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랜들 (Ivan Lendl) | |
생년월일 | 1960년 3월 7일 ([age(1960-03-07)]세) |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 오스트라바 | |
국적 | [[체코| ]][[틀:국기| ]][[틀:국기| ]] (1960~1992) [[미국| ]][[틀:국기| ]][[틀:국기| ]] (1992~) |
프로데뷔 | 1978년 |
신장 | 키 188cm[1] 체중 79kg |
사용 손 | 오른손 (원핸드 백핸드) |
ATP 싱글 랭킹 | 최고 1위[2] |
ATP 더블 랭킹 | 최고 20위 |
개인전 통산 성적 | 1068승 242패(81.5%) |
개인전 타이틀 획득 | 94회 |
그랜드슬램 결과 | 호주 오픈 우승 2회 (1989, 1990) 프랑스 오픈 우승 3회 (1984, 1986, 1987) 윔블던 준우승 2회 (1986, 1987) US 오픈 우승 3회 (1985, 1986, 1987) |
통산 상금 획득 | $21,262,417 |
S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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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前 체코계 미국인 테니스 선수.세계 랭킹 1위였던 테니스선수로, 80년대를 사실상 지배했던 테니스 영웅. 70년대가 보리, 90년대가 샘프러스, 2000년대가 페더러라면 80년대는 이반렌들의 시대라고 보면 된다. 원래는 체코 출신이었으나 1992년에 미국으로 귀화했다.
2. 커리어
- 개인전 통산 성적 : 1071승 239패
- 단식 통산 타이틀 획득 : 144개 (ATP 94개 - 역대 3위에 기록)
- 통산 상금 획득 : 21,262,417달러 (역대 상금 18위)
그랜드슬램 대회 : 우승 8회 / 준우승 11회
- 호주 오픈 : 우승 2회(1989, 1990)
- 프랑스 오픈 : 우승 3회 (1984, 1986, 1987)
- 윔블던 : 준우승 2회 (1986, 1987)
- US 오픈 : 우승 3회 (1985, 1986, 1987)
연도 | 호주 | 프랑스 | 윔블던 | US |
1978 | 불참 | 1라운드 | 불참 | 불참 |
1979 | 불참 | 4라운드 | 1라운드 | 2라운드 |
1980 | 2라운드 | 3라운드 | 3라운드 | 8강 |
1981 | 불참 | 준우승 | 1라운드 | 4라운드 |
1982 | 불참 | 4라운드 | 불참 | 준우승 |
1983 | 준우승 | 8강 | 4강 | 준우승 |
1984 | 4라운드 | 우승 | 4강 | 준우승 |
1985 | 4강 | 준우승 | 4라운드 | 우승 |
1986 | 불참 | 우승 | 준우승 | 우승 |
1987 | 4강 | 우승 | 준우승 | 우승 |
1988 | 4강 | 8강 | 4강 | 준우승 |
1989 | 우승 | 4라운드 | 4강 | 준우승 |
1990 | 우승 | 불참 | 4강 | 8강 |
1991 | 준우승 | 불참 | 3라운드 | 4강 |
1992 | 8강 | 2라운드 | 4라운드 | 8강 |
1993 | 1라운드 | 1라운드 | 2라운드 | 1라운드 |
1994 | 4라운드 | 1라운드 | 불참 | 2라운드 |
3. 선수 소개
통산 커리어 성적 중에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만 무려 우승 8회, 준우승 11회, 4강 진출 9회를 기록한 체코 출신의 테니스 레전드. 메이저 결승진출에 비해 우승횟수가 적고 윔블던 우승이 0회라서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지 못했다는 점 때문에 '무관의 제왕'이라는 이미지가 씌어져있지만, 사실상 80년대를 지배했던 선수. 경기 휴식 중 한쪽 바지 주머니에 톱밥을 챙겨 넣고#, 자신이 서브하거나 상대의 서브를 받기 전 중간 중간 톱밥으로 그립의 땀을 제거했던 특이한 루틴이 기억되는 선수다.그는 그와 동시대 혹은 앞세대인 지미 코너스와 비외른 보리, 존 매켄로를 압도했고 보리스 베커, 안드레 애거시와 스테판 에드베리[3] 등 후세대들도 확실하게 제압했던 진정한 80년대의 지배자였다. 강한 힘과 탑스핀을 앞세운 베이스라인 플레이를 구사해, 파워 베이스라인 플레이의 아버지로 불릴 정도로 현대 테니스에 그가 끼친 영향은 어마어마하다.
통산 타이틀 획득이 94회로 지미 코너스와 로저 페더러에 이은 역대 테니스 선수 중 4위[4] 기록이고 개인전 커리어 통산 1071승을 달성하였는데 이 기록 역시 지미 코너스와 로저 페더러에 이은 역대 테니스 선수 중 3위 기록이며 세계 랭킹 1위 누적 기간도 무려 270주를 기록하여 세계 랭킹 1위 누적 기간 부문에서도 역대 테니스 선수 중 4위 기록을 가지고 있다.[5] 윗 세대인 지미 코너스와 비외른 보리, 비슷한 나이대의 존 매켄로와 치열한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다.[6][7] 2001년에 테니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4. 여담
- 알폰스 무하의 작품을 엄청난 양으로 수집해서 개인이 가지고 있는 최대 규모를 자랑하고, 이를 가지고 종종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마이아트뮤지엄에서 2020년 3월 1일까지 전시하였다.
5. 참고 링크
[1] 6 ft 2 in[2] 270주간 세계 1위(역대 4등)[3] 에드베리와 보리를 상대로는 전적이 밀린다.[4] 원래는 지미 코너스의 109개에 이은 2위였으나 로저 페더러가 이를 넘어서며 3위로 밀렸고, 2024년 노박 조코비치가 95번째 타이틀을 추가함에 따라 4위로 내려갔다.[5] 1995년 그가 은퇴한 시점에는 오픈시대 남자 단식 역사상 최장기록이였다. 이 기록은 90년대 남자 테니스계를 지배한 피트 샘프라스가 1999년 8월 271주째 세계 1위를 기록하며 깨지게 된다. 이후 샘프라스는 2000년 11월까지 세계 1위를 기록하며 286주로 새로운 금자탑을 세웠고 샘프라스의 286주는 2010년 페더러가 287주째를 기록하며 연장된다. 2012년 페더러가 남자단식 역사상 최초로 세계 1위 300주를 돌파한 것에 이어 2023년 조코비치가 400주 이상의 기록을 세우며 현재는 역대 4위의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6] 하지만 지미 코너스와 비외른 보리, 존 매켄로와 이반 렌들은 모두 전성기 기간이 미묘하게 서로 어긋나면서 각자 특정 시기엔 세계 최강자로 군림하였다. 지미 코너스는 1970년대 초반부터 후반, 비외른 보리는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초반, 존 매켄로는 1980년대 초반부터 중반, 이반 렌들의 1980년대 중반부터 후반이 전성기였다.[7] 1989년 WCT파이널에서 메켄로가 승리하며 전적은 15승 15패로 동일하였으나 이후 만난 6경기를 렌들이 모두 승리하며 최종적으로 21승 15패의 상대전적을 기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