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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웹툰 외모지상주의의 장르가 사회비판물이던 시절의 초창기의 비판을 정리한 문서.2. 스토리 및 사상의 문제점
작품 내 스토리텔링에 대한 비판 및 작가 본인이 작중 드러내는 사상에 대한 항목이다. 주인공을 포함한 전반적인 캐릭터들의 사고방식이나 성격, 행동 등이 단순하고 진부하며, 이로 인한 스토리의 전개도 예측하기 쉬운 양상이 반복된다.3. 스토리텔링의 문제
거의 모든 편의 내용이 툭하면 싸움질하는 일진물에 지나지 않는다.'중고라나' 편에서부터 주제 의식은 온데간데없어지고 본격적인 일진만화화가 진행되며 비판 여론이 높아졌다. '관심종자' 편도 혐오성과 선정성으로 인해 비판 댓글이 베댓에 올라왔다. '파프리카 TV' 편도 결국 못생긴 사람은 찌질이로 취급받는다는 비판점의 효시가 됐다.[1]
이 소재들의 공통점은 SNS, 인터넷 방송, 패션 등 주로 어린 독자들에게 인기 있고 잘 어필되는 소재라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외모지상주의와 연관 지어서 그려 보려고 했더니 주제 의식 반영은커녕 오히려 작가 본인의 외모지상주의적 사고를 의심하게 할 만한 에피소드가 탄생하게 되었다.[2] 이는 주제 의식의 상실 등 다른 문제점들과 시너지를 일으키고 있다.
주제 의식과는 관계없는 스토리를 끼워 맞추다 보니 비현실적인 전개와 묘사, 인과관계로 인하여 개연성이 무너져 어찌어찌 주제 의식을 집어넣더라도 독자들에게는 전혀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못한다. 여기에 일진만화화와 폭력 등 선정적 묘사가 섞여버리니 결과물이 아쉽다. 어찌 보면 이 만화가 비판받게 된 이유 중 가장 기본적이고 포괄적이며 앞으로도 다른 문제점을 만들어내거나 악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한 이유라 할 수 있겠다.
또한 새로운 에피소드가 진행될 때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가 없다. 새로운 편이 이전 편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 별로 없기 때문. 그나마 캐릭터들이 입고 있는 옷마저도 계속 계절을 왔다 갔다 하면서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관심종자' 편에서는 박형석이 파카를 입고 있고 '피팅모델' 편에서는 봄, '진성이의 데이트' 편에서는 이진성이 목도리를 두르고 있다. '위험한 아르바이트' 편은 봄인데 몇 주 만에 벌써 1년을 돌았다. 게다가 바로 다음 편인 '바스코의 생일파티' 편은 다시 한겨울이라는 언급이 나오는 등 시간의 흐름이 뒤죽박죽이다. 심지어 이누의 강아지들은 '재열과 이누새끼들' 편에서 후반부에 덩치가 큰 성견이 되었지만 '바스코의 생일파티' 편에서는 다시 덩치가 작아져 있다.
4. 주제 의식의 상실
극초기 이 작품이 주목받았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표적으로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한 현실에 대한 비판과 주인공 형석이 그런 현실을 어떻게 이겨 나가느냐?가 가장 흥미로운 주제였다. 그러나 주인공이 새 몸을 얻고 전학을 간 이후의 스토리부터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비판 의식은 사실상 사라졌다. 원래 박형석은 점점 등장하는 횟수가 줄어가고 미남 박형석만 자주 등장한다.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의 메시지를 담고 싶다면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는 사회를 비판해야 하지만 작중 그런 의식을 보인 적은 거의 없다.내용에서는 중심 소재가 특별히 두드러지지 않으며 독자들도 외모지상주의의 심각성에 대해서 느끼기보다는 스토리 전개에 흥미를 갖는 듯하다. 앞으로 이 웹툰은 원래 모습의 정반대의 새로운 몸이 생기게 된 초현실적 현상의 원인이나 이로 인한 사건, 관련된 인물들의 반응과 갈등, 주인공의 내적 갈등은 물론 외모지상주의나 학교폭력의 실태와 같은 다양한 소재들을 풀어 가야 하는데 지금까지의 스토리 전개를 보면 이것들을 제대로 풀어 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이러한 비판을 작가가 인식했는지 몰라도 주제 의식에 근접하는 시도 차원의 에피소드들을 뽑아냈다.
당시에는 상술했듯 작가가 스토리 극 초반이라고 했으니 두고 볼 수도 있는 일이다만 여전히 근본적인 한계점들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런 반성의 모습과 시도가 무색하게 '관심종자' 편에서 혐오스러운 짓을 일삼는 등장인물들의 외모가 심각하게 혐오스러운 모습으로 묘사되었고 해당 편에서는 베댓에서도 주제 의식 상실에 대한 열띤 키배가 벌어졌다.
작품에서 주제는 작가가 일방적으로 제시한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독자들이 직접 그것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하며 찾아낸 주제에 정말 공감하고 납득할 수 있어야 비로소 주제 의식이 완벽히 전달되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에서 제목과 억지스러운 결론을 제외한 무엇이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한다고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자.
현재 웹툰은 사실상 일진만화가 본 정식 스토리로 넘어간 거나 마찬가지다. 물론 일진만화야 취향을 존중할 수 있지만 제목은 '외모지상주의'로 연재하면서 외모지상주의의 비판과 풍자를 기대한 초창기 팬들을 배신한 셈이 되었다.
4.1. 외모지상주의를 조장하는 외모지상주의
이 만화는 확실히 외모지상주의다. 나쁜놈들 다 추녀거나 추남, 돼지 아니면 늙엇거든
150화 베댓#
위에서도 설명했듯이 이 작품의 주제는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그런데 작중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런 비판 의식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주역들은 거의 다 잘생겼고 성격에 문제가 있거나 떨거지 취급받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못생기게 그려져 역으로 외모지상주의를 조장한다는 비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의견에 대해 외모지상주의를 보여주는 것은 그것의 조장이 아니라 그와 같은 묘사를 통해 외모지상주의를 띄고 있는 현대 사회를 비판하는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150화 베댓#
본래 몸의 형석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부터 심각하게 문제가 있다. 과거부터 맨날 얻어터지고 무시당하는 건 일상이며 그냥 단순히 같은 자리에 앉는다거나 편의점에서 물건을 환불하는 상황에서도 형석을 질 떨어지게 보고 그런 생각을 독백으로 표현한다. 어차피 스쳐 지나가는 사람인데도 굳이 그런 식으로 본래 몸을 비하하는 묘사를 해대는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물론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있을지라도 노골적으로 그런 생각들을 아무런 필터링이나 비판 의식 없이 드러내고 있다면 문제는 심각한데 생각도 없던 사람들에게 외모지상주의를 조장할 수 있다.
반면 잘생긴 몸의 형석은 그야말로 엄청나게 띄워주기를 받고 있다. 지나가던 사람도 잘생긴 거 보고 놀라 자빠지고 인터넷상에서도 순전히 외모만으로 엄청난 주목을 받고 뭘 해도 잘하면서 승승장구하고 여자들은 엄청나게 환호한다. 사실상 원래 몸은 그냥 버리고 잘생긴 몸으로 사는 게 훨씬 살기 좋아 보인다. 이는 외모지상주의의 현실을 조금은 과장해서 보여주고 있지만 이러한 점은 외모지상주의의 조장보다는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것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독자들조차 이 웹툰을 보면서 댓글로 외모지상주의를 까고 사람을 외모로만 평가하는 것을 비난하면서도, 반대로 캐릭터들을 외모로 평가하고 있는 판이다. 이 점은 작가가 외모지상주의라는 제목을 정해 이점'은' 부각시켰지만 정작 주제를 전달하는데 실패했다는 증거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어린 독자층을 주요 대상으로 한 느낌이 강하여 성인들이 즐겨 보기에는 단순 오락물 이상의 수준 높은 작품성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한때 정말 못생겼지만, 실력과 포기하지 않는 근성을 지닌 래퍼 꿈나무 편덕화를 투입하여 뒤늦게나마 분위기를 전환하려 시도했었지만,[3] 그마저도 잘생긴 형석의 도움을 받아 해결되는 장면이 많은 탓에 형석의 외모의 도움이 없었다면 조금씩 인정받는 덕화의 모습이 성립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것인가는 의문을 가지기에 충분하다. 즉 작가의 의도와는 별개로 덕화가 자립하는 모습이 와닿지 않았다는 것. 덕화라는 캐릭터 자체는 외모지상주의가 외모지상주의 찬양으로 흘러가는 것에 대한 경계심에서 만든 장치 같지만, 그가 자신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데에 잘생긴 형석의 초창기 조력 덕이 적지 않았던 점 그의 작중 비중 자체가 적다는 점에서 표현상의 한계가 명백하다.
덕화를 뺀 나머지 거의 모든 캐릭터에서도 문제가 상당히 심각하다. 따돌림이나 차별을 당하는 캐릭터 중에서 덕화와 원빈 교관[4], 기존의 박형석을 제외한 대다수의 캐릭터는 저렇게 자신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여 준 장면이 없다. 물론 따돌림을 혼자의 힘으로 해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지만 여기에 나오는 인물들은 정말 아무것도 안 한다. 잘생기고 이상한 사람들한테 괴롭힘당하다가 잘생기고 인성 좋은 주인공 일행이 구출해주면 주인공들 착하다며 띄워 주는 역할로 빠져주는 것이 전부라고 해도 무리가 아닐 정도로 스스로는 아무것도 못 하는 잉여 정도로 묘사된다. 이러한 묘사는 독자들에게 못생긴 인물들은 수동적이고 결국 잘생긴 인물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며 결론적으로 최고는 잘생기고 착한 일진 주인공 일행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어 문제가 된다. 작가가 정말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하려 했더라면 사람의 인성이 나쁜 것은 외모와 관련 없다는 것뿐만 아니라 못생긴 사람들도 충분히 능동적으로 일을 해결할 수 있는 점 또한 보여 주어야 하는데 과연 정말 그러고 있는지 의문.
그리고 능동적으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편덕화와 성폭행당할 뻔한 학생을 지키기 위해 몸을 던진 원빈 교관 등 주제 의식에 근접하는 듯한 인물들도 나오지만 결국 결과는 시궁창이다. 편덕화와 원빈 교관 모두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했고 능력이 있어도 못생기면 꽝이라고 묘사한다. 외모지상주의의 현실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하지만 과장되어서 묘사된 감이 있다. 외모지상주의가 가장 심한 연예계를 보자. 이 만화처럼 선남선녀만이 모든 연예계를 독점했는가? 본인의 개성으로 밀고 가거나 본인의 노력으로 남들에게 인정받은 연예인도 분명히 있다. 외모 때문에 노력해도 보답 못 받는다는 현실도 물론 반영해야겠지만 외모를 이겨내서 남들에게 인정받는다는 부분도 묘사되었어야 했다. 위 에피소드가 가장 적합한 에피소드였는데 이 점이 묘사되지 않았다.
결국 진행하면서 나오는 스토리도 잘생긴 몸의 박형석이 페북스타가 되고 패션몰 피팅모델이 되는 등, 예전에 있었던 작가 본인의 인생과 가치관을 열심히 투영 중인 듯하다. 비판을 의식했는지 본인 쇼핑몰을 패러디한 오복희의 사장과 피팅모델을 좀 싸가지없게 등장시키고 주인공도 본인이 처음 검소하게 아보키를 열었을 때처럼 검소한 패션몰에서 피팅모델을 시작하긴 하지만 외모지상적인 묘사는 여전하다.
비판 이후에도 보여준 행보를 보면 작가가 본인이 찌질했던 시절에서 환골탈태하면서 변모하게 된 경험 때문인지 작가 본인의 가치관은 여전히 외모지상주의를 긍정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다. 사실 주인공 본인부터가 찌질했던 작가가 노력해서 환골탈태하고 SNS 스타도 되고 패션몰 피팅모델도 했다고 언급한 작가 본인의 에세이 그대로 흘러가고 있으니 앞서 비판받은 현실적인 심리묘사나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일침은 기대하기 어려울 듯하다. 이런 비판이 거세질 때마다 작가의 블로그에 반성문이 올라오지만 바뀌지 않는 것을 보면 그저 그때그때 회피하려는 목적밖에 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발전이 없다.
독자들과 베스트 댓글을 보면 작품의 문제점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현실에서 본다면 그냥 얼굴 잘생기고 싸움하는 흔한 일진인 이진성을 보고 "진성이는 악당을 처치한 거니 착한 놈이고 잘한 행동이야!" 정도의 반응만 보여준다. "이 자식도 나쁜 놈은 아니었어." 하는 단순한 클리셰. 악당들을 혼내줬다고 해도 이진성의 행동 역시 엄연한 범죄이며 엄격히 처벌받아야 한다. 다른 인물들도 마찬가지. 이은태, 박형석의 행동 역시 학생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다. 주연 정도의 인물들이 담배를 피우는 것 또한 학교에서 처벌받아야 한다. 하지만 독자들은 담배를 멋과 일진의 대표적인 예시라는 기준을 가지고 있고 작가도 그러한 생각을 하는 듯하다. 웹툰이라는 이유로 이러한 잘못들이 그냥 흐지부지 넘어가서는 안 되는 비판받아야 할 점이다. 더군다나 학생층이 주를 이루는 네이버 웹툰이고 어린 학생들이 주를 이루는 작품인 만큼 외모지상주의와 일진을 찬양하는 내용은 더더욱 개선되어야 한다.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하겠다는 만화의 댓글에 캐릭터의 외모와 행적을 찬양하는 댓글만 가득하다면 만화가 주제 의식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또한 일관적인 성향으로 강남건물주나 스토커 등 악역을 못생기고 혐오스럽게 그린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얼굴의 아름다움과 추함은 그 인간의 인성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데, 하필 악한 인물들은 거의 다 혐오스럽게 생겼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연출이라고 보기 힘들다.
물론 준구 같은 잘생긴 악역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범죄의 질이 다르며 이들은 작품 속 세계관에서 보면 주인공들과 다를 바 없는 일진 무리이기 때문에 딱히 악역 같다는 분위기가 없고 멋지고 간지난다는 이미지로 묘사된다. 반면 제우스 교관 같은 경우는 강간미수라는 만화 내적으로도 도저히 쉴드 칠 수 없는 명백한 범죄를 저지른 순간 바로 얼굴이 추잡해졌다. 비슷하게 강남건물주도 살인미수라는 만화 내적으로도 쉴드 칠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르는 캐릭터인데 처음부터 못생겼던 것으로 보나 스토리 흐름으로 보나 그냥 아예 이런 범죄자 캐릭터로 만들려고 작정하고 만든 듯. 요약하자면 단순한 일진이나 폭력배 등 작가 딴에 만화로써 용납 가능한 악역들은 평범하거나 잘생기게 묘사하여 왜 악역들은 전부 추한데 선역들은 왜 전부 잘생겼냐는 논란을 회피하고 정작 진짜 용납 불가한 범죄를 저지른 캐릭터들은 얼굴이 전부 추하게 묘사된다. 바꿔 말하면 특정한 외형, 얼굴을 전형적인 살인범들의 이미지로 굳히려는 것. 현실에서도 단순히 유명한 범죄자랑 비슷하게 생겼거나 이름만 비슷해도 본인이 저지른 것도 아닌데 욕먹고 놀림당하는 것을 생각하면 이는 절대 용납 못 할 행위이다.
위에서 말한 "외모지상주의를 보여주는 것은 그것의 조장이 아니라 그와 같은 묘사를 통해 외모지상주의를 띄고 있는 현대 사회를 비판하는 것"이란 의견이 공허해보이는 것이, 이에 대한 비판의 비중이 출중한 외모로 인한 혜택보다 너무나도 적다는 것이 문제다. 편덕화에 대한 편견, 김유이의 표리부동한 모습도 부정적으로 그려지지만, 바로 그 뒤에 꽃미남 박형석이 외모갖고 인기와 온갖 혜택을 누리는 장면, 김유이가 이진성바라기가 되어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장면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게다가 작품 내에서 외모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는 주요인물들은 그렇게 나쁘게 그려지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이들의 "외모로 인한 편견"이 부정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이 점을 보여주는 한 예로서 주요 인물들 중 가장 노골적이고 악랄한 외모로 인한 괴롭힘을 자행한 이는 진호빈인데, 그가 어떻게 그려졌는지 생각해보자. 자신의 편견을 뉘우치거나 인식하지도 못함에도 불구하고 "재원고 일파"의 일원으로서 주인공 일행처럼 그려지고 있다. 이는 작중 모든 에피소드에 해당되는 문제다. 축제 편에선 "잘난" 형석이 그 잘남 덕분에 온갖 신나는 일을 겪고 이런저런 개그 에피소드가 이어진 후에야 마치 생각났다는 듯이 수정의 입을 통해 (그것도 생뚱맞게) 외모지상주의를 한 마디 비판하고 만다.
그나마도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이 꽤 들어간 PTJ편은 어디까지나우동/라솔이 중심이 되어 연예계 기획사의 더러운 면이 주제고, 편덕화의 못생긴 외모에 대한 편견은 양념으로 들어간 정도다. 모든 에피소드에서 박형석이 꽃미남 외모/싸움실력으로 인해 생기는 특이하거나 즐거운 일들에 대한 에피소드는 작화까지 한껏 힘을 넣어서 한가득 넣고,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은 "외모로 차별하면 나쁘다" 수준의 묘사로 그냥 퉁치고 있다.
편덕화의 진호빈의 경우 편덕화는 출중한 실력과 더불어 어떤 어려움에 부딫혀도 결코 굽히지 않는 강한 의지, 선량한 성품과 주변환경을 탓하지 않는 성숙함까지 갖고 있는 굉장히 멋진 캐릭터이다. 그리고 진호빈은 이런 편덕화를 외모로 차별하는 싸움만 잘하는 쓰레기다. 덕화는 외모지상주의 비판이라는 주제를 온 몸으로 대변하는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본작에서 누구의 비중이 더 큰지 생각해보자. 편덕화의 존재 자체가 이런 논란을 불식시키려는 면피용 캐릭터가 아닌지 의심될 정도다. 덕화의 존재는 사실 외모지상주의 주제에 누구보다 적합하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조연이며 오히려 박형석이 잘생겨져진 이후 받는 수많은 혜택에 대한 묘사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오히려 이걸 보면 "외모로 판단하는 건 나쁘지만 (당연한 얘기), 잘생기면 진짜 너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질 확률이 높다. 작품 내 비중부터가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것보다 "잘생겨서 멋진 것들"을 주로 다루고 있으니...
사실 이쯤 되면 본인이 잘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외모지상주의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는 깨우친 작가[5]라는 타이틀 때문에 외모지상주의를 주제로 고른 게 아닌가 의심될 지경이다.
4.2. 일진미화물
기존의 일진미화물이 불량청소년의 일탈을 정당화하고 세탁하는데 그쳤다면 이 작품은 거기서 한발 더 나가 아예 신격화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등장하는 일진들은 모두 잘생기고 훤칠한 외모에 멋진 스토리텔링을 부여하는 한편 일반 어른들은 무능한 꼰대 취급을 하며 일진이 아닌 일반 학생들은 일진을 선망하고 일진에게 폭행당하는 게 당연한 2등 신민으로 묘사하는 식, 그 와중에 일진의 악랄한 폭력이 정의롭고 선하다는 일종의 억지 사이다식 묘사가 매우 많은 편.
들어가기에 앞서 말하자면 외모지상주의라는 주제에는 폭력적인 요소가 전혀 필요하지 않다.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피해는 폭력도 있을 수 있겠지만 폭력이 전혀 개입되지 않은 사회적 차별, 인간관계에서의 불이익과 같은 것들이 훨씬 더 많다. 따라서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하는 소재가 폭력적일 필요가 없다.
여기서 다른 만화에서도 일진 주인공이 나오는데 왜 여기에만 그러냐는 의견도 있지만 이것은 연출의 문제다. 가령 유유백서의 우라메시 유스케나 죠죠의 기묘한 모험의 쿠죠 죠타로도 언뜻 보면 흔한 일진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냥 노는놈이고 일진미화 같은 것도 하지 않았다. 죠타로의 경우 삥을 뜯는다거나 다른 아이들을 패고 다닌다는 묘사가 나오기는커녕 오히려 약자를 괴롭히고 이용하는 게 진정한 악이라는 등 일진과는 거리가 멀다. 게다가 유스케는 오히려 센스이 편을 보면 악역 같은 묘사가 있었다. 쉽게 말해 작가가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외모지상주의는 일진미화가 심하고 주인공의 행보를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6]
'중고라나' 편 부터 외모지상주의 비판 의식은 아예 실종되었다. 툭하면 불량배들끼리 싸움질이나 하러 가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일진만화로 전락해 버렸다. 그나마 착해지려던 것처럼 보였던 진성이야 원래부터 일진이었으니 그렇다 쳐도 그를 따라가는 형석이 曰 "한 그룹으로 생각해 주는 게 기쁘다."라는 것은 정말로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처음에는 술을 먹거나 탈선하러 가는 줄 몰랐을 수도 있다. 그러나 탈선해가면서 나쁜 행동을 하는 것을 알아챈 뒤로도 계속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상당히 문제가 있다.
만약 누군가 형석처럼 괴롭힘을 당해놓고 새 몸이 생겨서 대우가 바뀌었다고 생각해 보아라. 왕따에서 벗어난 지 얼마 안 돼서 후유증도 남아있을뿐더러 고작 외모가 다른 것만으로 태도가 차이가 나니 오히려 일진과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경멸만이 더 심해지는 것이 정상일 것이다.[7] 만약 형석이 자기를 괴롭히는 것에 대해서 찌질대며 납득을 못 했다는 설정에 비열한 녀석이었다면 그나마 말이 되지만 중요한 건 작품 내 형석은 오히려 매우 착하다는 것이다. 저런 설정은 작품 주제와 안 맞을뿐더러 형석의 성격과도 안 맞는다.
주인공이 이전의 친구 없는 왕따에서 갑자기 미남으로 변한 것일 뿐 마음 자체는 왕따 시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라 기뻐할 수도 있다고 말하는 독자들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는 수많은 에피소드를 거치면서도 주인공의 사소한 발전조차 보여주지 못하는 작가의 연출능력 부족과 친하게 대해 준다고 무조건 친구라 하는 주인공의 단순한 마인드를 좋게 설명할 수 없다. 그래도 작가도 이 사실을 인지는 했는지 '중간고사' 편은 그나마 본래 주제 의식을 되찾는가 했지만 이마저도 그저 시험이나 다른 행위에 부정을 저질러 남의 노력을 망쳐버리는 내용이었고 정작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은 없었다.
물론 이런 일련의 문제점들이 노골적으로 표현되는 이유로 현실의 학교폭력 문제에 대해 상당수의 교사를 비롯한 어른들이 별 도움이 안 되는 건 물론이고 오히려 방해만 되는 사례를 들어 보일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왕따를 당하는 경우 그 일진이 좀 유명하고 인맥도 있는 경우 아니 그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교사나 경찰은 합의를 유도하려 하는데 교사 측에서 학교의 불미스러운 일에 대해 학교 이미지가 실추되는 것을 우려해 방치하거나 묵인하는 경우가 많다. 작중에서도 매미형이 부른 준구가 이를 근거로 협박하는 장면이 나오고 현실에서도 역시 학교와 교사들 선에서 진작에 해결이 가능했다면 학생들이 집단따돌림에 자살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또한 학생들이 이런 것을 부모에게 알리는 것을 부끄럽거나 부모에 대한 불효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매우 많다. 그러나 그것들을 표현하는 방식이 폭력과 법망을 벗어난 복수를 옹호하는 전형적인 일진만화와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독자에게 폭력을 정당화하는 인식을 심어 줄 가능성이 존재하며 그런 식으로 필터링이 되지 않은 폭력적인 표현상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 만화에서는 마치 싸움 실력이 외모와 함께 일종의 스펙인 것처럼 묘사한다. 이는 실제 사회에서 대화와 토론으로 갈등을 풀어 가야 하는 바람직한 인간관계의 모습과 상당히 동떨어졌으며 오히려 정의를 위한 폭력은 괜찮다는 식의 뉘앙스를 풍긴다. 이는 아직 가치관 성립이 되지 않은 청소년들에게 학업뿐만 아니라 싸움도 잘해야 한다는 사고를 심어 줄 수 있으며 싸움을 잘해야 멋지고 남자다운 것이라는 쌍팔년도식 성별 관념과 가치관을 조장한다.
예를 들어 "바스코" 이은태의 행적을 보면 어린 시절 양아치들에게 괴롭힘당했지만, 좌절하지 않고 강인한 정신력으로 스스로를 더욱 강하게 만들겠다고 다짐하며 몸을 키운다. 여기까지는 좋다. 그런데 그렇게 강해진 육체능력을 갖고 다니는게 고작 싸움박질이다. 결정적인 것은 이러한 이은태의 싸움꾼으로서 변모는 타락이나 일탈로 묘사되는 것이 아니라 성장으로 묘사된다. 더욱 훌륭한 싸움꾼이 되는 것이 마치 자기계발처럼 묘사되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싸움을 잘한다고 해서 무조건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강호동이나 김동현처럼 강한 힘과 싸움실력을 살려서 정상급의 씨름선수, 격투가가 되어서 사회적인 성공을 거뒀다면 훌륭한 일이다. 그러나 이은태는 그런 식의 격투가의 길을 걷는게 아니라 반대로 무에타이 고수를 사사하고서까지 싸움을 하고 다닌다.
게다가 누군 세고 누군 약하고 누군 이렇게 누군 저렇게 싸움까지 잘한다는 식으로 폭력성을 미화하는 것은 일부 독자에게 거부감을 유발할 수 있으며 유치하다는 생각도 들게 한다. 작가가 폭력을 보는 관점을 이 만화에 그대로 옮겨 놓은 건지 단순히 인기를 위해서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건지 의문이 든다.
사실상 4대 크루가 나온 기점부터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하는 웹툰 외모지상주의는 사라졌고 판타지 액션만화 외모지상주의만 존재한다고 봐야 된다. 실제로 아직도 이 웹툰을 웹툰 제목 그대로로 보는 독자들은 거의 존재하지도 않으며 심지어 웹툰 제목인 외모지상주의를 다른 작가에게 넘겨주고 사실상 웹툰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4대 크루로 바꾸자는 의견도 쉽게 볼 수 있다.
애초에 이 만화의 주제가 외모지상주의라고 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학교폭력을 통해 외모지상주의에 대해 논하는 방식으로 만화를 시작했으나 2020년 6월 6일 기준으로 100화 넘게 학교폭력에 대해선 (이태성의 폭력을 극복하는 박형석을 마지막으로) 언급조차 되고 있지 않고 있다. 이후 전개를 보면 갓독과 재원고의 결전, 호스텔과 재원고의 결전, 그리고 일해회와 결전으로 이어졌고, 일해회편은 의외로 일찍 끝났으나 대신 김기명 편이 시작되어서 또 몇달간 싸우고 있다.(...) 심지어 이 편은 과거회상이라 이야기 전개에 큰 영향이 없는 편으로 최소 십수개 에피소드가 소모되는 셈.
까놓고 말해 비중으로 따지면 초반부터 본작은 학교폭력물에 외모지상주의은 양념으로 끼워넣은 수준이다. 초반부는 "박형석의 재원고 적응기" 였고 최초로 10회 넘는 장기 에피소드인 PTJ 엔터테인먼트" 편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최초로 길게 이어지는 PTJ편은 외모지상주의가 주제가 아니다. 물론 여기서도 외모로 차별받는 덕화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내용이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 편의 주제는 우동과 라솔, 아루를 둘러싼 갈등과 연예기획사의 더러운 거래이며, 사실상의 주인공도 우동과 라솔이다.
사실 위에서 비판 의식이 어느 순간 실종되었다고 나왔지만, 초반이라고 그렇게 비판 의식에 충실했던 것도 아니다. 형석이 새 몸을 얻게 된 3화부터 일탈 편까지는 왕따 피해자에서 일진 무리에 어울리게 된 형석의 이런저런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이어지다가 "축제" 편에 와서야 어느 정도 진지하게 고찰을 하게 된다. 이 편과 "파프리카 TV" 중간까지는 재능 있으나 외모로 묻히는 덕화와 별 노력 없이도 모든게 잘되는 형석의 대조, 천사같은 외모와 대비되는 쓰레기같은 인성의 유이를 통해 주제의식을 잘 살린 편이다. 근데 이후 추악한 외모의 악당을 해치우는 뻔하디뻔한 외모지상주의에 기반한 전개로 넘어간다. 그리고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주제가 되는 에피소드는 사실상 저게 전부다. 다 합쳐봐야 10화 남짓.[8]
즉, 초반에 가끔 가다 괜찮은 에피소드가 있었을 뿐 자세히 살펴보면 "외모지상주의"는 원래부터 그냥 일진폭력물이었다. 그저 제목과 양념으로 끼워넣은 몇몇 에피소드 때문에 이 점이 묻혔을 뿐이다. 게다가 작중 주요 인물인 형석의 노력과 성장도 싸움실력 위주로 이어지고, 그전까지 명백한 범죄에 시달렸음에도 자신이 괴로웠던 이유에 대해 스스로의 부족함을 탓하는데다, 학교폭력 행위에 적극 가담한 자들의 악행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나 반성 없이 은근슬쩍 넘어가는 등, 조폭미화물/일진미화물의 정석과도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액션만화가 무조건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 본작이 일진미화가 심한 것은 사실이지만, 조폭이나 일진을 다룬 상당수 작품들은 이에 대한 미화가 이뤄진다. [9] 그러나 이 만화의 웃긴 점은 "잘 생긴 놈은 잘 나가고 못 생긴 놈은 끝없이 못 나가는 외모지상주의가 극심한 일진미화물이 외모지상주의란 타이틀을 달고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 데 있다. 차라리 처음부터 사회비판적인 척하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비판의 목소리가 높진 않았을 것이다. 물론 주목도 덜 받았겠지만.
초반 전개 말고 최곤 1년간의 전개를 한번 보자. 그나마 사회문제를 짚은 가출팸과 장현편 (가출청소년 범죄 문제와 학대에 가까운 지나친 교육열) 이후 호스텔 공략전, 소년교도소, 일해회, 김기명까지 뻔하디뻔한 폭력물이다. 일해회 편은 인터넷 방송의 문제점을 짚은게 아니라 작위적으로 보일 정도로 악랄한 기업을 만들어서 폭력물의 배경으로만 썼고. (그것도 현존하는 인터넷 방송인을 악역으로 그렸다)[10] 이 정도가 되면 주제의식 상실이 문제가 아니라 작품의 깊이가 지나치게 얕은 것이 더 큰 문제일 지경. 그냥 싸우고, 멋있고 하는 야인시대식[11] 뻔한 조폭미화물이다.
현재까지 미화된 대표적인 캐릭터로는 이진성[12], 이태성[13], 진호빈[14], 이현도[15][16] 등이 있다.
5. 모든 것을 폭력으로 해결하는 전개와 그로 인한 개연성 붕괴 문제
5.1. 비판론
이 만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이런 의문이 들었을 것이다. "이 동네에는 경찰이 없냐?"공권력이 등장해도 매우 무능하게 묘사되거나 모든 사건이 끝난 후에야 등장한다. 학교에서 학생과 가장 가까운 어른인 교사들도 거의 나오지 않는다. (이는 일진미화물의 전형적인 클리셰 중 하나이기도 하다.) 본인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정당방위로 인정할 만한 건 강남건물주 정도이다. 나머지도 위급한 상황인 건 마찬가지이지만 애초에 그 상황이 되기 전에 경찰을 불렀으면 되었을 상황인데 굳이 안 부르고 자력으로 해결하다가 꼭 곤경에 처한다.
결국 합법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의지는 눈꼽만큼도 없는 일진물이 되어버린지 오래다. 정말로 대부분의 에피소드에서 괴롭힘을 당해서 또는 눈뜨고 볼 수 없어서 맞서 싸운다 식의 묘사만 한다.
작중 세계관에서 경찰이 무능하다고 의심될 정도로 문제가 있다. 이은태 에피소드에서는 학교 측에서 학교 이미지가 나빠질 것을 우려해 악행을 어영부영 덮어버리는 어이 없는 전개가 나온다. 물론 학교에서 괜히 법적으로 해결하려다가 학교 이미지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일을 덮는 경우는 많지만 이은태 몸에 칼로 새긴 상처가 아주 선명하고 수두룩하게 남겨져있어 분명한 증거까지 갖춰진 상태이므로 고소만 하면 덮으려고 시도해봐야 다 밝혀지게 되는데도 정작 이은태(바스코)와 그 부모 중 아무도 고소할 생각은 안 하고 이은태 몸에 타투를 새겨서 증거를 없애고만 있다.
관심종자 편에서도 신대훈 일당이 현도와 박태준을 보복한다고 페이스북에 예고를 올리고 직접 폭행하는 장면까지 올렸는데도 아무런 형벌을 받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페이스북에서 인기를 되찾은 채로 활동하고 있다. 물론 조직의 보호를 받는다고 하지만 떡하니 대놓고 폭행한 게 만천하에 드러냈는데 경찰서로 가는 건 당연하다. 그리고 아무런 생각없이 누군가를 폭행하고 그걸 찍어서 페이스북에 올린 것을 조직의 높으신 분이 보게 된다면, 그 부하가 잡혀갔을 때 괜히 위험을 무릅쓰고 구해주느니 그냥 버리고 말 것이다.[17]
게다가 이 작품을 보면 싸움을 하는 게 작품 주제인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하는 것보다 압도적으로 많은데, 정말 안 싸우고 끝나는 에피소드를 찾기 힘들 정도. 사회의 부당한 면을 비판하겠다며 나선 만화에 대체 왜 폭력이 저렇게 자주 나오는지 알 수가 없다. 그마저도 사회의 부당한 면과 관련 없이 단순히 폭력만 쓰는 장면이 많다. 경찰에 신고하여 처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컷 줘 패놓고 폭력을 일삼는 나쁜 놈들을 때려주는 착한 폭력을 저질렀다면서 자기 딴에는 멋진 말을 하고 쿨하게 사라지는 걸 보면 어이가 없다.
형석이 술만 먹으면 난동 피우는 부분도 문제. 이는 결국 스토리 전개를 폭력으로 시작해서 폭력으로 끝내기 위해 소심한 형석을 대범한 형석으로 바꿀 필요가 있었고, 이를 위하여 술이라는 것을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전체이용가인 만화에 술, 담배, 도박이 나오는 것도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그 이전에 뭐만 하면 폭력으로 스토리를 끌려고 하는 점이 문제점으로 나타나고 있다. 평소에 술을 싫어하는 주인공이 술을 마시는 전개로 만들다 보니 생기는 부자연스러움은 덤. 소주는 그렇다 쳐도 호스트바에서 양주를 보릿물로 착각한다는 건... 그리고 소심한 박형석을 대범한 모습으로 바꾸기 위해 음주를 하겠다는 것도 문제인데 박형석은 엄연히 미성년자고 현실에서 술 먹고 난동 부리면 가중처벌 받는다. 그럼에도 박형석을 멋지게 미화하고만 있으니 작가가 진지하게 고려했는지 의문이 드는 부분.
박형석이 원래 몸으로 펀치기계를 터트리는 장면, 박형석의 펀치를 맞은 바스코의 반응 등에서 독자들이 '원래 몸도 사실 새로운 몸만큼 힘이 강한 거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다. 그 밖에 이진성이 당할 때마다 댓글에는 '이진성은 전투력 측정기인가요?'라는 반응이 나오고, 악역 캐릭터가 등장하면 '바스코한테 맞고 싶은가' 같은 댓글이 달린다. 이는 이 만화에 작가가 무엇을 표현하고 있으며, 독자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 지를 반증한다. 도대체 왜 외모지상주의가 주제인 만화에서 이런 댓글이 쇄도하는지 작가는 진지하게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5.1.1. 옹호론
만약 극단적인 상황에서 그렇게 해결방법을 떠올리기 쉽다면 집단괴롭힘으로 안타깝게 자살하는 학생들이 왜 있겠는가?[18][19] 하는 것. 집단괴롭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크게 바뀐 것은 2011년부터다. 당시 있었던 2011년 대구 중학생 집단괴롭힘 자살사건으로 학교폭력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생각과 정부의 대처, 경찰의 대응양상이 바뀐 것. 당장 해당 사건도 피해 학생의 집에 가해자들이 들어와 집안 물건 및 금품 절도와 물고문을 행하는 등의 추악한 범행을 저질렀음에도 피해 학생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주변의 어른들은 전혀 알지 못했다. 이후 몇 년동안 사회적 인식이 더욱 서서히 바뀌어 가면서 집단괴롭힘은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는 인식이 비교적 높아졌다. 작중 시간이 몇 년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작중 현실을 2015년으로 보고 3년 전인 2012년이라면 아직은 그런 인식이 충분히 자리잡지 않았을 때일 수도 있다는 옹호가 가능할지도 모른다.5.2. 반론
그렇다면 과연 폭력적으로만 대응하는 게 옳은 해결책인가? 그렇다고 해도 왜 제 3자가 개입을 해 해결을 하는가? 타인에 대한 폭행은 그 자체로 폭행죄에 해당하며, 폭력을 동반한 사적제재는 기본적으로 범죄이다. 무조건 폭력적으로 보복한다고 해서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는 없다. 범죄를 같은 범죄로 응징하려는 행동 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된 발상이다. 그러나 피해자에 대한 가해행위가 심해지고 교사 또는 부모님께 얘기하는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면 폭력을 마지막 선택지로 선택 할 수 있긴 하다. 하지만 해당 웹툰에서는 십중팔구 법에 의한 공정한 절차가 아닌,피해자가 직접 보복하는게 아닌, 옆에 일진집단에 속하는 인물이 나와 대신 싸워주는 모양새를 취하는데 이는 폭력 미화,또는 일진 미화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적어도 현실적으로 구성하고자 했으면 순차적으로 일반적인 방법을 동원하다가 최후에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표현하면 그나마 나을지도 모른다.[20] 그러나 처음부터 폭력 혹은 그냥 참기부터 나오니까 이걸 잘못 받아들인다면 폭력이 시작인줄 알 수도 있다. 아니면 그냥 대놓고 "픽션이니까 따라하지 마세요"라고 적어놓으면 모를까. 학교폭력을 근절하는데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해결책인 경찰을 부를 생각조차 안 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심지어 학부모들조차도 경찰을 부를 생각 자체를 안 한다. 특히 바스코의 어머니는 아들이 괴롭힘 당하는 지조차 모른다. 몸에 확 티가 나는데도! 실제로 한국에 경찰 신뢰도가 견찰이라고 부를 수준인 한국에도 범죄가 일어나면 그 견찰에게 신고하는 게 태반일텐데 물론 학교폭력 피해자 측에서 근본적으로 경찰에 대한 불신이 심해져 흥신소를 통해 가해자를 대상으로 한 보복행위 사례는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이 조차도 위법이며 웬만하면 학교폭력 전담교사나 경찰청에가 문의를 하는 것이 제일 현명하다.
뭐, 당장에 싸움꾼이 주먹 쥐고 싸우자고 덤비는 거라면, 경찰을 부를 여유가 없으니 그럴 수 있다. 한국에서 치안 자체는 좋을지 몰라도, 일시적으로 생기는 공백은 상당히 많은 편이니까. 그 틈을 노려 범죄가 발생하는거고. 하지만, 여기서는 방관자, 혹은 제 3자의 위치인데도 신고 없이 싸우겠다고 덤비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러니 문제가 된 것이다.
[1] 그나마 이 편에선 하늘이가 형석에게 호감을 느끼는 계기가 된 사건이라 아주 조금이라도 스토리에 관여했다.[2] 실제로 작가가 '관심종자' 편은 페이스북에서 인기가 있어서 본편을 진행하기 전에 만든 것이라고 밝혔다.[3] 물론 이를 근거로 덕화라는 캐릭터 자체를 평가절하할 필요는 없다. '축제' 편에서 박형석에게 같이 공연을 하자고 용기를 내서 먼저 제안한 것은 덕화이며 무대에서 박형석이 편덕화를 도와준 게 아니라 편덕화가 박형석을 도와준 것으로 충분히 능동적인 모습도 보여 주었다. 또한 '파프리카' 편에서도 박형석 없이도 꾸준하게 방송을 해서 결국 조금씩 인정을 받고 있고 박형석 없이 혼자 무대에 올랐을 때도 이미 실력을 보인 터라 반응이 좋았다. 물론 작품의 주제를 가장 잘 드러내는 캐릭터가 주연 중 가장 비중이 적다는 면에서는 비판할 수 있지만, 아무것도 못 했다고 캐릭터 자체를 격하할 필요는 없다.[4] 앞서 언급된 덕화 외에 교육자의 표본다운 모습을 보여준 원빈 교관조차도 기존의 "잘난" 캐릭터들의 도움으로 상황을 타개할 수 있었다. 그의 의지와 태도는 훌륭했지만 결국 강간마를 잡을 수 있었던 건 "잘난" 이진성 덕분이며, 이후 구급차에 실려갈때에도 외모 때문에 무시당하던 그는 "잘난" 이진성의 인정으로 보람을 느낀다. 두 장면에서 이진성이 없었다면 그는 목숨을 걸고 보호하려던 여학생이 성폭행당하는 걸 무력하게 지켜보거나, 영웅이라고 불릴만한 행동을 하고도 학생들에게 무시당하며 씁쓸해 했을 것이다. 물론 훌륭한 인물을 얼굴만 보고 비하하는 쓰레기들은 어디에나 있다. 그런데 본작은 지나칠 정도로 이런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캐릭터 (즉, 주역들)은 전부 잘생기거나 예쁜 캐릭터들이다.[5] 사실이야 어떻든 지방대 학생이 입시교육을 비판하는 것과 명문대 학생이 입시교육을 비판하는 것은 엄연히 그 효과가 다르다(...). 입시명문 사립 정글고등학교에서 짤막하게 이를 비꼬아서 소개한 적이 있다.[6] 단적인 예로 범죄와의 전쟁과 야인시대는 모두 깡패가 주인공인 작품이다. 그러나 범죄와의 전쟁은 조금만 방심하면 배신당하고, 비열하게 행동하고, 명분을 내세우면서도 이익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뒤집고, 의리따윈 없고 정작 공권력에는 꼼짝도 못하는 깡패의 추한 민낯이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반대로 야인시대에서 주먹들은 "낭만"과 "의리"를 중시하며, 일단 폭력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고 하며, 이런 주인공들의 모습에 주변인들은 열광한다. 뭔가 익숙하게 들리지 않는가? "낭만"을 중시하는 김기명과, "가출 청소년의 보호자" 호스텔, 4대 크루를 통합하기 위해 "주먹"을 쓰는 주인공과, 불의를 잡기 위해 "힘"을 키워 때려잡는 바스코. 일진이나 깡패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실제 문제되는 이들의 비행을 온갖 미화를 통해 멋진 것으로 만드는게 문제인 것이다. 전혀 멋진 것이 아닌 일진이나 조폭을 마치 멋있는 것처럼 그리는 건 그 자체만으로 문제다.[7] 게다가 이전 김유이가 미남 박형석에게는 온갖 아양을 떨면서 원래 박형석에게는 폭언을 뱉는 등 확연히 다른 대우를 받았는데 이걸 진지하게 생각하지도 않고 저랬다는 건 문제가 있다.[8] "가을수련회"의 경우 위 문단에서처럼 잘 나가다가 잘생긴 악당이 갑자기 추해지는 전개로 주제의식을 쌈싸먹으니 논외. 그리고 여기서도 못 생긴 원빈 교관이 한계에 부딫힌 것을 잘생긴 이진성이 구해주며, 그것도 성인이 어쩔 수 없게 된 걸 미성년자가 구해준다는 외모지상주의에 기반한데다 비현실적인 전개로 이어진다.[9] 조폭의 잔혹한 세계를 다룬 신세계만 해도 상당히 미화가 있다는 걸 부인하기 힘들다.[10] 사실 이 부분은 해당 방송인인 서새봄이 별 신경쓰지 않고 넘어가서 그렇지 이 자체만으로 충분히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이다. 작가 본인이 모티브가 아니라고 밝혔다고 해도 외모나 플랫폼, 특유의 제스쳐까지 서새봄과 비슷해서 사실상 눈가리고 아웅이다. 심지어 서새봄 본인이 닮았다고 주장한 것도 아니고 주변 스트리머들이 그녀에게 제보할 정도니 누가 봐도 닮았단 것. 그런데 이 인물은 자신의 영달을 위해 미성년자들을 악랄한 기업에게 넘기는 쓰레기이다.[11] 실제로 빅딜은 "의리로 언니들의 거리를 지키는 폭력조직"으로 포지셔닝하고 있는데, 이는 야인시대에서 나온 "거리의 독립군" 드립과 똑같은 논리다.[12] 이쪽은 초반부 이후로 조금 나아지긴 했으나 아직까지도 피해자에 대한 사과가 없고 매번 폭력만 저지르는데 독자들 사이에서는 거의 주인공 급으로 미화된 점이 문제이다. 그나마 후술하는 인물들과 비교하면 자신의 악행이나 다혈질적인 성격을 못 이기고 저지른 일에 대해 고뇌하거나 후회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13] 이쪽의 경우는 현재 재원고를 자퇴하며 작가가 다시 악역으로 밀어줄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박형석이 트라우마를 이겨내기 위해 꼭 극복해야 할 상대가 이태성인데, 4대 크루를 비롯한 난관들이 많아지며 연재 또한 길어지다보니 작가가 박형석의 성장을 위해 이태성을 너무 빨리 소모시켰다고 판단한 듯.[14] 219화의 진호빈 이미지 세탁을 기원하는 배댓이 좋아요가 싫어요보다 수십 배 가량이 훨씬 많다. 외모지상주의의 제일 큰 비판점인 정신적으로 미숙한 연령층의 독자들이 가진 문제를 입증하는 캐릭터.[15] 이쪽은 219화의 배댓의 내용을 작가가 셀프디스라도 한 듯 세탁드립을 직접 사용했다. 연출상 어쩡쩡한 세탁보단 미묘한 개그 캐릭터로서의 모습으로 끝났으며 이후로도 작가가 이현도 밈을 의식했는지 작중에서 개그 캐릭터이자 숨겨진 조력자의 위치로서의 비중을 챙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독자와의 소통이 잘되는 것과는 별개로 이 작품이 일진미화물로서 비판받는 것을 생각하면 갱생이 부족한 이현도의 세탁은 썩 적절한 선택은 못 된다.[16] 다만 이현도의 경우 일해회 2계열사 음지의 사업에 본의 아니게 일조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의도치 않은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 눈물까지 흘리며 후회하는 모습을 보였다.[17] 신대훈이 조직의 높으신 분의 아들이나 깊은 관계라면 모를까 작중 그런 묘사는 없고 설령 그렇다고 해도 일단 경찰에서 조사를 받는다. 리멤버 - 아들의 전쟁의 남규만을 보더라도 제아무리 빽이 있고 돈이 있어도 일단 완전히 풀려날 때까지는 경찰의 조사를 받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경찰은 엄연히 공권력이다. 즉 조직의 높으신 분이 자기 부하가 잡혀간다고 해서 경찰에게 로비를 넣는 건 돈 아까운 짓일 뿐이고, 힘이나 기타 부정한 수단을 쓴다면 그건 엄연히 정부에게 반기를 든 행동이다.[18] 사실 앞서 이은태를 괴롭힌 일진들이 도를 지나쳐 징계를 받을수 있다고는 하지만 학교에서 이미지가 나빠서 그냥 묻어주거나 방치하는 등 현실에도 작중 일진들이 징계를 가볍게 받는 경우가 많다. 농담이 아니라 앞서 진작에 경찰 불려서 해결될 수 있는 상황이었으면 현실에서 집단 괴롭힘으로 인한 자살이 별로 없어야 한다.[19] 학교폭력에 시달리던 학생이 역으로 빡쳐서 칼로 찌른 사례도 있다.[20] 예시로 같은 플랫폼 웹툰 참교육이 해당 방식을 취한다. 이마저도 결국 엄벌주의에 초점이 맞춰져있다는 비판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