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義倉
관련 문서: 한국사고려와 조선시대에 농민 구제를 위하여 각 지방에 설치한 창고이다.
의창의 기원은 수(隋)의 율령에서 유래된 것으로 고려시대에는 태조 왕건이 이를 흑창(黑倉)이라 하여 춘궁기에 농민에게 곡식을 빌려주고 추수 후에 이를 회수하였다. 986년(성종 5년)에는 흑창의 곡식을 1만 석 더 보충하여 이를 의창이라 하였다. 이후 의창은 여러 지방으로 확산 설치되었다.
의창에는 주로 곡식을 저장했지만 이외에 포, 소금, 간장 등도 저장하여 기근에 대비하였다. 이러한 물품으로 진휼하는 데는 진대와 진급이 있었다. 진급은 무상으로 분급하는 것이며, 진대는 양식과 물품을 나누어주고 이를 가을에 환납하는 유상분급 제도이다.
수백 년 동안의 운용 과정에서 곡식 회수가 어렵다는 문제 등이 제기되었다. 결국 1525년(중종 20년) 의창을 폐지하고 일체의 구제사업을 구휼청(救恤廳)에서 관장하였다. 1626년 인조 4년에 물가조절을 담당하던 상평창과 통합되어 평시에는 상평창으로 물가조절을, 흉년에는 진휼청으로 기민구제를 담당하였다. 조선은 비축한 곡식을 군량으로도 운용하였으며 자세한 내용은 환곡제도 참조.
이후 물가조절과 진휼모곡(賑恤耗穀)을 겸했던 상평청과 진휼청은 균역법(均役法)에서의 군관포(軍官布)와 결작미(結作米) 및 어·염·선세 등을 관리했던 균역청(均役廳)과 함께 선혜청[1]으로 통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