왈테르 사무엘의 수상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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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팀 | ||||
| 2001-02 · 2003-04 |
Selección de fútbol de Argentina | |||
<colbgcolor=#ABDDED><colcolor=#2C2D32> 이름 | 왈테르 사무엘 Wálter Samuel | ||
본명 | 왈테르 아드리안 사무엘 Wálter Adrián Samuel | ||
출생 | 1978년 3월 23일 ([age(1978-03-23)]세) | ||
아르헨티나 산타페주 피르마트 | |||
국적 | [[아르헨티나| ]][[틀:국기| ]][[틀:국기| ]] | [[스페인|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키 183cm / 체중 83kg | ||
직업 | 축구 선수 (센터백 / 은퇴) 축구 코치 | ||
소속 | <colbgcolor=#ABDDED><colcolor=#2C2D32> 선수 | CA 뉴웰스 올드 보이스 (1996~1997) CA 보카 주니어스 (1997~2000) AS 로마 (2000~2004) 레알 마드리드 CF (2004~2005) 인테르나치오날레 (2005~2014) FC 바젤 (2014~2016) | |
코치 | 인테르나치오날레 (2016~2018) 아르헨티나 대표팀 (2018~ ) | ||
국가대표 | 56경기 5골 (아르헨티나 / 1999~2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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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출신 코치. 선수 시절 포지션은 센터백."Il Muro"[1]라는 별명을 얻었을 정도로 단단한 수비력을 선보이며 같은 아르헨티나 동료인 하비에르 사네티, 로베르토 아얄라, 가브리엘 에인세와 함께 2000년대의 대표적인 아르헨티나 수비수로 활동했다. 2018년부터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를 맡고 있다.
2. 클럽 경력
1996년 아르헨티나의 뉴웰스 올드 보이스에서 데뷔했으며, 한 시즌 뒤 명문 클럽인 보카 주니어스로 이적했다. 이곳에서 3시즌 동안 주전으로 활약하면서 리그 우승 2회 및 2000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맛보았다.2.1. AS 로마
2000-01 시즌을 앞두고 2000만 유로에 세리에 A의 AS 로마로 이적했다. 이적 이후 곧바로 주전 자리를 차지하면서 그 시즌 팀의 리그 우승에 크게 공헌했으며, 이후에도 좋은 활약을 펼치며 세리에 A를 대표하는 수비수 중 한 명으로 자리잡았다.2.2. 레알 마드리드
AS 로마에서 보여준 뛰어난 활약으로 인해 레알 마드리드의 관심을 받게 된 그는 2004년에 2500만 유로라는 이적료를 발생시키며 프리메라 리가의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고 우드게이트와 함께 레알의 약점인 수비 문제를 해결해주리라는 기대를 받았으나, 큰 인상을 남기지 못하며 한 시즌만에 인테르 이적 링크가 떴다.2.3.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2005년. 사무엘은 1600만 유로에 4년 계약으로 인테르으로 팀을 옮기게 되어 이탈리아 무대로 복귀하게 되었다.입단 이후 칼치오폴리로 인해 유벤투스가 강등되는 등 라이벌 팀들의 불안정한 상황과 맞물려 인터 밀란이 세리에 A의 최강팀으로 급부상하면서 연속으로 리그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으며, 2007-08 시즌 AC 밀란과의 더비 경기에서 카카를 수비하던 도중 무릎 부상을 당해[2] 수술을 받은 뒤 다음 시즌이 되어서야 복귀하는 등 불운을 겪기도 했다.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무릎 부상이 발생해 정상적인 시즌을 보낸 적이 거의 없었으나, 2009-10 시즌에는 마이콘, 루시우, 크리스티안 키부와 철의 포백을 구축하여 팀의 트레블 달성에 크게 공헌했다.
이후에는 무릎 부상으로 고생했으며, 2011-12 시즌에는 간만에 대부분 경기에 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팀이 리그 6위와 UEFA 챔피언스 리그 16강이라는 좋지 않은 성적을 거두어 묻혔다(...). 이후에는 팀의 로테이션 정책에 따라 주로 후보로 활약하였다.
2.4. FC 바젤
그 뒤 2014년 여름 이적 시장에서 스위스 슈퍼 리그의 FC 바젤에 입단했다. 그리고 2016년 시즌이 끝난 뒤 은퇴를 선언했다.기사 본문3. 국가대표 경력
1999년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에 데뷔한 이후 그 해 코파 아메리카에 출전했으며, 이후에도 좋은 활약으로 꾸준히 국가대표팀에 선발되며 2002년 한일 월드컵에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이름을 올렸으나 국가대표팀이 조별 라운드에서 탈락하는 부진을 겪었다.
이후 2005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 출전하기도 했으나, 2006년 주전 경쟁에서 밀리면서 결국 2006년 독일 월드컵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이후에도 국가대표팀에 계속 선발되지 못했으나, 2009-10 시즌 맹활약으로 인해 디에고 마라도나가 다시 국가대표팀에 선발해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무대를 밟게 되었다. 하지만 대한민국과의 2차전 부상으로 교체아웃된 후 더이상 월드컵경기를 뛰진 못했고 월드컵 직후 벌어진 아일랜드와의 평가전을 마지막으로 대표팀경기에 출전하진 못했다. 공식 대회 출전은 대한민국과의 2010 월드컵 2차전, 친선전까지 다 포함한다면 아일랜드와의 평가전이 그의 은퇴경기가 된 셈이다.
2000년대 초반 AS로마로 이적후 바로 최고의 수비수로 손꼽히면서 향후 10년간 아르헨티나 대표팀 센터백자리를 책임질 재목이란 평가를 받았지만 부상과 이적 그리고 감독의 전술적 선택으로 그가 제대로 뛴 메이져대회는 아직 기량이 무르익진 않았던 99년 코파와 비극적인 예선탈락으로 막을 내린 02년 월드컵뿐이다. 2000년 이후 아얄라와 함께 최고의 아르헨티나 센터백듀오로 손 꼽히지만 정작 조국의 메이저대회에는 제대로 기여한 적이 없었다해도 무방한 셈. 02년 월드컵 지역예선과 04년 비엘사 감독이 물러나기 전까지 06년 월드컵 지역예선정도가 그가 전성기 기량으로 꾸준히 아르헨티나 대표팀 선발로 활약했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곤살로 로드리게스, 가비 밀리토와 함께 어린 시절부터 유럽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준 아르헨티나 센터백은 절대 대표팀에서 장수하지 못한다는 슬픈 전설(?)을 만든 선수가 됐다. 실제로 아얄라, 가라이, 오타멘디, 에인세등 유럽에서 어느정도 나이를 먹고 인정받은 수비수들이 아르헨티나 대표팀에 오랫동안 활약하면서 대기만성형 스타가 아르헨 센터백을 지배한다는 법칙이 굉장히 오랫동안 지속됐다. 하지만 슬픈 전설은 리산드로 마르티네스와 크리스티안 로메로가 상당 부분 깨는 데 성공했다. 21,24코파우승과 22피날리시마,월드컵우승등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아르헨 대표팀의 코치로써 헌신적인 노력을 하면서 성과를 내고 있는 것도 선수시절의 아쉬움(한?)이 어느정도 작용했다고 추측해볼 수 있다.
4. 플레이 스타일
183cm이라는 센터백치고 크지 않지만, 터프한 수비와 뛰어난 제공권을 갖춰 인테르의 철의 포백에서 왼쪽 센터백을 담당한 2000년대의 탑클래스 수비수였다.
수비력 자체가 매우 뛰어나 위치선정, 대인마크와 태클 모두 강점을 가졌었고, 몸을 사리지 않는 터프함과 과감함, 정교함을 모두 갖췄었고, 강인한 피지컬과 뛰어난 점프력으로 공중에서도 매우 강한 모습을 보여 수비적인 상황에서나 세트피스 상황에서의 공격가담에서나 모두 좋은 모습을 보였다.
다만, 사무엘은 매우 뛰어난 피지컬을 보유했음에도 속도 측면에서는 여타 센터백들에 비해 아쉬웠다. 움직임이 둔해서, 갑작스럽게 방향 전환을 해야하는 역습 상황에서 발빠른 공격수들에게 고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따라, 간혹 그의 과감하면서도 정교한 수비가 위험한 수비로 바뀔 때도 있었으며, 선수 생활 초기에는 경고 누적도 잦았었다.
발밑이 투박하다는 점도 사무엘의 약점 중 하나였다. 공을 다루는 것이 서툴다 보니 압박을 받았을 때에 공을 잘 잃어버리는 모습을 보였었고, 패스를 통해 공을 앞으로 배급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잦았다. 무엇보다, 앞에 쓰인 수많은 장점을 무색하게 만드는 단점이라면 역시 유리몸. 커리어를 보면 알겠지만 멀쩡하면 리그 탑급 수비수였는데 고질적인 무릎 부상이 그를 최고의 선수가 되는 것을 막았다.
5. 지도자 경력
은퇴한지 6개월 만에 인테르의 신임 감독인 스테파노 피올리 사단의 코치직에 지명되면서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피올리 체제 하 인테르가 상당한 수비 조직력을 갖추게 되면서 긍정적인 평을 많이 듣게 되었는데 피올리는 이것이 사무엘 덕이라는 인터뷰를 하였다. 16/17시즌 7대1 대승을 거둔 아탈란타전 이후 인터뷰에서 "사무엘은 굉장히 똑똑하고, 도움이 되며, 준비되어있는 사람이라며 극찬했다. 그리고 2018년 8월 25일부터 동갑내기 친구인 리오넬 스칼로니의 밑에서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를 맡게됐다.[3]그리고 친구의 보좌 코치 신분으로 월드컵 우승을 해냈다.
6. 기록
6.1. 대회 기록
- CA 보카 주니어스
- 프리메라 디비시온: 1998 A[4], 1999 C[5]
-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2000
- AS 로마
- 세리에 A: 2000-01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2001
-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 세리에 A: 2005-06, 2006-07, 2007-08, 2008-09, 2009-10
- 코파 이탈리아: 2005-06, 2009-10, 2010-11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2005, 2006, 2008
- UEFA 챔피언스 리그: 2009-10
6.2. 개인 수상
7. 여담
인터 밀란 시절 AC 시에나를 상대로 후반 추가시간 극장골을 넣은[6] 영상의 이탈리아어 중계 발음을 한글로 변용해 자막을 넣은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으며[7], 이후 돼지바 광고에서 패러디되었다.[8] 이후 오버워치의 루시우 대사로도 패러디되었다.[9]
사실 본성은 사무엘이 아닌 루한(Lujan)이었으나, 18세가 될 무렵 새아버지의 성씨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
8. 같이 보기
1 포소 · 2 데미첼리스 · 3 C. 로드리게스 · 4 부르디소 · 5 볼라티 · 6 에인세 · 7 디 마리아 · 8 베론 · 9 이과인 10 메시 · 11 테베스 · 12 가르세 · 13 사무엘 · 14 마스체라노 ⓒ · 15 오타멘디 · 16 쿤 아구에로 · 17 구티에레스 18 팔레르모 · 19 밀리토 · 20 M. 로드리게스 · 21 안두하르 · 22 로메로 · 23 파스토레 |
디에고 마라도나 |
[1] 벽이라는 의미다.[2] 카카의 연속적인 방향 전환을 따라가려다 무릎이 돌아가버렸다.[3] 2006 월드컵을 본 시청자들은 알겠지만, 리오넬 스칼로니도 주전이 아닌 백업 수비수였다.[4] 아페르투라 (Apertura)[5] 클라우수라 (Clausura)[6] 인터 밀란이 트레블을 달성했던 2009-10 시즌 세리에 A 19라운드 경기로, 인터 밀란은 87분까지 2-3으로 끌려가고 있었으나 웨슬리 스네이더와 사무엘이 후반 막판 각각 한 골씩 집어넣으며 4-3 역전승을 거두었다.[7] 참고로 원래는 이런 뜻이라고 한다.[8] 다만 돼지바 광고는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브라질의 상파울루 FC와 SE 파우메이라스간의 경기 영상을 사용했다.[9] 재밌는 우연으로 루시우의 성우인 이호산은 이 대사를 녹음하고 몇년 뒤 정말로 슬하에 딸 2명을 두게 되었다.
분류
- 1978년 출생
- 산타페 주 출신 인물
-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 센터백
- 1996년 데뷔
- 2016년 은퇴
- CA 뉴웰스 올드 보이스/은퇴, 이적
- CA 보카 주니어스/은퇴, 이적
- AS 로마/은퇴, 이적
- 레알 마드리드 CF/은퇴, 이적
-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은퇴, 이적
- FC 바젤/은퇴, 이적
- 아르헨티나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
-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참가 선수
-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참가 선수
- 1999 코파 아메리카 파라과이 참가 선수
- 2005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독일 참가 선수
- 1997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말레이시아 참가 선수
- 인터넷 밈/축구 선수
- 인터넷 밈/스포츠/대한민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