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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10-31 00:52:08

우복생

<colbgcolor=#fedc89,#670000><colcolor=#670000,#fedc89> 고려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 증 문하시중(贈門下侍中)
문순공(文純公)

우복생禹福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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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 1302~?
국적 파일:고려 의장기.svg 고려
본관 단양(丹陽)[1]
직계존속 조부 우천석(禹天錫)
부 우팽(禹伻)
배우자 진한국부인(辰韓國夫人) 진주 류씨[2]
자녀 장남 정평공(靖平公) 우인열(禹仁烈)[3]]
차남 우숭열(禹崇烈)[4]
삼남 문숙공(文肅公) 우희열(禹希烈)[5]
장녀 우씨 [6]
차녀 우씨 [7]
친족 큰형 우수생(禹壽生)
작은형 우덕생(禹德生)
큰동생 우소생(禹小生)
작은동생 우녹생(禹祿生)

1. 개요2. 생애3. 여담4. 참고 항목


禹福生(1302 ~ ?)

1. 개요

고려 후기의 관료. 본관은 단양(丹陽). 시호는 문순공(文純公)이다.
조부는 전리정랑(典理正郎) 증 문하시중(贈門下侍中)인 우천석(禹天錫), 아버지는 밀직부사(密直副使) 우팽(禹伻)이며, 배우자는 진한국부인(辰韓國夫人) 진주 류씨로 삼사좌사 류지정(柳之淀)의 딸이다.

장남은 정평공(靖平公) 우인열(禹仁烈), 둘째는 중랑장 우숭열(禹崇烈), 셋째는 문숙공(文肅公) 우희열(禹希烈)이다.

2. 생애

1934년 밀직사파 족보에 따르면 충렬왕28년(1302년)에 태어났다고 전한다.

단양 우씨 종친회가 단기 4296년(서기 1963년)에 건립한 묘비문에 따르면, 고려 우왕 때에 과거 급제 후 여러 관직을 거쳐 첨서밀직사(僉署密直事)가 되고 창왕 1년에 김저(金佇)의 옥사에 관련되어, 1390년 인천에 유배되었다가 공양왕 2년에 다시 기용되어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를 지낸 뒤, 봉익대부 판밀직사사 상호군에 오른 후, 문하시중평장사에 추봉되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자녀인 우인열과 우희열의 활동 연대를 생각해 보면, 과연 실제 행적일 지 알 수가 없다.

추증된 부분을 덜어낸다면, 할아버지 우천석(禹天錫)과 아버지 우팽(禹伻)처럼 충주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다가 판밀직사사에 올랐고, 후에 문하시중(門下侍中)으로 추증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관련 유물로는 1768년에 필사된 우복생(禹福生)의 무오년 호구(戶口)가 남아있어 단양 우씨 가문 연구에 도움이 되고 있다.

2025년 4월, 종친회에서 진행한 우복생 묘소 정비 사업 결과, 땅 속에서 두 쪽으로 파손된 구 묘비가 나왔다.

구 묘비의 전면에는 고려시중우공복생지묘(高麗侍中禹公福生之墓)라고 적혀 있었고, 형태를 보아 조선 전기에 만들어졌다가 고의로 파손되어 제자리에 묻힌 것으로 확인되었다. 덕분에 해당 자리가 조선 전기 때부터 우복생의 무덤 자리였다는 것이 증명됐다. 발굴된 구 묘비는 새로 조성한 검은색 신 묘비와 함께 묘소 양쪽에 복구되었다.

3. 여담


4. 참고 항목



[1] 단양 우씨 9세손[2] 삼사좌사 류지정(柳之淀)의 딸[3] 정평공파 파[4] 중랑장공파 파조[5] 문숙공파 파조[6] 용인 이씨 이사영(李士穎)의 배우자[7] 평해 손씨 손유례(孫有禮)의 배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