 뵈러 갔었다고 설명했다.[4] 후에 스톡킹에 따르면 3일동안 일식집에 밤에 시간 낸 것도 모자라 왜 만난거냐고 하면서 실망감을 표출했다고 밝혔다.[5] 한화와의 첫 FA 협상 당시 화끈했다고, 그리고 완전히 재는게 없었다고 스톡킹에서 밝혔다.[6] 어머니의 고향이 청주여서 어머니의 고향팀으로 오게 된 셈이다. 아버지 고향팀에서 어머니 고향팀으로 옮겼다.[7] 당시 방명록 등에는 이용규와 그의 아내에 심한 욕설도 나돌았었다.[8] swar기준 팀 내 야수 중 3위, 리그 500타석 이상 외야수 20명 중 19위.[9] 다만 정근우조차도 옵션을 못채웠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옵션을 전부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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