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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13 23:47:24

유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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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제3대 황제
유계은 | 劉繼恩
출생 935년
북한 하동도 태원부 태원현
(現 산시성 타이위안시)
즉위 968년 8월 24일
북한 하동도 태원부 태원현
(現 산시성 타이위안시)
사망 968년 10월 23일 (향년 33세)
북한 하동도 태원부 태원현
(現 산시성 타이위안시)
능묘 미상
재위기간 제3대 황제
968년 8월 24일 ~ 968년 10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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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9967A><colcolor=#ece5b6> 성씨 설(薛) → 유(劉)
계은(繼恩)
부모 친부 설쇠
친모 세조의 공주
양부 예종
양모 황후 장씨
제호 소주(少主)
연호 천회(天會, 968년)
}}}}}}}}} ||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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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오대십국시대의 십국 중 하나인 북한의 제3대 황제.

2. 생애

유계은은 본래 성이 설(薛)씨로, 설쇠(薛釗)의 아들이었다. 어머니는 북한의 초대황제였던 유숭의 딸이었다. 유계은의 아버지인 설쇠는 아내와 만날 시간이 없어서 항상 이를 원망했고, 어느날 술에 취해 칼을 빼들고 유숭의 딸을 찔러 상처를 내버린다. 설쇠는 이로 인해 자살한다. 유계은은 본래는 유숭의 외손자였지만, 북한의 제2대 황제였던 유승균에게 아들이 없어서, 유계은은 외삼촌인 유승균의 양자로 들어가게 된다.

유승균이 즉위하고, 유계은은 태원윤이 되었다. 유계은은 효심이 순수했지만 용약하여, 유승균은 유계은이 세상을 다스릴 재능이 아니란 것을 우려하였다. 그래서 한때 곽무위에게 "유계은이 용약하여 어찌 뒷일을 그에게 부탁할 수 있겠소?"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968년에 유승균이 세상을 떠나고, 유계은이 황제로 즉위하였지만 유계은은 황제로 즉위한지 60일 만에 후패영이라는 인물에게 살해당했고, 유계원이 북한의 황제로 즉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