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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5 19:37:02

이상정(프로게이머)

前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파일:/image/236/2012/04/13/1334288104_4.jpg
Cornsalad
이상정 (Lee Sang-jung)
출생 1989년 2월 7일 ([age(1989-02-07)]세)
서울특별시 성동구[1]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광남고등학교 (19회 / 졸업)
강원대학교 (정치외교학 07 / 학사)
ID Cornsalad#KR1 #
포지션 파일:롤아이콘-포지션-미드.svg 미드 | 파일:롤아이콘-포지션-탑.svg
소속 MiG(2011.??.??~????.??.??)
Team OP(????.??.??~2012.05.17)
LG-IM(2012.05.07~2012.10.17)
Xenics Storm(2012.10.21~2012.11.12)
Team OP(2012.11.12~2013.01.??)
병역 대한민국 육군 병장 만기전역[2]
(2013년 9월 3일 ~ 2015년 6월 2일)
파일:SOOP 아이콘.svg[3]

1. 개요2. 플레이 스타일
2.1. 전설의 미드 AP 마스터 이
3. 개인방송4. 여담
4.1. 은퇴 이후 근황

[clearfix]

1. 개요

파일:lsjcsd.jpg
Lee "Cornsalad" Sang-jung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Team OP 소속 미드 라이너. LG-IM 소속 탑 담당이자 WCG 한국선발전 시절 Mig 탑 담당이자, 제닉스 스톰 미드 담당이기도 하였다. 올라운더 성향이지만 미드라이너로 유명하며, 특히 카사딘 장인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당시 LG-IM의 서포터였던 타투가 개인사정 상 나올 수가 없어서 임시로 Team OP 시절 친분이 있던 라일락, 파라곤이 있는 IM팀에 탑솔러로 합류하게 되었다.[4] 콘샐러드의 합류로 LG-IM팀은 시드 보유권자가 3명이 되어 다음 서머시즌에 예선없이 바로 본선에 합류하게 된다. 이후 타투가 프로게이머로서 활동을 포기하자 시즌 2 월드 챔피언십 한국대표선발전까지 활약하였다. 2012년 10월 17일 팀이 서포터인 Livy를 영입하면서 임시 멤버였던 그는 나가게 되었다.

2012년 10월 21일 Xenics Storm의 미드로 입단하였다.# 그러나 한 달도 채 안 되어 2012년 11월 12일 이전 스톰 멤버들과 함께 스폰서인 제닉스와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계약 해지 하였다. 그럼에도 콘샐러드 개인의 천부적인 재능은 높게 평가되어 본인이 하고자 한다면 다른 팀에서 커리어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았으나, 콘샐 본인이 프로게이머에 대한 의지가 전혀 없기 때문에 더이상 프로게이머 콘샐러드를 보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리고 한동안 개인방송을 하다가 개인사정상 할 수 없게 되었다고 밝혔고 이후 군대를 갔다고 한다. #

2. 플레이 스타일

북미 시절부터 더티파밍을 해서 이 부분의 원조라고 한다.

챔프폭이 엄청나게 넓다는 점이 프로 시절에 매우 큰 장점으로 꼽혔다. 아래 나온 미드 AP마이도 메타에 무관하게 일정 수준 이상의 리턴은 보장하는 실력과 매우 넓은 챔프폭에서 기인한 것.

그래서 LG-IM 시절 탑을 맡긴 했으나, 본래 미드에서의 모습보다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CLG EU 전에서 탑 모르가나를 선택했지만 싸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콘샐러드 선수는 무슨생각을 하는걸까요?라는 김동수 해설의 말에, '콘도무생', '콘무생'이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이후 2012년 10월 23일, 중국 리그인 SWL에 스톰의 미드라이너로 이적후 첫 공식전을 가졌는데, 계속된 재경기와 핑폭 때문에 결국 멘붕하고 영관과 포지션 체인지를 했고 자르반 서포터로 푸짐하게 싸대며 팀의 탈락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어찌다 심했던지 '프로 게이머가 아니라 프로 트롤러', '콘샐 리폿요'라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 이후 대회가 끝난 이후 개인 방송을 하는 등 프로 의식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함께했다.

그러나 OLYMPUS the Champions Winter 2012-2013 개막전 아주부 프로스트전 1경기에서 트위스티드 페이트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MVP를 받았다.

어느 포지션으로 가든지 수준급 이상으로 소화할 수 있는 올라운더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유독 서포터만큼은 트롤링 수준으로 못한다. 도수는 콘샐을 서포터로 보내느니 자기가 서포터를 하겠다고 할 정도. 같은 이유로 콘샐이 LG-IM에 있을 때 라일락이 서포터를 맡기도 했다.

아래 팀 동료였던 Locodoco가 그를 평가했던 말처럼, 전형적인 게으른 천재 스타일. 프로게이머 활동도 매우 열성적인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경기 자체를 진지하게 임하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며 오히려 해줘야 할 때는 해주는 성격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종합적으로 봤을 때 결국 프로에 큰 뜻이 없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1년 만에 프로판을 뜨고 일반인으로 돌아간 케이스.

2.1. 전설의 미드 AP 마스터 이

"저는 팀이 딜하는 거에 알파만 얹었을 뿐인데... 쿨이 돌더라구요."[5]

Team OP 소속으로 출전한 11월 21일 나진 쉴드전에서 그의 장점인 챔프 선택 폭이 넓다는 것을 증명하며, 나진이 밴카드 3개를 모두 콘샐에게 쏟아부으며 그의 픽(카서스, 애니비아, 트위스티드 페이트)을 봉인하자, 조커픽으로 뽑은 AP 마스터 이를 이용하여 팀을 승리로 이끄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2경기 이상정의 KDA는 9/1/6 그야말로 살인전차.

여타 마이충과는 달리 한타 때 뒤에서 눈치를 보다가 적들의 피가 적절히 반피로 빠졌을때 궁 켜고 알파 돌리고 초기화, 알파 돌리고 초기화, 적절한 명상탱, 비닐캣의 소나가 명상을 끊기 위해 크레센도를 마이 하나만을 위해 썼으나 정확한 존야로 회피하는 모습까지 선보이며 미드 AP 마이로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뉴메타 성애자 김동준"챔피언이 100명이 넘어가는데!! 좋은 챔피언이 몇명만 있겠습니까!!" 라며 목놓아 마스터 이상정를 외쳤고, 그 날, 모든 롤 커뮤니티는 그야말로 폭발했다. 또한 랭크게임도 폭발했다 이 경기 덕분에 정글 AD마이보다 인지도 낮던 미드 AP마이가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하는 모두가 원치않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콘샐러드의 업적 덕분에 12월 7일 Team OP의 경기에선 마이가 밴이 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6]

마이의 명상이 하향당하고 스킬이 변경되면서 AP마이는 영원히 사라졌지만, 입대 전 개인방송에서 리메이크된 마이로 미드를 가서 한게임 2펜타를 기록하며 명불허전 마이 장인임을 입증했다. 일격필살이 AD가 되었다면 미드 AD마이를 하면 되지! 그리고 약 2년 반 후 롤챔스에서 실현되었다

경기편집영상그 당시 선수들의 오더를 들을수 있는 OFF THE RECORD. 딜 몰아서 한번만 빨리 죽이면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마이를 픽했다고 한다.

3. 개인방송

전성기였던 시즌2~시즌3 시절에 거의 매일같이 솔랭 방송을 했다. 롤챔스를 경험한 최상급 실력의 롤 프로였던데다 각종 유명인이나 프로게이머를 만나는 천상계 수준이었고, 라인이나 챔피언을 가리지 않고 여러가지 플레이를 보여주었기에 인기가 높았다. 랭게임에서 플레임, 엠비션 등 인기 프로게이머들을 만나면 각종 커뮤니티에 화제가 되면서 시청자가 급증하기도 했다.

지금은 롤 프로게이머들이 아예 계약을 하고 방송을 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그 당시에는 프로들은 방송을 거의 하지 않았으며, 가끔씩 개인방송을 켜서 화제를 일으키던 아주부 시절의 건웅, 클템, 매라 등도 CJ 스폰서가 붙으면서 방송을 하지 않게 되었다. 애초에 콘샐을 제외한 롤BJ들은 거의 대부분 아마추어였고, 인기가 많은 롤 BJ들은 풍월량, 홀스, 불양으로 대표되는 일명 못하는 것으로 유명한 심해의 용왕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런 방송에서 롤을 못한다고 까면 BJ가 답답하면 콘샐방 가던가!라고 화를 내며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개인 방송인 치고는 멘탈이 좋아서 팀이 던져도 절대 욕을 하지 않고 약간의 아쉬움만 이야기하는 편이라 욕에 지친 시청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오 마이 갓, 이게 뭐야 이렇게 싸우면 안되는데... 목소리 톤이 잔잔하고 좋은 BGM을 깔아주어서 수면방송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또한 대부분의 프로게이머들과 친분이 있다보니 당시 최고 수준의 프로게이머들과 채팅으로 농담을 하는 것도 방송의 재미였다.

4. 여담

프로레벨에서 활약한 기간이 짧았고, 그렇게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던 것에 비해 위의 AP 마이를 비롯해서 비주류 챔피언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했고, 꽤나 임팩트가 있는 장면을 많이 써내려가서 이른바 재능있던 천재형 선수를 꼽을 때 푸만두와 함께 단골로 거론되는 선수이다. 클템같은 경우에도 본인이 선수, 해설하면서 봐왔던 선수들 중 천재적인 선수 5위로 그를 뽑았다.[7]

나이스게임TV 예능 프로그램 중 하나인 롤러와에 나온 바에 따르면 콘샐러드는 LG-IM 프로생활 시절 팀과 같이 합숙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애초에 임시 멤버였다고도 하지만 애초에 본인이 합숙하지 않는 조건으로 팀에 들어간 것이라고 했는데, 게임을 할 때 무조건 담배를 펴야하기 때문에 PC방에서만 롤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으며, 또한 합숙까지 하면서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기는 싫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같이 호흡을 맞출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번 제닉스 스톰에서도 윈터 시즌만 활동할 것이라고 개인 방송에서 말한 적이 있다. 말 그대로 용병인 셈. 애초에 본인이 프로를 지향하지 않다보니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인다.

최윤섭에 의하면 재능과 센스 모두 세계 정상급 게이머지만, 집안이 워낙 좋아서 굳이 프로게이머로 성공하는 것을 고집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노력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전형적인 게으른 천재 스타일.

상당한 골초라고 한다. 최윤섭이랑 같이 PC방을 갔었던 적이 있었는데 이상정이 입에 담배를 물고 트리플킬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자 최윤섭은 굉장히 놀라워했다고 한다. 로코도코가 트위터로 올린 사진을 자세히 보면 담배꽁초가 쌓여있다.

2월 1일 본인의 개인방송에서 부자설과 골초설이 질문으로 계속 올라오자 소문의 진원지를 찾던 도중 이 항목으로 들어왔다. 이후에 방출러들을 검색했다. 검색한 인물들은 로코꼬치 어쨌거나 바뀌지 않은 것으로 보아 부자도 골초도 맞는 것으로 보인다.

여담으로 그의 개인방송에서 절대 ㅇㅅㅇ을 치지 말 것!!! 콘샐 본인이 제일 싫어하는 이모티콘 채팅이라 바로 강퇴 후에 블랙을 먹을 수도 있다. 어느 날 ㅇㅅㅇ가 도배됐을 때 콘샐이 친히 다 블랙 먹이면서 니들 왜 이러니? 내가 싫어하는줄 알면서 왜들 그래? 뇌에 주름이 팍팍 펴졌니?라고 할 정도로 싫어한다.

9월 3일 개인사정으로 인해 방송을 중단한다고 방송에서 말했다. 국방부 퀘스트를 수행하러 간다고. 훈련병 콘샐 ㅠㅠ

군생활이 힘든지 마타와 임프와 데프트에게 인터뷰를 하게 되면 본인을 언급해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국방부 퀘스트를 수행하는 와중에도 휴가때는 틈틈히 솔랭을 하는지 천상계 개인방송이나 나이스 게임TV 방송에 종종 게임을 하는 모습이 포착된다. 그러나 날짜로 봐선 꼭 그가 한다고 볼 수도 없어 보인다. 사지방에서 하고 있을려나

그리고 2015년 06월 02일 화요일 국방부 퀘스트를 마치고 전역 을 했다.

한국 롤판의 개족보 메이커로 유명하기도 한데, 로코도코는 물론이고 자신보다 3살이나 어린 구본택(엑스페션)과도 친구로 지내기 때문에 롤계의 주백통으로 통하기도 한다.

2015년 11월 7일 아프리카tv로 복귀했다. 군대를 가기 이전에도 일주일에 3~4번 방송을 했는데 오랜만에 롤방송을 킨 콘샐러드를 시청자들이 환영해주었다.콘샐이 전역하니 내가 군대갈 시간 전역후에도 방송을 킨적이 있지만 롤방송이 아닌 노마이크 음방이었고 롤방송을 킨건 전역후 처음.

프로게이머 활동 당시 게임 실력도 출중한데 고학력자라는 썰이 팬덤 사이에서 돌기도 했다. 당시 한양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다닌다는 말이 있었으나, 은퇴 이후 콘샐이 개인방송에서 이 문서를 직접 읽으며 '정치외교학과는 맞는데 한양대는 아니다.'라고 일축하며 한양대 썰은 사실무근이라 밝혔다. 이후 본인 SNS와 주변 지인들에 의해 강원대학교를 졸업한 것으로 밝혀졌다. 학번과 나이, 그리고 그의 입대시기를 미뤄봤을 때 프로게이머 활동 당시 이미 졸업한 상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4.1. 은퇴 이후 근황

2019년 이후에는 나이도 나이지만 롤이라는 게임 자체에 흥미가 떨어진 것으로 보이며, 방송도 접은 것으로 보인다. 간간히 주변 지인들을 통해 업데이트되는 소소한 근황들을 제외하면 아무런 소식이 없는 상황. 그래도 롤은 간간히 플레이하는지 아이디 전적검색을 해보면 2020년 기준 현재까지도 전적이 남아있다. 게임한 판 대부분이 무작위 총력전인 것을 봐서는 칼바람 유저로 즐겜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랭크 게임의 경우 다이아몬드 티어에 주차만 시켜놓고 거의 플레이하지 않는다. 그래도 전 프로 짬밥은 어디 안 가는지, 랭크 게임을 거의 플레이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다이아 구간에서 승률이 70%~80%를 상회한다.

2022년 말 일본 도쿄 여행 중 오모테산도역 부근에서 촬영한 밤거리 사진을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으로 업로드하며 생존신고하였다.

2023년까지는 솔랭 기록이 남아있으나, 2024년부터는 돌리지 않고 있다. 무작위 총력전 역시 이틀에 한 번 꼴로 판수가 많이 줄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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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광진구[2] 제25보병사단 제72보병연대 GOP 출신이며, 특기는 화생방. 당연하겠지만 예비군도 모두 마쳤으며 2024년 기준 민방위도 5년 가량밖에 남지 않았다.[3] 2016년 하반기 이후로 방송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4] 이전 탑라이너였던 라일락이 서포터를 담당하게 되었다.[5] 2012년 올림푸스 OGN LOL Champs Winter 12강전 A조 Team OP vs 나진 쉴드 2경기에서 미드 AP 마스터 이로 경기를 캐리하고 MVP로 선정된 후 밝힌 소감. 참고로 옆에 함께 인터뷰하던 신인 원딜러는...[6] 미드 마이 때문에 밴을 썼다기 보다는 팀의 에이스인 콘샐러드를 집중견제하기 위한 밴이었다.[7] 참고로 콘샐보다 위에는 푸만두, 프레이, 라일락, 건웅이 뽑혔다. 라일락을 제외하면 모두 우승자출신인데다가, 롤 프로씬에 이름을 꽤 크게 남겼던 선수들인 만큼. 적당한 환경과 진지한 노력이 더해졌다면 우승을 노려볼만한 그릇이었다는 평가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