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용인(櫳人, Dragonpair)판타지 소설 《눈물을 마시는 새》와 《피를 마시는 새》에 등장하는 개념. 작중에서 용은 포자를 뿌려 번식하며 땅에 떨어진 포자 중 일부가 용화가 된다. 용화가 개화됐을 때 아직 깨어나지 않은 뿌리 부분을 용근이라고 부르며, 이를 먹은 사람을 용인이라고 한다.
2. 능력
용근을 먹은 사람은 모든 감각들이 극도로 예민해진다. 일부는 어디에나 스며드는 물에 비유하여 물처럼 날카로운 사람이라 표현한다. 어느 정도냐면 타인의 내면을 짚어내는 능력이 너무나 뛰어나서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 볼 여력이 없을 정도.이 때문에 사람들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을 거라는 소문이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용인이 되면 얻게 되는 것은 단 둘. 하나는 극에 달한 예민함, 다른 하나는 용의 감지. 실제로 몇천 년 전의 라호친의 한 부족민은 자신이 기르던 용이 잠시 사라지자 자신이 용인이었다면 쉽게 찾을 수 있었을 거라며 한탄하기도 한다.
작중에선 용근을 먹은 사람은 비유를 하자면 눈치의 달인, 아니 신급의 눈치를 가지고 있어 상대방의 눈썹의 흔들림으로 그 사람의 일대기를 알게 되고, 멀리서 날아온 나뭇잎을 보고 숲의 탄생까지 알아버린다.
하지만 그 대가는 매우 커, 다른 사람들의 고통·증오·슬픔과 같은 것마저 아무런 저항 수단도 없이 받아들여 버린다. 일반적으로 보통 사람은 타인과 교류를 하면서 상처도 입고, 상처도 입히면서 행복과 기쁨을 나눠가면서 천천히, 점차 단단한 정신적 방벽을 기르게 되지만, 용인들은 자신의 정신을 지킬 어떤 방패 자체가 없다는 것. 용인에 대한 유명한 언급은 카시다 암각문에 잘 나와 있다.
작중에서 살아있는 용인은 륜 페이가 유일한 상황이며 그가 먹고 난 뒤 그의 수력 제어력의 조종 능력이 엄청나게 강화되었다. 여러모로 엄청난 초인이 되는 것 같지만 초월적인 예민함이 너무나 심하게 상승되어 버린 데다 어른이 되기도 전에 세상에 노출되었고 하필이면 용근을 먹어버리는 바람에 더욱 방벽이 약한 탓에, 타인의 감정을 지나치게 받아들여 그 때문에 나가를 태워놓고 그들의 숫자가 몇명인지 기억하거나, 타인의 지나치게 강한 의지에 오염돼서 그 타인의 뜻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어지는 꼭두각시 신세가 되기도 했다[1].
이 때문에 되려 약점이 되거나 도움이 안 될 수 있어서 용인 자신의 일은 오히려 잘 안 풀리게 되는 셈. 실제로, 눈물을 마시는 새 · 피를 마시는 새의 세계관에서 역사에 이름을 남긴 용인은 뇌룡공 륜 페이 하나 뿐이다. 역설적으로 용들을 가장 꺼렸던 종족인 나가임에도 불구하고...
3. 작중 등장한 용인
- 륜 페이
- 용인의 영: 하인샤 대사원에서 참선하던 군령자에게 깃든 영. 아주 오래 전에 군령의 일부가 되어 잠들어 있었으나, 아스화리탈이 눈을 떴을 때 갑자기 깨어나 아라짓 어로 용근이 눈을 떴다고 외쳤다.[2] 그 후 다시 잠들었으며, 군령자가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자기 속에서 다시 찾아내지 못했다고 한다.
4. 기타
- 이상하게도 용인은 용근을 먹으려 든다고 한다. 이미 용인이 된 마당에 용근을 탐내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불명. 어쩌면 이걸 먹으면 일반인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실제로는 어떨지 모른다. 자신과 같은 피해자를 막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다시 한 번 용근을 먹음으로서 잠시나마 예리함이 사라지기 때문인지 확실한 설명은 없다.
- 용인의 특징을 곰곰히 생각해보면 식물의 특징과 굉장히 유사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의외로 식물은 주변의 변화를 굉장히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토질의 산성에 따라 꽃의 색깔이 달라지거나 계절에 따라 꽃이 피고 낙엽이 지며 습도에 따라 죽고 살기도 한다. 이러한 힘을 얻은 용인들은 카시다 암각문 말마따나 주변에 굉장히 민감해진 결과 주변 환경에 맞춰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그야말로 성장기의 용 같은 모습을 보인다. 용의 힘을 탐낸 자들이 용의 힘인 불꽃 대신 이러한 식물의 힘을 얻었다는 점이 아이러니.
- 오해 없이 상대를 이해한다는 점이나 미래를 예지할 수 있다는 점을 보면 아무래도 뉴타입의 오마주인 듯하다. 또한 상대의 모든 것을 이해하느라 정신적 방벽을 가질 수 없다는 점은 카미유 비단을 연상시킨다. 이영도 작가가 깊은 덕력을 자랑한다는 건 유명한 사실이니,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측된다.
[1] 다만 이는 "누나를 지킨다"라는 본인의 강한 무의식적 욕망과 합치되는 면이 있는 의지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했다.[2] 그토록 오래된 영들은 깨어나지 않는 게 정상이지만, 군령자가 깊은 참선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잠깐 깨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군령자 본인도 용인이 외치기 전까지 자기들 중에 용인이 있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