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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5 02:43:58

이시노마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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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노마키시 / Ishinomaki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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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市旗)문장(紋章)}}}
기본 정보
국가일본
지방도호쿠
도도부현미야기현
면적554.58km²
인구134,541명[1]
시장(市長)사이토 마사미(斎藤正美;
[[무소속(정치)|
무소속
]])
중의원(衆議院)아즈미 준(河野太郎;
[[입헌민주당(2020년)|
입헌
]], 미야기 5구)
시의회 (30석)
의장(議長)오모리 슈이치(大森秀一;
[[무소속(정치)|
무소속
]])
회파뉴 이시노마키 (13석 / 43%)
창생회(創生会) (9석 / 30%)
공명회 (3석 / 10%)
일본 공산당 (2석 / 7%)
무소속 (2석 / 7%)
결원 (1석 / 3%)
상징
시화철쭉(ツツジ)
시목흑송(クロマツ)
홈페이지

1. 개요2. 동일본 대지진 당시3. 지리4. 출신 인물

[clearfix]

1. 개요

미야기현 동부에 있는, 카미가와 하구에 위치한 미야기현 북동북 지역을 대표하는 도시. 다테 번의 통치하에는 수운 교통의 거점에 위치한 "오슈 최대의 쌀 집적 항구 '로 전국적으로 알려진 교역 도시이며, 메이지 시대부터는 킨카산(金華山) 연안 어장을 배경으로 낚시 마을로 번창하여 현재도 킨카산 해역은 세계 3대 어장의 하나로 꼽히고, 가다랑어, 멸치 · 고등어 등의 수산자원의 보고가 되고 있다. 또한 1964년에 신산업 도시의 지정을 받은 후 이시노마키 공업 항구가 개항하는 등 공업 도시로 발전해 왔다.

2. 동일본 대지진 당시

통계에 의하면 2011년에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 당시 가장 많은 사망자가 나온 지자체이다. #[2] 이렇게 사망자가 많은 이유는 하필 인구 밀집지역이라 대피행렬로 인한 정체가 벌어진 것도 크지만 무엇보다 이곳 주민들의 안전불감증이 가장 컸다.


대부분 쓰나미의 위력을 얕잡아 보다가 대피가 늦어져 화를 당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왜냐하면 주민들은 과거에 유사 사례가 전혀 없었던 강력한 동일본 대지진급의 쓰나미 경험이 전국적으로도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3] 때문에 높은 곳으로 대피하라는 무선 방송이 마을 곳곳에 울림에도 불구하고 '어차피 해안가에만 안 가면 되겠지'라고 안일하게 생각하거나 또는 '설마 쓰나미가 진짜 오겠어?'라는 생각하다가 상상을 초월하는 높이의 쓰나미가 거주지로 밀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서야 뒤늦게 대피를 하다가 결국 휩쓸려간 주민이 많다.

심지어 이 와중에 대피하다가 자택에 통장이나 인감도장 등의 중요한 물건을 가지러 되돌아갔다 쓰나미에 휩쓸려 사망한 주민들도 다수를 차지하며, 지진에 의한 패닉으로 혼란에 빠져 머리가 돌아가지 않아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한 것도 있다.

해안가 저지대에 있던 '미나미하마쵸(南浜町)'라는 동네가 특히 궤멸적이었는데 이 곳 역시 인구밀집지역이라 쓰나미가 마을을 덮쳐오기 시작한 시점에도 이곳 주민의 절반 이상이 아직 대피하지 못해 쓰나미에 휩쓸려가게 되어 이시노마키시내에서도 사망자 밀도가 가장 큰 지역이다. 결과적으로 주민들과 함께 마을 전체가 사라졌다. 현재 이 곳은 쓰나미 기념공원이 조성되어 미야기 동일본 대지진 쓰나미 전승관도 신설되어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이시노마키시 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동일하여서 훗날 쓰나미경보가 발령될 경우 방송사마다 '동일본 대지진을 기억하여 주십시오'라는 문구를 추가하여 주민들에게 상기시킨다. 또한 인터넷 등을 통해 쓰나미에 대한 자료가 전국 곳곳으로 퍼지게 되어 경각심이 높아지게 되어 2024년 이시카와현 노토 지방 지진 쓰나미 당시에도 신속한 대피가 이뤄지게 되어 쓰나미로 인한 사망자 비율이 많이 줄어들었다.[4]

이 곳에 위치한 히요리유치원에서 원아들을 버스에 태워 대피하다가 쓰나미에 휩쓸려 사망한 안타까운 일도 있었고 오카와초등학교에서도 대피가 늦어져 학생 84명이 그대로 쓰나미에 휩쓸려 사망한 일도 있었다.#

3. 지리

일본 미야기현 북동북부에 위치하며 미야기현 센다이시 도심에서 약 40~45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4. 출신 인물



[1] 추계인구 2023년 6월 1일 기준.[2] 이어서 사망자 수 2위는 리쿠젠타카타시, 3위가 케센누마시이다. 추가로 건조물 피해수는 2위로 1위는 센다이시이다.[3] 영상 매체로는 남아있진 않지만 관동 대지진 당시의 쓰나미도 동일본 대지진급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4] 이 쪽은 쓰나미보다는 건물이 붕괴되면서 사망한 사망자 비율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