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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2 19:08:37

외르크 슈마트케

<colbgcolor=#eee,#191919><colcolor=#000,#e5e5e5> 독일의 축구인
파일:Jörg Schmadtke.jpg
외르크 슈마트케
Jörg Schmadtke
출생 1964년 3월 16일 ([age(1964-03-16)]세)
서독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뒤셀도르프
국적
[[독일|]][[틀:국기|]][[틀:국기|]]
신체 182cm / 체중 73kg
주발 오른발
직업 축구 선수 (골키퍼 / 은퇴)
축구 감독
축구 행정가
소속 <colbgcolor=#eee,#191919><colcolor=#000,#e5e5e5> 선수 포르투나 뒤셀도르프 (1985~1993)
SC 프라이부르크 (1993~1997)
바이어 04 레버쿠젠 (1997~1998)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1998)
코치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1998~1999 / 수석 코치)
포르투나 뒤셀도르프 (2001 / 골키퍼 코치)
감독 SC 프라이부르크 U-19 (1994~1995)
알레마니아 아헨 (2007 / 감독 대행)
행정 알레마니아 아헨 (2001~2008 / 스포팅 디렉터)
하노버 96 (2009~2011 / 스포팅 디렉터)
하노버 96 (20011~2013 / 스포츠 매니징 디렉터)
1. FC 쾰른 (2013~2017 / 스포팅 디렉터)
VfL 볼프스부르크 (2017~2023 / 스포팅 디렉터)
리버풀 FC (2023~2024 / 스포팅 디렉터)
가족 아들 닐스 슈마트케

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4. 행정가 경력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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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의 축구인.

2. 선수 경력

1985년 9월 28일, 포르투나 뒤셀도르프에서 프로 데뷔했다.

이후 프라이부르크, 레버쿠젠, 묀헨글라트바흐를 거치며 14년간 분데스리가에서 266경기, 2. 분데스리가에서 109경기에 출전했다.

3. 지도자 경력

1994년 6월 1일, SC 프라이부르크 U-19팀의 감독으로 취임하며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1998년 11월 10일,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라이너 본호프 감독을 보조하는 수석코치로 취임했다.

1999년 8월 31일, 본호프와 묀헨글라트바흐의 계약이 종료되며 슈마트케도 팀을 떠나게 되었다.

2001년 1월, 포르투나 뒤셀도르프의 골키퍼 코치가 되었다.

2007년 11월, 기도 부흐발트가 경질되며 잠시동안 알레마니아 아헨의 감독대행직을 수행했다.

4. 행정가 경력

4.1. 알레마니아 아헨

2001년 12월 1일, 400만 유로의 부채를 안고 있는 알레마니아 아헨의 스포팅 디렉터로 선임되었다.

적은 예산으로도 03-04 시즌 팀을 DFB-포칼 결승까지 진출시켰고, 리그에서 4위를 기록하며 다음 시즌 UEFA컵의 출전권을 얻기도 했다.

2006년에는 분데스리가로 승격했으나, 한시즌만에 강등되었다.

2007년 11월, 기도 부흐발트가 경질되며 잠시동안 감독직을 수행하기도 했다.

2008년 10월 20일, 인터뷰를 통해 2009년까지 계약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이 행동은 구단과 합의되지 않은 사항이었기 때문에 구단에서 그날 저녁 슈마트케를 해고했다.

4.2. 하노버 96

2009년 5월, 하노버의 스포팅 디렉터로 취임했다.

2012년 4월, 개인적인 사유로 시즌을 끝으로 계약 해지를 요청했다. 이후 협상을 통해 9월 10일까지 11주의 휴식기를 기지고 연말까지 업무량을 줄이기로 팀과 합의했다.

2013년 4월 20일, 팀과 계약을 해지했다.

4.3. 1. FC 쾰른

2013년 6월, 쾰른의 스포팅 디렉터로 취임했다. 계약 기간은 2017년까지.

2015년 5월 23일, 2020년까지 연장 계약을 체결했다.

2017년 5월 11일, 2023년까지 계약을 연장했다.

2016-17 시즌에는 UEFA 유로파 리그 진출권을 얻으며 25년만의 유럽 대항전 진출을 이끌었다.

2017년 여름 이적시장에서는 앙토니 모데스트를 2,900만 유로의 이적료로 톈진 취안젠에 매각하며 클럽 레코드를 갱신했다.

이후 2017년 10월, 쾰른이 9경기에서 승점 2점을 얻는데 그치자 팀을 떠나게 되었다.

4.4. VfL 볼프스부르크

2017년부터 VfL 볼프스부르크의 단장직을 맡았다.

계속되는 감독과의 불화로 유명하다. 2020-21 시즌 팀을 UEFA 챔피언스 리그로 진출시킨 올리버 글라스너와 불화로 인해 결별했다.

2021-22시즌 시작과 함께 후임 감독으로 마르크 판보멀을 선임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감독 경력이 PSV 에인트호번 한 차례밖에 없는지라 팬들은 우려하고 있다.

2023년 2월 1일, 볼프스부르크 단장직에서 물러났다.#

2023년 5월 6일, 다음 시즌 리버풀 FC의 풋볼 디렉터로 낙점되었다는 보도가 떴으며, 리버풀 에코를 포함한 복수 언론지 다수가 컨펌했다.

4.5. 리버풀 FC

파일:klopp-schmadtke-300523.webp

2023년 5월 30일, 리버풀 단장 선임 소식이 공식 발표되었다.# 비자 발급이 완료되면 6월 1일부터 줄리언 워드의 뒤를 이어 단장직을 수행할 예정이다.

특이하게도 계약 기간은 이번 여름 이적시장 종료까지이며, 상호 합의에 따라 연장할 수 있는 조항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1]

신속성과 결단력이 중요한 이적시장에서 지지부진하고 어찌 보면 멍청하기 짝이 없는 협상력 때문에 8월 들어 리버풀 팬들에게서 욕을 먹고 있다. 알렉시스 맥 알리스터는 전임 단장인 줄리언 워드의 작품이었고, 도미니크 소보슬러이의 경우 바이아웃을 지불하고 선수를 데려온 것이기에 슈마트케가 직접 나서 진두지휘를 할 필요가 없었지만, 모이세스 카이세도 영입전에선 아예 협상 라인에서 배제됐고[2], 로메오 라비아 영입전에선 £50m에 달하는 선수 몸값이 비싸다고 낮은 금액의 비딩을 하며 간을 보다 결국 카이세도 영입전에서 철수한 후 이전보다 높은 금액인 £60m을 제시하고도 퇴짜를 맞는[3] 상상 이하의 능력을 보인 덕분이다. 결국 카이세도와 라비아를 둘 다 놓친 후 합리적인 가격에 분데스리가에서 수위급 활약을 펼친 수비형 미드필더 엔도 와타루를 직접 픽해서 데려왔지만 나이와 리그 적응에서 의문부호가 붙는 영입인데다가 시즌 개막하고나서야 부랴부랴 영입하는 모양새인지라 여전히 좋은 평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번 이적시장에서 파비뉴조던 헨더슨을 떠나 보낸 후 수비형 미드필더를 영입할 때 보인 어수선한 행보로 인해 슈마트케 이후로 클롭의 이적시장에서의 권한을 줄이고 무너진 체계를 다시 갖출 수 있는 유능한 디렉터를 선임하는 것이 필수라는 의견이 팬들 사이에서는 지배적이다.

상기했듯이 볼프스부르크에서도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고, 리버풀 단장에 선임된 것 역시 클롭 감독을 관리하는 에이전시의 추천 때문에 자리에 오른 만큼, 부임 이전부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이들이 많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연이은 삽질을 선보이며 마이클 에드워즈를 그리워하는 많은 팬들의 뒷목을 잡게 하고 있다.

이적시장 데드라인 주에는 리버풀이 라이언 흐라번베르흐를 영입해 중원에 추가적인 보강을 했지만 이적료도 사전에 추정되었던 €30m - 35m보다 비싼 €40m에 영입이 확정되었기 때문에 이 사람이 협상을 제대로 하긴 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거기다가 흐라번베르흐는 새롭게 리버풀의 영입리스트에 오른 선수도 아니고 아약스 시절부터 그를 모니터링하고 있다는 언급이 이미 여러 차례 나왔으며 22-23 시즌 후반기에도 영입설이 떴을 정도로 리버풀과 링크는 꾸준히 나고 있었기 때문에 과연 슈마트케가 하는 일이 대체 뭔지에 대한 의문은 점점 커지고 있다.[4]

거기에 더해 계약 기간이 원래 알려진 3개월이 아닌 1년이며, 3개월이라고 알려진 것은 자신의 성과에 대한 중간 평가가 여름 이적시장 직후이기 때문에 그렇게 알려진 것이라는 인터뷰를 하면서 리버풀 팬들의 뒷목을 잡게 하고 있다.

10월 중순에 나온 제임스 피어스보도에 의하면 내부적으로는 슈마트케의 성과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고 한다.

2024년 1월 26일, 위르겐 클롭이 이번 시즌을 끝으로 사임하기로 발표하면서 클롭을 보좌하기 위해 은퇴를 번복하고 임시 디렉터 직을 맡은 슈마트케 역시 겨울 이적시장 이후 사임했다.

후임으로는 팀 슈테이텐, 리처드 휴즈 등이 거론되고 있으며, 2024년 3월 20일 휴즈가 디렉터로 선임되었다.

5. 여담



[1] 이는 슈마트케가 당초 볼프스부르크의 단장직에서 물러난 뒤에 은퇴를 선언했었기 때문이며, 단 몇 개월이긴 해도 현장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가 일시적으로 은퇴를 번복하고 넘어온 사정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형태의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2] 해당 사가는 구단 CEO인 빌리 호건이 직접 맡아 협상에 나섰다.[3] 당초엔 실제로 이 금액을 비드했는가에 대해서는 기자들 간 이견이 있었으며 첼시 측 기자들은 비딩을 했다고 주장했고, 리버풀 측 기자들은 비딩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후에 이 기자들의 이견에 대해 사우스햄튼의 디렉터가 직접 리버풀의 비드도 받았다고 증언을 하면서, 리버풀도 라비아에게 비드를 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4] 애초에 클롭이 전권에 가까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에 본인의 영향력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추론도 존재하며, 실제로도 맥 알리스터와 흐라번베르흐를 포함하여 여름에 영입된 리스트들의 대부분은 이미 줄리언 워드가 나가기 전에 남기고 간 리스트이기도 했다.