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2-18 21:58:40

이반 마제파

파일:Portret_Mazepa.jpg
성명이반 스테파노비치 마제파 (Іван Степанович Мазепа)[1]
출생1644년
사망1709년 9월 8일
활동우크라이나코자크 반군 지도자

1. 개요2. 생애3. 기타

1. 개요

우크라이나의 코자크 지도자로 보흐단 흐멜니츠키 다음으로 가장 영향력 있던 헤트만이다.

2. 생애

카자크 유력 가문에서 태어나 소년 시절에는 키이우 대학에서 공부하고 1656년부터 1659년까지 네덜란드에서 포술 등 군사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엘리트였다. 귀국 후 폴란드 궁정에서 근무하다가[2] 폴란드령 좌안 우크라이나의 헤트만으로 임명된 후 오스만 제국과 동맹을 맺었다가 최종적으로 러시아와 동맹을 맺었다. 1687년부터 1700년까지 사회적 안정을 이루면서 경제를 부흥시켰으며, 문화 분야에도 많은 지원을 해서 여러 교회를 재건했다. 1700년 대북방전쟁(Great Northern War)이 일어났는데, 마제파는 전쟁 초기에는 러시아를 지원하기로 하고 자신의 관할인 좌안의 코자크들이 스웨덴을 상대로 한 전투에 러시아를 돕도록 압박을 가했다. 마제파는 잠시나마 폴란드의 우안 지역을 짧게나마 점령하기도 했었으며, 1704년부로 코자크 헤트만국을 동서로 통일했다. 이후 루스 차르국 차르 표트르 1세가 대북방전쟁에서의 초기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중앙집권화와 군제 개혁 등을 추진하면서 과거 1654년 페레야슬라프 조약을 통해 코사크들에 보장했던 광범위한 자치권이 위협받자 우호적인 관계는 흔들리게 된다. 결정적으로 1708년 당시 스웨덴의 동맹이었던 폴란드-리투아니아우크라이나 침공 위협에도 표트르 1세가 병력 부족을 이유로 지원을 거부하자 루스 차르국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웨덴과 동맹을 맺고 봉기하였다. 대북방전쟁에 참전해 폴타바 전투에서 스웨덴 국왕 칼 12세와 함께 루스 차르국군과 싸웠으나 대패하였다. 이후 칼 12세와 오스만 제국으로 망명하여 거기서 사망하였고 몰다비아 공국갈라치에 안장되었다.

3. 기타

우크라이나에서는 독립된 코자크 국가를 세우려했던 독립지도자로 여겨져 영웅시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정교회를 넉넉하게 후원했던 사람으로도 알려져 있다. 오늘날 우크라이나 10흐리우냐 주화의 도안이기도 하다.

그의 인생은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전 유럽 차원에서 명성을 누려 조지 고든 바이런의 시를 시작으로 19세기 내내 수많은 유럽의 낭만주의 문학가, 미술가, 음악가들의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아이러니한 점은 정작 우크라이나에서보다 러시아에서 훨씬 입체적이고 매력적인 인물로 묘사되었는데[3] 대표적으로 알렉산드르 푸쉬킨의 '폴타바', 파데이 불가린의 '마제파',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의 오페라 <마제파>가 있다.[4] 서유럽에서도 이름이 알려져 조지 고든 바이런의 작품 마제파, 리스트 페렌츠의 음악 작품 등이 만들어졌다.

2020년 5월 6일 우크라이나 육군 제54기계화여단의 명예명칭으로 지정되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와 맞서 싸운 지도자로서 평가가 높아지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해군튀르키예에서 도입하는 아다급 초계함 1번함의 함명을 '헤트만 이반 마제파'로 명명했다.


[1] 라틴 문자: Ivan Stepanovych Mazepa[2] 마제파의 정적이었던 폴란드 귀족 얀 파섹의 회고록에 따르면 이때 마제파는 팔보스카 백작 부인과 불륜 관계를 가지다가 현장에서 백작에게 발각되어 나체로 말에 묶인 채 황야로 추방되어 죽을 뻔 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아래에 나오는 바이런의 작품 등이 이 에피소드를 소재로 삼았다.[3] 이럴 수밖에 없는게, 우크라이나에서는 민족주의 사관이라 얽혀 민족영웅으로 신성시되거나 자기 권력을 지키기 위해 우크라이나를 이용한 이기주의자 정도로 극과 극으로 나눠 평면적으로 묘사될 수밖에 없다. 반면 러시아에서는 그 표트르 1세와 맞섰던 인물이니만큼 당대의 호걸이자 난세의 간웅 정도로 묘사한다. 당장 파데이 불가린의 '마제파'만 봐도 영웅적이지만 독선적인 표트르 1세와 교만하지만 카리스마 있는 마제파로 둘 다 나름대로의 명암을 가진 입체적인 인물들로 묘사된다. 사실 레프 톨스토이의 '하지 무라트'에서 니콜라이 1세와 하지 무라트, 전쟁과 평화에서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미하일 쿠투조프, 알렉산드르 푸시킨대위의 딸에서의 예카테리나 2세예멜리안 푸가초프 등 이러한 선악을 떠나 각자의 명암을 가진 영웅들의 대비는 러시아 고전 문학에서 흔치 않게 볼 수 있다.[4] 푸쉬킨의 작품과 불가린의 작품 모두 한국어로 번역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