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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1-17 22:09:58

우크라이나급 구축함

파일:00055763.jpg
우크라이나급 구축함(Эскадренные миноносцы типа «Украйна»)

1. 기본 제원

형식 : 구축함
건조 업체 : 리가 조선소
건조 시기 : 1904~1906년
운용 기간 : 1905~1949년
준공 : 8척 / 손실 1척 / 철거 7척
후임 함급 : 핀급 구축함(Эскадренные миноносцы типа «Финн»)
배수량 : 700~732톤
전장 / 함폭 / 흘수선 : 73.05~73.18 m / 7.2~7.24 m / 흘수선 3.2~3.35 m
승무원 : 90명
동력 : 노르망식 수관 보일러 4기 / 3단 팽창 증기 기관 2기 (6,200 shp)
추진 : 2축 스크류
최대속도 : 25노트(46 km/h)
주무장 : 75mm(3인치) 단장포 2문
부무장 : 57mm(2.2인치) 단장포 4문 / 381mm(15인치) 어뢰발사관 3문 또는 450mm(17.7인치) 어뢰발사관 2문

파일:Ukrayna(EM)1.jpg

2. 개요

운용 초기까지만 해도 기뢰 순양함(Минный крейсер)으로 분류되었던 우크라이나급 구축함(Эскадренные миноносцы типа «Украйна»)은 20세기 초 러시아 제국 해군을 위해 건조된 8척의 구축함으로 발틱 함대에서 복무했으며 제1차 세계 대전에도 참전했다.

8척의 우크라이나급은 러시아측의 조선장교와 감리, 그리고 일부 근로자들의 감독 하에 불칸 슈테틴(Aktiengesellschaft Vulcan Stettin) 조선소에서 선체 부품이 제작되었다. 따라서 공문서에 따르면 러시아측 조선소는 선체를 주문하고 독일에서 가져온 기관과 각종 장비들을 리가에 있는 랑게(A. Lange & Söhne) 조선소에서 조립하는 일만 맡았다.

그 결과 랑게 조선소의 설비 부족과 더불어 강철 공급 중단, 파업의 여파로 인해 처음 3척은 두 달 동안 작업이 지연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극동 아시아로 파견되는 지노비 로제스트벤스키 중장의 함대와 함께 보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12,000해리 떨어진 쓰시마 해협에서 러시아 해군이 일본 해군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이 지휘하는 연합함대에게 무참히 격파되는 동안, 네임쉽인 우크라이나(Украйна)만이 간신히 공시를 할 수 있었다.

3. 함체 구조 및 해설

우크라이나급 구축함은 일반적으로 기준배수량 580톤, 만재배수량은 732톤이었다. 전장 73.05~73.18 m에 함폭 7.1~7.24 m, 흘수선은 3.2~3.35 m 규모였다. 이 함선들은 실린더가 수직으로 배치된 3단 팽창 증기 엔진 2기로 증기를 공급해주는 노르망식 수관 보일러 4기가 동력원이었다. 증기 기관 2기가 스크류 샤프트 1개씩을 구동시켜 추진된다. 기관은 합계 6,000축마력을 발휘해 최대 25노트(46 km/h)의 속도를 낼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1번함 우크라이나는 시험 운항 동안 제원상 수치를 넘어서 26~26.95노트(48.15~49.91 km/h)까지 도달했다. 승무원은 장교와 수병을 합해 90명으로 구성되었다.

우크라이나급에 실린 주무장인 함포는 50구경 75mm 단장포 2문으로, 선수루와 선미에 각각 1문씩 회전 마운트 위에 장착되었다. 부무장은 선체 중앙부 주갑판에 배치된 57mm 속사포 4문으로, 각 현측에 2문씩 설치되었다. 모든 함포에는 건쉴드가 추가되었다. 처음 건조된 우크라이나 / 보이스코보이(Войсковой») / 투르크메네츠-스타브로폴스키(Туркменец-Ставропольский) / 카자네츠(Казанец»)는 2문의 회전식 380mm 어뢰발사관 3문을 갖추고 있었다. 이중 연장 어뢰발사관은 중앙 연돌과 후방 연돌 사이에, 단장 발사관은 선미 상부 구조와 후방 연돌 사이에 배치되었다. 나머지 4척은 같은 위치에 450mm 단장 발사관으로 교체되었다.

1909년에서 1910년 사이에 이 함선들은 75mm 함포를 대체하는 102mm(4인치) 오부콥스키 함포 한 쌍으로 재무장되면서 57mm 부포는 모두 제거되었다.

4. 수훈함

우크라이나급은 생애 대부분을 평화기에 활동했던 탓에 대단한 무공을 세우는 일이 드문 함생을 보냈지만, 5번함 스테레구슈치(Стерегущий)와 같이 1차 대전과 러시아 혁명, 이어진 적백 내전을 모두 겪은 함도 있었다. 기뢰 순양함으로 분류되던 스테레구슈치는 1905년부터 1908년까지 발트해 연안 방어를 담당하는 분견대 소속으로 활동하는 동안 1907년 10월 10일부터는 구축함으로 재분류된다. 1909년에는 제1기뢰전단에 배속되었고, 1910년까지 크레이튼 & 컴퍼니(Creighton & Company) 조선소의 도크로 보내져 정밀 점검과 수리, 개조 공사를 받았다. 이때 함포와 어뢰 발사관, 그리고 보일러 온수관이 교체되었으며, 메인 마스트는 함교 후방으로 옮겨지면서 보일러실로 이어지는 배기 카울링이 신형으로 교체되었다.

러시아 제국이 1914년 8월에 세계 대전에 뛰어들자, 스테레구슈치는 제6기뢰사단으로 배속된다. 그녀는 발트해에서 독일 해군의 연락선과 정찰선을 요격하거나 쿠를란트 해안과 리가만 방어, 본업인 기뢰 부설, 그리고 주력 함대와 동행하며 적 잠수함으로 방어했다. 1915년 8월 8일부터 21일까지는 리가만 해전에도 참가했고, 1916년에는 다시 크레이튼 조선소로 보내져 현대화 공사를 거쳤는데 이때 신형 함포가 올려지면서 보일러 수관도 다시 교체되었다.

수리를 받은 스테레구슈치는 3월 8일부터 16일까지 2월 혁명에 동참한다. 1917년 2월 23일부터 3월 3일 사이에 차르 니콜라이 2세 왕정이 전복되고 임시 정부가 국가를 장악하여 러시아 공화국을 세웠다. 다시 전선으로 되돌아간 함선은 1917년 10월 12일부터 19일까지 문 해협(Moon Sound)에서 에스토니아를 놓고 독일제국 함대와 싸웠다.

1917년 11월 7일에 10월 혁명으로 러시아 임시 정부가 전복되면서 적백 내전이 발발했다. 스테레구슈치는 1918년이 밝아오자 신생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의 붉은 함대에 합류했고, 소련 해군에 정식으로 편입되었다. 3월 3일, 소비에트 정부는 동맹국과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Treaty of Brest-Litovsk)을 체결했고, 러시아는 다시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 이때 스테레구슈치는 핀란드헬싱키에 정박하고 있었다. 곧 발틱 함대의 빙해 귀환 작전(Ледовый поход Балтийского флота)에 참가한 함선은 4월까지 크론슈타트 항구로 이동해 닻을 내렸다.

세계 대전이 끝난고 2년이 지난 1921년 4월 21일에 다시 고향인 발트 함대의 품으로 되돌아간 스테레구슈치는 페트로그라드(Петроград)의 발틱 조선소(Балтийский завод)로 옮겨졌다가 1922년부터 해체 작업에 들어갔고 1925년 11월 21일 함선 명부에서 지워졌다.

5. 동급함

1번함 우크라이나(Украйна) : 1904년 9월 21일 진수 / 1905년 5월 5일 취역 / 1949년 퇴역
2번함 보이스코보이(Войсковой) : 1904년 11월 13일 진수 / 1905년 6월 3일 취역 / 1949년 퇴역
3번함 투르크메네츠-스타브로폴스키(Туркменец-Ставропольский) : 1905년 2월 5일 진수 / 1905년 6월 28일 취역 / 1949년 퇴역
4번함 카자네츠(Казанец) : 1905년 4월 28일 진수 / 1906년 5월 3일 취역 / 1916년 독일 잠수함 UC-27에게 격침.
5번함 스테레구슈치(Стерегущий) : 1905년 6월 21일 진수 / 1906년 5월 4일 취역 / 1924년 퇴역
6번함 스트라시니(Страшный) : 1905년 12월 23일 진수 / 1906년 5월 9일 취역 / 1924년 퇴역
7번함 돈스코이 카자흐(Донской казак) : 1906년 2월 25일 / 1906년 7월 6일 취역 / 1924년 퇴역
8번함 자이바이칼레츠(Забайкалец) : 1906년 4월 14일 진수 / 1906년 7월 19일 취역 / 1923년 퇴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