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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08 17:38:04

유카와 히데카즈

파일:external/ane-memi.blog.so-net.ne.jp/2683060.jpg 파일:external/ascii24.ascii.jp/thumb300x276-images618203.gif 파일:/img/img_link7/387/386194_1.jpg
당시 이미지 당시 모습 2009년의 사진
湯川英一

1. 개요2. 생애
2.1. 드림캐스트 홍보 대사
2.1.1. 파생 상품 및 특별 출연
2.2. 은퇴와 사망
3.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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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43년 5월 16일 ~ 2021년 6월 20일)

일본의 기업인. 세가의 게임기 드림캐스트의 홍보 캐릭터 "유카와 전무"로서 잘 알려져 있다.

2. 생애

오사카부 출신이다. 과거 세가의 모회사였던 CSK[1]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여, 1984년 CSK가 세가를 산하로 편입하면서 유카와도 세가로 파견되었다. 1998년에는 세가에 재파견되면서 컨슈머 기기 사업본부의 부 본부장이 되었다. 이 때 문제의 드림캐스트가 발매되었다.

세가[2] 이후 비즈니스 커리어는 다른 CSK 계열사를 거쳐 2004년 전자화폐 회사인 쿠오(Quo)카드의 회장을 맡은 것이 마지막이다. [3]

2.1. 드림캐스트 홍보 대사

유카타 전무 CM 모음[4] CM송 "소문의 드림캐스트噂のドリームキャスト" [5]
{{{#!folding 전체 가사 [ 펼치기 · 접기 ]
セガエンタープライゼス専務の湯川です 세가 엔터프라이제스 전무인 유카와입니다
最後のお願いにやってまいりました 마지막 부탁을 드리러 왔습니다
マルチメディア時代をリードする、 멀티미디어 시대를 리드하는
ドリームキャスト、ドリームキャスト、ドリームキャストでございますー 드림 캐스트, 드림 캐스트, 드림캐스트입니다!
どうぞ、お手にとってこらんくださいませ 부디, 바쁘시더라도 한번 봐 주세요
SEGAが売らなきゃ誰が売る 세가가 팔지 않으면 누가 팔랴
お待たせしました 기다리셨습니다
すごいハードだ 굉장한 게임기
夢の次世代機 꿈의 차세대기
128ビット300万ポリゴン 128비트 300만 폴리곤
ネット対戦 네트워크 대전
VMもあるよ VM[6]도 있다네
これがうわさの 이것이 소문의
ドリームキャスト 드림캐스트
さあ、さ、坊ちゃん、おじょうちゃん、 자자, 거기 꼬마, 거기 아가씨
近くて寄って見て頂戴 가까이 와서 한번 보렴
はい、今あなたが触ってみたのが、未来です 네, 지금 당신이 만져본 것이 바로 미래입니다.
学校や塾では教えてくれない、フューチャーです 학교나 학원에선 가르쳐주지 않는 퓨처입니다
ご家庭に1機あれば、もう安心 집안에 한대만 있으면 이젠 안심
さあ、早いもの順です! 자, 먼저 잡는 사람이 임자입니다!
売って見せるぞ1000万台 팔고야 말겠어 1000만대
自信作だよ 자신작이니까
キラーソフトも 기가 타이틀도
どんどん出て来る 팍팍 나올 거라구
ちょっと觸ってみておくれ! 잠깐 만져나 보고 가세요!
こんな樂しい 이렇게 재미있는
ハードはないよ 게임기는 없으니까
俺がうわさの 내가 바로 소문의
湯川専務だ 유카와 전무다
いまさらどこがどうすごいかなんてことは申しません 이제와서 어디가 어떻게 대단한지따윈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見たいただいたとおりでございます 보신 그대로입니다
私の目を見てください。 저의 눈을 봐 주십시오.
うそを言ってるように見えますか? 거짓말하는 것 같습니까?
私は嘘は申しません、最高です 저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최고입니다
世界の技術を集めた、今世紀最高のマシーンです 전 세계의 과학기술 진수를 모아 만든, 금세기 최고의 머신입니다.
私を信じてください 저를 믿어주십시오.
128ビット300万ポリゴン 128비트 300만 폴리곤
ネット大戦 네트워크 대전
VMもあるよ VM도 있다네
これがうわさの 이것이 소문의
ドリームキャスト 드림캐스트
俺がうわさの 내가 바로 소문의
湯川専務だ 유카와 전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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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해 보이는 이 기업인이 일본에서 유명해진 계기는, 세가 드림캐스트의 약빤 마케팅 수단으로 만들어진 "유카와 전무" 라는 캐릭터 때문이었다. 회사 임원을 캐릭터화한 기획을 짠 건 아키모토 야스시. 원래 진짜 사장을 내보내려다 스케줄 문제로 유카와가 맡은 것이었다. 세가 입장으로도 세가타 산시로를 우주로 미사일과 함께 날려보내 죽인 뒤의 계보를 잇는 캐릭터 마케팅의 일환이다.

상남자 개그를 내세운 세가타 산시로 시리즈와 달리 진지한 스타일의 자학 개그가 특징. 자학 이외에도 진지하게 하드의 성능을 어필하거나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진지한 광고도 있었다. 초등학생들이 "세가 진짜 구리지않냐, 플레이스테이션이 더 멋지지"[7] 라고 이야기하는걸 엿듣는 장면으로 대변되는, 조금 찌질해보인다 싶을 정도로 자학적인 내용을 담은 CM은 상당히 인기도 있었고 인상 깊었던 영상. 하지만 너무 자학적이라 기존 세가 팬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드림캐스트가 발매 초기 생산차질로 인해 생산량이 주문량을 못 따라가는 사태가 발생하자 "주문에 대해 생산하지 못해 사죄합니다"라는 CM이 방송되었고 (당연히 유카와 전무 출연. 유카와 전무가 사태에 책임을 지고 강등당했음을 말하면서 예의 바르게 사과하나 분노한 고객들은 잡동사니를 던져서 이에 화답하고, 전무가 얻어맞는 와중 쟈니스타키자와 히데아키가 나와 대충 사과하니 이해해준다는 내용이다), 얼마 후에 상무로 강등되었다고 발표가 되지만, 워낙 CM에서의 전무 이미지가 강해서 사내외서는 "유카와 전무"로 불렸다고 한다(...).

참고로 유카와 전무의 이미지는 상당히 연출된 것으로, 원래 유카와 전무는 시력이 좋은 편이기 때문에 안경은 도수가 없는 가짜이다. 오사카 출신이기 때문에 칸사이벤을 사용하지만 역시 이미지를 위해서 표준어를 구사하고 있다. 사실 유카와는 앞서도 언급했지만 엄밀하게 따지자면 세가 소속이 아니었으며, 세가의 실적이나 문제와는 상관이 없었으므로 드림캐스트 매진사태로 유카와 전무가 책임을 지는 일도 있을 수 없었다. 다만 유카와의 전임을 이용해서 광고를 하기위해서 이런 컨셉을 잡았다고 한다.

유카와 전무 광고 시리즈의 여파는 대한민국의 지상파 뉴스에서 해외토픽으로도 언급될 정도였다. 당시 대한민국의 콘솔게임층이 지금보다 더 언더그라운드 시장이었던점을 감안하면 콘솔 게임 관련 이슈치고는 비교적 눈에 뜨인건지도.

하지만 이 기획은 드림캐스트의 광고 수단으로서는 실패하였다. 물론 광고 자체는 반응이 좋아서 "힘내라! 유카와 전무"는 당시 유행어가 될 정도였지만, 드림캐스트보다도 본인이 더 인기인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니들이 게맛을 알어와 유사한 사례이다. 일단 광고를 보면 알겠지만, 드캐광고인 주제에 드캐가 나오질 않는다...

사실 유카와가 TV 광고에 나오는 건 드림캐스트가 처음이 아니다. 80년대에 로보 피처TV 그림그리기 광고에 나온 적이 있다.

2.1.1. 파생 상품 및 특별 출연

파일:external/oi56.tinypic.com/33epusj.jpg 파일:external/i1224.photobucket.com/Dreamcast-HidekazuYukawa.jpg
"유카와 전무 한정판" 드림캐스트가 나올 정도로 개인적인 인기는 대단했다. 그리고 그걸 유카와 전무가 타키자와와 함께 리어카를 끌고 다니면서 팔았지만,
파일:external/www.gamecash.fr/yukawa-senmu-no-otakara-sagashi-e21793.jpg
'유카와 전무의 보물찾기'
이외 본인을 바탕으로 한 게임도 드림캐스트로 출시되었다. 유카와 전무가 주인공이 되는 게임.
파일:external/www.dreamcast.es/wsf.jpg 파일:external/blog-imgs-31-origin.fc2.com/20090412150609b20.jpg
쉔무 발매 전에 나온 체험판에선 중요 NPC로 등장하는가 하면, 쉔무 본편에서도 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사쿠라가오카 아베상점에서 구입할 수 있는 오징어 다리, 사라미의 메이커가 바로 유카와(...).

2.2. 은퇴와 사망

다만 유카와 히데카즈는 이 시절을 언급하는걸 좋아하지 않았다. 지나치게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데다 불륜 스캔들이 터진 적이 있었기에 세가나 유카와 전무 시절 얘기 하는것도 질색한다고. 유카와 전무 홍보가 끝나고 난 뒤 언론 인터뷰도 극력 사양했다. 2018년 드림캐스트 20주년에도 별 코멘트를 하지 않았다.

세가 퇴직 이후 뉴우지아라는 회사의 PR 대사로 2009년 복귀했지만 고령이기도 해서 이전처럼 적극적인 활동은 하지 않는 편. 이마저도 딱 1년 하고, 계약 만료된 이후로는 거취는 불명이었다.

거취가 알려지지 않았다가 2022년 6월 6일, 1년 전인 2021년 6월에 폐렴으로 타계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관련 뉴스 이웃주민에 따르면[8] 이미 몇년 전부터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정년을 맞이한 후 부하 회사에서 명예회장으로 일하며 2008년 도쿄 도내 한적한 교외에 저택을 짓고 [9] 노후를 보내다가 2017년부터 투병 후 사망했다고 한다.

3. 둘러보기


[1] 1968년 오사카에서 설립된 SI 업체로 컴퓨터서비스 주식회사(Computer Service Kabushikigaisha)에서 사명이 바뀐 것이다. 이후 스미토모상사에 인수되어 SCSK로 바뀌었다.[2] 2001년 가정용 게임기 시장에서 철수하였으며, 2003년 사미와 합병된다.[3] 실제로 타계 당시 부하가 밝히길 쿠오카드 회장이 정년상 마지막 직장이었다고 한다.[4] 전일본CM페스티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기도 하였다.[5] "セガが賣らなきゃ誰が賣~"로 시작하는 유명한 CM송. 유카와가 직접 부른 곡이다. 마찬가지로 CM 이미지송인 'Dreamcast' 싱글의 B사이드 곡이다. 맨 위의 '당시 이미지'는 그 싱글 앨범 표지.[6] 비쥬얼메모리[7] 참고로 광고에서 플레이스테이션이 대놓고 언급되는데, 이건 SCE에 사전 허락을 받은 것이다.[8] 동네에서는 CF 이미지처럼 친근한 이미지라 평판이 좋았다고 한다.[9] 원문에서 豪邸 (호저, 호화 저택) 라고 적혀 있는 걸 보아, 재산을 꽤 모았는지 좋은 집을 지은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