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의 역대 국왕 | ||||
초대 이정기 | 2대 이납 | 3대 이사고 | 4대 이사도 |
<colbgcolor=#ff6600><colcolor=#ffffff> 제 제 4대 왕 이사도 | |
출생 | 알 수 없음 |
사망 | 819년 |
성씨 | 이(李) |
휘 | 사도(師道) |
재위연도 | 807년 ~ 819년 |
전임자 | 이사고 |
후임자 | 없음 |
1. 개요
李師道(? ~ 819)
고구려 유민 출신의 당나라 평로치청 번진 절도사로, 이납의 3남이었다.
2. 생애
그림 그리기와 피리 불기를 좋아했고 지밀주사를 지내다가 806년에 형 이사고가 죽자 고목과 이공도가 밀주에서 맞아들여 형의 뒤를 이어 절도부사가 되었으며, 당헌종으로부터 8월에 평로유후로 임명되었고, 지운주사에 임명된 10월에는 절도사가 되었다.
회서 번진의 오원제가 헌종의 삭번정책에 맞서는 반란을 일으켰다. 당시 이사도는 평소에 자객과 간사한 사람 수십 명을 기르면서 넉넉하게 물자를 공급했는데, 하음의 전운원에 강•회의 쌀이 쌓여있어 몰래 들어가 이곳에 불을 지르고, 동도 낙양에서 나쁜 사람 수백 명을 모집해 시장을 약탈하며 궁궐에 불을 지르면 당황한 조정에서 채주의 오원제를 토벌할 여유가 없을 것이라고 조언하자 그 의견에 따랐다.(815)
또한 수도 장안으로 자객을 보내 당헌종의 군사적인 부분을 보좌하고 있었던 재상 무원형을 암살하고, 재정적인 부분을 보좌하고 있었던 배도에게 중상을 입혔다.
이사도가 동도 낙양에 유후원을 설치해 채주의 사람들이 섞여서 왕래했지만 조정의 관리들이 함부로 말하지 못했다. 회서 번진의 병사들이 낙양을 침범하자 방어하는 당군이 이궐에 주둔했는데, 이사도는 유후원에 몰래 군사를 숨겨 궁궐에 불을 지르고 군사들을 풀어 관군을 죽이면서 약탈하자고 모의했다.
그러나 그의 휘하 병사가 이를 여원응에게 알리면서 계획은 실패했고 이후 무원형을 암살한 것이 이사도라는 것이 드러났다. 이에 이사도는 서주를 공격해 소, 패 등을 패배시켰지만 왕지흥의 공격을 받아 격파되었다. 참고로 이때 왕지흥 휘하에 젊은 시절의 장보고가 소속되어 있었다. 816년 5월에 회서 번진의 군사가 능운책에서 격파된 것을 알고 당나라에 거짓으로 충성을 맹세해 검교사공이 덧붙여졌다.
회서 번진의 오원제가 이소의 기습에 의해 평정되자 이에 걱정하고 두려운 마음이 들어 818년에 조정에 사자를 파견하고 아들을 보내면서 기주, 밀주, 해주 등을 헌종에게 바치기로 했다. 당시 이사도는 아둔하고 나약해 군부의 큰 일을 처, 노복, 비녀 등과 모의했는데 이때 처인 위씨가 아들을 보내는 것과 조정에 땅을 바치는 것을 반대해 이를 그만뒀다. 818년부터 관군의 공격을 받았는데 이사도는 성품이 나약하고 겁이 많아 패배하거나 성읍을 잃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번번이 걱정하다가 이것이 병이 되었다. 그래서 좌우의 사람들은 모두 패전 소식을 은폐하고 이사도에게 사실대로 알리지 않았다.
이때문에 중요한 지역을 잃어서 급한 상황을 알려도 좌우 사람들이 연락하지 못하게 해서 이사도는 알지 못했다. 또한 백성들을 징발해 중심지인 운주의 성과 해자를 수리하거나 수비 시설을 고쳤는데 노역이 부인들에게도 미치자 백성들이 두려워하면서 이사도를 원망했다. 이사도는 유오에게 군사를 주어 당 조정의 관군을 막게 했는데, 유오는 병사들에게 관대하게 은혜를 베풀어 편하게 해줬지만 자주 패배했다.
어떤 사람이 유오는 군법을 수행하지 않고, 여러 사람의 인심만을 얻고 있기에 혹시 다른 뜻을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고변하자 이사도가 의심이 생겨 그를 죽이려고 했다. 이에 유오는 군사를 일으켜 이사도를 사로잡았다. 그후 이사도는 참수되었고 평로치청 번진은 멸망했다.
고구려 정통론자들은 이사도 가문이 본시 고구려계이며, 발해의 지원을 받아 대당 반란을 일으켰다고 하고 발해판 장보고라고도 하지만 사실 이씨 가문은 당나라나 신라에게 어느 정도 손을 벌렸다.
이사도의 반란이 장기화되자 당헌종은 최대, 최강의 번진인 평로치청 번진을 정복하기 위해 신라에 지원군을 요청했다. 당시 신라의 헌덕왕은 순천군 장군 김웅원에게 30,000명의 지원군을 맡겨 당나라에 파견하려고 했다. 다만 이사도의 난은 819년 2월에 진압되었는데, 신라는 5개월 뒤인 819년 7월에야 구원군 파병 의사를 밝혔다고 되어있기 때문에 기록에 오탈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언플만 하고 실제로 바다 건너 당나라에 출진은 하지 않았거나, 전화도 없었던 시대의 한계상 정보의 혼선으로 실제 토벌에 참여는 못하고 허탕을 친 것으로 보인다.[1]
3. 창작물
KBS2 드라마 <해신>에서는 배우보다는 성우로 더 유명한 한상혁이 맡았다. 장보고(최수종 분)와 만났을 때 자신은 고구려의 옛 땅을 되찾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당군에서 일하는 장보고 때문에 실패했다고 해서 장보고가 당나라 장수일을 때려치우는 계기가 된다.국산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장보고전>에서는 당대도적의 수장(맹공장 스킨)으로 등장한다. 스토리 자체가 완전한 가상 배경의 스토리라서 실존인물과는 이름만 따 온 정도만 관련이 있다. 현실을 따지면 애초에 장보고는 당나라 군대 소속으로서 이사도를 때려잡은 뒤에 신라로 돌아가 신라의 군인이 된 것이기 때문에, 신라의 군인 장보고와 당대 도적인 이사도가 맞붙는다는 건 시간적으로 전혀 안 맞는다.
<와이파이 한국인>에서 이정기와 함께 언급된다. 평로치청 번진의 마지막 맹주로 언급되며, 성우는 허예은이다. 등장시기가 장보고의 무령군 임관 시기와 맞물리므로, 제나라 반란군 진압을 위해 파견한 왕지흥을 제거해려고 애쓴다. 열 화 정도밖에 높은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고 진압당해 이후 왕지흥 승진의 배경으로 언급되는 것으로 끝이다. 다만 이정기의 평로치청 번진 내용이 한 화 통째로 할애되었다. 신라 귀국 이전 상대할 보스로 취급해도 무관할 정도다.
4. 둘러보기
치청절도사 | ||||||
전임 이사고 | ← | 이사도 806년~819년 | → | 후임 설평 |
[1] 고대에는 통신이 발달해 있지 않았으므로 은근히 이렇게 허탕치는 사례가 많았다. 예를 들면 보덕국이 신라에 의해 멸망하고 1년 뒤에 일본에서 이미 없어진 보덕국에 사신을 보냈거나, 당나라에서 소성왕 즉위 축하 사절단을 신라에 보냈는데 소성왕은 사절단이 도착하기도 전에 죽은 일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