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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07 09:43:57

원응희



1. 개요2. 생애3. 여담

1. 개요

북한의 군인이다. 최종 계급은 대장이였고, 김정일 시대의 선군정치 시절 권력이 많이 강화된 보위사령부의 사령관을 역임했었다.

2. 생애

1983년 10월에 소장 계급으로 등장하였다. 1987년에 김일성 75세 기념으로 김일성훈장을 수여받는다. 그러다 1988년 3월에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으로 다시 등장하였으며 1990년에는 인민무력부 보위국장직과 중장으로 진급한다. 또한 같은해에, 공군사령부 정치위원으로 갔다. 1990년 4월, 최고인민회의 9기 대의원에 선거되었고 1991년 12월에는 중앙위 위원으로 승진과 더불어 상장으로 진급하였다.

1992년 ~ 1993년 동안에는 총참모부 보위국장을 역임했으며 같은해에 보위국장에 임명되었고 유명한 프룬제 군사대학 쿠데타 모의 사건도 진압했다. 1994년에는 김일성 장의위원을 지냈다. 1995년 10월 6일, 모범적 군인으로 선정되어 김정일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그리고 1995년에 그 유명한 제6군단 쿠데타 모의 사건을 진압했다. 이 일로 인하여 김정일에게 신임을 받아 대장으로 중장에서 두단계 진급했다고 한다.[1][2] 또한, 오진우 장의위원을 지냈다. 1997년 2월, 최광 장의위원과 김광진 장의위원을 지냈다.

그 이후로도, 보위사령관을 하다가 9년뒤인 2004년 5월 15일에 지병으로 사망한다. "김정일 동지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이며 조선인민군 대장인 원응희의 서거에 깊은 애도의 뜻을 표시해 15일 고인의 영전에 화환을 보냈다"라고 조선중앙통신이 전했다.

3. 여담

조명록은 원응희가 주도해서 이뤄진 프룬제 군사대학 쿠테타 모의 사건 당시 소련 유학파 장교들이 대대적으로 숙청될 당시에 조종사들을 다 죽이면 공군은 살아남지 못한다면서 공군을 보호하려고 최대한 애썼다고 한다. 조명록의 노력으로 인해, 숙청에서 벗어난 사람이 오금철이다.

[1] 북한은 중장 다음이 상장이다. 그러기에 대장으로 진급했다는건 두단계 진급을 의미하는거다.[2] 그리고 이 쿠데타의 경우는, 애초에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과 함께 쿠데타 시도 자체가 있었냐에 대한 의혹이 너무 많은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