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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20 21:52:08

원후정

파일:원후정.jpg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창씨명 하라모토 아츠사다(原元厚貞)
본관 원주 원씨[1]
출생 1922년 5월 27일
강원도 횡성군 청일면 춘당리
사망 1995년 7월 29일
강원도 횡성군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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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2. 생애

원후정은 1922년 5월 27일 강원도 횡성군 청일면 춘당리에서 아버지 원관(元爟)과 어머니 김해 김씨 김흥기(金興奇)[2] 사이의 3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1938년 춘천공립중학교에 재학하던 중 가을에 춘천중학교의 항일학생결사 상록회(常綠會)가 일경에 발각되어 전 회원이 검거된 후 동지들과 함께 독서운동을 전개했다. 독서운동은 항일의식을 제고하면서 민족의 진로를 찾고자 한 것으로, 상록회와 활동 내용 및 성격이 거의 같았지만, 상록회가 이미 발각되었기에 조직을 다시 갖는 것은 위험했으므로 조직을 갖추지 않았다.

1941년 3월, 그는 심재진·고제훈(高濟勳)·김영근(金榮根)·박영한(朴泳漢)·권혁민(權赫民) 등과 함께 민족차별에 분개하고 춘천중학교 교정에서 일본인 학생들과 무력 충돌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싸움의 규모가 컸으므로 일경이 개입하게 되었고, 이때 한국학생들을 탄압했던 것은 물론이고 춘천중학생의 독서운동도 발각되었다.

그리하여 그도 일경에 붙잡혔고, 붙잡힌 후 1년여동안 모진 고문을 당하다가 1942년 5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단기 1년, 장기 3년형을 언도받았으며, 또 소위 폭행죄로는 징역 단기 6월, 장기 2년형을 언도받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중 1945년 8.15 광복으로 출옥하였다. 이후 횡성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95년 7월 29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원후정에게 대통령표창을 수여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1] 원성백계 시승공파 29세.[2] 김원배(金元培)의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