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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30 05:42:16

웨이스하오

파일:20200725135719_5307.jpg
청두 룽청 No. 7
웨이스하오
韦世豪 | Weí Shìháo
[1]
출생 1995년 4월 8일 ([age(1995-04-08)]세)
중국 안후이성 벙부시
국적
[[중국|]][[틀:국기|]][[틀:국기|]]
신체 조건 177cm / 체중 75kg
포지션 윙어
유스 클럽 산둥 루넝 타이산 (2005~2013)
보아비스타 FC (2013~2014)
프로 클럽 보아비스타 FC (2014~2015)
CD 페이렌스 (2015)
레이숑이스 SC (2015~2017)
상하이 상강 (2017 / 임대)
베이징 궈안 (2018)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 (2019~2022)
우한 싼전 (2023)
청두 룽청 (2024~ )
국가대표
파일:중국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30경기 4골 (중국 / 2017~ )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플레이 스타일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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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국적의 축구선수. 현재 청두 룽청 소속이다.

2. 클럽 경력

2005년 산둥 루넝의 유스 아카데미에서 축구를 시작했으며, 2012년에는 AFC 아약스에 입단할 뻔했으나 산둥 루넝이 아약스의 제안을 거절했다. 이후 웨이스하오는 산둥 루넝과의 계약을 거절하고 보아비스타 FC의 유스팀에 자유계약으로 입단했다.

2014년 9월 14일, 리그 4라운드에서 아카데미카 코임브라를 상대로 후반 6분에 부상 당한 크리스티안 푸가를 대신해 교체해 들어가면서 프로 데뷔전을 치렀으며 경기는 1-0으로 승리했다. 이후 시즌 대부분을 벤치에도 앉지 못했으며, 이 시즌에 리그 4경기에 나서는 데 그쳤다.

2015년 7월 포르투갈 세군다리가의 CD 페이렌스로 이적했고, SC 코빌량과의 경기에서 데뷔했으나 그 경기가 마지막 경기였고, 결국 2016년 1월에 레이숑이스 SC로 이적했다. 이적 후에도 벤치에도 못앉는 경기가 부지기수였고, 겨우 3경기밖에 출장하지 못했다.

2016-17 시즌 초 리그에서는 번번히 교체로 출전했고 도움도 기록했지만 주로 벤치나 명단제외를 당했으며, 컵대회에는 주로 선발로 기용됐다.

포르투갈의 컵대회인 타카 드 포르투갈 3라운드 메렐리넨세 FC전에 선발 출전하여 2도움을 기록하였고, 4라운드 클루브 오리엔탈 리스본전에서는 골을 기록하면서 팀의 승리에 공헌했다. 이 경기 이후로 리그 경기에서도 선발로 기용됐으며, 풀타임을 소화하는 경기도 늘어났다. 리그 20라운드 FC 페나피엘전에서는 종료 직전에 리그 데뷔골이자 팀의 역전골을 기록하면서 2-1 승리에 공헌했다.

2016-17 시즌 총 20경기에 출전하여 2골 7도움을 기록했고, 2017년 1월 상하이 상강으로 1년 임대되었다.

4라운드에서 산둥 루넝전에서 69분에 교체 출전해서 83분에 결승골을 넣으면서 슈퍼리그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기록했다. 그러나 한동안 안드레 빌라스보아스 감독의 눈밖에 나서 벤치를 전전했고, 이후 로테이션으로 뛰다가 9월부터 주전으로 기용되기 시작했다.

파일:WSHGG7.jpg

임대가 끝나고 2018년 1월 베이징 궈안으로 이적했다. 등번호는 7번. 베이징 궈안에서는 특급 용병인 세드릭 바캄부와 호나탄 비에이라 때문에 좀처럼 자리가 나지 않으면서 벤치를 전전해야 했다.

결국 2019년 2월 1일 광저우 헝다로 이적했다. 광저우에서는 자체 규정을 만들어 3슬롯인 경기당 외인 출장 쿼터를 2슬롯으로 줄였는데, 이 때문에 베이징 시절보다는 더 나올 수 있게 되었다. 등번호는 베이징 시절과 동일한 7번.

2023년 4월, 모기업이 파산되는 등 재정난으로 인해 결국 광저우 FC가 강등되자, 전해 시즌 슈퍼 리그 우승팀이었던 우한 싼전으로 이적했다.

3. 국가대표 경력

연령별 대표팀을 두루 거치면서, 2017년 동아시안컵에 발탁이 되고, 1차전 한국과의 경기에서 A대표팀 데뷔전을 가졌는데, 전반 5분만에 선제골을 넣으면서 바로 데뷔골을 기록했다. 이후 일본, 북한과의 경기에서도 연이어 경기를 뛰었고, 3차전 북한과의 경기에서도 득점을 기록했으나 팀은 1-1 무승부를 거두면서 2무 1패로 1승도 거두지 못하고 3위로 대회를 마치게 되었다.

이후 2018 AFC U-23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도 주전으로 출전했으나 팀은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2019년 3월 25일 차이나컵 3위 결정전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에서는 상대 오타벡 슈쿠로프에게 무리하게 태클을 시도해 비판을 받았는데, 당시 발목을 크게 다친 슈쿠로프는 전치 2개월의 치료를 받아야 했다. 이에 살인 태클로 비난이 계속 이어지자 소속 구단이었던 광저우 헝다에서 웨이스하오에게 1개월 근신 처분의 징계를 내리면서 심지어 방출시킬 수도 있다고도 하였으나 결국 그냥 징계로 끝이났다. 관련 기사

2024년 1월 23일 카타르와 치른 경기에서 전반 6분경 장위닝의 패스를 받아 슛을 찼으나 아쉽게 빗나갔다. 전반 35분 류빈빈이 오버래핑하며 우시가 만들어준 볼을 찼으나 사드 알 시브 골키퍼의 선방으로 아쉽게 막혀버렸고 몇분 뒤 카타르의 골대 앞에서 반칙을 저지르며 카타르에게 기회를 주었다. 전반 추가시간 1분 측변 돌파를 해 장위닝에게 패스를 하였으나 실패, 왕샹위안이 올려준 볼로 헤딩을 했지만 빗나갔다. 후반 그렇다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며 67분 교체 아웃된다.

4. 플레이 스타일

빠른 발과 준수한 킥력을 갖춘, 윙어로서의 기본적인 덕목은 다 갖고 있는 선수이다. 하지만 소위 쿵후 축구로 대표되는 더티 플레이로도 악명이 높은 선수인데, 자신의 뜻대로 경기가 풀리지 않으면 백태클같은 거친 플레이도 불사하거나, 심지어 불필요한 욕설이나 신체 접촉으로 먼저 어그로를 끄는 등[2] 인성 논란이 꾸준히 따라붙는 선수이다. 아예 더티 플레이만 모아놓은 영상도 있을 정도.

현재는 95년생이기도 하고 눈에 보일 정도로 스피드가 줄었다. 중국 선수들 중에서는 그나마 발재간과 킥력 그리고 스피드가 있는 선수라고 평가 받았지만, 지금은 냉정하게 말해서 그 스피드가 줄었기 때문에 나머지 장점 또한 살리기가 어렵다. 정말 가혹하게 말하자면 더 이상 중국 국가대표팀에 뽑혀도 되는 선수인가 의문이다. 아마 중국 국가대표팀 자체가 세대교체에 실패했기 때문에 일단은 기량저하에도 웨이스하오가 계속 기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5. 여담



[1] 한자 독음으로는 위세호라고 읽는다.[2] 이 부분은 중국의 축구 전문가들도 지적하는 부분이다.[3] 비슷한 선수로는 호주 축구 국가대표팀의 대표 공격수였던 팀 케이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